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수술복을 입고 침대에 누웠다. 팬티도 걷어치운 알몸 상태. 이상한 생각이 든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 몸으로 간다는 말이 왜 하필 이럴 때 떠오르는 것일까. 나는 수술이란 것을 해본 적이 없다. 입이 타들어가고 식은땀이 흐른다. 진정을 한다 하지만 겨우 참고 있을 뿐 겁이 더럭 나는 노릇이다.
의사선생님은 “제가 힘들지요, 선생님은 마음만 편하게 먹으면 됩니다.” 하였지만 막상 닥치니 초조하고 뭔가 남겨두어야 할 것이 있는 것도 같아 자꾸 머릿속을 어지럽히게 된다. 남긴다는 의식 속엔 가족이란 소중한 끈이 있다. 아이들하며 어머니 아내가 순순히 마음속에 밟히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 시절의 아버지가 떠오른다. 아버지는 공무원 출신답게 평생 검소하고 치밀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런 분이셨기에 매사 불여튼튼이란 말이 꼭 뒤따랐고 늘 입버릇처럼 “사람 지혜란 게 그런 게 아니다. 다시 한 번 확인 해봐라.”란 말을 달고 다니셨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도 무슨 일을 닥칠 때 두세 번 꼭 확인을 하는 것은 순전히 당신의 뜻이 몸에 밴 것이다.
그 말은 실생활에서 무척 요긴하고 중요한 행동방식이다. 의심이 많다는 소리도 듣기도 하지만 일을 그르치거나 손해를 보거나 계획이 어긋나는 경우가 좀처럼 생기지 않는다. 그런 당신은 아쉽게도 정작 당신이 뇌졸중이 발발하던 때는 매사 불여튼튼 이란 신조를 제대로 지키지 못하셨다. 매사 불여튼튼을 강조하시던 당신은 병을 예방하지도 못하였을 뿐 아니라 그 지병으로 자식들에게 말 한마디도 남기시지를 못하고 돌아가셨다.
평소 당신이라면 그렇지는 않았을 것인데 그것이 늘 마음속에 아픔으로 남는다. 운명이란 생각을 떨칠 수는 없는 상황, 수술을 앞두고 이런 저런 생각을 했었다. 건강, 가족 그리고 행복이 삶의 큰 줄거리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줄곧 했지만 잘못되는 상황에 대한 염두 또한 떠나지를 않았다. 그로 문득 다시 떠오른 당신의 말씀이었다. 어젯밤에 큰 아들이 서울서 내려왔다.
심호흡을 하고 아들을 불렀다. 생의 마감을 대비하여 자식에게 남겨두고 싶은 말. 하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니 무슨 말을 어찌 해야 할지를 몰랐다. 아내가 어렴풋이 눈치를 챘는지 ‘쓸데없는 걱정은 치우고 수술 잘하고 회복할 생각이나 해.’ 하며 핀잔주듯 나무랐다. 나는 말 대신 아들 손을 꼭 잡고 수술실에 들어섰다. 수술을 마치고 의식을 차린 것은 7시간이 훨씬 지나서였다.
아내 얼굴이 보이고 아들 둘이 모두 보였다. 군에 간 아들도 휴가를 얻어 나온 모양이었다. 나는 영어로 굿 에프터 눈!! 하며 애써 웃음을 지었다. 꼭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그 시각 까지 회복실에 불만 켜지기를 기다리며 밥도 굶고 나를 애타게 기다렸던 가족들. 아내는 그제야 다리가 풀리는지 눈물을 흘리며 주저앉고 만다.
순간, 이 사랑스런 가족들에게 차마 못 할 말이 있겠구나 싶어진다. 당신이 그 시절 즐겨 쓰던 말, 그 말을 따르지 않은 것은 당신이 불여튼튼하지가 않아서가 아니라 차마 그 어느 유언, 그 말이 떨어지지 않아 아껴두고 아껴두다 결국 쓰지 못하고 말았다는 생각이 들고 만다. 그러기에 나 역시 “사람 지혜란 게 그런 게 아니다. 다시 한 번 확인 해봐라.” 라는 말은 평소 불여튼튼을 위해 쓰는 유용한 말이지 운명을 달리하는 상황을 대비해 써먹으란 말은 정녕 아니지 싶어진다.
(조성원 님의 수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