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2017년 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에서 주최한 제3회 음식 이야기 공모전에서 가작으로 당첨된 필자의 작품입니다.
올해 스무 살인 아들은 자타가 공인하는 만두마니아다. 나를 비롯한 다섯의 우리 형제자매들은 만두를 열광적으로 좋아하진 않는다. 만두가 있으면 먹고 없어도 일부러 찾아서 먹지는 않는다. 아들은 아마도 강원도 영월이 고향인 아내를 닮은 모양이다.
아내는 어린 시절을 강원도 산골에서 보낸 까닭에 만두를 많이 먹었다고 한다. 오빠나 아버지가 산에서 야생의 꿩을 잡아 오면 꿩고기와 갖가지 채소로 소를 만들어 넣고 만두를 빚어서 즐겨 먹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아내는 만두를 무척 좋아한다. 명절이든 평상시든 틈틈이 만두를 빚어서 찌거나 구워 먹는다. 만두 빚기가 번거로울 때에는 만두가게나 할인매장에서 구입해서 먹곤 한다. 외출 때에도 만두로 끼니를 대신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나도 아내와 결혼해 같은 집에 살면서 아내의 식성을 닮아 만두를 제법 좋아하게 됐다. 한 끼 식사대용이나 간식으로 심심찮게 만두를 먹는다. 매스컴 등에서 맛난 만두가게를 소개하면 휴일을 이용해 찾아가서 먹곤 한다. 잘 만든 만두는 식도락의 즐거움을 누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두루 알다시피 만두는 신의 노여움을 가라앉게 했을 정도로 특별한 맛을 자랑하는 아주 오래된 음식이다. 밀가루 반죽을 동그랗게 오리고 고기와 채소를 섞은 소를 넣어 빚은 만두는 잔칫상 또는 제사상에 올리거나 계절에 구애되지 않고 즐겨 먹었던 음식이다.
만두는 원래 중국 음식으로 제갈량에 의해 생겼다고 한다. 제갈량이 남만 정벌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노수라는 강가에서 심한 파도와 바람으로 인해 발이 묶이고 말았다. 사람들은 노수에는 황신이라는 신이 사는데 그 신이 노한 것이니 마흔아홉 사람의 목을 베어 강에 던져야 무사히 강을 건널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억울한 생명을 죽일 수 없었던 제갈량은 밀가루로 사람의 머리 모양을 만들고 그 안을 소와 양의 고기로 채워 황신에게 제물로 바쳤다. 얼마 후 노수는 잠잠해졌는데 남만 사람들은 제갈량이 바친 음식 때문에 잠잠해진 것으로 생각하여 ‘기만하기 위한 머리’라는 뜻의 ‘만두(饅頭)’란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사람 머리 모양의 만두가 북방으로 전해져 오늘날 중국의 대표 음식 중 하나가 되었고, 우리나라와 일본으로 전해져 세 나라 국민 모두가 즐기는 별미 음식이 되었다.
한식에서 만두의 기원을 이야기할 때는 고려시대 '쌍화점'이라는 속요가 자주 등장한다. 당시 위구르인(중앙아시아의 투르크계 민족)이 고려에 들어와 만두를 파는 '상화가게'를 열었다. 고려 사람들이 만두를 즐겨 먹으며 노래를 불렀다. 그 노래에 담긴 뜻이 아주 노골적이다. 그 가사를 풀이하면 '어떤 여인이 만두가게에 만두를 사러 갔는데, 만두가게 주인이 손을 잡더라. 이 소문이 밖에 나돌면 가게의 꼬마 심부름꾼 네가 퍼뜨린 것으로 알겠다. 소문이 나면 다른 여인들도 그 자리에 가겠다고 할 게 아니냐. 거기 잔 곳은 참으로 아늑하고 무성한 곳이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처럼 만두는 역사가 깊은 음식이다. 오늘날에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만두를 즐기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전국의 만두 맛이 뛰어난 음식점은 손님으로 북새통을 이룬다. 그래서 만두 체인점도 많고 개인의 솜씨를 발휘해 맛있는 만두의 명성을 떨치는 사람도 많다.
아들은 어려서부터 만두를 좋아했다. 자다가도 만두라고 소리치면 벌떡 일어나서 먹었다. 피자나 치킨, 라면, 햄버거도 먹지만 뭐니 뭐니 해도 만두를 최고로 즐겨 먹는다. 그래서 우리 집 냉장고엔 언제나 만두가 준비돼 있다.
아들은 지금 대학생인데 고등학교 시절엔 질풍노도의 청소년답게 한 때 방황한 적이 있다.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며 공부를 게을리 하고 불량스럽게 행동한 적이 있다. 부모나 선생님이 타일러도 막무가내일 정도로 반항아처럼 굴었다.
그래서 이대로 두면 아무래도 나쁜 길로 빠져 장래를 망칠까 싶어서 아버지로서 아들을 불러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좀 나누게 됐다. 휴일 저녁에 직장 부근의 맛난 만두집에서 사온 만두를 집에서 따뜻하게 데워 먹으며 아들의 불만이나 애로사항을 듣게 됐다.
맛난 만두를 파는 가게는 부산 중구 부평동 흑교로26에 있는 부평시장의 ‘미성(味成)왕만두’가게다. 만두가게 사장인 오동환(44세)씨는 “12년 전에 자동차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그만두고 음식 자영업을 해보고 싶어서 가게를 차렸다. 손재주가 괜찮아서인지 만두는 맛이 좋다는 소문을 타고 잘 팔린다.”고 흐뭇해했다. 또한 “평소에 음식 만드는 일이 즐거워 서민음식인 만두를 시작했는데 손님들의 호응이 좋아 나름대로 보람을 느낀다. 앞으로도 양질의 만두를 만들며 손님들에게 식도락의 즐거움을 선사하고 싶다.”고 소감을 밝히는 점이 인상 깊었다.
미성왕만두 가게는 부평시장 주변에서도 왕만두와 왕찐빵이 맛이 좋기로 이름난 곳이다. 체인점의 하나지만 사장이자 요리사인 오씨의 솜씨가 남달라서 부평동의 미성왕만두가 다른 곳에 비해 가장 맛이 뛰어난 편이다. 만두소도 꽉 차 있어서 푸짐해 먹는 즐거움이 아주 크다. 찐빵과 만두를 같이 만들어 파는데 찐빵보다는 만두를 찾는 사람이 훨씬 많다. 만두는 고기만두, 김치만두 등이 있다.
가게 안에 앉아서 먹을 수 있는 자리는 없다. 가게 앞에서 서서 햄버거처럼 한 입씩 베어 먹거나 포장해 집으로 가서 먹을 수 있다. 만두든 찐빵이든 포장을 원하면 포장지에 하나씩 정성스레 싸서 비닐봉지에 넣어 준다. 특히 만두는 양념간장과 단무지를 같이 봉지에 넣어 줘서 먹기가 아주 편하다.
왕만두 하나면 심심한 입을 달랠 수 있고 두 개 먹으면 한 끼 식사로도 전혀 손색이 없다. 나들이 식사용으로 제격이다. 큼지막한 밀가루 반죽에 고기와 갖가지 채소로 만든 소를 넣고 빚어서 익힌 왕만두는 크기가 어른 주먹 정도다. 보통의 만두에 비해 상당히 큰 편이다. 그래서 왕만두고 왕찐빵으로 불린다.
만두소가 맛과 영양 면에서 좋을뿐더러 만두피도 반죽의 숙성이 잘돼 먹는 맛이 부드럽다. 질기지 않고 푹신하면서 부드럽게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한 번 먹으면 다시 찾고 싶은 그런 오묘한 맛이다. 그래서 나는 틈틈이 부평동의 미성왕만두를 혼자서든 동료와 같이하든 심심찮게 점심이나 간식으로 먹곤 한다.
아들은 식탁에서 큼지막한 왕만두를 대하고는 반가운지 눈이 휘둥그레졌다. 먹어 보더니만 맛이 매우 좋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나는 아들과 왕만두 다섯 개를 먹으며 청소년으로서의 꿈과 이상, 미래의 계획 등을 기탄없이 나누었다. 아들도 평소에 아버지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유감없이 풀어놓았다.
아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만두를 먹고는 앞으로 학생으로서 공부에 최선을 다해 원하는 대학에 가겠다고 다짐했다. 좋아하는 만두를 사줘서 고맙다며 이제부터는 아버지 어머니 속을 썩이지 않고 품행이 단정하고 모범적인 학생으로 생활하겠다고 약속했다. 아버지로서 아들에게 그런 약속을 받으니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다. 십 년 묵은 체중이 싹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둘이서 왕만두를 다섯 개 먹고 기회가 되면 다음에 다시 사 와서 먹기로 했다. 왕만두가 만두마니아인 아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게 틀림없었다. 맛난 음식은 서로에게 속마음을 털어놓게 하는 촉진제가 되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어려운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때에는 음식점이나 술집에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하나의 풍습으로 자리 잡았는지도 모른다.
아들은 아버지와 약속한 뒤로 공부에 매진해 성적이 향상됐다. 학업에 더욱 분발하더니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기꺼이 합격해 기숙사 생활을 하며 잘 다니고 있다. 아직 군대에 다녀오진 않았지만 학업에 열정을 기울인다. 학업에 매진하는 아들을 보면 아버지로서 마음이 든든하다. 우리 가문의 미래가 밝아 보인다.
집에서 부평시장으로 가기엔 거리가 좀 멀기에 직장 일을 마치고 퇴근길에 사 오거나 외출 때에 오가며 틈틈이 먹곤 한다. 가족 넷이 왕만두를 간식으로 먹을 때엔 나와 아내, 딸은 하나씩 먹고 아들은 두 개를 먹는다.
앞으로도 우리 가족은 틈틈이 시간이 나면 부평시장의 명물 미성왕만두를 즐길 것이다. 사람이 사는 즐거움 가운데 가장 큰 즐거움은 맛난 음식을 먹는 것이다. 그래서 “금강산도 식후경”이고 “수염이 석 자라도 먹어야 양반이다”라는 속담이 생기지 않았던가?
인간의 기본 욕망도 식욕이 먼저고 그 다음이 성욕, 수면욕이듯 먹는 일은 생명을 유지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식도락의 묘미를 느끼게 한다. 인간관계에서 생기는 갖가지 갈등이나 마찰 따위를 음식을 먹으며 푸는 일이 자주 있다. 맛난 음식을 먹으면 심성이 유순해지고 마음속의 번민은 이슬처럼 사라져 일이 원하는 쪽으로 순조롭게 처리된다.
미성왕만두로 아들의 방황이 해소됐듯 나는 앞으로도 인간관계에서 생기는 불화나 갈등을 왕만두를 같이 먹으며 풀어갈 생각이다. 또한 틈틈이 가족과 왕만두를 먹으며 식도락의 즐거움을 잔뜩 누릴 생각이다. 값이 한 개에 1천5백 원이므로 그다지 부담스럽지 않기에 별다른 문제는 없다.
그리고 주전부리 생각이 나면 왕만두를 먹으며 세상살이 희로애락을 지인들과 나눌 것이다. 그런 가운데 일상의 소소한 행복이 찾아오지 않으랴? 대중적이고 서민적인 음식 왕만두를 먹으며 안빈낙도의 행복을 누릴 생각에 오늘도 주어진 일에 힘차게 박차를 가한다. 다음엔 왕만두를 포장해서 형님들에게도 선물해야겠다. 고급 음식은 아니지만 아우가 주는 왕만두를 받고 기뻐할 형님들 생각에 천진난만한 아이 마냥 가슴이 설렌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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