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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비콘 강(라틴어: Rubico/Rubicon)은 이탈리아 북부의 작은 강에 대한 라틴어 이름이다. 아리미눔과 카이세나 사이에서 아드리아 해로 흘러드는 강이라고 알려져 있다. 현재는 루비콘 강이 어느 강인지는 확실치 않다.
“루비콘 강을 건너다”는 표현은 되돌아 갈 수 없는 상황에 처했을 때 쓰는 말이다. 기원전 49년,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주사위는 던져졌다(alea iacta est.)는 말을 하고는 루비콘 강을 건너 로마로 진군했다. 당시 카이사르가 군대를 이끌고 루비콘 강을 건너는 것은 로마에 대한 반역을 의미했다. 당시 로마 법은 절대 루비콘 강을 넘어 국내로 무장한 전투병력이 들어올 수 없었다. 이를 어길시는 반역죄로 처단하였기 때문이다.
카이사르가 집정관이 되어 갈리아 정벌을 시작했을 때 유럽은 국가체제가 아니고 부족국가 단계였다. 카이사르의 몇 만명의 정예군이 수십 만의 유럽 부족들을 평정하고 로마로 돌아오자 로마국내의 카이사르 정적들은 카이사르의 성공과 실력을 시기하고 두려워하여 그를 축출하려고 카이사르에게 로마법대로 무장군사를 루비콘 강 너머에 두고 비무장으로 카이사르만 들어오도록 하였으나 국내의 정세를 모두 파악하고있던 카이사르는 그대로 병력을 이끌고 루비콘 강을 넘었다. 로마로 진입한 카이사르는 정적들을 모두 제압하고 제정로마시대를 열게되며 강력한 국가 지도자로서 로마의 전성시대인 팍스로마를 열게된다.
이후, 루비콘강을 건넜다는 의미는 주로 정치, 군사상의 쿠데타로 국가를 무너트리는 정도의 완전한 결별 혹은 돌이킬 수 없는 결과 등을 지칭하여 사용하게 되었는데 .......
'루비콘 강을 건너다.'라는 말은 결코 돌이킬 수 없이 생사를 건 결정을 의미하며 병법(兵法)에서 말하는 '배수의 진(背水之陣)'과 의미가 상통한다. 백제의 계백 장군이 황산벌 전투를 위해 떠나기 전 가족들의 머리를 베었고, 장수들은 전쟁터로 떠나기 전 자기가 살던 집을 모두 태우고 떠났다는 데 생사를 건 일을 하는 데에 뒷 일은 버리고 오직 목숨을 걸어 살아남을 일만을 생각한 때문일 것이다.
아뭏든 비유가 무척 거창했다.
2006년, 3월에 비행기를 타고 서해바다를 건너면서 대한민국에서의 '나'를 버리기로 하였다. 그것은 우리가족들도 모두 대한민국에서의 '나'를 버려야 함을 의미하였다. 다시는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으리라는 결심으로, 아이들에게는 어린시절 외국에서의 추억을 남겨주고 싶었다. 개인적으로는 그만치 대한민국에 희망을 가지지 못했고 국외이탈자(expatriate)되기로 모진 작정을 하였다. 어찌보면 나의 경우 정치적 국외이탈자(political expatriate)이지 결코 궁핍한 생활로 인한 국외이탈자(economic exile expatriate) 거나 다른 불법국외이탈자(illegal exile patriate)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외국에 나가지도 못했을 테지.
본래 국외이탈자(expatriate)라는 말은 1920년대 미국적 상업주의와 속물주의에 절망하여 제1차 세계대전에 참여한 대다수의 작가들은 전쟁이 끝난 후에도 유럽에서 돌아오지 않거나 안주의 땅을 찾아 유럽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생활한 미국의 젊은 작가들을 두고 한 말이다. 이들 문화적, 예술적 망명가들로 이때 그들을 국외이탈자(expatriate)라고 부른 것이며 나중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일단의 미국 작가들(E. Hemingway, F.S. Fitzgerald, J. Dos Passos 등).을 가리키며 T.S. Eliot나 Henry James처럼 미국의 정치적 방황에 실망하여 미국작가이면서 영국인으로 귀화한 작가들이 제1세대 '국외이탈자'일 것이다.
중국에도 약간 성격이 다르지만, 국외이탈자와 비슷한 용어가 있다. 바로 '커쟈(客家)"이다. '커쟈"는
중원에 살았던 한족들을 말한다. 전란을 피해 중국 남부 지방 곳곳에 무리를 지어 살게 된 이들은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고향을 잊지 않고 우둔하리만큼 전통을 지키며 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오래 전에 전쟁과 경제적 문제로 세계전역으로 퍼져나간 한족들을 가리키기도 한다. 이들은 원래 자존심이 강하고 지적으로 우수하며 한편으로는 그들은 일반인들에게 편견에 가까울 만큼 배타적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그들 중에는 걸출한 인물들을 배출했다. 삼국시대의 조조가 그러했고, 태평천국의 홍수전과 신해혁명의 쑨원, 등소평, 필리핀의 아키노 대통령,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대통령, 등 수두락하다. 그건 그렇고...
이때 프랑스의 수도, 파리에 생활하면서 활동하던 미국여류작가인 Gertrude Stein 여사가 운영하는 살롱(Salon)에 출입하던 미국의 젊은 작가들을 두고 그 여사는 '방황하는 세대' (Lost Generation)라고 불렀다. 그들은 전쟁에 의하여 종교도, 도덕도, 인간적인 사랑도 모두 빼앗긴 사람들이며, 그러한 환멸속에 있으면서도 어떻게 해서든지 삶을 처절하게 살아보려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작품을 통하여 미국적 이상에 대한 환멸을 실토하고 새로운 가치를 모색하려는 진지한 시도를 보여주었다. 그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작가가 헤밍웨이이며 그는 '노인과 바다'라는 소설을 통해 인생의 험난한 바다에서 처절하게 살아남으려는 삶의 투쟁을 잘 묘사하였다. 그래본들, 손에 거머쥐는 건 물고기 뼉따구 밖에 없지만...(한국인이라면 뼉따구해장국을 끓여먹을테지...) 어쨌든 인생이란 게 살아가는 동안의 투쟁적 모습이 중요한 것이고 비록 뼉따구 밖에 건지지 못한 삶이지만, 그렇게라도 종착역까지 살아왔음이 대단하고 대견한 것이 우리 삶이지 싶다.
이러한 것들에 대해 개뿔도 모르는 주제에,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지 알길 없는 사람들 때문에 삶에 지친 저녁해거름 무렵에 머리에 뚜껑열리고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게 경우가 있다. 그런다고 그런 것때문에 우울해할 나도 아니지만... 그러니 어쩌겠는가?목숨을 걸고 살아남아야 하는 것을...
중국에 온 이후 가장 뿔따구가 나는 일이 종종 성질이 못되먹은, 고약한, 개같은 인간들이 나를 보면 한국에서 무슨 죄를 저지르고 중국으로 도망친 양 물어보거나 알아내려 하거나 꼬치꼬치 캐묻는 경우이다. 도대체 머리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 사람들인지 모르지만, 사람에 대한 환멸과 좌절과 경멸감을 가지게 한다. 저들은 그렇게 살았나 보다. 아마도 한국에서 경제적인 문제로 인해 중국에 와서 무엇인가를 해보려고 했는데 잘 안되니까 좌절을 하며 그렇다고 어깨펴고, 고개를 빳빳하게 들며 돌아갈 면목이 없는 사람들인 지는 모르겠다.
예수의 눈에는 모든 사람들이 예수로 보이고 부처의 눈에는 모든 사람들이 부처로 보이고 성철스님의 눈에는 모든 사람들이 성철스님으로 보이는 법이니 그런 사람들을 상대할 이유가 없다. 내가 배운 학문으로 한국에서 맘먹고 한다면 못이룰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인이면 너나없이 그럴테지만, 중국에서의 삶이 결코 만만하지 않다. 어쩌면 목숨을 내놓고 살아야 하는 지도 모르고 우리자신 거칠고 험난하고 고통스러웠던 50~60~70년에 이르러 정치적인 핍박이 심했던 80년을 살아남았기에 그나마 험난을 중국의 삶을 견디어가는 지도 모른다. 게다가 월남전 참전용사를 비롯해 군대를 다녀온 분들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살아남는 생존기술과 본능을 터득한 터인지도 모른다. 몇몇 귀족적 삶을 살아가는 특권계층의 주재원들을 빼놓고...
누군가가 나더러 그런 말을 했다.
"한국에 가서 학원을 하시지, 왜 중국에서 사서 고생을 하시나요? 그렇게 어려우면 친척들한테 돈을 빌려서 학원을 차린다음에 직접 학생들을 가르치고 하면되잖아요. 그렇게 하면 돈도 벌고 '원장님'소리도 듣고 남들한테 추레해 보이지도 않고... 어떤 사람은 학원을 차려서 건물도 올리고 BMW도 굴리고 해외여행도 자주하고 그러던데.."
아놔~ 이런 희망새!
과연 그럴까? 돈이 그렇게 쉬이 벌리고 하는 일마다 잘되고 한다면, 세상에는 가난한 사람들은 하릴없이 퍼져누워 하늘에서 돈이 떨어지고 떡이 나오고 호박이 덩쿨 채 굴러들어오기를 바라기 때문일 것이다. 더구나 내가 추구하는 삶이란 그것이 아니었기 때문이고 올바른 양심과 마음을 곧이곧대로 사용하며 사는 일이 최상의 삶이라고 생각하는 나에게 왠 꼬추피리 소리인지...
중국인의 상술(商術)에도 상대방을 속여서 이익취하는 행위를 최상의 기술로 간주한다. 내가 상대방을 속이다가 발각되었을 찌라도 미안하고 죄송하고 죄책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어디가 잘못되었길래 내가 상대방을 속이지 못했을까?'라고 반성한다. 그런 후, 어떻게 하면 들키지 않고 더욱 능숙하게 상대방을 속일까?하며 연구하고 고민하는 사람들이 중국인이다. 사람을 속이는 일에 관한 한 세계최고의 기술과 뻔뻔함(이러한 기술을 面厚心黑-면후심흑-얼굴은 뻔뻔하고 마음은 음흉하다-라고 한다.)
우리가 중국인들을 오해하고 착각하고 두눈 똑바로 뜨고 못보는 이유가 바로 면후심흑(面厚心黑)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없기 때문이고 그러기에 매번 깨지고 당한다. 그래놓고 중국인에게 당했다, 힘이없어 그랬다, 하며 저들을 욕하고 비난하고 원망한다. 늘 속고 속이고 하는 일이 지난 5천년간 중국인들의 뼈와 살과 생활 속에 녹아있는 습관이고 전통일찐대 그것을 미리미리 알고 대처방법을 강구한 후에 접근했어야 하지 않느냐는 말이다.
일본인들에게 조차 '혼네'(本音)와 ‘다떼마에’(建前’,또는 ‘立前’이라 쓴다)라는 마음이 있다. ‘혼네’는 본심이란 뜻이고,‘다떼마에’는 겉모습, 빈말, 등의 뜻으로 내세우는 방침이나 원칙,곧 명분을 뜻한다.
예를 들어보자. 일본인들은 아무리 친한 친구나 아는 사람이라도 자기 집에 불러들이는 법이 없다. 일본인들의 집은 작고 불편하고 가정살림이 빼곡히 들어차있으니 답답하고 지저분하기도 하다. 그것은 남에게 내세울 일도 아니고 남이 나의 그런 사정을 알면 수치스럽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이들은 빈말로 이렇게 말한다. "우리집에 놀러오세요." " 커피마시러 오세요." '지나는 길있으면 들렀다 가세요."라고... 이것이 다떼마에이다.
빈말로 '놀러오세요.'라고 하지만, 본뜻은 '오지말라'는 의미의 듣기좋은 표현일 뿐이다. 저들을 비난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러면 처음부터 놀러오지 말라고 하지 그러냐고 딴지를 걸테지만, 그것은 일본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무지함에서 비롯된 것이니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는 것이 자신의 무지를 드러내지 않는 지혜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겉과 속을 알지 못한 채 눈앞의 현상만을 두고 함부로 재단하고 판단하고 심지어는 그사람의 인생방향을 틀어댈려고 한다면 어느누구나 자기 삶의 방향타 조차 제대로 가늠하거나 조종하기 어려운 판국에 같이 물에 빠져 죽자는 물귀신꼴 밖에 나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열렬히 사랑해 마지않는 '친절한 금자씨'가 그러셨다. "니나 잘하세요."라고...
구약성경 '창세기'편에 보면 "요셉'이란 인물의 이력이 나온다.
그는 이스라엘 족장 야곱의 열 한 번째 아들로서 나이들어 얻은 뒤라 야곱이 몹시 사랑하던 아내 라헬의 소생이다. 라헬이 출산 중에 죽었으므로 야곱은 그를 몹시 사랑한다. 요셉은 솔직한 탓인지, 형들의 과실을 부친에게 알렸으므로 형들의 시기와 미움을 받았다. 이로 인해 형들은 미운 동생 요셉을 죽이자고 하였으나 장남 르우벤의 제의에 의하여 죽이지는 않고 구덩이에 던져진다. 이 때 길을 지나던 이스마엘 상인들에게 은 20개에 노예로 팔린다.
그들은 애굽에 도착하여 그를 왕의 신하 시위대장인 보디발에게 팔았다. 그런데 요셉은 외모 때문에 그 주인의 아내가 그에게 평소에 동침하자는 끈질긴 간청과 유혹을 거절하다가 강간미수 혐의로 모함당해 감옥에 갇힌다.
그러던 어느 날 왕은 7마리의 살찐 황소와 7마리의 마른 소가 있는 꿈을 꾼다. 요셉은 그 꿈을 해석해 주면서 7년 풍년 동안에 애굽 전국에서 곡식을 거두어 들였다가 흉년 때에 나누어 주도록 진언했다. 바로는 요셉의 말을 가상히 여겨 그를 총리로 임명했다. 그리고 그에게 이 일을 맡겼던 것이다. 요셉은 버금수레를 타게 되었는데, 이는 그가 왕 외에는 가장 높은 지위에 있음을 보여준다. 이로써 요셉이 탁월한 능력과, 인품과, 권위를 지닌 인물임을 모든 사람들이 알게되었다. 요셉은 모든 사람들의 생사를 전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인물이 된 것이다. 때에 그의 나이 겨우 30세였다.(사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요셉은 이제 총리의 자격으로 전국을 순찰하면서 곡물을 거두어 저장하니 바다의 모래같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아졌다. 곧 대흉년이 들어 애굽 국내는 물론 부근 여러 나라에서도 식량이 떨어져 식량이 있는 곳으로 사람이 몰리게 되었다. 요셉은 창고를 열고 백성들에게 곡식을 분배해 주어 기근을 구제했다.
요셉은 형제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사실대로 고할 만큼 솔직하고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심부름하는 순종적인 성격이었다. 그는 섬세한 감정과 겸손한 마음, 성실함과 인내심을 갖추었고 보디발 처의 유혹을 물리친 순결의 소유자이다. 당시 시대적 배경은 B.C. 1915~1805년경으로 이스라엘 민족과 혈통이 같은 셈족 계통의 힉소스(Hyksos) 왕조가 애굽 왕권을 잡았던 시대이다.
중국에서의 생활이 너나없이 어렵고 힘들다. 중국인 토박이들도 힘들어서 충동적인 강도와 절도와 자살까지 서슴지 않는다. 우리는 살려고 이곳에 왔지 죽을려고 오지 않았잖은가? 제대로 살고 올바로 살고 그리고 잘 살아야 한다. 국외이탈자이던, 한국으로 돌아갈 임시거주자이던, 그리고 중국에서건 한국에서건 어디에서건 살아가는 문제는 늘 진지하게 생각하고 고민하고 발악을 해야하는 일이다.
어려움을 처하면 늘 성경의 인물인 '요셉'을 생각한다. 우리에게는 '이 순신'장군이 있다.
그들은 생명까지 잃을 뻔하고 억울하게 옥에 갇히면서 까지 삶의 희망을 버린 적이 없다. 일부 기독교인들의 말처럼 '하나님의 은혜'니 '은총'이니, 혹은 국가사랑이니 민족의 영웅이니 이따위 저 말하기 좋은 대로 떠들 것이 아니라 그가 자신의 삶을 얼마나 겸손하고 성실하고 인내하며 살아왔는 가에 촛점을 맞추어야 한다. 하나님이던 부처님이던 겸손하지 않고 성실하지 않은 자에게 복을 줄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남의 이야기라고 '한국에 가서 학원이나(?) 하시지요?'하는 이따위 수준낮은 말을 할게 아니라 성실하게 자기의 삶을 무던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아름답게 보아줄 일이다.
어찌보면 요셉 역시 '국외이탈자(Expatriate)'이고 '커쟈런'(客家人)이다. 참고로 나의 영어이름은 'Joseph'이다. 왜 그러냐고 묻지 말아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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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客家....
원래 중원이란 황하 상류, 위수의 섬서성 하남성 일부를 가리키는 거지요. 즉 장안과 낙양 일대죠.. 여기가 오리지널 중국.
중국인들이 중원을 떠나서 이주한 것은 진(晉)나라가 오호(五胡)에게 망한후 건업(남경)으로 내려간 때와, 북송이 금에게 망한 후 변경(개봉)에서 항주로 내려간 두 때가 가장 대표적인 것이로 아네요.
그런데 죄송한데... 글의 주제가 무엇이신지... 난 한국 버리고 중국으로 온 한국인이다.. 이말씀이시죠? ...
상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 한국을 버렸다기보다는 중국에서 새로운 뿌리를 내릴 각오로 온 것이죠. 중국에서 살거라면 한국을 생각하면 안되겠기에...^^
한극 버리고 중국으로 온 한국인이라기 보다는 스스로의 양심과 원칙에 따라 삶의 방향을 결정하고 열심히 살고 있으니, 일반적인(일반적이란 전제가 반드시 옳다라는 가치판단을 동반할 수는 없음, 범주의 오류일 듯)가치 판단 기준으로 타인의 삶에 대해 충고및 조언하거나(점잖게 표현 한 것임) 판단하지 말아줬으면 하는 마음이 느껴지는 글이네요. (제가 오독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 영어 잘아시네요(난 왜 저 단어들이 이리도 낯설기만 한 건지..) 한번 만나보고 싶은 분이네요... 할만한 얘기가 꽤 있을 것 같은 느낌때문에 말입니다... 以文會友라고 하기에는 약간 억지가 있을 지도 모르겠지만...님이 쓰신 글을 읽고나니 한번쯤.....
얼마 전에 저를 심하게 몰아친(돈주기 싫으니까,.. ^^)어떤분이 있어서 몹시 속상했지요. 아예 과거의 생활을 하나하나 뜯어내고 미래의 삶을 자기틀에 맞게 살도록 강요하기에 그러지 말라고 했지요. 다행히 잘 참는 성격이어서 아무문제 없이 지나갔지만요. 그리고 만나뵈면 좋은 이야기를 많이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버린다는 표현을 쓴것은 윗글에서 대한민국의 나를 버리기로 결정하셨다는 표현을 쓰셨기에 써드린 것입니다. 오해하셧다면 죄송하고요. 그러나 이 글에서는 오히려 그표현이 적당할지도 모릅니다..
버린다는 표현을 쓰신 것이 그만큼 비장하셨으니가 스셨던 것이겟죠.. 한국을 떠나서 외국으로 가신 분들 고국은 버리지 않앗지만 그곳의 사람들과 세상에 상처받고 오신 분들이 많을 겁니다.
불교에 모든것을 버려야만 다시 담을 수 있다는 말씀이시겠죠. 다버리시고 다시 잘 담으시길...
루비콘 강을 건넛다는 표현 역시 시저가 자신의 친구들과 조국 로마에 대해서 쿠데타를 감행한 중요한 결정이엿습니다. 몰론 어쩔수 없는 결정이였지만 결론적으로는 공화정의 결정에 대항하여 쿠데타를 한것이였고.로마는 그후 다시는 공화국으로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이 예를 쓰신 님도 이러한 즉 자신의 사랑하는 것을 버리고, 심지어는 사랑하는 것들과 적이 될 정도의 비장한 각오로 일을 저지를때 쓰는 표현이 아니겠습니까... 가슴이 아프지만 버린 것이죠
후에 씨저는 그 댓가로 친구인 브루투스에게 암살당했죠...
멋진 댓글 감사합니다. 내용이 참 좋습니다. *^^*!
오해 없이 받아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청도에 사시나요? 저는 지금 청도를 떠나 다른 곳에 와있습니다. 상해에 좋은 분들이 많이 계셔서 마음이 참 행복합니다. 다른 곳에 비해 상해는 날씨만큼이나 사람들의 마음이 포근한가 봅니다.
원래 삶에 자신없는이가 남의일에 말질하고 참견합니다. 학원은 쉬운줄아나? 몇년 동안 몇나라 떠돌아다니면서 느낀점 '돈없으면 우리나라가 살기 좋은 나라', 돈 많으면 가장 살기 좋은 나라" 어설프게 이도저도 아닌 사람들이 살기에는 힘든나라,... 교육열이 가장 높은데 그 교육열때문에 부모님의 허리가 휘게 돈을 벌어대야 하는데 그 효율은 @#@^&* 눈과 입만 열리고 손발은 가느다란 기형적인 인재?를 양산하는 교육체제,.그래서 떠났습니다. (아이들에게 기껏해야 집한채씩 유산으로 남기는 부모가 아닌, 아이에게 열린 가슴과 머리를 주기위해서요) 지금은 모두들 힘들때입니다. 항상 명랑한 글을쓰시다가 이번 글은 조금무겁네요.
저를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았습니다. 아직도 어린아이같은 어리석음이 많고 항상 앞날이 두렵고 켕기더군요. 미래의 삶이란 힘있게 살아야 하면서도 조심해애 겟더군요. 언젠가는 상해를 밟을 날을 기대해봅니다. 감사합니다.
시골버스 님은 물론이고, 댓글 다신 분들의 사고와 통할 수 있는 부분이 많겠다 싶은 생각이 듭니다. 많은 이야기 얻어 듣고, 토론하고 싶다는 생각 많이 들고요... 2년 전 상해에 와서 올해부턴 본격적으로 상해 생활을 하고 있는 1인남인데... 앞으로 상황과 여건 만들어 뵘고 이야기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예전에 커피를 마시면서 밤새도록 삶에 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친구군대가기 전날... 중국오기 전날에도 아내와 중국에서 살아갈 삶에 대해 커피를 마시며 밤새 이야기를 나눈 적도 있구요. 삶에 관한 대화는 정신을 풍요하고 아름답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언제 만나뵈었으면 합니다. 상해에 직장을 구한다면요... ^^
삭제된 댓글 입니다.
저도 님과 같은 느낌으로 이 글을 읽었습니다. 제 느낌과 동일하신...
아~ 그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군요. 저는 제 자신에 대해 생각한 것이고 다른 분들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코가 석자라서 그런가? 넓게 생각하지 못하는 옹졸함도 있네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
잘 읽었습니다.
항상 재미있고 밝은 이야기만 하시는 시골버스님 글 이라서 웃음지으며 들어왔는데,
많이 가라앉은 내용 이었네요.
어쨋든 루비콘강... 이란 제목에서 약간은 짐작은 했었지만...
어떤 '희망새'가 '희망 같은 얘기'를 해서 시골버스님 뚜껑 열리게 했나 보군요.
그것을 그 '희망새'에게 냅다 퍼붙지는 않고 글로서 담담하게-하지만 행간을 보면 전혀 담담하지 않은- 써 내려가시는 모습이,
삶에 단련되고 숙련된 것 같아서 보기 좋습니다.
득도에 이르시길~ ^^;
감사합니다. 싸우는 것도 이젠 지쳐서 그냥 지고 살려니 잘 참아지지 않아서 막말이 나오기도 합니다. ^^ 저는 본시 굉장히 착한 사람인데 그래서인지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도 있더라구요. 그래서 힘든 적도 있습니다. ^^
^^* 그래서 일본 사람들은 혼또니?(진짜? 진짜!)라는 말을 많이 해요. 저희도 인사치레하는 말 많이 하죠. '언제 식사한번 하세요, 언제 밥 한번 먹어요(언제가 될진 몰라요)'하고 2년이 흐르죠~ 상대방에 대해 호기심 참 많죠. 또 자신들과의 기준에 틀리면 때려 맞추려고 하고. '이상하다'는 뜻은 '나와, 내 생각과 다르다'라는 듯.. 저도 시골버스님과 같은 생각이예요. 아이낳고 직장생활할 땐 -애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며 절 이방인 취급. 아이들과 유학중인 제게 -아빠랑 같이 살아야 한다-며 또 억지, 이방인 취급. 참 많이 불쾌해요. 사람마다 삶은 다른 방식이 있는데 왜 '나와 다른 차이'를 인정하려 들지 않을까요.
저는 제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정말 그 일 좋아하고 하고 싶어? 그 일 하면 (열심히) 잘 할 수 있어? 아내는 정말 그 일 하고 싶어했고 잘 할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결혼 7년 생활 중 6년을 떨어져 지냈습니다. 아내 회사가 천진에 있고 전 심천에 사업장이 있어서.. 전문용어로 '격주 부부'^^; 혹시 누군가는 "정말 이유가 그것 뿐일까? 다른 문제는 없나?" 수군거리기도 한 것 같은데... 자신의 사고와 삶의 기준이나 방법을 존중받으려면 자신도 남을 이해하고 존중하려는 노력과 모습을 가져야 할 것임을 새삼 느끼고 일깨우는 시골버스 님의 글과 샤데이 님을 비롯한 다른 분들의 댓글이네요.
2004년 어느날 문득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사고와 언어의 상관관계성에 대해..양자는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데...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자주 쓰는 '틀리다'라는 말의 일반적인 사용처 90% 이상이 '다르다'는 말을 써야 함을. 그 뒤로 의식적으로 '다르다'는 정확한 어휘 구사를 습관화 했습니다. 일단 '다르다'고 하는 것은 상대방을 인정하는 것이 전제되니 나 아닌 타자의 사고와 삶의 방식을 존중하는 가장 기본적인 말이 될테고, 이 말은 그러한 사고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이 되겠지요.. 혹은 최소한 그런 사고를 가지도록 영향력을 가지겠지요. 지금 저와 제 아내는 상해에서 올해부터 살림 합쳐 함께 살고 있습니다. 샤데이 님 홧팅!
저도 샤데이님 홋팅! 씨린하오토님도 홧팅!! 평안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