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메모리즈 인 대창, 36탄
<지동규는 학교를 우째 댕겼을까>
초등학교 3학년(1979년) 초가을 어느 날.
수업이 끝나자 지동규가 잔차(자전거) 타고
자기 집에 놀러가자고 했다.
내가 막 배운 잔차 타기에 한창 재미를 붙이던 시기였다.
동규는 그때 벌써 잔차 타고 등하교를 하고 있었다.
“너그 집이 어덴데?”
“봉하다.”
“봉하가 어데고?”
“본산 지나서 가다보면 있다.”
본산이라는 말에 귀가 번쩍 뜨였다.
7살 때까지 살던 동네, 할배 할매 계신 곳.
그렇게 각자 잔차에 올라타 페달을 밟았다.
동규네 집은 정말 멀었다.
본산을 지나서도 한~~~참을 더 가야 했다.
10살, 페달 밟는 다리에 쥐가 날 때쯤 동규 집이 나왔다.
동규 엄마가 밥을 챙겨주시면서 하신 말씀.
“요새 통 제자(시장)를 못 가서 반찬이 없다.
그래도 많이 묵어라.”
아직 버스가 다니기 한참 전.
동규 어머니는 진영장 가려면 다라이를 이고
두 시간을 걸어야 했을 터.
큰맘 먹어야 시장 한번 볼 수 있었을 거다.
그것보다 더한 고생은 우리 친구 지동규 등하교.
동규 집은 노통 묘역에서 뚝방길 따라 1킬로쯤
봉하마을에서도 약간 외진 곳에 있다.
진영읍 1번지가 시작되는 동네다.
동규는 학교까지 그 먼 길을 도대체 어떻게 오갔을까.
카카오 맵으로 동규 집에서 대창학교까지 거리를 대충 재봤다.
6km, 15리였다.
동규는 등하교로 하루 30리를 오간 거다.
8살 막 입학했을 땐 자전거도 못 탔을 건데.
길이라도 좋나, 포장 안 된 흙길을 걷고 또 걷고.
비 오고 바람 불고 추운 날엔
학교 오가다 눈물콧물 다 뺐을 거다.
첨부한 사진 속 저기가 지동규가 살던 집이다.
중2 때 이동구, 김진일(대흥출신)과 낚시하러 가서
모밥(모내기 할 때 내는 밥) 얻어먹고 놀다 온 적도 있다.
동규는 고등학교 시절 혹은 졸업 직후쯤
거제도(이것도 들은 얘기)로 가족 모두 이사 갔고
지동규 집은 지금 절이 돼 있다.
지동규는 우째 살고 있을까.
딴 건 몰라도 등하교로 단련돼 다리 힘 하나는 아직도 좋을 거다.
1981년 10월 5학년 가을소풍 양지 뒷산.
왼쪽부터 김세성, 고 김병정, 나, 지동규, 김병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