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은지 한 달이 되어갑니다. 새해 인사도 드리지 못했는데 2월이 코앞 입니다.
우리교회 식구여러분, 우리교회이야기 식구 여러분! 여러분은 이 한 달을 어떻게 보내셨습니까? 한해의 시작이 순조로우셨습니까? 마음 가볍게 벅찬 희망을 가지고 출발하셨습니까? 여러분들은 벅찬 기대와 희망으로 올해를 시작하셨기를 기원합니다.
저는 새로 맞는 한해를 어영부영 아무 것도 못하고 출발했습니다. 지난 해 마지막 주일에 만 구년을 함께 해온 ‘모이는 우리교회’를 ‘흩어지는 우리교회’로 선언하였습니다. 그동안 모이는 우리교회에서 함께 예배드리기 위해 먼 곳(안양, 양주, 수지, 가평, 의정부 등)에서 오셨던 교우들께 감사드리고 이제는 각자 지역에 있는 내 교회(우리교회)를 찾아가 예배를 드리도록 하는 ‘흩어지는 교회’를 선언하고 각자 처한 삶의 자리에서 우리교회가 하던 역할을 감당하도록 한 것이지요. 서울 중심으로 모이는 교회들이 더 커지고, 많아지는 상황에서 꼭 서울지역교회로 우리교회가 모여야 할까 라는 질문이 흩어지는 교회로 선언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당장은 모이는 교회로서의 모습은 볼 수 없지만 그동안 하던 우리교회이야기 발행과 선교를 후원하는 역할은 지속하자고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대 도시가 아닌 다른 곳에서의 모이는 교회는 가능성은 열어 놓자고 했습니다. 아! 1년에 한번은 어디서든지 한번 모이는 교회로 모였으면 좋겠다는 바램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올해 첫 주일을 맞으며 ‘흩어지는 교회 첫 예배를 어디서 드릴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결정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교회를 찾아가 예배드리자. 그래서 찾아간 곳이 삼일교회입니다. 교회가 있던 축대 밑 길거리에서 예배를 드린다는데 이 겨울에 길거리 예배 장소를 찾아갔습니다. 녹번동 지하철 역 1번 출구로 나가 곧장 걸어가니 큰 도로 좁은 보도 한견에 죽 늘어 앉아 예배드리는 현장이 나왔습니다. 삼일교회가 있던 높은 축대 밑에서 교인들이 예배를 드리더군요.
삼일교회는 40년 넘게 예배드리던 예배당이 녹번동 재개발지구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역재개발조합과 재개발 시행처인 삼성물산과 협의를 하고 있던 중 통고도 없이 목회자도 없는 상황에 교회를 밀어버린 사건이 지난 11월에 일어났습니다. 예배처를 잃어버린 교인들은 망연자실했고, 교회집기는 이리저리 뒹굴고... 재개발 지구에서 흔히 일어나던 일이었지요. 목사님과 교인들은 은평구청 앞에서 데모도 하고, 거리 예배도 드리고 하다가 교회 축대 밑 길거리 예배를 드릴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매 주일 11시면 교인들이 보도에 줄지어 앉아 예배를 드립니다. 시민들이 지나다닐 수 있게 한켠에 앉아서요. 아기를 안고 서서 예배드리는 젊은 부부, 잔뜩 옷을 껴입고도 추위 속에 몸을 한껏 움추린 교인들이 찬송하고 기도드리는 현장은 힘들고 어려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힘들어 보이지 않았습니다. 목사님은 이런 고통의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아픔을 경험해 보지 못한 우리들에게 아픈 이들의 마음을 체험케 하시고, 그 아픔을 통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전하게 하셨다고 하면서 이 시간을 초월해 나가자고 하셨습니다. 지나다니는 자동차 소음에 방해를 받을 만한데도 교인들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은혜로 예배를 드리고 있어서 찾아간 제가 은혜를 받았습니다.
예배가 끝나고 음식점으로 옮겨 화기애애한 가운데 뜨끈한 콩나물국밥을 애찬으로 받았습니다. 교인들 모두의 얼굴이 환하게 빛나고 힘차 보여서 저도 신이 났습니다.
서슬 퍼렇던 독재정권 시대에도 교회와 성당은 지성소였습니다. 경찰이 감히 들어오지도 못했습니다. 명동성당 들머리에는 고통 받는 이들이 자리를 잡고 시민들에게 호소를 했고, 명동성당은 이들을 보호해 주었습니다. 한국교회협의회는 고통 받은 이들의 호소에 귀를 기울이고 교회들은 어려운 가운데서도 그들을 도우려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정치권력자들이 눈에 가시처럼 미워했어도 지금처럼 막무가내로 밀어닥치고 쳐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언제 부턴가 이런 것들이 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힘들고 아픈 이들이 설자리가 없어진 것입니다. 그들의 울타리가 되어주었던 종교기관들이 제 울타리를 치고, 약자들, 고난당하는 이들이 들어서는 것을 막은 것입니다. 명동성당이 아주 멋있게 변했습니다. 고통 받는 이들이 천막을 치고 비볐던 언덕은 말끔하게 정리되고, 그 언덕 지하에 자리잡은 장소들은 모두 명품들을 파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가난하고 힘든 사람은 다 내게로 오라고 하셨던 예수님이 서서 말씀하실 곳은 이제 없습니다.
교회들도 다 제집 크게 짓기에 바빠서 이런 이들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우는 이들이 오면 쫓아 버리는 곳이 되었습니다. 그 무섭고 혹심했던 시절에 함께 울고 웃으며 견뎠던 일들을 하나님을 믿는 이들이 먼저 배제하는 시대가 온 것이지요. 이제 힘든 이들이 그나마 찾아 갈 수 있는 곳이 절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다보니 교회는 세상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 심한 경우 개독교라고 비아냥거리고 욕을 해도 대꾸도 못합니다. 한국기독교에 대하여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신뢰가 모두 깨져 버렸습니다. 기독교전래 초기에 의료선교, 교육선교, 복음선교를 통하여 복음이 전파되고 사랑과 구제의 대명사 역할을 하던 기독교가 이제는 ‘사랑과 구제의 실천’을 가장 소극적으로 하는 종교라는 비난도 받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작은 교회 하나쯤 밀어버리는 것은 일도 아닌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교회가 제 목소리를 제대로 내어야,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나님의 교회를 밀어버릴 수 없게 됩니다. 말로써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가 제 본연의 모습을 찾자면 기독교정신을 제대로 구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몸으로 사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가진 신앙을 새롭게 고백하는 것으로 시작되어야 합니다.
여호수아는 가나안에 정착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불러 모으고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고 선언합니다.(여호수아24:14-18) 하나님의 은총으로 가나안에 들어왔으나 하나님을 섬기기보다는 메소포타미아에 살면서 섬겼던 가족 신, 이집트에서 검기던 제국주의 우상, 가나안의 바알신에 현혹되어 있는 이스라엘 백송들에게 하나님을 섬길 것인가, 아니면 우상을 섬길 것인가 선택하라고 말하며 자신은 오직 하나님을 섬길 것이라고 합니다.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풍요의 신 바알에 현혹되고 어떻게 하면 더 풍요로워질 것인가에만 관심이 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어떻게 그들이 가나안 땅에 오게 되었는가를 생각해 보라고 일깨웁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그들을 구원해 내신 분임을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호소합니다.
오늘 교회가 제 목소리를 내어야 우리 사회가 모두가 살 수 있는 사회가 됩니다. 힘없는 이들의 집이 헐릴 때 우리가 대변해 주지 않았기에 교회가 헐림을 당합니다. 아픈 이들의 울타리가 되어주지 못하는 교회는 우리 울타리조차 지키지 못하게 됩니다. 그런 우리를 하나님께서도 내치시기 때문입니다. 삼일교회가 아픔을 당하면서도 지역주민들과 함께 연대하고 당당하게 서는 것을 보시면서 하나님은 기뻐하실 것입니다. 고통을 초월하는 축복으로 바꾸어 받아들이는 삼일교회에 하나님이 늘 함께 하실 것을 믿습니다. ‘오직 나와 내집은 여호와를 섬기며 가겠노라’는 고백으로 올 한해를 살아나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