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맞물린 톱니바퀴
11월 말의 북풍은 어김없이 겨울을 실어오고 있었다. 청계천가의 남
루한 누더기집들은 이른 추위를 맞고 있었다. 판자로 엉성하게 얽고 땜
질해 루핑으로 지붕을 덮은 집들은 더위도 추위도 먼저 탔다. 가난한 사
람들은 더위도 추위도 더 오래. 더 심하게 겪을 수밖에 없었다. 하루 벌
어 하루 먹어야 하는 누더기촌 사람들에게 추위가 달가울 리 없지만 좀
나아진 것이 있다면 여름 내내 진동했던 온갖 악취가 다소나마 가신 것
이었다. 그리고 극성스럽게 기승을 부리던 파리떼와 모기떼가 자취를
감춘 것은 추위가 가져다 준 큰 선물이라면 선물이었다.
천두만은 밥벌이 연장들을 얹은 반토막짜리지게를 들고 부엌에서 나
왔다. 다리가 한 뼘도 안 되게 짧은 지게에는 세 가지 연장이 석탄가루
가 검게 묻은 새끼줄로 묶여 있었다. 쇠로된 연탄틀. 큼직한 나무망치.
자루 짧은 헌 삽 또한 석탄가루로 닦여 검은 윤기를 내고 있었다.
그 밥벌이 연장들 중에서 돈이 들어간 것은 연탄 틀 뿐이었다. 나머지
는 천두만이 손수 만들거나 어디서 주워온 것들이었다. 지게와 나무망
치는 여기저기서 각목이며 통나무토막을 구해다가 만들었고. 헌 삽은
아파트 공사장에 날품팔이를 나갔다가 버린 것을 주워와 가지고 다니기
편하게 자루를 반으로 잘랐다. 지게도 산동네 비탈골목을 오르내리는
데 걸리적거리지 않고 간편하게 하려고 다리를 아주 짧게 했다.
“웂이 사는 사람덜 더 애터지게 헐라고 또 겨울이 오는갑네 이. 배 채
우기도 에로운디 옷이야 연탄이야 고런 것이 다 쌩돈 깨지는 것이 아니여.
거렁뱅이 신세 여름이 상팔자드라고 가난뱅이헌테도 겨울은 웬수여.”
부엌 앞에 앉아 천두만의 아내는 구시렁거리고는. “날도 쌔코롬허니 추
운디 해 떨어지기 전에 일찍허니 들오씨요. 씨래기나따나(망정) 김장허
는 날이고 헝께.” 그녀는 수북하게 쌓인 배춧잎들을 손 빠르게 간추리며
남편을 쳐다보았다.
“닌장맞을. 김장이나마 요 드런 놈에 신세.! 워찌 요리도 각다분허
고 팍팍헝고.”
천두만은 울분을 토하듯 탄식하듯 하며 지게를 지고 집을 나섰다. 그
가 속이 상한 것은 아내 앞에 쌓인 배춧잎 때문이었다. 그건 아내가 김
장시장에서 뜯어서 버린 겉잎들을 주워온 것이었다. 식구들을 서울로
이사시킨 것이 벌써 몇 년인데 여태껏 그런 거지 신세를 면하지 못한 것
이 남편으로서 면목 없고 달리 할말도 없었다.
“천 씨. 일 나가시유”
고개를 푹 숙이고 걷던 천두만은 뒤를 돌아보았다.
“강 씨 혼자 한겨울 만냈소? 겨울옷 입고 일헐 자리 생겼당게라?”
천두만은 가까이 다가오는 강 씨를 아무 표정 없이 보며 그저 아침인
사삼아 말했다.
“찬바람 이는데 어디 날품팔이라도 일자리가 있남유. 오늘 국립식당 갈
라고 나서는 참이여유.”
늙은 강 씨는 ‘국립식당’이라고 하면서도 태연하게 웃음지었다.
“허 참. 이번에 가면 별이 몇 개나 되는게라?”
천두만은 어이없는 웃음을 흘렸다.
“다섯 개지유. 열 개까지는 채우지 말아야 할 건디. 모르겠시유.”
“오늘은 뭐시럴 훔칠란지 정했소?”
“그야 시장통에 나가면 많지유. 내년 3월까지만 살게 잘 골라야지유.”
“요분에 들어가면 전도사님 만낼지도 몰르는디. 만내면 혼날 것인
디요.?”
“괜찮허유. 나야 다 버린 인생인게유.”
“내 참. 우리 농사꾼들이 어쩌다가 요런 기맥힌 신세들이 되얐는지 몰
르겄소. 시상은 잘살게 되얐다고 허는디도 우리 같은 것들 앞날은 캄캄
허기만 허니. 좌우지간 골병 안들게 잘 허씨요.”
“야아. 천 씨도 돈벌이 많이 허고. 날 풀리면 내년 춘삼월에 만내유.”
강 씨는 손인사를 하며 큰길을 건너갔다. 천두만도 걸음을 멈추고 자
꾸 뒤돌아보는 강 씨에게 긴 손인사를 보냈다. 그가 말하는 ‘국립식당’
이란 형무소였다. 그는 일부러 죄를 지으러 가고 있었다.
강 씨는 일삼아 죄를 저질러 겨울 서너 달을 형무소에서 보내고. 나오
는 것으로 누더기촌에서 유명해진 인물이었다. 더는 소작농으로 살 도
리가 없어 돈벌이 좋다는 서울로 올라온 그는 온갖 날품팔이를 해서 고
향으로 돈을 보냈다. 그러나 겨울이 닥치자 건설공사를 비롯해서 시멘
트벽돌 찍는 일들까지 중단되어 날품을 팔 데가 없어지고 말았다. 고향
에 돈을 보내기는커녕 혼자 입에도 거미줄을 칠 판이었다. 사흘 굶으면
남의 집 담장 안 넘을 사람 없더라고 그는 며칠을 굶다 못해 어느 상점
앞의 자전거를 훔쳤다. 그러나 곧 붙들려 경찰서로 끌려갔다. 절도죄로
재판을 받고 3개월 감옥살이를 했다. 감옥에서 풀려나고 보니 겨울이
가고 봄이 와서 날품 팔기가 쉬워져 있었다. 그때 그는 깨달았다. 아하
이렇게 겨울을 나는 방법이 있었구나! 감옥살이를 하면 하루 세 끼 밥을
꼬박꼬박 얻어먹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다음해부터 그는 겨울이 시작
되면 일부러 절도범이 되고는 했다.
강 씨의 모습이 사람들 속으로 사라지자 천두만은 발길을 돌리며 그
가 감옥에서 김 전도사를 만나지 않기를 바랐다. 늘 죄짓는 짓 하지 말
고 부지런히 일하며 바르게 살라고 가르친 김 전도사를 만나면 어찌 될
것인지 생각만 해도 아슬아슬했다. 김진홍 전도사는 다른 목사. 전도사
들과 유신 반대 집회를 가졌다가 벌써 1년째 감옥살이를 하고 있었다.
그동안 면회를 두 번밖에 가지 못한 것이 못내 죄스러웠다. 마음 같아서
는 날마다 가고 싶었지만 너나없이 하루살이 목숨들이라 밤이면 모여앉
아 마음만 띄워 보내고는 했다. 그분이 없는 청계천 동네는 어지럽고 험
하게 변해갔고. 많은 사람들이 마음 의지할 데를 잃어 허전해 했다.
천두만은 금호동 산동네로 접어들며 허리끈을 조이고 어험. 어험 헛
기침을 해 목을 가다듬었다. 영업을 시작하기 위한 준비였다. 깨진 연탄
을 다시 찍어주는 이 돈벌이는 연탄 찍는 기술 못지않게 목소리가 좋아
야 했다. 우선 소리를 외쳐 손님들에게 알려야 하는데 목소리가 작고 가
늘어서는 그만큼 일거리 잡기가 어려웠다. 손님을 많이 불러 모으자면
목소리가 크고 울림이 좋아야 하는데 그건 타고난 목청만으로 되는 일
이 아니었다. 가슴을 펴고 숨을 한껏 들이켠 다음 아랫배의 힘을 밀어올
려 힘차게 소리를 토해내야 했다.
그러나 무게가 만만찮은 연장들을 얹은 지게를 지고 목소리를 크고
울림 좋게 낸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두 번도 아니고 연
달아 소리를 지르는 것이고. 평지도 아니고 비탈골목을 오르내리며 목
청을 뽑아야 했다. 일거리를 얼른 잡지 못하고 스무 번 넘게 외치다 보
면 목은 칼칼하게 매워지고 뱃속에서는 헛바람이 도는 것처럼 기운이
파하기 일쑤였다.
두부장수들이 종을 딸랑거리는 것처럼 꽹까리를 치거나 깡통이라도
두들겼으면 좋으련만 어떻게 된 것이 연탄 찍어먹는 것들은 하나같이
미련스럽게 소리를 질러대 헛기운을 빼고 있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
해 보니 두부장수들이 울리는 종소리라는 게 하루 이틀에 예사로 이루어
진 것이 아니었다. 아침저녁으로 골목골목에서 울리는 종소리를 두부장
수들이다 하고 세상사람 들이 알아듣게 된 것은 오랜 세월이 걸린 것이
었다. 그런데 연탄 찍기가 생겨난 것은 겨우 몇 년에 지나지 않았다.
“여어연탄 찍소오오. 여어언탄 찍어!”
천두만은 산동네 좁은 골목으로 들어서며 첫 번째 외침을 터뜨렸다.
“여어언탄 찍소오오. 여어언탄 찍어!”
천두만은 반대방향을 향해 다시 외치며 발을 느릿느릿 떼어 놓았다.
손님이 소리를 듣고 나오는 것과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였다.
“여언탄 찍어요. 연탄!”
어디선가 울려오는 낯선 소리에 천두만은 문득 긴장했다. 아침부터
옴 붙느라고 동무장사와 부딪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더러 있는 일이라
서 천두만은 아랫배에 잔뜩 힘을 주었다.
“여어언탄 찍소오오. 여어언탄 찍어!”
천두만은 어느 때보다도 어기차게 자기식 가락을 뽑아댔다. 우선 소
리로 상대방의 기를 꺽어야 했다. 그리고. 한바탕 벌어질지 모를 시비에
대비해 마음을 다잡았다.
“어쭈. 이거 영감탱이 아냐? 당신 누구 허락받고 이 동네서 설쳐?”
맞은편 골목에서 불쑥 모습을 드러낸 한 남자가 천두만을 향해 내던
진 말이었다.
“머시 워찌고 워쪄? 영감탱이? 그려. 영감탱이헌테 말 고따우로 해쳐
묵는 니놈언 누구 허락받고 넘 바닥서 설래발치고 지랄 염병이냐.”
천두만은 상대방보다 더 드센 기세로 내질렀다. 그런데 뜻밖에 처음
듣는 ‘영감탱이‘라는 말에 그는 자신이 어느덧 쉰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니놈? 이 영감탱이가 죽고 싶어 환장을 했나? 어디다 대고 욕을 씹
어 뱉고 이래. 잘못했다고 그냥 물러서면 봐주려고 했더니 이거 안 되겠
네. 씨팔!”
눈 사납게 뜬 그 남자는 침을 내뱉었다.
“안 되면 니놈이 워쩔 것이여? 니놈 눈구녕에는 나가 영감탱이로만
뵈는갑는디. 나가 맵고 짜운 서울물 15년 간 묵어감스로 요런 쌈에는 져
본 일이 없는 사람이여. 이놈아! 왕년에 씨름판에서 황소를 따묵은 몸인
디. 니까진 놈 한나 모가지 삐뚤어뿔기는 식은죽 묵기여. 개소리 치덜
말고 한판 붙어서 결판내. 이놈아. 짐 벗고 덤벼!”
천두만은 씨름판에서 황소를 따먹었다고 엄포를 놓으며 지게를 벗어
부쳤다. 그는 상대방이 나이는 마흔 서넛쯤으로 보였지만 몸이 실해 보
이지 않아 기운으로 밀어붙일 자신이 있기도 했다.
“아침부터 재수 드럽네. 이게 그냥 봐줄려고 했더니 안 되겠어. 좆같
은 영감탱이!”
그 남자도 지게를 벗었다.
그때 천두만은 먼저 공격을 가했다. 날쌔게 덤벼들어 상대방의 목을
오른손으로 움켜잡음과 동시에 뒤로 떠밀었다. 평생 힘든 일을 이겨내
느라고 투박스럽게 커진 그의 손은 우악스러운 힘으로 상대방의 목을
조이고 있었다. 그 남자는 숨을 캑캑거리며 천두만이 떠미는 대로 블록
벽에 부딪쳤다. 천두만은 잠시의 짬도 주지 않고 상대방의 얼굴에 박치
기를 해댔다.
“아이쿠 아저씨. 살려주시오.”
그 남자는 숨막히는 소리를 내며 주저앉았다. 천두만은 세 번째 공격
을 가하려고 들어올리고 있던 오른쪽 무릎을 도로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 무릎으로 사타구니를 걷어찰 참이었다. 제아무리 강한 자도 무릎으
로 부자지를 걷어차이고 나면 사지를 뻗고 널브러지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구하고 싸우거나 단숨에 이길 수 있는 그 세 가지 공격법은 인천 부두
에서 익힌 거였다.
“아자씨? 인자 사람이 지대로 뵈여? 첨보톰. 아자씨 우리 항꾼에 벌
어묵고 삽시다 험서 예절을 갖췄음사 서로 없이 사는 처지에 누가 머랄
것이여? 근디 젊은 놈이 느자구 웂고 시건방구지게 머시가 워찌고 워
쪄? 더 뼉다구 뿐질러지기 전에 내 눈앞에서 싹 꺼져뿌러!”
“예. 예. 잘못했습니다요.”
그 남자는 지게를 지지도 못하고 끌어안듯이 해가지고 허둥지둥 달아
나기 시작했다.
“허 참. 아칙보톰 어먼 디다 하로 쓸 기운 다 써부렀네. 오늘 일진이
워찌 이리 얄궂다냐.”
천두만은 손바닥을 털며 침을 세 번 내뱉었다. 액땜을 하자는 뜻이었
다. 그는 지게 옆에 주저앉으며 꽁초를 꺼내 불을 붙였다.
깊이 삼킨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그는 자신이 어느새 쉰이라는 사실을
다시 떠올렸다. 서른다섯에 한강을 건너왔는데 15년을 보태고 보니 에
누리 없는 쉰이었다. 그땐 쉰의 나이가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었고. 더
구나 쉰에 이런 꼴로 살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서울에서 5년
만 비벼대면 한밑천 잡아 고향으로 돌아갈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그건
어림없는 헛꿈이었다. 서울은 돈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돈을 쉽게 벌
수 있는 곳이지 배운 것 없고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끝도 한정도 없는 뻘
밭이었다.
천두만은 입술이 타들 지경으로 꽁초를 끝끝까지 피운 다음 무겁고
진한 한숨을 토해내며 지게 멜빵을 잡았다. 지게가 시골 농사꾼의 지게
가 아니라 각구목과 판자쪽으로 얽어 짠 것처럼 그 멜빵도 짚으로 땋아
엮은 것이 아니고 낡은 군용 탄띠를 붙인 것 이였다.
“여어언탄 찍소오오. 여어언탄 찍어!”
천두만은 기분을 바꾸어 기운을 추스르려고 했지만 소리는 아까처럼
힘지게 나오지 않았다. 생각보다 약하게 무너졌던 그 남자의 모습이 지
워지지 않으며 기분이 영 께끄름했다. 그도 처자식 먹여 살리겠다고 이
짓을 나선 불쌍한 밑바닥 인생이었다.
“여어언탄 찍소오오. 여어언탄 찍어!”
천두만은 그 남자가 나타났던 반대쪽 골목으로 발길을 옮기며 억지로
소리를 질러댔다.
세 번째 골목을 돌며 스무 번이 넘게 외쳐댔지만 손님은 붙지 않았다.
역시 재수 옴 붙은 날이다 싶어 천두만은 맥이 빠지고 있었다. 잡친 기
분 같아서는 일을 때려치우고 싶었다. 그러나 상업고등학교에 다니는
큰아들의 수업료가 급했다. 이미 기한을 넘겨 큰아들은 아침마다 눈치
를 살피다가 시무룩해져 가방을 들고는 했다. 석 달 간격으로 수업료를
내야 하는 그 시기는 어찌 그리 숨 가쁘게 밀어닥치는지. 그러나 큰아들
이 20등 안쪽에 들어 크나큰 다행이었다. 한 반에서 20등 까지는 학교에
서 취직을 시켜준다고 했다. 큰아들이 어엿한 회사에 취직을 하면 ......
그건 자신에게 남은 유일한 꿈이었다.
큰아들을 생각하자 다시 기운이 솟은 천두만은 다른 골목으로 접어들
며 목청을 뽑았다. 서너 번 외쳐대는데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연탄 아저씨. 여기 찍어요 여기.”
천두만은 부엌 구석에 쌓인 깨진 연탄의 덩어리들을 마당으로 옮기며
다섯 개쯤 되리라고 눈짐작을 했다. 일거리가 마음에 차지 않았지만 마
수걸이라 그나마 고맙게 생각했다.
천두만은 연탄덩어리들을 나무망치로 잘게 바수었다. 주인여자가 떠
내온 바가지물로 연탄가루를 조심조심 축였다. 그리고 삽으로 연탄가루
를 연탄틀에 수북하게 퍼넣었다. 그걸 나무망치로 다근다근 다진 다음
연탄틀 뚜껑을 덮었다. 천두만은 두 손바닥에 침을 튀기며 일어나 나무
망치를 높이 치켜 올려 힘차게 연탄틀 뚜껑을 내리쳤다. 두 번 세 번 내
리치고 나서 뚜껑과 연탄틀 몸통을 벗기자 연탄이 드러났다. 천두만은
연탄을 두 손으로 감싸 조심스럽게 위로 올렸다. 그러자 연탄구멍을 만
들어낸 쇠막대기들만 남고 하나의 연탄이 그럴듯하게 모습을 갖추었다.
“연탄을 잘들 찍어낼 것이지 이게 뭐야. 도둑놈들이 흙만 많이 섞어가
지고 불땀도 없고. 잘 깨지게 해 이중삼중으로 돈 들게 만들고 있는 놈
들이 없는 사람들 간 빼먹는 세상이라니까.”
연탄 다섯 개를 찍어낸 값을 내놓기 아깝다는 듯 주인여자가 돈을 세
며 독한 입놀림을 했다.
“그려라. 돈욕심이야 있는 사람들이 더헌 법잉께라. 논 아흔아홉마지
기 지닌 놈이 한 마지기 지닌 사람보고 폴라고 안 헌답디여. 백 마지기
채울 욕심으로.”
천두만은 한마디 반죽을 맞추며 돈을 받아가지고 돌아섰다.
연탄 찍는 일거리는 그나마 가난한 산동네에서나 찾을 수 있는 겨울
한철 돈벌이였다. 평지에 집 지니고 사는 여유 있는 사람들은 연탄이 깨
지면 그냥 쓰레기통에 내다 버렸다.
천두만은 다시 새 골목을 찾아 돌며 목소리를 돋우다가 앞에서 오는
사람을 보고 멈칫 놀랐다. 이런 산동네에는 어울리지 않게 매끈하게 양
복을 빼입은 사람. 그는 틀림없이 서동철이었다.
“부. 부장님 안녕허신게라? 천두만이어라.”
“어 ......? 아저씨 이거 오랜만이오. 이 동네 살아요.”
머뭇하던 서동철은 천두만을 알아보고 환하게 웃으며 반가워했다.
“아니구만이라. 요런 동네라도 살면 더 바랠 것이 웂제라. 배 터지는
돈벌이 나왔구만요. 연탄 찍으라고 ......”
천두만은 지게를 약간 돌려 보였다.
“아아. 그거. 근데. 머리카락 모으는 일은 어찌 됐어요? 그것보다 이
게 더 나아요?”
“워디가요. 요 일은 입에 풀칠허기가 에롭구만요. 머리채 모아딜일 때
가 참말로 호시절이었는디. 머리크락 싹 동나부러 죽도 사도 못허고
요런 일꺼정 나섰구만이라. 근디 부장님은 여그 워쩐 일이시당가요?“
“예. 재작년에 시골 식구들을 이 동네로 이사시켰어요. 여기서 이러지
말고 저 아래 앉을 데 있는 데로 내려 갑시다.”
“재작년이라고라? 근디 워째서 부장님을 인자사 만내는지 몰르겄소.
나가 여그 자주 발길 혔는디.”
“아. 내가 여기 살지 않아서 그래요. 1주일에 한두 번 오니까.”
“옳여. 그렁께 그렇제. 참말로 반갑구만요 이.”
“그런데 그때 그 손가락 잘렸던 사람은 어떻게 살아요? 벌써 3~4년
이 지났네.”
“야아. 부장님 덕분에 구멍가게 채레갖고 그작저작 묵고 사는 걱정은
없구만이라. 장개도 가구요.”
“그래요? 그거 다행이요.”
천두만은 극장의 똥을 푸던 시절을 생각하며 마음이 쓸쓸해졌다. 그
때만 해도 기운이 좋아 드럼통 하나 반을 연결시킨 똥통 리어카를 거뜬
거뜬 끌 수 있었다. 그러나 세월이 무정해 이젠 그럴 기운이 없었다.
평지로 내려온 서동철은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더니 빨간 천이 드리워
진 왕대포집으로 천두만을 데리고 들어갔다.
“그 일로 한 달에 얼마나 벌어요? 1만 원?”
투박하게 두껍고 큰 왕대포잔에 막걸리를 따르며 서동철이 물었다.
“택도 웂소. 그리 벌면 팔자 피게라?”
“그럼 한 달에 2만 원씩 받고 취직할 맘이 있소?”
“야아 ......?”
술잔을 들던 천두만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다른게 아니라 내 동생이 쌀가게를 하는데 배달원이 필요해요. 요새
세상이 좋아져서 아파트촌에서는 활명수 하나. 배추 한 단도 다 배달을
해주는 유행이 벌어지고 있어요. 그러니 쌀을 한 말이든 두 말이든 배달
을 해주지 않고는 장사를 해먹을 수가 없어요. 그런데 그동안 젊은 놈들
을 써보니까 농땡이 까서 배달 잘 안 되지. 여차하면 돈 훔쳐 땡땡이 놀
지. 보통 속썩이는 게 아니란 말이오. 아저씨가 부지런하고 믿을 수 있
으니까 거기 가서 일하도록 하시오.”
“아이고메 부장님. 또 지가 살길을 열어주시는 구만이라. 고맙구만요.
고맙구만요.”
천두만은 눈물까지 글썽거리며 드럼통 탁자에 이마가 부딪칠 지경으
로 머리를 숙이고 또 숙였다.
“고맙긴요. 어서 술 드세요. 내가 오히려 아저씨한테 부탁할 게 있는
데 우리 동생 장사 잘되게 열심히 좀 일을 해 주시오. 그놈이 배운 것도
없고 기술도 없이. 있다는 것은 쌀집에서 일한 것밖에 없어요. 그래서
내가 사람들이 층층이 많이 몰려 사는 아파트촌에다가 쌀가게를 차려 줬
어요. 그놈 참 불쌍하게 큰 놈이니까 아저씨가 잘 도와주란 말이오.”
“야아. 야아. 부장님 대허디끼 그리 허것구만이라.”
“예. 그렇게 해주면 고맙지요. 내가 연락해 놓을 테니까 내일부터 바
로 나가도록 하시오.”
한 되 막걸리를 혼자 다 마시고 서동철과 헤어진 천두만은 술기운이
거나해져 절로 흘러나오는 육자배기를 흥얼거리며 허벅다리장단을 맞
추었다.
그는 기분이 너무 황홀해 정말이지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할 수
가 없었다. 점심까지 얻어먹고 한 달에 2만 원짜리 취직이라니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았다. 당장 집에 들어가 ‘딸라변’을 내서 큰아들한테 수업
료를 착 줄 참이었다.
오늘 재수가 옴 붙은 게 아니라 한강을 건너온 다음 15년 동안에 제일
운세가 좋은 삼팔광땡이었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아까 그 남자와 괜
히 싸운 것이었다. 다시는 그 동네에 발걸음을 못할 그 남자에게 그지없
이 미안했다.
“여보. 나 월급 2만 원짜리 취직혔어. 2만 원짜리. 싸게 옷 잠 챙겨 옷!”
천두만은 방문을 열어제치며 외쳤다.
다음날 아침 일찍 천두만은 잘 다리미질된 옷을 입고 집을 나섰다.
한강아파트촌의 상가는 찾기 쉬웠고. 상가 안의 만복상회는 더 찾기 쉬
웠다.
“저어 ...... 서 부장님이 보내서 왔는디요. 천두만이라고 허능마요.”
짱구 머리가 서동철하고 꼭 닮은 주인 앞에 천두만은 깊이 허리를 굽
혔다.
“예. 어서 오세요. 형님한테 전화 받았어요. 자아. 이쪽으로 편히 앉으
시고. 그런데 ...... 아저씨는 서울말 할 줄 모르세요?”
“머시냐. 역부러 안 배왔는디요.”
그 첫마디의 뜻이 무엇인지 몰라 천두만은 눈을 껌벅껌벅했다.
“왜요?”
“긍께 머시냐. 서울말이란 거시 영 간살시럽고 듬직허덜 못혀 맘에 안
드는디다가. 때 되면 고향 찾아갈 참이었응께라.”
“그래요. 나도 서울말이 별로 맘에 안 들어요. 그렇지만 장사를 하려
고 서울말을 억지로 배웠어요. 사람들은 이상하게 전라도말을 싫어하니
까 장사를 해먹으려면 어쩔 수가 없어요. 아저씨도 싫은 생각은 속으로
만 하고 서울말을 쓰도록 하세요. 내 이름 알아둬요. 서수철이오.”
서수철의 말에는 아직 전라도 어투가 꽤 남아 있었다.
“야아. 알것구만이라.”
천두만은 대답을 해놓고 찔끔했다. 마음으로는 ‘예에. 알겠습니다’ 가
환한데 입으로는 딴소리가 나갔다.
“이게 여기 아파트들 동 호수니까 배달을 하려면 다 알아야 해요. 이걸
가지고 나가서 아파트 위치를 쭉 한번 확인해 보고 오세요. 그림하고 직
접 대조를 해보면 아주 쉬워요.”
서수철은 부동산에서 쓰는 아파트 위치도를 천두만에게 건넸다.
천두만은 위치도를 가지고 밖으로 나와 아파트촌을 휘둘러보았다. 높
은 아파트들이 촘촘히 줄 서 있는 광경에 그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동안은 먼발치에서 그저 건성으로 보았을 뿐이지 이렇게 가까이에서
유심히 보기는 처음이었다.
똑같은 모양의 5층짜리 건물들이 수십 채 씩 서 있는 것이 영 눈설었
고. 어지러운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그 층층이 사람들이 살림을
하고 산다는 것도 새삼스럽게 이상야릇한 기분이 들었다.
천두만은 그 많은 아파트들의 동호수를 다 알아야 한다는 것이 슬그
머니 겁났지만 왼쪽에서부터 확인해 나가기로 했다. 아파트의 동 표시
는 옆구리마다 큼직한 글씨로 되어 있었다. 그게 큰길 쪽에서 뒤로 순서
대로 되어 있어서 생각했던 것보다 쉬웠다.
그런데 확인을 해 나가다 보니 똑같은 동수가 또 나왔다. 이게 웬일인
가 싶어 아파트 옆구리를 다시 살피고 위치도를 들여다보고 하다가 그
이유를 알아냈다. 아파트 명칭이 달라져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오른쪽으
로 갈수록 새 명칭들이 나타났다. 명칭은 다르고 동 호수는 같고 ......
그것이 정신 차려야 할 대목임을 천두만은 깨달았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엉뚱한 집에 쌀을 배달하게 될 판이었다.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서로
명칭이 다른 아파트들의 위치를 정확하게 익히는 것이었다.
천두만은 전체를 대충 살펴보고 발길을 돌렸다. 그러면서 자기네 동
네를 생각했다. 청계천 누더기촌이 지옥이라면 이곳은 천당이다 싶었
다. 흙바닥이 그대로 드러난 자기네 동네의 골목골목은 지저분하기 이
를 데 없는 데 이곳의 넓은 길들은 전부 아스팔트가 깔린데다가 더없이
깨끗했다. 그리고 자기네 동네에서는 나무들이며 잔디밭 같은 것은 구
경할 수도 없는데 이곳은 아파트 사이사이마다 넓은 잔디밭들이 있었고
나무들도 잘 가꾸어져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기죽게 하는 것이 번
듯번듯하게 꾸며진 온갖 상점들 이었다. 자기네 동네에는 단 하나도 없
는 그 많은 상점들이 다 윤기가 도는 것은 그만큼 돈벌이가 잘된다는 뜻
이었다. 그건 이곳 사람들이 얼마나 잘사는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같
은 서울 하늘 아래서 이리도 차이가 나는가 ...... 천두만은 어느 때 없
이 가슴에 찬바람이 휘도는 것을 느꼈다.
“다 확인했어요?”
자루에 쌀을 담고 있던 서수철이 가게로 들어서는 천두만을 보고 물
었다.
“야아. 설렁설렁 보기는 봤는디. 실수 안 허게 아파트 이름들 다 윌라
면 메칠 걸리겄구만이라.”
말을 해 놓고 보니 또 고향말이 자기도 모르게 흘러나가 천두만은 찔
끔했다.
“괜찮아요. 말은 차차 고치세요.” 서수철은 빙긋 웃고는. “우선 아파
트가 여러 종류라는 걸 알았으면 됐어요. 배달을 갈 때는 제일 먼저 어
떤 아파트인가를 확인하고. 그 다음에 몇 동인지 확인하고. 마지막으로
몇 호인지 확인해야 해요. 모란아파트. 107동. 403호. 하는 식으로 말이
죠.” 그는 알겠느냐는 눈길로 천두만을 쳐다보았다.
“예에, 근디 ...... 첨에넌 종이에다 써주면 좋겄구만요. 가다가 깜빡
혀불면 고것 참 낭팬께라. 원체로 대그빡이 돌대그빡이라논께 .....”
천두만이 옹색스러운 웃음을 피우며 뒷머리를 긁었다.
“예. 그런 걱정 마세요. 원래 그렇게 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한 가지
주의할 게 있어요. 이리 와서 보세요. 아파트 각 호수를 찾아가는 문젠
데. 예를 들어 305호라고 하면. 아파트 문 하나에는 계단을 가운데 두고
층마다 양쪽으로 한 집씩이 있어요. 그러니까 305호의 ‘3’자는 3층이라
는 뜻이고. 뒤에 ‘5’자는 그 동의 다섯 번째 줄이라는 뜻이다 그겁니다.
아파트 문마다 뒤의 숫자만 적혀 있으니까 그걸 꼭 확인해야 돼요. 딴생
각하거나 자칫 잘못해서 몇 걸음 더 걸어가 옆문으로 들어가면 엉뚱한
집에 가게 되고 말아요. 그렇게 되면 쌀자루 메고 4층이나 5층까지 낑낑
대고 올라간 게 헛수고가 되고 말아요. 전에도 그런 실수 많이들 했어
요. 점원들만 그런 실수하는 게 아니니까 정신 차려야 해요. 집주인들도
술 취해서 구멍을 잘못 찾아 들어가 남의 집 초인종을 눌러대는 일이 흔
해요. 얼마 전에도 한 남자가 인사불성으로 취해서 남의 집으로 밀고 들
어갔다가 파출소 순경까지 출동하는 일이 벌어졌으니까요. 이사 온 지
얼마 안 된 그 남자는 호수만 잘못 찾았던 게 아니라 동부터 틀렸으니
어찌 됐겠어요. 자기네 집하고는 너무 거리가 멀었지요. 아저씨도 헛고
생하지 않으려면 구멍을 잘 찾아 들어가야 하니까 알아서 하세요.”
천두만은 서수철이 자꾸 ‘구멍’이라고 하는 말이 이상하게 들리면서
도 맞긴 맞다고 생각했다. 아까 얼핏얼핏 살펴본 그 문이라는 것들은 드
높은 시멘트벽에 뚫린 무슨 구멍 같은 느낌이 없지 않았다.
“그리고 말입니다. 초인종을 누르고는 누구냐고 물으면. ‘쌀 배달 왔
습니다‘ 하고 공손하게 대답해야 해요. 그리고 쌀은 꼭 쌀통에 부어주어
야 하구요. 주인여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식모들까지도 무거운 쌀자루
드는 일은 안 하려고 하니까요. 그렇게 친절하지 않으면 저쪽 상가의 쌀
집으로 손님 다 뺏기고 말아요. 무슨 말인지 알겠지요?”
“예. 명념허겄구만요.”
“자아. 그럼 이것 배달하고 오세요.”
천두만은 서수철이 내미는 쪽지를 받아들고 쌀자루를 들쳐멨다. 첫
번째 나서는 일이라 가슴마저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천두만은 상가를
나섰다.
아파트 이름부터 두 번씩 확인을 해가며 3층까지 걸어올라가니 숨이
가빴다. 천두만은 계단 난간 위에 쌀자루를 부리고 숨을 골라야 했다.
처음에 쌀자루를 어깨에 멜 때의 가뿐함은 흔적이 없었다.
3층이 이런데 5층까지 올라갔다가 집을 잘못 찾은 것이면 얼마나 헛
기운이 빠질 것인가!
천두만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쪽지의 문에 붙은 호수를 다시 확인한 천두만은 초인종을 조심스럽게
눌렀다.
“누구세요?”
“예에. 쌀 배달 왔습니다.”
천두만은 속으로 몇 번이고 연습한 서울말을 했다. 난생처음 써보는
그 말이 제대로 됐는지 어쩐지 알 수 없는 채로 그는 괜히 계면쩍고 어
색해 어깨 위의 쌀자루를 한번 추슬렀다.
“쌀통 저쪽 부엌에 있어요.”
여자가 문을 열며 말했다.
“부엌이 어디 ......”
천두만은 현관으로 들어서며 어물거렸다.
“부엌이 어딘지 몰라요? 이 아파트 첨인가 보군요.”
앞장선 여자를 따라가 천두만은 쌀통에 쌀을 쏟아 부었다. 그리고 여
자가 돈을 세는 동안 집 안을 잠깐 둘러보고는 밖으로 나왔다.
계단을 내려가는 천두만은 완전히 기 질리고 얼떨떨해져 있었다. 그
집 안이 꾸며진 것은 아파트 주변을 보고 느꼈던 기분과는 사뭇 달랐다.
그 집 안과 자기 집 안은 정말이지 천당과 지옥의 차이였다. 잘 꾸며진
그 집에 비하면 자신의 집은 영락없는 돼지우리였다
그 집만 유별나게 잘 꾸며진 것일까? 아니면 대개가 다 그런 정도로
사는 것일까? 무엇을 하는 사람들인데 그렇게 잘살까?
자신이 그동안 보아온 집들은 고작해야 산동네 집 안이었다. 가난하
지 않은 사람의 집 안을 들여다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니. 벌써 왔어요?” 담배를 빨고 있던 서수철은 천두만을 보고 깜짝
놀라더니. “역시 형 말이 맞네. 젊은 놈들 같았으면 농땡이 까느라고 아
직도 멀었을텐데 ...... ”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저어 ...... 여그 아파트 사람들은 다 돈 잘 버는 사장일께라?”
천두만은 돈을 내밀며 물었다.
“글쎄요. 월급쟁이들이 많은데. 왜요?”
“그 집이 겁나게 잘살아서라.”
“하하. 아저씨. 28평짜리 보고 그리 겁나면 48평짜리나 60평짜리 보면
기절하고 80평짜리 보면 아주 숨넘어가고 말겠네요. 괜히 겁먹지 말고
맘 단단하게 먹어요. 앞으로 그보다 훨씬 더 넓고 으리으리하게 꾸민 집
들 다 구경하게 될 테니까요.”
서수철은 겁먹은 천두만이 재미있다는 듯 시물시물 웃었다.
“글먼 거그 사는 사람들은 머 해묵고 살께라?”
“28평짜리 말인가요? 28평이면 보나마나 거의가 다 월급쟁이들이지
요. 뭐”
“월급쟁이가 그리 잘살아라?”
“재벌들의 대기업이나 큰 회사 사원들이면 다 그 정도는 살지요. 차차
알게 될 테니까 그만 궁금해 하고. 여기 배달가요.”
천두만은 다시 쌀자루를 메고 잰걸음질을 치며 큰아들을 생각하고 있
었다.
칠성이가 상고를 나와 취직을 하게 되면 그런 아파트에 살게 된다는
것인가 ......? 취직해서 착실하게 돈을 모아야 되겠지만 ...... 나도 아
들 덕에 언젠가는 그런 아파트에 살아볼 수 있을 것인가 ......? 안 되라
는 법도 없지. 그렇게 되면 아내가 얼마나 좋아할까 ......?
생각만으로도 천두만은 가슴이 벌렁거렸다. 큰아들은 보물단지였다.
열심히 일해서 앞으로는 수업료도 제때제때 주고. 사달라는 책도 다 사
주고. 보약도 먹이리라 했다. 그런 생각을 하자 새로운 힘이 솟구쳐 천
두만은 더 잽싸게 발을 옮겨놓기 시작했다.
“아저씨. 밥 할 줄 알아요?”
“천두만이 다섯 번째 배달을 하고 돌아오자 서수철이 물었다.
“밥이라? 그야 선순디요.”
손수 밥을 끓여 먹었던 경험이 한두 해가 아니라 천두만은 이렇게 대
답하며 의아스럽게 서수철을 쳐다보았다.
“예. 잘 됐어요. 여기다 우리 점심 좀 하세요. 사먹는 밥은 비싸기만 하
고 살로 가지도 않아요. 아저씨 기운 잘 써야 하니까 밥은 먹고 싶은 대
로 얼마든지 먹어도 좋아요. 쌀집에서 배불리 밥을 못 먹는다면 그건 말
이 안 되잖아요.” 서수철은 큰 냄비에다 쌀을 푹푹 퍼 담고는. “저쪽 끝에
수도가 있으니까 빨리 씻어 가지고 와요.” 하며 냄비와 물통을 내밀었다.
천두만은 냄비를 키질하듯 해서 쌀을 눈어림하고 걸으며 마음이 흐뭇
했다. 냄비의 쌀은 세 사람이 먹어도 족할 만큼 많았다. 그리고 형을 닮
아 마음 씀씀이가 후한 서수철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그는 콧등이 찡해
져 콧숨을 들이켰다.
수돗가에서 쌀을 씻는 사람은 여럿이었다. 알뜰하게 밥을 해먹는 상
인들이 적잖은 것 같았다.
천두만이 쌀을 씻어오자 서수철은 가게 구석에서 석유곤로를 약간 옮
겨놓았다. 천두만은 그제서야 그곳에 작은 찬장도 하나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석유곤로에 불을 붙인 천두만은 느긋한 마음으로 담배 한 대를 피웠
다. 그리고 여유롭게 상점들을 구경하며 화장실도 다녀왔다. 그래도 시
간이 남아 가게 앞을 말끔하게 비질했다.
화아아. 이 쌀밥!
냄비뚜껑을 연 순간 천두만은 하마터면 이렇게 소리칠 뻔했다. 냄비
를 곧 넘쳐날 것처럼 부풀어오른 하얀 쌀밥. 김 물씬 풍기는 그 탐스럽
고 먹음직스러운 하얀 쌀밥은 그냥 쌀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천두만은 하얀 쌀밥을 보면서 눈물이 나려고 했다. 어렸을 때부터 쌀
밥을 보면 늘 눈물이 나려고 했었다. 맘껏 먹어보는 것이 소원이었지만
명절 때나 겨우 얻어먹을 수 있었던 쌀밥. 서울에 올라와서 오늘 아침까
지도 보리가 더 많은 밥을 먹었던 것이다.
“이거 아저씨가 다 잡수세요.”
밥을 한 그릇 퍼낸 서수철이 말했다.
“에이. 글먼 되간디라. 근디. 무신 찬이 요리 걸다요? 집이서 싸왔는
게라?”
“찬장에서 내놓은 반찬이 대여섯 가지나 되어 천두만은 놀랐다.
“아니오. 저쪽 반찬가게에서 대놓고 먹어요. 그 집 솜씨가 좋거든요.”
천두만은 누룽지까지 끓여서 밥 한 톨 남기지 않고 다 먹어치웠다. 정
말 너무 배가 불러 숨을 쉴 수 없을 지경이었고. 일어날 수도 없을 것만
같았다. 그 기분은 끝도 한도 없이 좋았다. 쌀밥을 이렇게 배가 터지도
록 먹다니 ...... 꼭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오후의 배달은 두 배나 많았다. 천두만은 크기가 다른 아파트들을 드
나들면서 점점 더 풀죽고 살맛을 잃어가고 있었다.
“참 요상시럽네요 이. 워째 돈 많은 사람들이 쌀을 한 가마니씩 착착
안 딜여놓고 짜잔허게 한 말. 많애야 두 말 요런다요?”
“흐흐흐 ...... 쌀을 가마니로 욕심내는 거야 가나한 사람들이 하는 촌
스러운 짓이지요. 쌀 오래두면 좀 슬고 아파트에서는 너무 말라버려 밥
맛이 제대로 안 나거든요. 전화만 하면 새로 찧은 쌀을 착착 배달해 주
는데 뭐 하려고 가마니쌀 쌓아둬요.”
서수철이 또 히죽히죽 웃었다.
천두만은 세상 많이 달라진 것을 느끼며 가나한 티를 있는 대로 내고
있는 자신이 한심해 쓰게 웃었다.
“일하기가 어떠세요?”
가게문을 닫으며 서수철이 물었다.
“좋구만이라. 아조 좋구만이라.”
천두만은 서동철 앞에서 했던 것처럼 거듭 머리를 조아렸다.
열흘쯤 지나면서 천두만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서수철이 말질을
하는데 쌀이 말에 다 차지 않고 약간씩 모자랐다. 처음에 잘못 보았나
싶었지만. 안 보는 척하고 살펴보아도 그건 틀림이 없었다. 어림잡아 반
되 정도씩은 덜 채우고 있었다.
아니. 저러다 들통나면 어쩌려고 ......
천두만은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그런 눈속임을 마음 놓고 하는 건
손님들이 지켜 서서 보지 않기 때문이었다. 거의가 쌀을 전화로 갖다달
라고 했고. 직접 가게로 나오는 사람들도 얼마를 배달해 달라고 하고는
다른 가게로 가버렸다. 두 눈 부릅뜨고 지켜도 속여먹는 세상에서 그건
마음 놓고 속여먹으라고 허락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천두만은 한참 생각하다가 그 속임수가 들통 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았다. 쌀을 배달하면 그대로 쌀통에 쏟아 붓고 말지 어느 한 집 쌀을
되어보는 집이 없었다. 아무 생각 없이 쌀통에서 쌀을 퍼내 밥을 해먹으
면서 쌀이 반 되쯤 모자라는 것을 알아낼 재주는 없는 일이었다.
천두만은 쌀장사는 말질에서 남고. 포목장사는 자질에서 남는다는 말
을 떠올렸다. 장사치고 눈속임. 귀속임 하지 않으면 장사가 아니라는 말
도 생각났다.
쌀장사가 말질하는 요령이나 포목장사가 자질하는 손끝놀음은 시골
에서 많이 당해보아 잘 알았다. 농부들치고 쌀장사들의 못된 말질 요령
때문에 언성 높인 시비를 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쌀장사들이 되질. 말질을 하면서 부리는 요령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
다. 그 귀신같은 손놀림은 쌀을 되나 말에 담으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쌀
을사들일 때는 쌀을 마구 퍼담아 쌀알들을 눕히고. 팔때는 쌀을 사르르
부어 쌀알들을 세웠다. 그리고 사는 쌀은 말을 세우면서 재빨리 앞뒤로
쿵쿵 굴려 쌀알들을 다졌고. 파는 쌀은 그런 엉덩방아를 찧는 일 없이 말
을 사리살짝 세웠다. 그런 다음 밀대로 쌀을 깍을 때. 사들이는 쌀은 밀
대질을 얌전하게 하면서 밀대를 말 가운데서 약간 들었다 놓고. 파는 것
은 밀대를 거세게 밀어댔다. 마지막으로. 말이나 되의 끝에 남기는 우스
리도 살 때는 쌀반달의 폭이 한 치가 넘게 남기고. 팔 때는 반치가 목 되
게 줄여 붙였다. 그런 요령으로 쌀장사는 사들일 때 한 홉. 팔 때 한 홉.
한 말에서 두 홉씩의 이득을 본다고 했다. 그런데 그 이득이 쌀값에서 보
는 이문과 맞먹어 쌀장사는 알부자가 되지 않을 수 없다는 거였다.
포목장사들이 자질을 하는 솜씨도 귀신같기는 마찬가지였다. 자질을
하는 두 손이 보이지 않을 지경으로 빨리 움직여대는데. 그때마다 한 자
에 반치씩은 속여 넘긴다고 했다. 자질을 그렇게 빨리 못하게.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하게 하면 포목장사들은 화를 벌컥 내며 ‘사람을 뭘로 보고
이러느냐. 더러워서 장사 못해먹겠다‘며 판을 엎어버렸다. 모든 포목장
사들이 그 모양이니 대사 앞둔 사람들은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다.
한 말에 두 홉도 아니고 반 되씩이나 챙기면 그 이득이 한 달이면 얼
마고 1년이면 얼마가 될까 ......
천두만은 가슴이 벌떡거려 견딜 수가 없었다. 세상에 이런 신바람 나
는 판이 있다는 것이 기막혔고. 서수철이 머지않아 알부자가 될 것이 슬
그머니 배 아프기도 했다. 그리고. 자신에게 점심을 푸짐하게 먹여주는
것도. 심지어 월급까지도 서수철의 돈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는 계산이
나왔다.
천두만은 그런 속임수를 쓰는 서수철을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
저 그가 부러울 뿐이었다. 서울생활 15년을 하면서 보니 이놈의 세상은
온통 속임수 판이었고. 걸리지 않고 잘 해먹는 놈이 장땡인 세상이었다.
정치하는 놈들은 권력이 있어서 해먹고. 돈 많은 놈들은 돈 힘으로 더
큰돈을 해먹고. 말단 경찰들은 행상들의 등까지 쳐먹고. 크고 작은 장사
들은 세무공무원들과 짜고 해먹고. 해먹지 않는 놈이 없는 세상에서 못
해먹는 놈만 병신이었고. 병신만 못해먹었다. 죄를 짓고도 돈만 있으면
풀려나는 세상이니 판검사. 변호사 다 면허증 딴 도둑놈들이라는 말이
괜히 퍼져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죽하면 무식한 자신이 유전무죄요 무
전유죄라는 유식한 문자까지 알게 되었을 것인가.
그러나 서수철에게 그 이득을 나눠 먹자고 할 수는 없었다. 그랬다가
는 그날로 모가지를 당할 게 뻔했다.
천두만은 며칠을 고심했지만 그 아까운 먹이를 얻어먹을 묘책은 떠오
르지않았다. 한번은 그 생각에 정신이 팔려 정말 ‘구멍’을 잘못 찾아 들
어가 4층까지 올라갔다가 도로 내려오는 생고생을 하기도 했다. 초인종
을 누르기 전에 틀린 것을 안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좋은 생각은 떠오르지 않고. 서수철이 말질을 할 때마다 해먹는 것이
더 환히 보여 천두만은 배가 살살 아프다 못해 꼬일 지경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화장실을 다녀오다가 그의 눈길은 채소가게 아주머니가 차고
있는 돈주머니에 쏠렸다.
옳아. 바로 저거다!
천두만은 집에 돌아오자마자 아내에게 바지 속에 주머니를 달게 했다.
“꾸척시럽게 무신 일이다요?”
“아. 싸게 시키는 대로 혀. 나도 인자 해묵는 자리에 앉은 판잉께. 항.
해묵어야제.”
카페 게시글
조정래님의 한강
한 강 = 제 3 부 불신시대 2 (8권)ㅡㅡㅡ 22. 맞물린 톱니바퀴
살아있는보석
추천 0
조회 41
06.02.28 18:32
댓글 0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