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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3일째 : 연하천대피소~노고단~성삼재~만복대~정령치(20.98km)
2009년 5월 27일 수요일
아침 일찍 잠을 깨서 뒤척이다 날이 밝자마자 밖으로 나왔다. 그래도 조금 눈을 붙인 탓인지 몸 상태가 거뜬하다. 오늘은 지리산을 완주하는 날..., 서둘러 아침 식사를 챙긴다.
[연하천대피소의 아침...]
아침 식사는 갖고 있던 짜장면으로 해결하고, 점심 때 먹으려고 다시 밥을 해서 코펠째 배낭에 우겨 넣는다.혹시 밥이 쉬지 않을까하는 염려가 없지 않았지만 점심 때까지는 괜찮을 것 같다. 옆자리에 70세 정도되 보이는 노 산객老 山客이 김치를 나누어 준다. 이분은 혼자서 3년 전에 지리산을 종주하였는데 이번에도 혼자 왔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어제 오늘 나홀로 등산객을 여러 번 만났다. 여女홀산꾼도 가끔 보인다.
[연하천 대피소-아침]
[산나물]
아침을 먹고 명선봉을 오르다 등산로를 약간 벗어나 나물이 지천至賤인 곳에서 어제처럼 수통에 담아온 물로 고양이 세수를 하고 본격적인 산행 채비도 한다. 오늘은 성삼재까지 이번 산행에서 가장 먼 길을 가야 한다.
[토끼봉에서]
지리산 종주縱走 등산로는 산죽과 너덜길로 대표된다. 지리산이 육산肉山이라고 하나 너덜돌이 많아 발목 조심을 해야 한다.
[화개재]
토끼봉을 떠나 1시간여 만에 나타난 화개재..., 옛날에 경상도 전라도 사람들이 여기서 장을 열어 물물 교환을 했다고 하는데..., 이렇게 높은 곳에서 장을 열다니 놀랍기만 하다. 지금은 섬진강 변에 화개장터가 있는데..., 내가 김해 있을 때 그 곳에 한번씩 들러 섬진강에서 나는 재첩요리를 맛보곤 했다. 화개장터하면 가수 조영남이 생각난다. 그는 주로 남의 노래만 부르는데... '화개장터'는 그의 유일한 힛트 곡이기도 하다.
지리산智異山에 들어와서 문명 세계와 단절된 채 3일째를 맞고 있다. 다행多幸스럽게도 대피소에서는 아무도 전직 대통령의 충격적인 죽음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는다. 모두들 내가 모르는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인 것같다.
다시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의 공功과 허물이 있으련만, 사람들이 냉철하지 못하게 허물은 간과看過한 채 '바보 노무현'으로 상징되는 그의 순수성純粹性과 원칙주의적인 면만을 내세우지 않을까 우려된다.더군다나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상情緖上 사자死者에게는 관대한 경향이 있으니까.., 나는 앞서도 언급했듯이 그가 추구했던 가치는 공감 하는 부분이 많으나, 대통령직 수행에 대해서는 그도 아쉬움이 많은 사람 중에 하나다.
[삼도봉]
[삼도봉]
경남과 전라남, 북, 3도道가 만나는 삼도봉..., 나는 3개도를 차레로 밟아보고 잠시 쉰다.
삼도봉, 가파른 오르막 계단을 비지 땀을 쏟으며 올라와서 쉬고 있는데 성삼재쪽에서 여女홀 산꾼이 큼지막한 배낭을 메고 올라 온다. 나는 이분이 물을 마시고 쉬기를 기다렸다가 사진을 한 장 부탁했다.
[노루목, 1,498m]
삼도봉을 떠나 11시, 노루목에..., 나는 지금 이정표상에서 천왕봉쪽에서 와서 노고단으로 가고 있다. 노루목에는 반야봉으로 가는 갈림길이 있어, 세 방향 이정표가 서 있다.
[노고단으로 뻗어나간 백두대간...]
[아득히 노고단을 등지고...]
빈농貧農의 아들로 태어나 장학생이 되어야 중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 어머니가 10여리 길을 걸어 다니며 텃밭에서 나는 푸성귀를 읍내邑內에 내다 팔아 아들의 학용품을 사 주곤 했다. 순수純粹한데다 원칙原則을 중시하며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다. 이러한 면에서는 그와 나는 닮은 점이 참 많은 것 같다.
[피아골 삼거리]
이윽고 피아골 삼거리에 닿았다. 피아골은 육이오를 전후前後하여 빨찌산의 소굴로 유명한 골짜기이기도하
다.
[임걸령]
지리산智異山에 빨찌산들이 득실거릴 때, 밤에 이들의 은신처인 피아골과 본거지인 달궁을 오갈 때 넘어 다녔
다는 임걸령을 지난다.
내가 생각하는 그의 대표적인 실정失政 3가지를 들어본다.
첫째, 법法 경시 풍조를 가중시켰다.
이는 사법부에도 책임이 있지만..., 대통령 스스로 법을 경시하는 언행을 하다 보니 사회 전반의 법질서가 무너져 내렸다. '나는 국헌을 준수하고...' 라고 선서宣誓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선서를 지키지 않았다. 그결과 오늘날 너도나도 법의식이 희박해져서 패거리로 몰려다니며 경찰을 폭행하고 불법 폭력 시위로 온 나라가 난장판이 되고 말았다.
둘째, 국론 분열을 심화시켰다.
행복도시니 뭐니 해가며 예산을 낭비하고 지방이다 수도권이다 등등, 결국 그가 추구하던 지역통합은 실패했고 지역 간은 물론 이제는 계층 간까지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말았다.
셋째, 지나친 종북적從北的 대북對北 관계로 다음 정부에 부담을 가중시켰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국가 안위安危와도 관계된 가장 심각한 것인지 모르겠다. 남남갈등은 물론 잘되어 있는 전작권戰作權을 건드려 국방력이 후퇴하였고 본인 말마따나 뺄 수 없는 대못질을 하여 극한의 남북 대치 상황을 만들고 말았다.
[1,424봉에서]
노고단에 가서 점심을 먹을까 하다가 배가 고파서 무명봉에서 점심을 먹기로 한다. 아침에 코펠째 가져온 밥으로 점심을..., 물컵에는 즉석 북엇국까지, 산에서 먹는 점심으로 가히 이정도면 진수성찬이라 할만하다.
[노고단 고개]
이번에 종주하는 지리산 마루금에서 내가 전前에 유일하게 온적이 있는 노고단 고개에 올랐다. 대간 마루금이 노고단 봉우리를 지나가지 않아 노고단에 오르려면 이 고개에서 노고단정상까지 갔다가 다시 여기로 와야 한다.
이 노고단 고개에는 내가 포항에 살 때 광양제철소 출장갔다 돌아오는 길에 차를 성삼재에 주차해 두고 서너번 오른 적이 있다. 어느 해 겨울, 애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 가족들과 노고단에 올랐다가 내려오는 길에 길가에서 도토리묵을 사 먹었던 적이 있다. 그때 살 얼음이 끼어 있던 그 도토리 묵이 얼마나 맛 있었던지..., 우리 애들이 아직도 묵을 먹을 때면 그때를 얘기하곤 한다.
오늘은 성삼재를 지나 정령치까지 갈 길이 멀기 때문에 노고단을 오르진 않고 멀리서 사진만 담았다.
모든 것을 재쳐두고 라도 그는 그렇게 삶을 정리할 권리가 없다. 자기가 대통령을 지낸 나라의 법에 따라 피의자로 조사를 받는 것을 그런 식으로 회피해서는 안된다. 그는 '대통령이 되려고 사랑하는 아내를 버리란 말이냐? ' 라고 하며 이른바 악마의 눈물에 힘입어 대통령이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돈거래한 아내를 보호하기 위하여 목숨을 버린 것인가?
그는 한 가정의 가장을 넘어 대한민국의 전직 대통령이기에 좀 더 큰일, '국가와 국민을 위하여 목숨을 걸었어야 했다' 고 하면 범부凡夫의 순진한 바램 일까? 그의 충격적인 죽음으로 초래된 국론 분열과 갈등은 또다시 국민의 멍에가 되어야 하나?
[노고단에서 바라본 반야봉...]
[노고단에서 바라본 반야봉과 천왕봉...]
[노고단 대피소]
[성삼재까지 임도가 ....]
노고단 휴게소에서 성삼재까지는 포장도로가 나 있다.
성삼재로 내려오며 그에 대한 생각을 마무리해본다.
전직 대통령으로서 '일생이 보장된 예우, 좀 시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그를 따르는 수많은 노사모 회원들, 끝가지 함께 하겠다며 후원을 보장하는 재력가들' 이 모든 것을 뿌리치고 그는 떠나갔다. 범인凡人이라면 감히 선택할 수 없는 길을...
또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남은 가족들에 대한 연連을 어떻게 그렇게 짜를 수 있었을까? 더구나 그가 그토록 추구했던 도덕적 가치가 아내에 의하여 무너진 것이 죽음을 택한 원인이라면 남은 아내는 어떻게 그 회한을 삭히며 살아갈 수 있을까?
나는 종교를 잘 모르지만, 모든 인간은 자기의 업業을 다 치르고 이승을 떠나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누구도 자기 생명을 스스로 다하게 해서는 안된다.
어쩌면 그의 유서에 모든 것이 담겨 있는 것 같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읽을 수도 쓸 수도 없다.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역시 건강 때문이었나?
그가 없는 이 땅에서 제발 그의 희망대로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더는 국론 분열없이 화합의 길로 가야 할 텐데..., 지금 산山 아래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을까?
[성삼재]
[고리봉]
나도 자동차로 여러차레 넘은적이 있는 성삼재에서 심원으로 가는 도로로 조금 내려가다 왼쪽으로 나있는 오솔길을 들어선다. 이 희미한 등산로가 고리봉으로 가는 백두대간白頭大幹 마루금이다. 지리산 주主 마루금과는 달리 성삼재에서 고리봉으로 오르는 길은 소로小路인데다 흙길이다. 사람들 왕래가 적어서인지 가슴 높이의 산죽山竹이 작은 터널을 이루거나 때로는 길을 침범하고 있어서 산죽을 헤치며 나아가야만 한다.
[만복대]
묘봉치를 오르는데 주위가 어두워지고 눈앞에 번개가 치는가 하면 천둥이 뒤따른다. 그러고 보니 성삼재 이 후로는 산행객을 하나도 만나지 못했다. 약간의 공포감마저 든다. 그 많던 지리산 산행객은 모두 현명하 게 없어지고 어쩌다가 나만 이렇게 헤매고 있단 말인가?
하늘로 보아 비가 그칠 것 같지 않다. 비는 오더라도 천둥 번개만 치지 않으면 좋으련만..., 성삼재에서 산행 을 끝 내지 못한 것이 뒤늦게 후회된다. 그러나 여기가 성삼재와 정령치의 중간쯤이라 돌아갈 수도 없다. 계속 갈 수밖에...
[묘봉치에서 본 만복대]
[돌아본 대간 길]
만복대에 오르며 지나온 대간大幹 길을 돌아보았다. 묘봉치, 고리봉...., 멀리 노고단이 작별을 고한다.
[만복대, 1,438.4m]
[정령치 휴게소]
서울 구로동에 사는 30대 중반의 젊은이로 오늘 화엄사에서 시작하여 노고단에 올랐다가 성삼재로 내려와 그 다음 부터는 나와 같은 코스로 왔단다. 그 역시 천둥, 번개가 무서워서 지팡이를 던져놓고 비를 맞으며 한참 앉아 있다가 비가 그치고 나서 젖은 옷을 벗어서 물기를 짜내고 입고 왔다고 한다. 그런데 이 젊은이는 지리산을 자주 온다고 하며 오늘은 남원에 있는 동서同壻 집에서 자고 내일 서울로 간단다. 나는 처음이지만 지리산의 무엇이 이 젊은이를 이렇게 자주 부르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정령치 휴게소의 달궁방향]
택시를 기다리는 동안 손수건으로 흙투성이의 신발과 스틱 등을 닦는다. 20분 걸린다는 택시가 배 이상이나 걸려 나타난다.
[남원 람세스 모텔]
버스에서 등받이에 기댄체 생각에 잠긴다. 고행苦行을 한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백두대간 종주白頭大幹 縱走..., 그 첫구간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음에 감사한다. 산은 멀리서 보아야 참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눈을 감으니 천왕봉에서 노고단으로 뻗어나간 지리산 주능선이 장엄하게 펼쳐져 간다. 그리고 나는 또 다시 녹음이 우거져 구름 위에 떠 있는 지리산을 걸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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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면밀한 계획과 준비된 자에게는 어떤 난관도 헤쳐가리라는 참 다운 교훈을 심어주는 좋은 고행의 장면입니다. 아마도 지리산 종주를 환갑맞이 기념으로 오랜 추억으로 간직되리라 생각됩니다.
참 재미있게 잘 읽었다 ~~~~맨날 동네 뒷산만 헤매는 나로써는 부럽기 짝이 없다 ^^*
무리하지는 마세요. 글구 대간 구간중 사람들이 잘 안다니는 구간은 혼자가지 마시구요.
손사장과 盧??은 자내 말대로 어린시절환경, 자존심, 가운대 武자 , 그리고 절벽에서의 곡예 등 닮은 데가 많은 것 같다. 같이 김해에 있을 때 한 수만 갈캐줬으면 이런 불상사가 없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지리산 종주하면서 두가지를 접목해서 찍고 쓴 좋은 글과 사진 잘 봤네. 석존께서는 6년간 고행을 해서 얻은 것을 자내는 담박에 깨달은 것 같구나. 대단함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