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구소은님이 올린 글
운명에는 두 종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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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할 수 있는 운명
피할 수 없는 운명, 우리는 이것을 숙명이라 한다.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숙명이다.
그렇다면 태어난 뒤에 가지는 것이 운명이겠다.
피할 수 없는 운명, 즉 숙명은 인간의 능력으로 어쩔 수 없다.
그대의 숙명이 지랄 맞으면 조상을 탓하지 말고 신을 원망하거나 삼신할매를 원망하라.
피할 수 있는 운명이란, 곧 바꿀 수 있다는 의미가 되겠다.
그러므로 운명은 그대의 선택에 달렸다.
그 운명이 지랄 맞으면 당신 자신을 탓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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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그 차이가 뭘까?
나는 운명에 관한 한 사전의 정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사전을 만드는 것도, 정의를 내리는 것도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오류를 범하는 존재이니까.
단순하게 살면 되지 뭐하러 복잡하게 따지냐고?
소설가는 별의별 것도 다 생각하는 사람이라 어쩔 수 없다.
글 쓰면서 이런 생각이 떠오르면 명확하게 점찍을 때까지 잠을 못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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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찍은 점은 결국 이러하다.
아등바등할 까닭이 없다.
삶과 죽음이 따로 있지 않다.
파이프를 생각해보라.
한쪽 끝은 탄생
다른 쪽은 죽음
극과 극의 자리에 있으나 하나의 파이프일 뿐이다.
두 구멍 즉, 삶과 죽음은 숙명이고 두 구멍 사이는 운명이다.
이 구멍에서 저 구멍까지 이어지는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그렇다고 파이프가 다 똑같은 것은 아니다.
파이프는 제각각이다.
재질이 다르고 굵기와 길이도 다르다.
물론 쓰임까지도 다르다.
이 중에 재질과 길이는 숙명 쪽에 해당한다.
흔히 말하는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로 태어나는 것은 그 누구도 선택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여자로 태어나거나 남자로 태어나는 것도 숙명이다.
태어나서 바로 죽거나 백세를 다 누리고 가는 것도 선택 너머에 있다.
굵기와 쓰임, 즉 용도는 운명이다.
내가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 것인지, 무슨 일을 할 것인지, 어떻게 할 것인지.... 등등.
그것은 내 의지와 상관이 있고, 최종 선택자는 바로 자신이다.
그대에게 주어진 것이 강철 파이프라고 해도, 아무리 굵고 길다 해도 그 용도를 잘못 사용하거나 무리하면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비록 당신에게 유리 파이프가 주어졌어도 어디에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깨어지지 않고 오래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금으로 만든 파이프면 뭐하나, 그 속을 흐르는 것이 똥이라면.
비록 싼 플라스틱 파이프라도 누군가의 목마름을 채워주는 맑은 샘물이 그 속을 흐른다면 이 얼마나 아름다운 파이프인가.
값비싸고 질 좋은 재료를 줘도 그림을 망치는 사람이 있고,
담뱃값에도 명화를 그리는 화가가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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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점 정리>
숙명을 가지고 아무리 왈가왈부해봤자 인생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
운명과 친해지는 것이 낫다.
비천한 숙명을 업고 태어난 운명이라도 얼마든지 내 의지와 선택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에 나는 점을 찍었다.
내 마음 하나에 달려 있는 경우가 많다.
(길에서 모르는 사람이 도움의 손을 내밀 때, 그 손을 잡느냐 마느냐, 그것이 운명의 기로가 될 수도 있으니)
나는 지금 내 운명에 순응하고 있는가?
대충 그렇다.
그러면 됐다.
머리 아프다.
이제 그만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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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덧붙임 ~ 가끔 제 글을 읽고 생각이 다르다 하여 저를 가르치려는 분이 계시더군요.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제 글에 태클 걸지 말아 주세요.
위대한 철학자들이 항상 옳은 소리만 한 것도 아니잖아요.
하물며 소설가가 오죽하겠습니까.
생각의 차이만 인정해주면 고맙겠습니다.
넘쳐나는 새해 인사는 생략하겠습니다.
저는 해가 바뀌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오늘과 내일의 날짜 변동으로 밖에 생각 안 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