전편에 이어서 계속
*** 이제 사진이 더 이상 첨부되지 않는다해서 다음 글로 넘어갑니다. ***
사진 / 황북평촌에 계신 조선의용대 화북지대 4분의 용사 손일봉, 박철동, 최철호(한청도), 이정순(왕현순) 의사의 묘 -- 전부 첩보활동을 하셨는지 이명이 많습니다.











하북성 호가장에서 조선의용대가 중국인민을 상대로 전투요령과 농사일을 거들며 연극공연을 하는등 선무활동을 한달간 벌리다가 1941년 12월 12일 철수하는 것을 중국인 간첩이 밀고하여 일본군 500여명이 조선독립군 29명을 죽이고자 기습포위 했을 때, 중국군이 달려와서 일본군을 공격하고 안팎으로 싸워서 가까스로 구출했는데 이때 중국군12명과 조선의용대 화북지대 용사 네분이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전투가 끝나고 일본군이 조선독립군의 시신을 훼손할까봐 주민들이 호가장에서 산 반대편으로 40리나 되는 거리를 시신을 들쳐업고 밤새 내달려서 황북평촌에 장사를 지냈답니다.
세월이 흘러 묘지가 도로확장에 들어가자 황북평촌 촌장님이 자기 선산을 내어서 묘지를 이장하고 단장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해를 돕자면 지리산 남쪽 화개 피아골에서 전투가 발생하여 전사하셨는데, 일본군이 시신을 훼손할까봐 산을 넘고 넘어 북쪽 남원 뱀사골에 장사를 지낸 격입니다. 그래서 호가장 전투지역을 둘러보고 묘소에 참배하러 황북평촌으로 가려면 100km나 돌아가야 하고 도로사정이 열악하여 2시간이 걸립니다.
친일파들이 득세한 대힌민국 정부는 이때까지 아무것도 한 것이 없어 정말 부끄러운 일입니다.
사진 / 호가장 전투가 벌어졌던 호씨 집성촌 호가장





사진 / 호숙영씨가 보여주었던 조선의용대 화북지대가 사용했던 식량자루, 밀양독립기념관에 전시할 목적으로, 우리에게 줄려고 가져 나왔느냐고 물었더니 중국공산당원인 신랑이 안된다고 역사유물이라 줄수 없다고 해서 더 달라고 하지도 못했습니다. 준다면 밀양독립기념관에 잘 전시 할건데, ... 잘 보전되길 바랍니다.

사진 / 우측 호가장의 호숙영씨 조선독립군가 “불멸의 영령”을 기억하며 중국어 버젼과 조선어 버젼으로 불러주십니다.

사진 / 자수를 예쁘게 놓아서 조선의용대가 지니고 다녔던 식량자루(쌀자루)
사진 / 호가장 입구에 있는 조선의용대 화북지대 김학철 김사랑문학비.






사진 / 호가장 전투기록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6월 5일 북경 – 김해 – 밀양
사진 / 팔보산 혁명공묘(중국 건국에 공이 있는 사람들의 묘역)에 있는 조선이 낳은 불세출의 작곡가 정율성 묘, 약산 김원봉장군이 정율성의 천재성을 알아보고 전투부대에서 제외하고 음악공부를 하도록 독려함



사진 / 1919년 3.1 만세운동의 영향으로 중국땅에서는 5.4 운동이 일어났는데 그 중심이 되었던 북경인민대학, 일본군이 강취하여 헌병대 본부 건물로 사용했고 지금은 5.4운동 기념관으로 사용.



사진 / 북경 중국 사회과학원 근대사연구소(동북공정으로 역사왜곡을 주도하는 곳)




사진 / 중국 사회과학원 근대사연구소 건물양식은 일제 강점기 일본양식 그대로 보전되어 있다.


사진 / 사회과학원 바로 건너편에 있는 청포도 광야를 지은 이육사가 수감되어 돌아가신 감옥

사진 가운데 창문아래 시멘트로 막힌곳 지하에 이육사가 수감되어 있던 곳. 2016년도에는 창문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막아버렸음. 자꾸 두면 항일유적지가 훼손되는데 친일파 정부는 방치하고 있음.

이상으로 석정 윤세주의사 기일을 맞아 태항산 장자령 십자령 석문촌 초장지와 진기로예 열사묘, 호가장과 황북평촌 그리고 북경을 둘러보고 돌아왔습니다.
한국에 들어와 현충일을 맞이하여 문재인이 약산을 거론했다고 친일파들이 난리난리 개난리를 피우는 꼴을 보고 몇일간 생각을 해 봤습니다.
약산을 빨갱이라 떠들며 똥싸는 물건들이 하북성 한단시 섭현 장자령에서 조국의 광복을 위해 싸우다 돌아가신 석정 윤세주의사의 묘소를 한번이라도 참배한 놈이 있을까요?
나는 나베 나경원이나 황교안이 한단시에 있는 진기로예 열사능원에 참배했다는 소리는 못들어 봤습니다. 한 번이라도 참배했다면 저런 소리 못할 것입니다.
약산을 욕하는 무리들이 약산과 함께 조국광복을 위해 싸우다 돌아가신 황북평촌에 계신 네분 손일봉, 박철동, 한청도, 왕현순 의사의 묘소에 한 번이라도 참배 했다면 어찌 그분들을 빨갱이라고 욕하고 욕보일수 있습니까?
친일파들이 이국땅에서 독립을 위해 일본군과 싸우다 돌아가신 호국영령들을 방치하고 돌보지 않은지 80년이 다 되어 가는데, 오히려 중국사람들이 자기들을 위해 싸워 주었다고 땅내고 묘지를 만들고 묘지단장을 하고 해마다 제사를 지낸다는 사실에 대하여 뭐 느끼는 게 없을까요?
박다까끼 마사오의 딸이 시진핑을 만났을때 시진핑이 우리는 혈맹이라고 이야기 했는데 조선독립투쟁사를 전혀 모르고 일국의 대통령이 되어서 중국 1인자인 시진핑이 한 말의 그 뜻을 몰라 어리버리하던 모습을 영원히 잊지 못합니다.
1942년 5월 25일 일본군이 전차와 비행기를 동원해서 태항산을 포위하고 중국군을 포위해서 공격할때 위기에 몰린 중국군 수뇌부를 살린 사람이 조선의용대 화북지대 제1지대 박효삼 지대장과 30명의 특공대입니다.
십자령에서 일본군의 진격을 저지하고 버티는 동안에 중국군 수뇌부 주덕, 팽덕회등이 퇴각할 시각을 가져서 목숨을 건졌고, 그 이후 반소탕전을 이끌면서 일본군을 물리쳐서 일제가 동남아를 석권하는 것을 저지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는데, 시진핑이 그것이 고마워서 한국에 무엇인가 해 주고 싶어서 혈맹이라고 이야기 하였던 것을, 친일파의 딸이 그 소리가 무슨 소린지 알아먹지 못해서 주던 떡도 못받아 먹은 서글픈 역사가 있습니다.
참고로 박효삼지대장이 이끌던 조선의용대 화북지대 특공대는 한명도 전사하신분이 없고 3명만 부상을 입을 정도로 정말 일당백의 무시무시한 군대였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얼마나 정신력이 고강했으면 일본군이 야포와 비행기까지 동원해서 공격해도 일본군을 저지하고 중국팔로군의 퇴각로를 열며 고군분투 했는데 사망자 한 명도 없이 부상만 3명이라는 게 전세계 전쟁사를 통털어 이런 전투가 있을까 싶은 대단한 승리라고 봅니다.
해방후 이승만이 친일파와 결탁하여 미군의 앞잡이가 되는 바람에 아쉽게도 박효삼지대장은 북한에 남아 북한군을 창설하는 가슴아픈 역사가 되고 말았습니다.
역사공부도 안하고 조중동이 떠들고 지랄떠는 것만 줏어들어서 대가리 든게 없는 것들이 약산을 욕하고 자빠졌지, 최소한 조선독립투쟁사를 공부해보면 약산에 대하여 욕할 건덕지가 없는게 진실입니다.
이승만이 독립운동을 위해 무엇을 했나요? 안전한 하와이에서 교포들이 동립운동하라고 걷어주는 피같은 돈을 호의호식하며 탕진하고 미군 OSI 첩자노릇 한 게 전부 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박정희가 만주군 소위로 독립군 때려잡는 선구자(친일파 조두남의 노래 선구자)로 살았음을 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독립운동 근처도 못가본 것들과 일본에 빌붙고 미제에 빌붙어 권력의 단물을 빨면서 국민을 고통속에 몰아넣었던 해방정국의 역적놈들이 아직도 죽지않고 주둥아리를 나불거리며 대한민국을 더럽히고 있습니다.
이땅에서 약산을 뺄갱이라 욕할수 있는 종자는 친일파, 친일역적놈, 친일역적놈후손, 친일역적놈후손집합당패거리와 거기에 부화뇌동하는 골빈놈 밖에 없습니다. 이 내용을 꼭 명심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