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보내
(요한복음 14:15-27)
#1
예수님과의 마지막 밤. 제자들의 마음에는 근심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아라. 하나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하시면서
근심하지 말아야 할 이유들을 말씀해 주십니다.
도마가 길을 모르겠다 하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하십니다“.
빌립이 아버지를 보여 달라 하자 ”나를 본 사람은 아버지를 보았다‘ 하십니다.
“예수님 안에 아버지가 계심을 믿으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이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할 것”이라고 믿음을 촉구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면 무엇이든지 다 이루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럼에도 제자들의 마음 속에는 여전히 의혹과 불안, 근심이 있어 보입니다.
그래도 예수님이 계셔야지... 예수님이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잖아...
우리 같은 인간이 어떻게 예수님이 하신 일을 한단 말인가?...
제자들의 의혹에 예수님은 성령님이 답이라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마음에 근심하지 않도록 성령님을 보내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성령님이 어떤 분인지 가르쳐 주십니다.
#2
성령님은 어떤 분이신가? 16절입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면 아버지께서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보내
영원히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실 것이다.
성령님은 예수님의 요청으로 오시는 분입니다. 성령님을 보내시는 분은 아버지 입니다.
오시는 분은 성령님입니다. 한 구절 안에 아버지, 아들 성령 세 위격(三位)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성령님을 다른 보혜사라고 말씀합니다. 보혜사란 말이 조금 생소합니다.
보혜사(保惠師)란 한자어를 풀면 ‘보호하시고 은혜 주시고 가르치시는 분’입니다.
헬라어 ‘파라클레톤’은 파라(곁에) + 클레톤(부름받다)의 합성어입니다.
‘부름 받아 곁에 계신 분’입니다.
한글 성경은 ‘변호자’ ‘조력자’ ‘위로자’ ‘상담자’라고 번역합니다.
사탄이 우리를 참소하는 존재라면 성령님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변호해 주시는 분입니다.
요한1서 2:1절은 ‘만일 누가 죄를 짓더라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를 변호해 주시는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다’고 증거합니다.
‘변호해 주시는’ 이라고 번역된 헬라어가 ‘파라클레톤’입니다.
예수님이 보혜사입니다. 성령님은 다른 보혜사입니다.
성령님은 무슨 氣나 어떤 에네지가 아니라 인격적 존재입니다.
다른 보혜사란 말은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하나님이 보내신 그리스도라면,
성령님은 영으로 우리들 가운데 보내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입니다.
우리를 위로하시는 분입니다. 우리를 도우시는 분입니다.
성령님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입니다.
‘영원히’란 말이 위로와 격려가 됩니다. 이 땅에 육신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대신 오실 성령님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셔서 영원히
우리 가운데 계실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다’
(요한복음 16:7) 하십니다.
우리의 환경이나 상황이 어렵다고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은 성령님이 우리와 영원히 함께 계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3
성령님은 어떤 분이신가? 17절입니다.
그분은 진리의 성령이시다. 세상은 그분을 보지도 못하기 때문에 그분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러나 너희는 그분을 안다. 이것은 그분이 너희와 함께 계시고
또 너희 안에 계실 분이기 때문이다.
성령님은 진리의 영입니다. 진리의 영이시기에 ‘진리의 성령님이 오시면
그분은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요한복음 16:13)
예수님은 자신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하셨습니다.
성령님이 우리를 진리이신 예수님께로 인도하십니다. 성령님은 자기 생각대로 말씀하시지
않고 들은 것만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진리를 따라 살도록 도우십니다.
세상은 성령님을 보지 못합니다. 보지 못하니 성령님을 알 수도 없습니다.
받아들일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님을 통해 그 비밀을 알려 주셨습니다(고전 2:10).
우리는 세상의 영을 받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신 성령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선물을 우리가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고전2:12).
거듭나지 못한 자연인은 하나님의 성령이 주시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런 것은 영적으로만 이해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어리석게 보일 뿐만 아니라
그들은 그것을 깨달을 수도 없습니다(고전 2:14). 성령님의 도움 없이는 아무도 예수님을 주님
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고전12:3) 많은 철학적, 인문학적, 과학적 지식을 가지고도 예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을 부인하는 이유입니다. 영적 진리는 영적으로만 이해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4
성령님은 어떤 분이신가?
성령님은 우리와 함께 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십니다.
우리 안에 계시기에 우리는 성령님이 어떤 분인지를 경험적으로 압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너희는 그분을 안다’고 말씀하십니다.
안다는 표현 ‘기노스케테’는 지식이 아니라 경험, 관계를 통해 아는 것입니다.
불신자였던 저는 처음 수련회에 참가 했을 때 ‘우리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란 말을 들었습니다.
우리 몸이 성전이기 때문에 알콜 중독이나 니코친 중독은 성전인 우리 몸을 더럽히는 것이라는
설교를 들었습니다. 그 날 집회가 끝나고 담배와 라이터를 버렸습니다. 니코틴 중독이었던 제가
신기하게도 그 시간 이후 담배 피우고 싶은 욕망조차 없어졌습니다. 그 경험으로 저는
‘여러분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성령님이 여러분 안에 계신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고린도 전서 3:16)란 성경 구절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성령님이 실재한다는 믿음이 생겼고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으시고 우리 안에 계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는 내 안에, 나는 너희 안에 있다’ 하십니다. (18-20절).
성령님이 그 사실을 확증시켜 주십니다.
#5
성령님은 예수님/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주시고 생각나게 해 주십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요한복음 14:26)
요한복음은 예수님이 떠나신지 60-70년 후에, 이미 80-90세의 노인이 된 사도 요한에 의해
기록되었습니다. 우리가 요한복음을 읽다 보면 마치 예수님 발 앞에 앉아서 예수님이
말씀하신대로 받아 쓴 것 같이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어떻게 고령의 노인이 된 사도 요한이 그 많은 시간이 지나서도 이처럼 생생하게 예수님의
말씀을 기록할 수 있을까? 성령님이 ‘예수님이 말한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성령님은 우리의 일상에서도 우리에게 필요한 진리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심으로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마음이 흐트러 질 때 청년이 어떻게 깨끗한 마음으로 살 수 있겠습니까?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않으려고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시119. 9,11) 말씀이 생각나게 합니다.
마음에 염려가 생길 때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여러분이 필요로 하는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말씀드리십시오‘(빌립보서 4:6)란 말씀이 생각납니다.
염려를 기도로 바꾸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평안을 누리게 하십니다.
#6
성령님은 우리의 기도를 도우십니다. 오늘 본문의 맥락은 기도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을 떠나갈 것이란 말에 제자들의 마음에는 근심이 생깁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근심하지 말라 하시고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더 큰 일도 할 것이라’고 격려해 주십니다.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내가 이루어 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방법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어서 성령님을 보내주신다 약속하십니다.
성령님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도하도록 우리를 도우십니다.
로마서 8:26-27.
성령님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주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 될지 모를 때 성령님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십니다. 사람의 마음을 살피시는 하나님은
성령님의 생각을 아십니다. 이것은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시기 때문입니다.
#7
성령님이 예수님을 사랑하고 증거하게 합니다.
성령님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지켜 살게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내 계명을 간직하여 지키는 사람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21절)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킬 것이다’(23절)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키지 않는다’(24절)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며
나도 그를 사랑하여 나를 그에게 나타낼 것이다‘(21절)
사도행전의 교회를 보십시오. ‘주여 저들이 위협하고 있는 것을 보시고 주의 종들이 담대하게
주의 말씀을 전할 수 있게 하소서‘기도하자 모든 사람이 성령충만을 받습니다.
제사장들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놀라운 일들과 기적들이 일어납니다.
#8
성령님은 우리에게 예수님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합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평안과 다른 평안입니다.(27절)
세상이 주는 평안은 환경에 따라 변합니다. 육적인 평안입니다. 외면적 평안입니다.
불완전한 평안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평안은 진리를 아는 자유함, 죄 사함,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심, 전능하신 하나님의 권능, 영원한 하나님의 생명에서 오는 평안입니다.
영적이고 내면적 평안입니다. 온전한 평안입니다.
그러기에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 하지 말아라 합니다.
마음의 평안을 잃어 버리는 이유 중의 하나는 육체의 욕망을 따라 살기 때문입니다.
육체의 욕망은 음행과 더러움과 방탕과 우상숭배와 마술과 원수 맺는 것과 다툼과 시기와
화내는 것과 당파심과 분열과 이단과 질투와 술주정과 흥청대고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살면 더 이상 육체의 욕망을 채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성령님이 지배하는 생활에는 사랑과 기쁨과 평안과 인내와 진실과 선과 신실함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가 맺힙니다(갈라디아서 5:16, 19-22)
#9
마음에 근심과 두려움이 있습니까?
아버지가 보내신 성령님이 우리 안에,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으십시오.
성령님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시는 보혜사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고 가르쳐 주십니다.
성경 말씀이 문자를 넘어 살아 역사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되게 하십니다.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게 하십니다. 우리의 기도를 도우십니다
말씀을 붙잡고 지키게 합니다. 예수님을 알고 사랑하게 합니다.
사랑의 열매를 맺습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누리게 합니다.
성령 충만을 구하십시오. 마음에 근심하지 마십시오.
성령님이 가르쳐 주는 말씀을 사모하고 부지런히 배우십시오
성령님이 생각나게 하는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고 지키십시오
아버지의 사랑을 , 예수님의 사랑을 삶으로 경험으로 알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