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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9월10일. 울릉도 여행기
<울릉도로 가게된 계기> 얼마나 가보고 싶었던 울릉도인가? 7년전인가 주변에 살던 친구 95번 박경진이가 울릉도에 일하러 가면서 심심하면 전화해서 울릉나라 놀러오라고 할 때마다 한 번쯤 가보고 싶었던 꿈을... 올해는 내 건강으로 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여기며 봄부터 그 계획을 언급하곤 했었다. 그렇지만 혼자 가는 것도 아니고 친구들 몇명은 함께해야 갈 수 있는터라 그 기회를 엿보고 있었는데, 봄에는 금춘가족 만남의날 행사 준비로 바쁘고, 그 이후에는 아버지께서 병원에 다니셔서 미루다가 그만 돌아가시는 바람에 완전히 포기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8월 중순 다시 박경진의 전화를 받고 기회는 이때다 싶었지만, 부산에서도 놀러오라는 소식을 듣고, 마침 부산 잔디회 행사와 겹친 8월 22일날 부산으로 다녀올 생각에 울릉도 여행은 어려울 듯 하여 포기했다.
그런데 부산 여행에 차질이 생겼다. 오라던 옥이할매의 일정이 어긋나는 바람에 함께 가려고 했던 인구형도 의미를 상실하고, 나 역시 잔디네 행사에 참여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으므로 부산 여행도 포기했었다. 그래서 그날 조연옥님이 이끄는 따사모 모임에 놀러갔다가 길안천을 돌아왔었다.
그때부터 또 박경진의 전화는 하루걸러 한번씩 울릉나라 오라고 했고, 한번은 갔다와야 속이 시원할 숙제 같이 울릉도가 궁금하여 미리 다음포털에서 지도를 펴고 스카이뷰로 울릉도를 샅샅이 뒤져보며 직접 가보고 와야겠단 생각을 했고, 그 뜻을 수요 정팅에 피력하여 인구형과 경남형, 그리고 안가겠다던 진균이 까지 포섭하여 9월10일 쯤에 가기로 결정을 내렸었다.
그렇지만, 정작 울릉도에 간다고 마음 결정을 하고 나서 그토록 오라던 박경진에게 통화를 시도하니 폰은 꺼져있고, 전에 쓰던 폰번으로 해봐도 안되고, 해서 월세로 거주한다던 잠실여관 전번을 인터넷에서 찾아서 여관 주인과 통화를 하고 박경진이가 그 여관에 거주하고 있다는 것은 확인했지만, 전화좀 부탁했더니, 며칠을 기다려도 통화는 안되었다. 그래서 낮에 일하는 시간을 피해 아침 저녁으로 폰 통화를 시도하고, 문자도 보내고 했지만, 근 열흘동안 전혀 통화 할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느낌에 피하는 것 같아서 더이상 그 친구를 기대하지 않고, 갈려고 했지만, 그 사실을 이야기 하니 인구형도 그렇고, 진균이도 신종플루를 염려하기에, 날씨 관계를 고려해서 여행 방향을 설악산을 기준점으로 전국의 반토막을 일주하자는 쪽으로도 연구해 놓았다.
그런 상태라서 난 가도되고 말아도 되고... 우유부단한 마음으로 세월을 보냈고, 약속한 9월 10일이 되어 서울에서 경남형이 안동으로 왔고, 인구형과 만나서 시내 지인들을 만난뒤 저녁을 먹고 밤에는 우리집에 도착했는데, 울릉도 행은 거의 포기하고 이왕에 만났으니 아무데나 2박쯤 돌아다니다 올 양이었다.
그런데 그게, 인구형과 경남형이 옆에 있는데, 박경진이 전화를 했다. 그때 폰을 놔두고 열흘동안 천부리 공사현장에 가서 일했다면서 우리가 오면 일 안가도 되고 숙식은 걱정 말라며 말을 하면서도 우리가 내일 당장 울릉도로 간다고 다 모였다니까 말을바꿔 콘크리트 공사를 하는데 자기가 없으면 안 된다기에 우리도 일 방해할 생각 없으니 일은 하고와서 밤에라도 만날수 있으면 소주 한 잔 하자고 했더니 자기는 폰을 안가지고 가니까 자기형 폰으로 연락하라고 폰번을 알려주어서 적어 놓았다.
그렇게 전화를 하느라 수요 정팅에 대화를 잘 못하고 귀한 걸음을 하신 옥이할매와 솜사탕, 어우동님등과 대화에 소홀했었다. 하지만, 본래부터 박경진을 믿고 울릉도로 갈 생각을 한 것은 아니기에 기왕에 다 계획되었던 일 그대로 밀어 부치자 싶어 진균이에게 포항 여객선 출항시간 10시에 맞춰 가도록 아침 6시반까지 정산 오라해 놓고, 우리도 마음 정리를 하면서 좀 일찍 잠을 청했다.
<9월10일. 울릉도 기행> 아침 5시. 티브이의 켜짐 예약으로 쉽게 일어났고, 내가 먼저 세면을 끝내고 아내에게 일정을 말해두었다. 이어서 인구형과 경남형도 세면을 끝내고, 아침밥은 먹기가 거북하여 빵 한개씩과 숙표커피로 요기를 했다.
그리고 여행가방을 간단히 챙기고 나서니 약속대로 진균이가 6시반에 와서 우리는 곧장 포항으로 달렸다. 가다가 장사 휴게소에 잠시 들러 자판커피를 뽑아먹고 포항 북부 여객터미날에 주차를 해놓고 처음으로 타보는 바다를 건너가는 배에 대해 약간의 긴장도 했지만, 승선표를 발권할 때 주민번호와 전화번호 이름을 써야함을 알았고, 장애인 50% 할인이기에 좀더 편한 자리를 이용하고자 우등석으로 배표를 샀다.
그리고 먼저 다녀온 사람들 말에 지레 두려워 멀미약을 사먹고, 울릉도로 출항할 많은 사람들 뒤에 서성 거리며, 배를 탈때 도움을 청해놓고, 개찰 시간이 되어 뒤따라 들어가 승선하는 계단을 밟아 올라보니, 양쪽 난간의 손잡이가 있어서 혼자 힘으로도 썬플라워 큰 배에 오를 수는 있었다.
그런데 배 안에서도 우등실은 3층이라 내가 좁은 계단을 오르기가 불편하여 도움을 청하니까 여객선 직원의 말로 3층엔 화장실도 없고 멀미를 더 할수도 있고, 창이 나 있지만 밀폐되어 망망대해를 바라보는 관광효과가 그리 크지 않다면서 그냥 1층에 빈자리가 많으니 편하게 가라는거였다.
우리 일행 4명이 1인당 5천원씩이나 더 비싼 가격의 배표를 샀는데, 표를 바꿔 주지 않으면 억지로라도 3층 우등실로 가려고 했으나, 직원이 대신 터미널로 가서 1등실 표를 바꿔주어서 좀 찝찝했지만 텅빈 1등실을 이용하기로 했다.
그런데 표 반환에도 수수료가 붙는 것인지? 1만원정도 손해를 봤다. 내가 표를 살때 좀 더 상세하게 물어보지 못한 결과였다. 경남형과 인구형은 그래도 3층으로 올라가 우등실 환경을 둘러보고 왔지만, 난 꽉 막힌 1층 선실 내부만 살펴볼 뿐이었다. 모두 900명이나 탈수 있는 공간이라서 선실 안이 무척이나 넓었다. 1층만 해도 가로 4명씩 5열*12 이나 되는 의자와, 매점, 화장실, 구조용품 창고, 뒤쪽에 누워서 가는 공간 등등과 갑판이 있고, 앞쪽 화물 칸에는 차를 싣고 짐을 싣는 공간이 있었다.
아무튼 우리는 거의 텅빈 1층에서 약간의 울렁거림을 느끼긴 해도 멀미하지 않고 3시간 25분정도 소요된 시간으로 울릉도 도동항에 정박하여 내렸고, 육지와 다른 급경사의 높은 돌산을 쳐다보며 항구를 벗어나 도동 시가지로 올라갔다. 그리고 먼저 식당으로 들어가 오징어내장탕을 시켰는데, 진균이는 그게 시큼하다고 먹지 않았다.
그 식당에서 일정을 계획하며 박경진에게 통화를 시도해 봤으나 예상대로 연결되지 않았고, 그때서야 현포리 해경 출장소에 근무하는 사촌동생 오송이에게 전화를 해 봤는데, 바로 받아서는 우리 일행4명이 울릉도에 왔다니까, 반가워 하면서도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생각좀 해 보자더니 곧 다시 통화를 하여 우리가 있는곳까지 온다는 것이었다. 천만 다행이었다.
박경진의 펑크로 내 입장이 곤란했는데, 사촌이 직접 차를 몰고 온다니까 우선은 안심이었다. 그대로 점심먹은 약수식당에서 기다리며 성인봉모텔을 호객하는 주인 할머니께 1층방 가예약을 해놓고 택시로 울릉도 일주 비용을 알아보고 (10만~13만원) 있다니까 사촌 오송이가 승용차를 몰고 나타났다. 그리고는 바로 타라고 해서 우리 4명은 염치불구하고 일단 사촌차를 탔다.
그러고 보면 사촌은 근무시간이었지만, 상급자에게 허락을 맡고 나를 도와 울릉도 일주를 해 주려고 온 모양이었다. 곧바로 차를 몰아 언덕배기 하나를 넘는가 싶더니 저동항이라며 본래 울릉도는 저동항이 먼저 발달되었고, 오징어가 특산물인데 년중 약 3개월만 어업을 하면 년소득 5천만원 정도는 번다면서 저동항과 주민들의 생활상을 가이드보다 더 상세하게 이야기 해 주었다.
그리고 저동 동쪽끝 산자락에 올라 멀리 바라보이는 죽도를 바라보게 하고는 더이상 길이 없다고 왔던길로 돌아 나오며 저동항에 있는 해경울릉본대에서 2년간 근무했었다고 사촌의 이력을 이야기 했다.
그리고 도동으로 넘어가는 길옆 주유소에 들렀기에 휘발유라도 가득 넣어 주려고 했더니 극구 사양하며 현포리보다 많이 싸다고 이쪽으로 올 일이 있으면 여기서 주유를 한다고 했다.
울릉도에 대해선 전혀 모르는 우리들로서는 사촌의 친절함에 고마워하며 차에서 이야기로 눈은 밖으로 울릉도를 고루 구경하며 도동을 지나 따블길 울릉대교를 건너 대아호텔을 지날 때는 안동 동성산업에 경리부장으로 근무하는 사촌 오만이가 거기와서 100만원이상 쓰고 갔다는 이야기도 전해주고...,
길은 꾸불꾸불 내리막길, 해안가로 내려가 사동항으로 달릴때는 경남형의 큰형님께서 삼부토건에 근무할 때 몇해전 사동항 건설공사로 울릉도에 와 있었다는 이야기를 경남형이 해 주었고, 다시 사촌이 삼성에서 그 일대를 비행장으로 건설해 주는 댓가로 주요 시설을 달라고 했다는 얘기도 있었고, 기억하지 못할 주변의 여러가지 설명이 이어졌지만, 주된 이야기는 벌써 차가 지나는 곳으로 옮겨져 있었다.
이름하여 통구미 마을. 그 마을엔 산으로 오르는 거북이와 내려오는 거북, 바다에 거북 등 세마리의 거북바위가 있어 통구미 마을이라 불렀다나 어쨌다나? 아무튼 마을앞에 외따로 높이솟는 바위산이 너무 멋있어 보여서 산나물을 차띠기로 삶는다는 콘크리트 시설물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조금 걸어 보자고 마을앞 돌산이 기묘한 그 곳을 걸으며 사진을 찍었는데, 사촌은 미리 답사한다고 금방 그 산을 걸어서 돌아왔지만, 내 걸음으로는 위험도 하고 시간도 낭비할 것 같아서 입구로만 걸어갔다가 되돌아 와서 사진만 몇장 찍고 다시 차에 올랐다.
그렇게 통구미 터널을 지나고 남통터널 남양터널을 지나면서 신호등이 있는 1차로 좁은 터널은 예전에 터널공사를 할때 미래의 교통양을 짐작하지 못해서 좁은 폭으로 뚫은 거라든가 파도가 심하게 쳐서 방파제에 사용되는 사각뿔 콘크리트 구조물이 파도에 휩쓸려 터널속까지 들어와 있었다는 믿기지 않을 자연의 힘까지 사촌은 울릉도에 관한 모든 이야기를 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를 더 달렸을까? 남양리를 지나면서 길옆에 우뚝선 사자바위도 무슨 전설인가 있는듯 한데, 우리는 그 장면도 놓칠세라 차를 세우고 차안에서라도 사자바위를 찍고서야 가던 길을 재촉했다. 그리고 또 남서터널 구암터널을 지나면서 그 근처에 남근바위도 있다고 했고, 어디선가는 오리바위도 있다고 했는데... 설명 만으로는 위치 파악이 안된다.
그렇지만 아래쪽에 황토로 된 지층이 신기하여 사진좀 찍으려니까 그보다 더 좋은 황토층이 있다해서 머물지 못하고 사촌이 밟아대는 악셀레이터의 속도에 따라 우리는 울릉도 남서쪽 해안을 마구 달렸다.
그렇게 또 몇개의 터널을 통과하고 산을 넘으며 빼어난 경치를 살피다가 제법 규모가 큰 무슨 공사현장을 발견했는데, 그게 울릉도의 공설운동장 공사라나? 도동이나 저동에서 한참 떨어진 그곳에 울릉도민의 운동장을 짓는다니, 평지가 거의없는 울릉도의 사정을 알만 했다.
그리고 우리는 울릉도 중에서도 자연 건조 조건이 좋은 태하리 오징어가 제일 맛있다는 사실을 새로 접했고, 태하리 마을을 관통하며 무슨 용신인가 하는 전설을 들었는데...? 아무튼 해변길을 돌아 신비롭게 형성된 황토흙 지층을 다시 볼 수 있었으며, 그리 깊지 않은 바위굴과 모노레일 타는곳, 뱅글뱅글 돌아 올라가서 바다를 전망하는 황토색 시설물 등을 그냥 차 안에서 보고 찍고 했었다. 아직도 볼 곳과 갈곳이 많다기에 저물기 전에 다 돌아 보자면 느긋하게 구경하고 있을 수가 없었기에...<계속>
-여기까지는, 어젯밤 선덕여왕 시청하고 금춘카페 둘러본 뒤 자정쯤에 시작했는데, 새벽5시가 가까워 짐에 멈췄습니다. 그 뒷 이야기는 후속편으로 또 쓰겠습니다.- ~~★ 이 상 ★~~ 카페지기 권오웅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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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박경진씨 넘 심하당....
그 박경진님을 만났더래도 측은지심이 앞섰을 겁니다. 못 나온 그마음 이해하고 남습니다.
웅아~어쩌면 이렇게됴 말을 잘 하노? 3시간 35분 배를 타고 울룽도를 간 친구들의 멋진 모습들이 부럽구나 마음 고생 몸 고생 동반된 여행기 속에 담겨 잇는 살아 잇으므로 맛보고 느끼는 행복과 감사를 읽으면서 느낀다........
나도 옥이가 읽어 줄 거라 생각하며 울릉도를 더듬어 쓰니까 밤을 세워 써도 감사한 생각이 들더라. 내 몸으로 울릉도를 다녀 올 수 있었다는게 참 다행이었고, 직접 내 눈으로 돌아 본 울릉도가 평생 내 기억에 남아 있겠지. 살아 있기에 가능했던 여행! 참 좋더라.
이야기거리가 많은신거같네요 이글만으로도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네요 후편이 기대됩니다. 울릉도 아주 볼거리가 많나봅니다. 어쨌든 부럽습니다. 금춘햇살님 그리고 무사히 잘다녀오신거 같아 좋습니다. 여행후 몇일은 힘드실겁니다. 무리하지 마시고 푸욱 쉬십시오!!
토마토님도 읽으셨네요. 이야깃 거리는 어디가도 많습니다. 토마토님이랑 단 하루만 여행할 수 있다면 책 한권은 충분히 만들수 있지요. 쓰기 나름입니다. 너무 길게 써서 읽는이들이 지루 할까봐 걱정했습니다. 님들 덕분에 무사히 잘 돌아와 일상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햇살아우님이 알콩달콩 진솔하게 쓰신 울릉도 여행기 함께 한듯 편안히 앉아 재미나게 잘 읽었습니다. 긴글 쓰시느라 수고 많이 하셨구요. 먼 여행길에서 마음 고생 몸 고생 많아지만. 그래도 보람있고 행복했지요. 이제 건강을 생각해서 푹 쉬세요
어디로 다닐 때마다 이슬누님이 떠오르곤 합니다. 우리가 어느곳을 여행하든지 건강에 결격사유가 없다면 맘대로 다닐수 있을텐데... 내 몸하나 내 맘대로 활용하지 못하니 그저 마음 뿐입니다. 이슬누님께서도 도움주는 지인들과 이 가을 어디라도 휘~ 다녀오세요. 나만 다니는거 같아 괜히 죄송해 집니다.
울륭도 여행기 잘읽었습니다. 몸이 성하지 못한데 배를 타고 여행을 했으니 정말 장하십니다. 좋은 추억을 만드셨으리라 믿습니다. 여독이 쌓였으리라 믿습니다. 며칠간 편히 쉬십시오.
김선생님께서도 여행기를 읽으셨네요. 몸이 불편해도 그나마 이렇게 다닐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건강을 활용해 보려는 시도였기도 했습니다. 여행 자체만의 의미보다는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는 효과도 컸다고 여깁니다. 김선생님의 활보인이 도우신다면 언제 함께 가까운 곳이라도 다녀오면 좋을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에고고 쓰느라 수고 했네~근데 가사 본것보더 더 실감이 나는데 ~역시 글쟁이는 다르네~ 처음에는 금춘이 친구 보고파 하는 마음 큰거 같아 좀 무리해서 갔는데 결과가 그렇지못해 조금 황당 했었는데 그로인해 좋은 친구들과 가기 쉽지않은곳 여행 해 보는것도 살아가는 즐거움이라 생각해보네~ 그리고 사촌동생 오송씨에게 감사한 마음 전해주게나~~
내가 여행기 각자 쓰라고 했던 것은 지워지는 기억을 되살려 보라는 의미에서 였습니다. 그냥 여행만 하고와서 피곤하다고 지나쳐버리면 금방 잊혀져 버리거든요. 여행과정을 다시 생각하며 그 장면을 떠올리며 글을 쓴다는 것은 그 감동을 배가시키지요. 박경진 친구의 소원을 들어주려 큰맘 먹고 울릉도까지 갔으나, 그 친구의 입장이 그랬으니 우리로서는 못 만나도 좋고, 만났으면 더 좋았겠지요. 그래도 예비로 숨겨뒀던 사촌동생 오송이가 반겨 주어서 이번 여행이 더욱 흥겹고 보람되었습니다. 물론 함께간 모두에게도 고마움이...^^
울릉도 안가고 방안에서 자세히올려놓은 여행문을 읽고 다녀온거처럼 사진을 보고 해서 실감이나네;
형님과 함께 갈 수 없어서 아쉬웠습니다.
내용 중에 갈때 뱃삯을 1만원 더 낸 걸로 생각하고 있는데, 더 낸 것이 아니고 맞는 거다. 가격표를 보면 갈때 30,150원 올때 28,650원으로 되어 있다.
그게 반환 수수료로 떼인것이 아니란 말인가? 왜 배삯이 갈때 다르고 올때 다르지? 넌 그걸 또 확인해 봤구나! 손해 본게 아니라면 다행이고... 난 괜히 미안해 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