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알프스 1
"연꽃 피는 나라에서 너를 만나리"
칼용담과 동행
2008년 8월 15-16일
22시간
활목고개-미남봉-상학봉-묘봉1-애기업은바위(지도상 810봉)-묘봉-관음봉-묘봉-북가치-사내4리-법주사주차장
문을 닫는 건 인정 없는 일이지
같이 눕는 건 옳치 않은 것이고
가로막힌 병풍이야 걷어 치워도 되리라
자리를 달리 이불을 달리 하리니
마음을 거둬 근원을 맑게 하고
밝은 근본으로 돌아가리라
다음 생이 있단 말 빈말이 아니라면
가서 저 연꽃 피는 나라에서 너를 만나리
유지는 선비의 딸로 태어나 기생이 되기까지 인생 굴곡은 알 수 없지만 그녀를 위해 남긴
한 편의 글이 전부란다, 율곡 선생이 황해도 감사로 있던 시절에 만났던 여인으로 선생은
그녀를 그대로 그냥 두고 예쁘게만 바라보았다고 한다, 속리산릉을 병풍으로 입구를 들
어서는 차창 밖으로 다락논에 연밭이 연을 쓰다듬고 어여삐 반겨주니 율곡 선생이 정인에
게 보낸 아름다운 시가 뇌리를 스친다,
율곡 선생처럼 정인을 그냥 놔두고 바라만 봐야 하는 걸까, 충북알프스가 내겐 정인은
아닐지라도 산이 주는 내 정인은 꽃과 나무와 바위와 바람과 새라면 그리고 비라면 차라리
반짝반짝 빛나는 별을 기다리자, 거뭇한 산 그림자 호령하며 달려드는 달을 보자,
버스에서 내려 배를 채우려 어슬렁 어슬렁 걸어가자 산채비빔밥집 아저씨가 "식사하면 태
워다 줍니다" 난 못들었는데 친구가 "밥 먹으면 태워다 준데" "그래, 그럼 들어가자" 메
뉴판을 더듬어 보니 산채비빔밥이 젤로 눈에 들어온다, "밥먹고 태워다 주신다구요?" "법
주사까지 태워다 드릴께요"
"저희는 활목고개로 가는데요" 했더니 거기는 차비를 내야 한다나, "돈 드를테니 태워다
주세요, 얼마예요?" 했더니 이만오천 원은 받아야 한다나, "아저씨 거긴 12키로 좀 더
나오는데 그리 많이 받아요?" 그럼 안가신단다,
석이버섯, 표고버섯, 고사리 참나물 등 여러 나물을 넣어 초고추장에 비벼 구수한 된장찌개
에 먹는동안 아저씨를 내 입담으로 구워 삼키고 한웅큼 배를 움켜쥐고 "아저씨 만 원드릴테
니 태워다 주세요," 비빔밥의 힘이었는지 우린 서로 "까르르 깔깔" 웃고 또 웃어 활목고개
까지 안착할 수 있었다,
어젯 밤 꾸었던 산 하늘이 내 몸에 닿아 있었다, 참나무 그늘도 촉촉히 알며느리밥풀꽃
도 풀섶을 내 몸으로 가까이 산에 묻히며 걸었다, 첨 와보는 길이지만 낯설지 않음은 왜
이고 어제 밤 꾸었던 그림자가 흔들리는 바람타고 날고 있었다, 신선한 낮알의 공기가 몸
속으로 그대 향해 춤추는 날개처럼 어설픈 맘을 가라앉히는 데는 꽤나 시간이 필요했다,
미남봉에서 상학봉이 보이고
험한 산도 높은 산도 낮은 자리에서 한 발자국으로 출발하게 된다, 높고 멀어 불가능할
것 같아도 한 걸음 한 걸음 꾸준히 걷다 보면 어느새 높이 올라 멀리 상학봉, 주전봉, 토끼
봉, 묘봉, 관음봉, 문장대를 넘어 신선대, 천왕봉, 형제봉를 넘는 백두대간을 그리고 구병산
까지 병풍바위을 걸어가겠지, 감투바위, 낭바위, 덤바위, 말바위, 병풍바위, 애기업은바위,
장군석, 치마바위 등 기묘한 암석으로 형성된 바위들이 묘봉 주변을 두루두루 보면서 노래
부르며 가야지,
산릉이 조용하다, 무한히 솟는 암릉처럼 기세등등한 그림도 소나무의 짙은 녹음도 세련되
어 보이는 숲속의 모던한 감각도 긁고 할퀸 거친 선들이 아무말이 없다, 멀리 보이는 화
북면에 풍경도 산릉 앞에 펼쳐진 미남봉도 저멀리 청화산, 대야산, 조령산을 넘었던 추억도
조각구름처럼 두둥실 떠가네, 밀려오는 검은구름 빗물될까 두려워 내 마음만 자꾸 재촉하
네,
큰 바위를 우회하고 긴 로프를 부여잡고 급경사 힘주어 오르고 커다란 바위가 솟아 있는 토
끼봉 갈림목을 지나고 좁은 동굴 베낭을 매고 빠져나가지 못해 사람먼저 통과하고 배낭넘겨
받고 혼자 산행이란 불가능일 것 같은 산릉를 넘고 비틀어 돌리고 참 재미나다, 조그맣
게 축소시키면 장난감일 것 같고 크면 클수록 거대한 직벽일 것 같은 무시무시한 산, 충북
알프스의 절경이 이곳에 있었다,
상학봉에서 지나온 주전봉 토끼봉을
상학봉 정상 바위가 구멍이 뚫리고 애기업은바위가 어떻게 생겼길래 저 다른 산릉에서 자꾸
부르는지 발길 돌려 그리로 가 볼까나, 지금 지나가면 언제 그곳을 가볼까, 이 바위는
어떻게 생겼길래 궁금하고 저 바위는 얼마나 오르기 힘들길래 나무사다리 걸쳐 놓았을까,
온몸 움추려 살찐 몸둥아리 살려달라 쪼르고 굽어진 허리 바짝 세워 달구고 직벽에 온몸을
비벼도 본다,
애기업은바위에서 본 상학봉, 묘봉의 서북릉
걷기 좋은 흙길도 공연한 욕심을 가지게 만들고 끈질기게 참아주던 위에 하늘도 비를 뿌리
기 시작한다, 애기업은바위에서 넘 시간을 빼앗겨 갈 길 재촉하여 허겁지겁 묘봉에 올라
엄습한 어두움에 삼각형조차 제대로 읽어보지 못하고 나무토막에 새겨진 먼저 가신님이 등
허리를 채운다,
묘봉을 내려서며 맞부디친동굴 바위위에서 떨어지는 빗물을 물통에 채우고 비닐봉지에 넣어
온 찰밥에 둘둘말아 먹는 김밥이 꿀맛처럼 허기진 배를 채워도 좀처럼 진행이 더뎌진다,
또다른 눈에 김이 서리고 내리는 빗줄기가 거세 가져온 지도는 벌써 볼 수 없이 잉크가 퍼
져 펴 보지도 못하고 감으로 더듬적 거리며 길을 찾는다,
"이 길이 아닌가, 이 길이 맞나"를 서로 살피며 오갔던 말이 수십 번 문장대까지 가려면
아마도 몇백 번을 번복할 듯 이마에 댄 랜턴만 애궂게 탓해보기도 했다,
840봉과 880봉의 사면을 돌아야 갈 수 있는 길, 있는 힘을 다해 로프를 부여잡고 올랐던
관음봉이었는데 거센 바람앞에 날아가 버릴 것 같은 무서움, 표지석이 어데 있는지 갈 길
못찾아 헤매다 누가 나무에 표지기 매달아 놓았길래 저기에 길이 있을 것 같은데 도무지 안
보여 올라온 길 되돌아 내려가니 또 길이었던 그 곳, 내 키를 넘어선 산죽길을 발을 더
듬어 길을 만들었던 곳 수없이 내 머리에 뿌리를 키우며 가는구나!
가끔씩 이어주는 표시기가 더없는 반가움이요, 춥고 거센 바람 일으키는 문장대의 무시무
시한 검은 암릉이 저토록 모질게 살려고 하는 거겠지 하는 마음만 바라보기로 했다, 문장대
걸어가는 길이 또랑이 되고 공연한 욕심을 이제는 버리고 손안에 잡힐듯한 왼쪽 봉우리 미
로같은 암릉사이를 비비며 올랐던 그 봉우리 이제는 돌아가리라, 돌고 돌아 보아도 그 자
리 내려다 보면 길일 것 같은 그 봉우리 돌아 왔던 길 목책을 뒤돌아 선다,
저 봉우리를 세 번 오르면 극락에 갈 수 있다는데 20대 푸릇했던 시절 첨 올라 맘 저렸던
그 때이고 또 30년을 훌쩍 넘어서 재 작년 백두대간길에서 올랐던 두 번째이고 오늘이 세
번째 이건만 "또 오겠지"하는 마음으로 돌아섰다,
한시도 쉴 것 같지 않은 비바람, 캄캄한 밤 하늘아래 삼킬 것 같은 천둥과 번개 때리는 무
서움, 호우주의보가 내렷다는 속세엔 아득한 한 밤중이건만 밤새도록 걸어갈 힘 못미쳐 발
걸음 멈추면 죽을 것만 같은 추위 비옷에 흘러내리는 빗물이 줄줄 옷깃을 저민다, 발밑
에 처벅거리는 신발에 물이 가득챈지 오래 발에 감각이 무뎌져간다,
왔던 길 되돌아 가는 것도 언제 왔냐는 듯 새로워 보이듯 안 보이는 길들을 살피고 또 확인
하고 개구멍 통과하여 올라보니 관음봉에서 갈길 찾아 헤매던 그 구멍옆에 표지기 "여기였
구나!" 나도 모르게 친구와 합창을 했다, 머리 위로 사뿐히 이고 있는 달빛이 그리웠고
밤하늘 그득히 수놓았던 별빛을 기다렸는데 이런 날이 되리라곤 어제 꿈이 아니었는데,,,
묘봉의 삼각점
속사치지나 북가치가 그리도 그리웠을줄이야, 왜 어제 저녁 지나면서 내려갈 생각을 안했
을까, 어두움이 몰리고 비가 내리고 했든 시간, 그 고개를 넘어서 묘봉으로 갔을까, 오
랜만에 와본 산행의 감각이 내 머리에 뚱뚱해지니 나 이제 멀지 않은 길을 가리라, 밤새
내리며 빗물이 또랑을 만들어 내를 만나고 사내 마을 내려서는 길에도 조심조심 발길 편히
놓아 주지 않았다,
묘봉의 바람 넉넉한 품 받으며 곧고 푸른 소나무에 혼 천년을 이고 서 있는 산릉이 멀어져
갔다, 밤새 걸으며 힘겨웠던 충북알프스의 서북능을 뒤돌아보니 앞서간 친구가 나보다
더 대견스럽게 느껴지는건 어째서 일까, 그래서 친구와 같이 걸은 산릉이 위대해 보였는
지 모른다, 여름이 지나가고 있다, 법주사 주차장 내려오는 임도길 밭에 고추며 들깨며
콩잎이 무성히 올라오고 논엔 벌써 벼가 자라고 있는 갈로 오고 있었다,
법주사 주차장에 내렸을땐 내 몸도 아닌 듯 여수에서 오신 님들과 허비님을 뵙는 순간부터
쥐구멍만 찾아 다녔다, 떠날 때 먹었던 그 집에서 우린 또 산채비빔밥을 뒤새김하면서
있던 하룻밤 이야기가 석벽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천왕봉이 올려다 보이는 피
앗재산장에서 산이 있어 행복한 사람들끼리 엮어내는 추억을 만들고 있었다, 참나무화로
에 삼겹살, 밤막걸리가 있어 그 밤이 더 아름다웠노라,,,
"연꽃 피는 나라에서 너를 만나리"라던 율곡 선생이 남긴 시가 이 밤 깊어만 간다,,,,,
첫댓글 살며시 가려하니까 너를 붙잡고 조금이라도.... 눈이 시리도록 그대 보고 싶어서 너의 정인이 화가 난 거야 밟은 날에... 심한 몸살을 앓듯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관음봉, 설악이 맘이 아파던거야 다시는 정인 화나게 하지말고 다독거려 주렴
덜덜 떨며? 그래도 보고픈 사람이 있어 그리 가지요? 애많이 쓰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