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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음! 2006년 10월 15일 일요일, 백두대간 선자령 구간 산행에 나섰습니다. 이 구간은 대관령-선자령-곤신봉-매봉-소황병산-노인봉-진고개로 이어지는 산길입니다. 대간의 왼쪽 능선으로 대관령 목장이 펼쳐져 있어 시야가 탁 트이는 구간입니다. 도상거리 23.5km의 평탄한 길이어서 하루 8시간 산행으로 끝내기에 적당하였습니다. 토요일 오후, 지인들과 만나 밤늦게 술마시다 집에 돌아오니 새벽 2시가 넘었습니다. 잠시 눈을 붙일까 하였으나 산행 약속 시간이 가까웠으므로 그냥 버텼습니다. 4시 30분이 되어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섰습니다. 버스 정류장에서 이형을 기다려 5시 20 경에 수원을 출발하였습니다. 오늘 산행에는 이형의 막역한 친구들인 조형, 어형이 동행하였습니다. 백두대간 대관령-선자령-노인봉 구간이 비교적 평탄한 길이어서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는 것입니다. 차에 오르자마자 염치 불구하고 팔자로 누어 새우잠을 잤습니다. 일행은 횡성 휴게소에 들려 아침 식사를 하였습니다. 산골 냄새가 풀풀 나는 횡성휴게소에서 황태 해장국과 육개장을 주문하여 먹었습니다. 횡성휴게소 뜨락에는 오래된 산사나무 고목이 하나 서있었습니다. 산사춘의 재료로 쓰이는 산사나무 열매가 붉게 익고 있었습니다. 어느덧 우리의 산천은 저 산사나무 열매처럼 붉게 익었습니다. 산사나무는 향교나 사찰의 부근에 많이 심어 가꾸던 나무였습니다. 한약재로 좋은 재료이기에 유생이나 승려들이 집 근처에 심었습니다. 7시 40분경, 먼동이 터오는 새벽길을 달려 대관령 옛길에 도착하였습니다. 문득 신사임당 시비가 이곳에 있다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대관령을 넘으며 친정을 바라보다 늙으신 어머님을 고향에 두고 외로이 서울 길로 가는 이 마음 돌아보니 북촌은 아득도 한데 흰 구름만 저문 산을 날아 내리네. 일행은 대관령 옛길에서 산행을 시작하였습니다. 바람이 많은 고지대인지라 낮은 키의 나무들이 겨우 자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산림연구소에서 시험 재배하는 전나무들이 바람막이 나무 울타리의 보호를 받으며 겨우 땅 냄새를 맡고 자라고 있었습니다. 대관령에는 국사성황당이 있었습니다. 2005년, 이곳은 유네스코 지정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강릉단오제(중요무형문화재 제13호)의 시작을 고하는 강릉단오제 주신인 국사성황을 모신 산신각입니다. 강릉단오제는 매년 음력 4월 5일 제례에 사용할 술을 빚는 이른바 ‘신주(神酒) 빚기’를 시작으로 5월 7일 송신제까지 1개월 가량 진행되는 축제라고 하는군요. 신과 인간이 어울린다는 이 축제는 천년의 유구한 역사를 간직하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기원전 고대 부족국가인 동예(東濊)의 제천의식과 농경의례에서 비롯된 유구한 역사의 향촌제인 강릉단오제는 고려 때의 문헌에 산신제라는 단어가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그 역사가 기록으로 확인됩니다.
특히 조선시대 허균(許筠)은 저서 ‘성소부부고’에 ‘백성들이 단오를 맞이해 대관령 산신을 모셔와 기원제를 올린다.’ 고 기록하면서 민중이 참여하는 축제 성격이 짙은 강릉단오제의 구체적인 설명을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강릉단오제는 지배층과 피지배층이 어울려 하는 행사로 농악과 농요, 가면극, 민속놀이, 무속제례 등이 번성했습니다. 이 축제는 유교와 불교, 무속 등이 혼합된 축제로 크게 제례, 놀이, 상인들의 난장 등 세 부분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제례는 대관령산신, 대관령국사서낭신, 대관령국사여서낭신에 드리는 제사입니다. 신라의 명장 김유신으로 알려져 있는 대관령 산신, 신라 말의 고승 범일국사로 알려져 있는 대관령국사 서낭신, 강릉 정씨 처녀인 대관령국사여서낭신이 그 대상입니다. 국사성황당을 지나쳐 전망대에 오르니 강릉 시가지가 한 눈에 내려다 보였습니다. 그러나 안개가 짙어 동해 바다를 볼 수는 없었습니다. 어머님 그리워
산이 겹친 내 고향은 천리이건만 자나 깨나 꿈속에도 돌아가고파 한송정 가에는 외로이 뜬 달 경포대 앞에는 한 줄기 바람 갈매기는 모래톱에 흩어졌다 모이고 고깃배는 바다 위로 오고 가리니 언제나 강릉길 다시 밟아가 색동옷 입고 앉아 바느질 할꼬 대관령에는 신사임당시비, 국사성황당 이외에 기상 관측대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기상 관측대는 백두대간 줄기를 턱하니 깔고 앉아 산길을 가로 막고 있었습니다. 산책하기 좋은 가을 숲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낙엽이 떨어진 숲길에서는 풋풋한 낙엽 냄새가 은은하였습니다.
대관령을 출발한지 1시간 쯤 걸어 오르니 선자령이었습니다. 선자령에는 광개토왕 훈적비를 닮은 번듯한 비석이 우뚝 서있었습니다. 화강암에 아로 새긴 앞면에는 백두대간 선자령(仙子嶺), 뒷면에는 백두대간 산경표(山徑表)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백두대간 선자령의 풍경은 한 마디로 목가적인 것이었습니다. 이른 바, 대관령 목장이라는 너른 풀밭과 풍력 발전기의 모습으로 요약되었습니다. 산언덕을 넘고 넘어도 풍력 발전기의 모습과 푸른 초원은 계속되었습니다. 풍력발전기의 수효는 아마 200개는 될 성 싶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이곳에 놓인 풍력발전기는 49기로 강원도에서 시범으로 설치한 4기까지 합쳐 모두 53기라고 하는군요. 산언덕을 넘으면서 보고 또 보니 그렇게 많아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이곳에 놓인 풍력발전기 기둥의 높이는 80M, 날개의 회전 직경은 90M에 이릅니다. 풍력발전기는 BESTAS 제품으로 이곳에서 생산되는 전력은 1일 98MW로 강릉시 가구의 절반인 5만 가구가 사용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국내 최대 무공해 수 력발전소인 소양강수력소의 절반 정도라니 정말 대단한 규모입니다. 백두대간 선자령 구간의 중간 지점인 삼양목장에 이르렀습니다. 이곳에는 많은 여행객이 몰려있었습니다. 대부분이 가족을 동반한 자가용 여행객이었지만 대절 버스도 한 대 와 있었습니다. 대관령 양떼목장의 풍경과 너른 풀밭과 풍력 발전기와 동해 바다의 경관을 보러 온 관광객입니다. 이들은 이곳 간이매점에서 파는 삼양 라면을 주문하여 맛있게 먹으면서 가을의 화사한 햇볕을 즐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몇몇 아이들은 풍력 발전기의 주변에서 아빠가 만들어준 가오리연을 하늘 높이 날리고 있었습니다. 60, 70년 대, 대관령 삼양 목장은 버려진 땅이었습니다. 바람이 거센 첩첩 산골 고지대인데다 연중 기온도 차가운 동토지대였습니다. 6개월은 겨울인 까닭에 농사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달라졌습니다. 고랭지 채소, 대관령 목장, 풍력 발전기 시설로 개명 천지가 되었습니다. 머지않아 대관령-선자령 구간의 대관령 양떼목장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가보고 싶은 관광지로 부상할 것입니다. 양떼목장 여기저기에는 쇠똥 거름을 나르는 트럭과 돌부리를 캐내는 포크레인이 눈에 띄었습니다. 영화 웰컴투 동막골에서 소품으로 등장하던 나무 썰매를 이곳 산언덕에서 타면 그만 일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자가용으로 찾아 오는 길 안내를 물으니 happygreen.com을 검색하면 될 것이라 하였습니다. 매봉을 지나 소황병산 자락의 너른 풀밭에 앉아 점심을 먹었습니다. 일행이 준비해온 점심 도시락의 메뉴는 유부초밥, 백세주, 삶은 달걀, 쏘시지, 사과 등으로 다양하였습니다. 나는 맨밥에 멸치 젓갈을 내놓았습니다. 유부초밥으로도 점심은 넉넉하여 밥은 먹지 않고 멸치 젓갈을 안주하여 백세주를 마셨습니다. 멸치 젓갈은 나이 들면 몸에서 칼슘이 빠져 나가 골다공증이 된다하여 유일하게 관심을 갖는 반찬입니다. 나이 든 어른들이 즐겨 찾는 연골영양제 글루코사민은 아무래도 약효가 없는 듯합니다. 연골 보호제로 광고를 하는 제약회사들의 교묘한 TV 상술에 현혹되여 한두 달 먹어 보았으나 아무런 반응을 느끼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골다공증 무료 검사를 하여 내 몸에 칼슘이 부족하다는 처방을 받고 칼슘 제재 케어본+를 먹어 보았습니다. 일주일을 먹었더니 과연 고개를 끄덕여 효과를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산행 후 며칠 동안은 무릎 관절이 피로하였는데 그런 증상이 씻은 듯이 나았습니다. ‘약은 약사에게 병은 의사에게’ 라는 말이 그제서야 다시 생각났습니다. 나이 40이 넘은 남녀는 누구나 골밀도 검사를 받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나이 50이 넘은 남자는 전립선 검사를 꼭 받아 보아야 합니다. 3시경, 노인봉에 이르렀습니다. 노인봉 산장에 이르니 수백 명의 등산객들로 왁자지껄 하였습니다. 사방으로 노인봉에 올랐다가 소금강으로 하산하는 등산객들로 산길은 북새통을 이루었습니다. 노인봉에서부터 세 줄로 서서 내려가자니 후미는 어두워서야 산행이 끝날 것입니다. 노인봉 산장은 백두대간 종주팀들이 숙박을 하고 가는 곳입니다. 이곳에서 간단한 식사도 하고 식수를 보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통이 좋아진 지금은 이곳에서 숙박을 하는 등산객은 거의 없습니다. 노인봉 산장에는 이곳에서 20년을 살아온 산지기가 있습니다. 그는 노인봉 털보 산장지기로 통하는 성양수씨입니다. 대학교 1년 선배인 그는 이곳에서 산장지기를 하다 길을 잃은 모대학원생을 재원 준 인연으로 결혼도 하였습니다. 산을 좋아하던 그는 경상도, 제주도, 충청도를 떠돌며 6~7년의 교사 생활을 하다가 이곳에 눌러 살게 되었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백두대간 종주를 18일에 주파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하였습니다. 노인봉의 기운은 사람을 빨리 늙게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와 동갑인 그는 머리카락과 수염이 하얗게 세었습니다. 2006년 2월, 그는 오랜 산중 생활을 접고 하산하였습니다. 오대산 국립공원 관리공단에서 산장의 철거를 요구하기에 ?i겨서 산을 내려왔습니다. 20년 만의 하산이니 그가 속세의 삶에 잘 적응할는지 모르겠습니다. 한 겨울에는 산적처럼 누런 이빨을 하고 지내더니 가족이 있는 서울 생활을 하면서는 치백을 한 모양이었습니다. 허연 터럭에 하얀 이빨이 가지런하여 보기에 좋았습니다. 하산 한 것이 아니냐고 물었더니 산도 보고 싶고 해서 어제 내려와 반짝 장사를 한다고 하였습니다. 해가 지면 다시 서울로 올라갈 것이라 하면서 마당에 꺼내 놓은 무쇠 난로를 가리켰습니다. 신선차와 동동주를 팔기에 동동주 넉 잔을 달라하였더니 동동주 한 잔에 4,000원씩이나 받았습니다. 워낙 안하무인인 까닭에 뭐라고 비싸다고 타박을 할 수도 없었습니다. 서울 인사동에 목로주점을 내보겠다는 세속의 꿈이 이루어지길 바라겠습니다. 4시경에 진고개에 이르렀습니다. 때마침 발생한 구름 안개가 자욱하여 앞을 분간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동해 바다에서 올라오는 상승기류와 백두대간의 찬 기운이 만나 갑자기 생기는 운무였습니다. 지음! 나에게 선자령의 이미지는 눈 내린 설원의 하얀 겨울 풍경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다녀본 선자령의 가을 풍경은 또 다른 이미지였습니다. 하얀 풍차와 너른 초원과 가을 단풍이 어우러진 풍경은 보기 드문 목가적인 것이었습니다. |
첫댓글 선자령 예찬과 노인봉의 인연! 백두대간길에 가을을 느끼셨군요. 멸치젓갈과 불로주가 그립습니다.ㅎㅎ...
오늘은 대청봉에 첫눈이 내렸답니다.호우와 강풍에 비가 눈으려 바뀌었기에 반갑지만 호들갑을 떨수없읍니다.다가오는 추위와 힘든구간 대간주자님의 완주에 행운이 항상 따르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