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요셉이 잠을 깨어 일어나서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 아내를 데려 왔으나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치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마 1:18-25)
먼저 못 된 부부 한 가지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어느 부인이 처음에는 아이 학원비를 번다고 노래방에 나가기 시작을 했습니다. 남편은 포크레인 기사로 한달 수입이 300만원 가량 되는데 그 부인은 남편 수입으로는 늘 부족하였습니다. 매일 노래방에서 영업을 하면 10만원, 20만원 생기는 것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남편이 밤마다 몰래 나가는 부인을 따라 가보니 봉고차를 타고 어디로 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부인은 낮에도 집에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밤에 손님 테이블에 가기 위해서는 낮에도 노래방에 가서 노래 실력을 닦아야 했습니다. 남편은 부인한테 간곡하게 애원을 했습니다. 제발 집에 있어 달라고.... 그러나 부인은 현장 근무로 집에 가끔 들어 왔던 남편을 원망하며 남편의 부탁을 거절하였습니다. 남편이 아내를 집에 가두고 밖에 못나가게 했습니다. 전화가 걸려 오는데 폭력배들이 안나오냐고 협박을 하기 시작을 하였습니다. 결국 아내는 아이들을 다 버리고 가출을 해버렸습니다. 파멸의 길로 가는 한 가정의 이야기입니다. 좋지 않은 부부였습니다.
이런 아름다운 부부가 있습니다.
어떤 한 부부가 있었습니다. 아내가 척추에 이상이 있어서 치료를 받는데 어떻게 통증이
심한지 주사기를 꽂으면 다 뽑아버립니다. 그러니까 의사가 견딜 수 없어서 남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손과 발을 다 침대에 꽁꽁 묶고 주사를 놓고 치료를 해야 되겠습니다"
남편이 그 말을 듣고 말했습니다.
"안됩니다. 사랑하는 아내를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짐승처럼 묶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안됩니다. 내가 그와 함께 하겠습니다."
그리고는 침대 위에 올라가서 아내의 손에 자기 손을 얹어서 손끼리 묶고 다리끼리도 묶어서 그 육중한 몸으로 얽어맸습니다. 아내가 얼마나 통증이 심했던지 몸부림을 칠 때마다 남편이 땀을 흘리면서 위에서 고통을 나눕니다. 이때 고통스러워하던 아내가 눈을 뜨고 자기 남편이 같이 고통 당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내는 남편이 자기 아픔을 나누는 것을 보더니 아픔을 참으며 치료를 잘 받았습니다. 그래서 병고침을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부부 이야기입니다.
오늘 성탄을 맞는 요셉 가정의 아름다운 부부 이야기가 있습니다. 요셉 부부를 보면서 우리는 어떻게 성탄을 맞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자세인 지를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본문에 요셉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요셉은 마리아와 약혼하였습니다. 이제 마리아와 결혼할 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마리아와 결혼하려고 하려니까 마리아가 임신이 되었다는 청천벽력같은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처녀가 아이를 갖게 되면 부정한 여인이라고 여겨서 돌로 쳐죽이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말없이 가만히 끊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이 때 천사가 나타나서 요셉에게 말했습니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
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
원할 자이심이라"(20-21)
그래서 요셉은 마리아를 아내로 맞았습니다. 그리고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 하였습니다. 본문에서 우리는 요셉이 어떻게 성탄을 이루었는 지 잘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요셉은 어떤 사람입니까?
1. 충격을 흡수하는 사람
약혼하고 결혼하려고 하였을 때 상대방이 임신한 것을 알았다면 이는 충격 중에 충격일 것입니다. 마리아 태중에 있는 아이가 자기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제일 확실히 아는 사람은 요셉이었습니다. 요셉이 이 한 마디만 말하면 마리아는 돌에 맞아 죽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조용히 파혼하기로 작정하였습니다. 마리아의 잘못을 감싸는 모습을 역력히 볼 수 있습니다.
지금도 아프카니스탄을 비롯한 회교 국가에서는 간음한 사람들을 돌로 쳐죽이고 있습니다. 그것도 공개처형을 하고 있습니다. 벌 정도에 따라서 신체중 한 부분을 절단하기도 합니다. 마리아가 그런 벌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충격을 요셉은 조용히 빨아 삼키는 사람이었습니다. 역사상 큰 사람들을 보면 충격을 받았을 때 충격을 잘 흡수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독한 술을 많이 마실수록 불안한 나라입니다. 예를 들면 영국이 온 세계를 침략할 때 위스키가 발달하였습니다. 독일이 온 세계를 침략할 때 위스키 마시는 량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그러나 프랑스가 안정되게 성장하던 루이 14세 시대에 순한 술인 포도주가 발달하였습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는 본래부터 순한 민족이었습니다. 그래서 막걸리가 발달하였습니다. 마시면 천천히 취하고 건강에도 좋은 술이었습니다. 그러나 막걸리보다 독한 술인 소주가 그렇게 많이 팔리더니 지금은 그보다 더 독한 술인 위스키를 많이 마신다는 것입니다. 요즈음 우리나라 위스키 수입량이 세계 최고라는 보도를 보며 우리나라 사람들이 불안한 심리를 가지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한국 사람들이 짧은 시간 안에 가장 많은 술을 마시는 폭탄주라는 말을 가지고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는 지금 불안합니다. 충격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기회만 있으면 이민가고 싶다고 대답한 이들이 80%나 됩니다.
우리 민족이 본받아야 할 사람은 요셉입니다. 충격을 술로 달래는 우리 민족과 충격을 가만히 신앙으로 흡수하는 요셉과는 충격 관리면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요셉은 충격을
믿음으로 흡수하여 잘 소화하여 낼 수 있는 신앙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주위에는 너무나 충격적인 일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술로 충격을 달랩니다. 가스통에 불을 질러 충격을 달랩니다. 아이들을 아파트에서 던져 충격을 달랩니다. 성탄절을 맞아 우리와 우리 교회는 위기의 충격을 믿음으로 흡수하는 사회분위기가 되도록 앞장서야 하겠습니다.
2. 가만히 행동하는 사람
요셉은 무슨 일을 하든지 떠들지 않고 가만히 행동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본문 19절은 이렇
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하여"
떠들썩하지 않게 가만히 행동하는 사람 요셉을 본문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오늘도 무슨 일이든지 나타나지 않게 소리없이 자기 일을 충실히 해 나가는 사람이 요구되는 시대입니다.
카네기가 공장을 돌아보는 중에 한 사람에 남에게 신경 쓰지 않고 성실하게 일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카네기는 그를 늘 눈여겨 보았습니다. 언제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누가 보든지 안 보든지 언제나 가만히 일하는 성실한 사람임을 알고 있던 중 공장장이 은퇴하였습니다. 카네기는 그를 공장장으로 임명하려고 하였습니다. 그 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회장님! 나는 일생을 이 곳에서 용접하며 일했습니다. 용접하는 데는 나를 따를 사람이 없
습니다. 그러나 공장장은 경영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나는 경영을 할 줄 모릅니다. 나는 내가 할 줄 아는 일에만 충실하고 싶습니다. 나를 공장장으로 임명하시지 말고 이 자리에서
일하게 하여 주십시오."
이 말을 들은 카네기가 말했습니다.
"좋소! 당신은 용접하는 데는 우리 회사의 제 일인자요. 당신에게 이제부터 대통령 봉급을
지불할 것이요."
그래서 당장 대통령 봉급을 받게 되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요셉은 가만히 행동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가 임신을 하였을 때에 이 때 요셉이 취할 수 있는 자세는 몇 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1. 정죄하고 죽이는 경우
2. 이혼증서를 써서 주고 조용히 이혼하는 경우
3. 말없이 같이 사는 경우
그러나 말없이 조용히 살 정도의 성자 수준까지는 아니었습니다. 가만히 끊고자 하였습니다. 잠깐 여유를 가졌습니다. 결코 흥분하지 않았습니다. 가만히 행동하였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자기 밥그릇 싸움 때문에 너무 시끄럽습니다. 성실하게 살기보다는 로또복권을 통한 한탕주의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이 때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성실하게 묵묵히 내 할 일을 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모든 이들과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위해서 더욱 힘을 써야 하겠습니다.
3. 의로운 사람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다고 오늘 본문은 확실히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하여"(19)
외롭다고 하는 말은 원어로 디카이오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공정하고 결백하다고 하는 의미입니다. 성실하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요셉은 공정하고 결백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마리아를 고발하지 않았습니다. 만일 이 때 요셉이 의롭지 못 하였다면 마리아는 죽었을 것입니다. 마리아가 죽었다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지 못 하였을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
이 이 땅에 오시지 않았더라면 우리 모두는 구원받지 못 하였을 것입니다. 요셉의 의로움은 마리아를 살렸고, 마리아는 예수님을 낳았고, 예수님은 온 인류를 구원시켜 주시는 구세주가 되었습니다.
어느 분이 쓴 글을 읽었습니다.
"요즈음에 목사를 찾기란 너무나 쉬운 데 의인 찾기란 너무나 어렵다. 장로를 찾기란 너무
나 쉬운 데 의로운 장로를 찾기란 하늘에 별따기다. 그 사람 유명하다고 말하면서도 훌륭하
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 사람 큰 사람이라고 말하면서도 존경한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
사람 돈많다고 말하면서 의롭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남을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바꾸어 놓고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사려깊은 요셉 덕분에 우리는 구원받았습니다.
어떤 의사 부부가 있습니다. 남편은 내과 의사이고 부인은 산부인과 의사입니다. 경기도 성남에서 각각 병원을 하나씩 운영하고 있습니다. 아내는 산부인과를 정상적으로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남편 내과 의사는 너무나 가난한 사람들이 불쌍하여 돈은 전혀 안 받을 수가 없어서 500원씩만 받고 병원을 운영하였습니다. 아내는 밤낮 성화였습니다. 그렇게 운영하여 병원을 어떻게 하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성남 시청 직원들이 시장님과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하다가 저렇게 가난한 이들을 위하여 봉사하는 저런 의사에게는 이곳을 떠나지 못 하게 하여야 하니 땅을 주어서 병원을 아예 짓게 하자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도시 개발되는 지역을 알려 주었습니다. 그래서 그 땅을 평당 200만원에 샀습니다. 지금은 평당 2,000만원이나 되는 성남 중심지입니다. 그 곳에 병원 10층을 세워서 성남 최대의 병원을 이루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같이 하나님은 의로운 사람을 축복하십니다.
테레사 수녀는 "가장 무서운 가난은 사랑 받지 못한다는 느낌과 고독이다." 고 하셨습니다. 우리 주위에는 이런 가난으로 힘들어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테레사 효과라는 치료법이 있습니다. 하버드의대 실험실의 연구결과로 나온 치료법입니다. 그 뜻은 사람의 몸에는 바이러스와 싸우는 lgA라는 면역물질이 있는데 이 물질은 우리 몸의 특별한 반응을 통하여 생성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봉사를 하거나 혹은 선한 일을 생각하거나 보기만 해도 마음이 착해져서 신체 내에서 이 면역물질을 만들어 낸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주위에 어려운 이웃들을 바라보면서 lgA가 많이 나와서 테레사 효과를 통해 항상 건강하게 사시기를 바랍니다.
4. 극기의 사람
요셉은 극기의 사람이었습니다. 자기를 자기가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마음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은 성을 빼앗은 용사보다 낫다고 시편기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요셉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리아를 데리고 와서 마리아가 예수님을 낳을 때까지 결코 동침하지 않았습니다.
여름에 보면 교회 마당에 아침 일찍 꽃밭에 나팔꽃이 제일 먼저 피어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저는 그 이슬을 머금고 있는 나팔꽃의 모습을 보며 탄성을 지르며 기쁨을 누린 적이 있습니다. 먼 동이 트고 나면 나팔꽃이 그렇게 청초하게 아침 인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식물학자들은 밤새 어두움이 물러가고 아침 햇살이 비취이면 나팔꽃이 피는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즈음 새로운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한 식물 학자가 나팔꽃에 24시간 내내 빛을 쬐어 주었습니다. 어둠을 박탈한 것입니다. 그랬더니 나팔꽃은 하루 종일 피지 않았습니다. 어두움이 없으니까 나팔꽃은 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팔꽃을 피게 하는 것은 빛이 아니라 어두움이라는 사실을 밝힌 것입니다. 어느 정도의 어둠과 추위가 나팔꽃을 피게 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이 나팔꽃 원리는 온 세상의 원리입니다.
여러분, 어두움 속에서 자기를 이길 줄 아는 이가 인생을 승리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어두움을 이기시고 빛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이길 줄 알고 자기를 요셉처럼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성탄을 맞이하여 요셉과 같은 은혜스런 인물들이 다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
주님, 요셉과 같은 인격을 지니고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를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