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의 출가(未完의 出家)
김문배
천상의 비천녀(飛天女) 주악소리가 금정산 억새풀에 스며들었다. 바람이 비파 현 줄을 튕기면 금정산 장군봉 억새풀 눕는 소리가 가득하다.
그 바람에 실려 오는 금어 소리를 들으리라. 지우스님이 던진 화두에 따라 계명암을 시작으로 계명봉을 거쳐 장군봉 억새 군락지, 고당봉과 금샘을 거쳐 원효암까지 산행을 시작했다.
계명암(鷄鳴庵)가는 길엔 신갈나무, 참나무, 개서어나무, 산벚나무와 소나무 등이 혼합된 울창한 산림지대가 있다. 샛길로 오른다. 계명암 통문이 보인다. 의상대사가 닭울음소리가 울려 그 터에 암자를 지었다고 하였다. 닭울음소리가 들리나 귀 기울여 본다. 어디에도 마음이 걸리지 않는다면 사물의 내적 소리까지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사진:금샘>
모든 사물에는 소리가 있다. 그 물건에 맞는 소리를 가졌다. 이름 있는 산에도 독특한 소리들이 존재한다.
소리에도 계절이 있다. 어떤 소리는 제 철이 아니면 제 맛이 나지 않는다. 금정산이 그렇다. 금정산은 늦가을 장군봉 억새밭을 걷노라면 들리는 소리가 제 맛이 있다. 가을의 소리이다. 정상아래 펼쳐진 억새밭 틈새 길을 걷노라면, 산바람에 하얀 억새 수염들이 흔들릴 때 들려오는 소리의 정체에 귀 기울여 보자. 마치 천상에서 내려 온 천녀(天女)의 천의(天衣) 옷자락이 바람결에 휘날리던 소리다. 산정에 올라 풍경을 시로 읊어본다.
此地山川盡有魂(이 땅의 산천에는 모두 혼령이 있어)
金井風物更加新(금정의 풍물이 더욱 새롭다오)
我欲登山觀望頂(내가 산에 올라 산정을 보려하니)
上鷄佳峰最關垠(상계의 멋진 봉우리 최고로 뾰족하네)
지우 큰 스님이 왜 범어사 마지막 가을 소리를 듣도록 금정산을 오르게 했는지 아직은 모르겠다. 어떤 소리는 가까운 곳에서, 또는 멀리서 들어야 한다. 여름의 소리는 폭죽, 폭포, 천둥소리가 제철에 맞다. 폭염 아래서는 새들도 침묵하지만 매미들만은 태양의 기세에 맞서 울어댄다. 봄에는 아지랑이 속으로 비상하는 어미 종달새의 새끼 부르는 소리가 우리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가을은 낙엽과 풀벌레의 소리가 제격이다. 풀벌레 소리는 불면의 머릿속을 회상의 시간으로 채워준다.
해동국 고당봉 아래 수미산 바위가 있다. 정상에 도리천 금빛 샘이 있었다. 천녀들이 내려와 목욕하며 놀다가 산의 아름다움에 빠져 천상에 오르지 못하였다. 달빛에 목욕하고 오색단풍잎으로 단장하며 살았다. 간혹 천상으로 가고 싶어 울었다. 사찰을 짓고 숱한 공덕을 짓는 날까지 금샘(金井)에서 살았다. 나는 오늘 그들이 남겨 놓은 소리들을 들었노라.
太古金井鳴(태고적 금정산에 울렸던 울음소리)
萬聲聞魚鳴(숱하게 울어온 금어 울음소리 듣고)
側耳忽聞荻(귀 기울이니 홀연히 억새 소리도 들리네)
늦가을 지는 사양(斜陽)에 흩날리는 하얀 억새 수염, 가을바람에 산들거릴 적에 사각거리는 소리를 듣노라면 삶의 존재에 대한 실존적 허무를 느낀다.
가을의 허무, 가을바람에 들려오는 억새풀 소리에 추억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펼쳐진다. 세상사 털어 버리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고당봉에 매어 있는 밧줄 끝을 단단히 잡고 혼 힘을 쏟아 하산하리라.
원효암에 돌아오니 본절 원주실 심검당에서 총무스님이 불렸다. 궁금증을 안고 너덜겅 돌길을 내려와서 심검당에 갔다. 총무스님의 안색이 좋지 않게 보였다. 무슨 일이 생겼나 긴장하며 방바닥만 쳐다보고 있었다.
“스님, 더 이상 이곳에서 수행을 할 수 없습니다.”
잠깐 침묵이 흘렸다. 아니 무슨 큰 잘못을 저질렀단 말인가. 어제 지우스님이 개인적으로 불렸을 때도 이상했었고, 고당봉과 장군봉을 올랐을 때도 혼자 산을 오름에 대해서도 의문투성이였다.
“가족과 스님들을 속인 죄업을 어찌 다 씻을 수 있을까요.”
“3대 독자가 가족 몰래 가출하여 얻었을, 가족들의 가슴 아픈 상처는,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요.”
“당장 환속하여서 못 다한 학업을 이루어, 의술로서 자비행(慈悲行)을 이루도록 하십시오.”
총무스님은 가지고 왔던 신문기사를 앞에 앉아 있는 내게 보여 주었다.
불교신문 광고란에 사람을 찾습니다. 성함, H대학교 의과대학 4학년, 나이, 성별, 사진까지 나와 있었다. 침묵하면서 기사만 쳐다보았다. 이제야 지우 큰스님이 부른 까닭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스님, 가족의 아픔과 스님의 원함이 대립할 때, 평등하며 진실한 공(空)의 도리를 깨닫는다면 유마거사의 바로 불이법문(不二法門)에 드는 것입니다.”
“절대평등의 길은 ‘사미승 의사가 되어” 가족과 병자에게 자비 행을 실천하는 길 입니다.”
“바깥에 할머니 보살님과 모친이 기다리고 있으니 귀가하도록 하세요.”
저녁 어스름이 내린 원주실 앞에선 팔순 할머니와 모친이 나의 손을 꼭 붙잡고 오랫동안 놓지 않았다.
복학하려 서울에 올라가서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이 지난번 하숙집이었다. 종로구 서촌 체부동 골목길을 걸었다. 성결교회 붉은 벽돌담을 따라 꺾인 골목 앞 감나무가 있는 기와집이다. 하숙집할머니 모습이 눈에 선하다. 하얀 머리에 항상 깨끗하게 늙어가는 노인네이다. 그리고 그 손녀가 보고 싶다. 벌써 대학교 졸업한 지도 2년이 넘었다. 죄송스런 마음과 반가운 마음이 교차하여 대문을 열고 들어갔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들 소식을 알 수 없었다. 손녀는 불교 미술학과 전공을 살렸다면 불화를 그리는 불교관련 직업에 종사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녀는 젊은 날에 짝사랑의 여인으로 풋풋한 과일 냄새처럼 오랫동안 가슴에 남아 있었다. 벌써 40년 세월이 흘렸다. 재물과 풍족한 사회생활 속에 못 채움이란 단어가 삶에 무기력을 낳는다. 그땐 원효암 공양주 생활이 그리워진다. 등산 채비를 하고 너덜겅 돌길이 있는 범어사 장군봉과 고당봉에 올라가서 범어(梵魚)의 울음소리를 찾곤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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