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소원, 나의 죽음!
3. 어떻게 해야 자아를 죽일 수 있는가?
'별세 신앙'으로 유명한 이중표 목사님이 꼭 하고 싶은 일이 하나 있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세상을 떠나는 나그네의 연습입니다. 미리 관을 하나 짜놓고 한 사람씩 그곳에 들어가서 "나는 죽었다." 하고 선언하게 하고 관 뚜껑을 덮고 못으로 박습니다. 그리고 한 시간 동안 그 속에 누웠다가 뚜껑을 열고 "나는 죽었다, 그리고 이제 예수로 산다." 이렇게 고백하고 나오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그것을 실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못질을 할 때 심장마비로 충격을 받고 영영 일어나지 못할까 염려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아주 근사한 아이디어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한번 실행에 옮길 만한 가치가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의 자아가 죽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우리 자신을 죽일 수 있을까요?
(1) 말씀에 찔림을 받아야 합니다.
예전에 대구에서 우리 교회에 매주 출석하시던 어떤 집사님이 계셨습니다. 하루는 그 집사님이 교회에 오기 전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서 제가 예리한 칼로 자기의 심장을 찌르려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얼마나 두렵던지 이리저리 몸을 피하는 꿈을 꾸었다고 합니다.
또한 이 설교를 시작하기 며칠 전, 우리 교회의 김혜영 집사님이 기도를 하다가 환상을 보았습니다. 환상 중에 김혜영 집사님은 중간 크기의 좌우에 날이 선 예리한 칼을 보았습니다. 그 칼이 날아와서 자기 가슴에 푹 꽂혔는데 피가 주르륵 흘러나오더라는 것입니다. 이 환상을 보고 집사님은 '아무래도 내가 만화를 너무 많이 보았나 보다.' 이렇게 생각하고 잊어버렸습니다. 그런데 그 주에 교회에 왔더니 설교의 제목이 "나의 소원 나의 죽음"이었습니다. 더구나 밤 예배 때에는 같은 제목으로 설교를 계속하면서 예수님이 칼로 사람의 심장을 찔러 그들의 자아를 죽인 후 빛으로 변화시켜서 사용하시는 내용의 릭 조이너의 환상을 읽어 주는 것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때서야 집사님은 이 환상이 만화를 많이 보아서 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쓰임받으려면 자아가 철저히 죽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하나님의 계시임을 깨달았습니다.
한 가지 물어보겠습니다. 환상 중에 무엇이 가슴을 찔렀습니까? 좌우에 날선 예리한 검입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4장 12-13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
그러므로 저는 그 환상이 단지 죽어야 된다는 것을 가르쳐 줄 뿐 아니라 죽는 방법까지 가르쳐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복면 강도가 칼을 들고 들어오면 사람들이 두려워합니다. 왜냐하면 칼에 찔리면 죽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칼에 찔리면 죽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자아가 죽으려면 말씀의 검에 찔림을 받아야 합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아무리 기도하고 노력해도 말씀에 찔림을 받지 못하면 자아가 죽지 않습니다. 말씀에 찔림을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설교를 들을 때 마음에 찔림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자아가 죽습니다.
나아가서, 우리는 말씀에 찔림을 받되 깊이 찔림을 받아야 합니다. 말씀에 찔리기는 찔리는데 얕게 찔리면 마음만 고통스럽고 죽지는 않습니다. 깊이 찔려야 치명상을 입습니다. 깊이 찔림을 받으면 받을수록 빨리 죽습니다. 그리고 아주 깊이 찔리면 즉사합니다. 이상한 말 같지만 말씀에 깊이 찔림을 받음으로 즉사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끝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깊이 찔림을 받는 데 도움이 되는 책들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전도서 12장 11절에서 솔로몬은 "지혜자의 말씀은 찌르는 채찍" 같다고 했는데 어떤 책들은 참으로 우리의 심령을 깊이 찌르고 회개의 영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런 책들은 자아를 죽이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그런 종류의 책으로는 토마스 아 켐피스가 지은 『그리스도를 본받아』, 캡틴 카레가 쓴 『기도하는 하이드』, 캐더린 쿨만의 『날마다 신유의 은사를 경험하라』,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릭 조이너가 쓴 『빛과 어둠의 영적 전쟁』, 『하나님의 부르심』, 『21세기를 위한 예언적 비전』, 프랜시스 프랜지팬이 지은 『하나님의 집』 등이 있습니다. 여러분, 시간을 내서 이런 책들을 읽으십시오. 그리고 마음에 찔림이 되는 부분들을 깊이 회개하십시오. 그러면 자아가 죽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2) 기도해야 합니다.
베니 힌은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이라는 책에서 "기름 부으심의 대가는 영적인 죽음이다. 그리고 그것은 오직 기도를 통해서 오게 된다."고 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이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했던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고 죽으셨고, 잠을 잤던 제자들은 예수님을 부인하고 살았습니다. 이와 같이 기도하는 자들은 죽고 기도하지 않는 자들은 여전히 자아가 살아남게 됩니다.
기도는 혼을 깨트리고 육을 죽입니다. 그리고 영에는 생명을 불어넣습니다. 기도할 때 금식을 하면 더 좋습니다. 그러면 더 빨리 죽습니다. 기도하면 기도할수록 그만큼 우리는 죽습니다.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3)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롬 8: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바울은 우리가 "영으로써" 죽일 수 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영"은 성령님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오직 성령으로써만 자신의 육을 죽일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하지 않으면 육이 살아 있습니다. 그래서 육체의 현저한 일들을 행하게 됩니다. 반면에 성령 충만하면 육이 죽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갈5:17-23). 그러므로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구약 성경 에스겔서에 보면 성전 문틈에서 물이 흘러나왔습니다. 그 물은 점점 더 깊어져서 발모, 다리, 허리를 거쳐 사람의 키를 넘는 강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성령 충만 중의 최고의 단계는 자아가 죽는 단계입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을 받되 조금 받거나 혹은 적당히 받으면 자기가 살아서 은사나 기름부음을 가지고 자기 마음대로 사용하며 장난치게 됩니다. 그러나 진짜로 성령 충만을 받으면 그때는 자기가 죽어 없어집니다. 그래서 인간의 모습은 간데 없고 하나님이 임재하시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하나님이 친히 역사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004년 4월 15일 한 자매가 기도회 때에 기도를 받고 입신을 했습니다. 그것을 소개해 드리는 것이 유익할 것 같아 그중 일부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목사님께서 안수할 때 주님께서 저를 데리러 오셨는데 천사가 저를 안고 갔습니다. 그래서 올라갔는데 주님이 '은혜의 바다로 가자!' 그러세요. 제가 보기에 호수 같은데 '주님이 호수를 왜 바다라고 하지? 파도도 없고 호수 같은데 왜 바다라고 하지?' 하고 의아해했어요. 그리고 내려가서 저도 모르게 물을 손으로 떠서 마셨어요. 비취 같고 녹색인데 비취도 너무 너무 청명하고 맑아요. ...
그런데 올라와서 보니까 그 은혜의 바다가, 제가 아까 본 은혜의 바다는 일부분만 보아더라구요. 너무나 망망대해인데 그렇게 클 수가 없는 바다예요. 그때 주님이 물으셨어요.
'은혜의 바다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모르겠어요 주님!' 그러니까 '은혜의 바다는 내니라!' 그러세요.
'저 바다는 바로 내니라! 너희가 알았다 하나 모를 것이 내니라!'
그래서 보니까 은혜의 바다가 너무너무 커요. 무한대로 커요.
'주님 제가 잘못 알았습니다. 이 넓은 바다를 호수라고 생각했어요. 죄송합니다 ... '
그 후 주님이 그 물속으로 한번 들어가 보라고 하셔서, 주님이 위에서 계시고 제가 그 물속으로 내려가면 갈수록 제가 점점 작아져요. 그래서 저 밑으로 들어가니까 제가 없어요. 그래서 "어? 주님 제가 없어요. 제가 안 보여요.' 하니까 주님께서 '은혜의 바다에 깊이 들어가면 갈수록 네가 없느니라.' 그러세요. 그때 보니까 위에는 파도가 찰랑찰랑하는데 밑에는 움직임이 없어요. 그때 주님이 말씀하셨어요. '얕은 은혜를 보는 자들은 찰랑거리는 물을 보지만 깊이 오는 자들은 이와 같이 자기가 죽어지느니라.'"
여러분,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은혜의 얕은 물가에서 발을 담그고 놀지 말고 깊은 곳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보통 여름에 물놀이를 갈 때 부모님이 자녀들에게 "깊은 곳엔 가지 마라. 위험하다."고 그러지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성령의 강의 깊은 곳으로 가야 합니다.
그래서 성령의 강물에 자아를 익사시켜야 합니다. 우리는 성령을 받되 충만하게 받아야 합니다. 그것이 자아를 죽이는 비결입니다.
(4) 하나님의 얼굴을 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할 때 자아가 죽고 변화가 일어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고후 3:18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이와 같이 주의 영광을 보게 되면 자아는 죽고 주님과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게 됩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는 하나님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됩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된다는 것은 단순히 환상 중에 주님의 모습을 뵙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적인 성품을 보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자는 성전에서 영광스러운 주님을 본 이사야처럼 오랫동안 자기 눈에 가리워져 있던 자기의 죄성을 리얼하게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원본이고 인간은 복사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 앞에서 인간은 벌거벗기움을 당합니다. 마치 주님의 불꽃 같은 눈앞에 우리의 모든 것이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듯 근본적인 회개가 터져 나오게 됩니다. 억지로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회개가 터져 나옵니다. 그래서 온전히 변화됩니다. 이것이 바로 자기의 죽음입니다.
제 경험에 의하면 제일 수지맞는 시간이 바로 이런 시간입니다. 인간이 하나님과 가장 가까이 있게 되는 순간도 이런 순간입니다. 즉 피상적인 차원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단계와 차원에서 자기의 죄성이 파악되고 그 결과 이사야처럼 경악하게 되는 순간입니다. 이런 단계에 들어가면 바울과 같은 영성이 있는 자라도 나는 죄인 중의 대괴수라고 고백이 터져 나오게 됩니다.
여러분은 바울이 어떻게 그렇게 성숙한 상태에 있었으면서도 자기가 죄인 중의 대괴수라고 고백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바울이 주님과 가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빛이십니다. 그런데 바울은 누구보다도 주님과 가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죄인 중의 대괴수"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과의 이런 깊은 만남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깊은 회개가 터지고 회개의 눈물 속에 자아가 빠져 죽게 됩니다. 그러므로 부단히 주의 얼굴을 구하고 또 구해야 합니다.
결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수님은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눅9:23)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신자의 삶은 죽음의 연속이어야 함을 보여 줍니다. 실제로 사도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15:3)라고 말했습니다.
하이디 베이커는 "당신은 이미 20년 전에 죽었다고 했는데 사도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어찌된 것입니까?"라는 질문을 받고 "20년 전 그때는 내 인생의 아주 특별한 시기였습니다. 그때 나는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 나는 날마다 나를 죽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캐더린 쿨만도 "내가 죽었던 것은 한 번이 아니고 두 번도 아니고 여섯 번도 아니고 나는 거듭거듭 죽었습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인간의 자아는 예수님보다도 부활을 더 잘합니다. 그러므로 한 번 자아를 죽였다고 방심하지 말고 날마다 거듭 자기를 죽여야 합니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오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처럼 먼저 자아가 죽어야 합니다. 그래야 내 안에서 주님이 살아나십니다. 나를 통해 주님의 인격과 지혜와 능력이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철저하게 자신을 죽여서 자신을 통해 그리스도가 나타나시도록 합시다. 그래서 예수님이 역사하심으로 예수님이 하신 일을 하고 그보다 더 큰 일도 하는 통로로 쓰임받는 저와 여러분이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