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 28일 일요일 [대림 제1주일]
■ 복음 : 마태 24, 37~44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노아 때처럼 사람의 아들의 재림도 그러할 것이다. 홍수 이전 시대에 사람들은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하면서, 홍수가 닥쳐 모두 휩쓸어 갈 때까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사람의 아들의 재림도 그러할 것이다.
그때에 두 사람이 들에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의 주인이 어느 날에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밤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깨어 있으면서, 도둑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 묵상
믿음은 종교의 시작입니다.
기다림은 믿음의 뿌리이고요. 기다림이 더욱 소중해지는 시절에 맞이 하는 대림절이 더욱 간절한 기다림
으로 충만하길, 그리고 그 기다림에서 자란 믿음이 더욱 튼튼해지길, 마지막으로 기다리는 자의 준비가
하늘의 뜻에 꼭 들어맞길 기원합니다.
<늑대와 춤을>이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영화의 남자 주인공은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 폐허가 된 집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어느날 늑대 한마리가 주인공이 머무는 집 근처를 배회하기 시작했는데, 늑대는 야
생동물이라서 절대로 인간을 가까이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인공은 외로웠기에 늑대하고라도 친해지고
싶었습니다. 그는 여러가지 방법으로 늑대와 가까워지려고 했지만 늑대는 좀처럼 쉽게 접근하지 않았습
니다. 주인공은 먹이를 멀리 던져주어 늑대가 안심하고 먹게 했습니다. 그리고 매일 조금씩 먹이를 주는
거리를 좁혀 나갔습니다. 그러자 늑대는 주인공에게 점점 가까이 다가가게 되었고 마침내 야생 늑대는
주인공과 친구가 됩니다. 늑대는 주인공을 떠나지 않고 살게 됩니다. 밤에는 장작불 주변에서 함께 춤도
추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주인공이 악당들에게 잡혀가게 됩니다. 그런데 이 늑대가 멀찍이 떨어
진 곳에서 따라갔습니다. 이상하게 여긴 악당들이 총을 쏘며 위협을 해도 늑대는 주인공을 계속 쫒아 갔
습니다. 총알이 늑대를 위협했지만 정이 들어버린 주인공과 떨어지기 싫었던 늑대는 마침내 총에 맞아
죽게 됩니다.
정이 들면 야생 늑대도 인간과 춤을 출 정도로 친해지고 목숨을 바꿀 정도가 되는구나! 하는 생각에 새삼
놀란 적이 있습니다. 사랑이란 서로 길들여지고 정이 들어가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 땍쥐베리 소설 '어린왕자'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어린왕자가 여우에게 말합니다. "이리와서 나와 함께 놀아, 난 정말 슬프단다" 여우가 말합니다. "난 너와
함께 놀 수 없어, 나는 길들여져 있지 않으니까," 어린왕자가 묻습니다. "길들인다는 게 뭐지?" 여우가 대
답합니다. "그건 관계를 만든다는 뜻이야. 난 아직은 너에겐 수많은 다른 여우와 똑같은 한 마리 여우에 지나지 않아,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나는 너에게 이 세상에 오직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될거야."
관계를 형성하는 것, 길들여지는 것....어느날 갑자기 자동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이 필요
합니다. 노력이 필요합니다. "사람의 아들도 너희가 생각지도 않은 때에 올 것이다. 그러니 너희는 늘 준
비하고 있어라." 준비한다는 것, 깨어 기도 한다는 것, 이것은 주님과 늘 가까운 마음으로 사랑하고 정을
나누며 서로를 느끼며 살아가는 삶을 의미합니다.
대림절입니다.
촛불을 밝히며 구세주를 기다리는 시기입니다. 어떤 주님을 어떻게 기다려야 하는가? 아니, 그 분을 기
다리지만 이미 우리 곁에 와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안에 계신 그분을 발견하며 사는 삶, 그것은 바
로 관계를 형성하는 삶입니다. 노력하는 것이요, 길들여지는 것입니다. 주님과 나의 관계형성....
기다림의 시기, 준비의 시기인 대림절. 그분의 사랑에 길들여지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 정윤섭 요셉신부(인천교구꾸르실료 담당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