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경우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19세기 중반 메이지 유신 때 일본은 유럽이 1세기 동안 이룩한 근대적 공업화나
경제발전을 경험조차 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도 일본은 이미 당시 유럽보다도 훨씬
높은 문자해독 수준, 즉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일본의 개화기인 메이지 시대(1868-1912)에는 국민의 능력개발에 초점이 집중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1906년에서 1911년까지
일본 전국의 도시와 농촌 예산 중 43%가 교육비로 충당되었습니다.
특히 초등교육의 보급이 가장 신속했습니다. 1893년 징집된 군인의 3분의 1이 문맹이었던 것이 1906년에는 문맹률 제로가 된
사실에 징집 관련 담당자가 감명받기도 했습니다.
1913년까지 일본은 경제적으로 저개발상태였지만 서적 출판에서는 세계 최대국가의 하나였는데 그 양이 영국을 앞서고
미국보다 2배 이상 많았습니다.
일본은 매우 일찍부터 학교교육과 인간개발을 우선시했고 현재도 높은 수준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런 현상은 과거 100년 이상을 거슬로 올라갑니다. 즉 일본은 부자가 되었다고 그런 노력을 상대적으로 더 기울인 것이 아닙니다. 인간개발과 학교교육은 돈 많고 부유한 사람들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실현되어야 하는 것이며, 바로 이것이 일본 근대사 전반에서 볼 수 있는 경제발전 전략의 요체인 것이지요.
---------- 아마르티아 센, 원용찬 옮김, "센코노믹스"(갈라파고스, 2008), 59-60쪽.
이번 학기 학부와 대학원에서 공히 아마르티아 센을 읽습니다. "논쟁하기 좋아하는 인도인"(우리나라 제목으로는 "살아있는 인도")
을 읽습니다만(학부에서는 그 책 전체, 대학원에서는 1장에서 말하는 "기타의 회의주의적 해석"과 관련된 것 중심입니다. 대학원에서는 "기타" 1장과 센의 또 다른 논문을 함께 읽고 토론합니다.)
그 준비 차 "센에 대한 이해 넓히기" 차원에서 읽고 있는 강연집에서 이 구절이 나오네요.
자비의 철학자, 자비의 경제학자입니다.
인도 샨티니케탄에 있는 아마르티아 센 박사의 생가(2010.2.15), 문은 잠겨 잇습니다.
첫댓글 국가선진화지수를 산출할 때 세계문화표준창출에서 '천명당 도서생산량/백만명당 영화생산량, 일간신문발행부수, 방송국 수'가 평가지표에 반영됩니다. 우리나라 국가선지화지수로 보았을 때합순위는 평가대상 40개 국가 중 31위이며, 정치분야에서는 32위, 문화분야에서는 작년 34위에서 6단계 오른 28위라고 합니다. 국제화 부문으로 보면 40개국가 중 35위라고 합니다. 여기 일본불교사연구소는 문화지수와 국제화지수를 높이는데 공헌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덕분에 저도 국제화 좀 될 것 같습니다. 꾸벅 감사합니다.
아, 그런 것이 있었군요. 센박사님께서 만든 것 중에 '센지수'라는 것이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인간개발, 이라는 개념도 쓰시는데 그런 것과 유사한 것같습니다. 경제발전, 경제성장만으로 가지고 평가할 수는 없다는 관점인 것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2월 15일 찍은 사진을 찾아서 올렸습니다. 당시 릭샤 두 대에 나뉘어 타고서, 이곳을 둘러보고 가는 일단의 일본인들이 생각나는군요. 일반 관광객은 아닌 것 같구요. 센 박사를 잘 아는 사람들이었겠지요. 일본에서는 현재 우리나라에 소개된 것보다는 많은 책들이 번역되어 있으니까요. 우리나라보다는 더 자주 강연을 하러 일본을 방문한 것같습니다. 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