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을 통해 '감사'를 깨달은 이 사람 "
"좋은 날씨도, 탱글탱글 잘 여문 것도 모두 그분 덕이죠"
경북 상주시 외남면 지사2리, 가을걷이가 한창인 황금빛 논밭을 지나
마을로 들어서자 여기저기 심어진 감나무가 보이기 시작한다.
온화한 기후 덕에 동네 안쪽은 물론 동구밖 언덕배기, 밭두렁, 도로변 등
곳곳에 감나무가 숲을 이룬다.
굽이굽이 작은 골목을 지나 유화자(레지나, 안동교구 개운동본당)씨가 운영
하는 농원에 들어서자 향긋한 감 내음이 물씬 풍긴다. 유씨와 가족들은 마당에
걸터앉아 손으로 감 껍질을 벗겨내고 있다. 마당에 산더미처럼 쌓인 감들과
여기저기 쏟아져 나온 감이다.
유씨는 기자 일행을 맞이하느라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힌 이마를 닦으면서
도 한 손에는 감을 놓지 못한다. 능숙하게 감을 깎는 모습을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는 기자에게 유씨가 넌지시 이야기를 꺼낸다.
"저 원래 감의 기역자도 모르던 사람이었어요. 감이 나무에서 열리는지
밭에서 나는지도 잘 몰랐다니까요. 하하~"
도시에 살던 평범한 주부 유씨가 감밖에 모르는 '감 도사'가 되기까지는
정확히 10년이 걸렸다. 유씨는 98년 포크레인을 운전하던 남편이 일을
그만두고 고향인 상주에 내려가 살고 싶다는 말에 귀농을 선택했다.
"무작정 시어머니 홀로 계신 이곳에 내려왔을 때 참 막막했어요. 제가 농사
를 지어본 적이 있어야 말이죠. 남편이 간다고해 따라 내려오긴 했지만 아는
사람도 없고, 할 일도 없고…. 그러다보니 한없이 우울해지더라고요."
도시와 다른 무료한 농촌 생활에 한동안 우울증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유씨.
게다가 유씨는 도시에서 본당활동에 누구보다 열심이었던 사람이다.
"몇 년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파주에서 봉헌되는 어려운 이웃을 위한 미사
에 참례했을 정도였어요. 둘째 아이를 임신하고 세례를 받은 후 거의 성당
에서 살다시피 했어요. 매일 미사참례는 물론이고 본당 기도회 봉사로 눈코
뜰새 없이 바빴죠."
시골에 내려와서는 농사일로 바빠 공소 주일 미사 참례하는 것이 신앙생활
의 전부가 되자 유씨의 우울함은 더해졌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에 감을 깎다 저도 모르게 기도를 하고 있더라고요.
색이 붉고 알이 굵게, 당도가 높은 감으로 잘 자라길 기다리면서 주님께
기도를 드리는 제 자신을 발견했죠. 손수 만든 자연산 퇴비를 주고, 직접
나무에서 하나하나 정성스레 딴 감을 손으로 어루만지는데 이런 게 주님의
은총인가 싶어 눈물이 났어요."
달디 단 곶감 하나를 만들어내는 과정은 상당한 인내와 정성을 요한다.
이르면 10월 초순에 감을 따기 시작해 껍질을 벗겨 청명한 가을햇볕에 45일
정도 말리면 11월 하순에는 맛있는 햇곶감으로 다시 태어난다. 말리는 도중에
너무 온도가 높으면 흐물흐물해지고, 너무 추우면 얼어버려 무맛이 난다.
또 햇볕을 많이 쬐면 떫어지기 때문에 신경을 써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유씨는 도시에서 했던 기도와는 또 다른 기도의 맛을 감을 통해 느꼈다.
억지로 시간을 만들어 하는 기도가 아닌 실생활 속에서 잔잔히 스며든 기도의
은총을 깨닫게 된 것이다.
2년 전 큰 태풍이 몰아닥쳐 마을의 모든 감 농가가 근심에 빠졌을 때도
밤새 뜬눈으로 온 마음을 다해 기도 드렸다. 아침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밖에 나가보니 단 스무 개만이 땅에 떨어져 있었다.
"태풍 속에서도 무사히 버텨준 감들에게 고마웠죠. 주님이 도와주신 게
아닌가 싶었어요. 욕심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의 상황을 받아들이자 모든 게
감사 기도로 변하더라고요. 그 후로는 언제나 기도로 농사를 시작해요. 아침
에 일어나서는 좋은 날씨를 허락하심에, 감을 깎으면서는 탱글탱글하게 잘
여물게 해주심에, 감을 말리면서는 타래(건조대) 가득 주황빛 감으로 가득
채울 수 있도록 도와주심에 감사드리곤해요."
유씨는 그야말로 '감'을 통해 '감사'를 깨닫게 됐다.
그래서일까. 유씨가 만든 곶감은 상주에서도 최고 맛이라고 소문이 나
없어서 못 팔 지경이다. 상주시에서 선정한 우수농산물로 뽑혀 그 맛과 품질
을 인정받았다. 특히 주님이 주신 자연을 그대로 지키고자 화학비료를 사용
하지 않고 직접 만든 퇴비로 길러낸 감들은 그야말로 깨끗하고 건강하다.
유씨는 감을 말리는 건조장에 들어설 때는 아무리 귀찮아도 꼭 신발을
벗고 실내화를 신고 들어간다. 타래에 걸린 곶감에 행여 먼지라도 들어갈까
걱정하는 마음이 마치 아이를 돌보는 엄마 마음 같다.
이서연 기자 평화신문 11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