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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1. 사도행전 5부
오늘은 두 번째 전도여행 출발을 합니다.
두 번째 전도여행 출발 역시 안디옥에서 출발을 하는데, 그 때 중요한 점은 마가요한을 데리고 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문제가 이슈가 되는데,
첫 번째 전도여행과 두 번째 전도여행 사이에 큰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1차 전도여행 마치고 돌아와서 안디옥 교회에 와보니까, 바울과 바나바가 잠깐 1년이나 1년 반 자리를 비운 그 사이에 예루살렘 교회에서 또 돼먹지 않은 사람들이 와가지고 안디옥 교회에 큰 혼란을 일으켰어요.
그 혼란이 뭐냐 하면 할례문제입니다. 할례.
이방인 중에서 주께 돌아온 사람을 그냥 세례주면 안 되고 일단 할례를 받게 해가지고 유대인이 된 다음에 거기다가 예수 믿고 세례 받게 해야 된다.
이렇게 주장하는 것이 할례당의 주장 이예요.
할례 당들은 맨날 천 날 할례만 주장하니까 이름이 그냥 할례 당이야. 할례당.
그래서 그것을 가지고 아무리 다투어도 해결이 안 돼요.
아직은 안디옥 교회에 무슨 권위가 없기 때문에, ‘좋다 그러면 그 문제를 가지고 예루살렘에 가서 사도들과 장로들 앞에 가서 확정을 짓자.’
그래서 그 사건이 15장에 있는데,
먼저 가서 바울이 쭉 선교 보고를 하고 베드로도 선교 보고를 하고 했더니, 예수님의 동생 되는 야고보가 쭉 다 들어본 다음에,
‘내 생각에는 이방인 중에서 주께 돌아온 자를 괴롭게 하지 말고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우상의 제물 그런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 그런 것 먹지 못하게 하고 피를 먹지 못하게 하고 그런 정도면 족하겠다.’
왜냐하면 그 때 그 사람들은 개고기 같은 것은 입에 댈 생각도 안 했습니다.
개고기는 상상도 못할 일이니까 아예 관심도 안 두고, 단 고기를 대개 양이나 쇠고기라 할지라도 우상에게 바쳐진 것 그런 것은 먹지 못하게 하라.
그리고 피, 목매어 죽인 것. 사실은 같은 겁니다.
동물을 잡을 때 반드시 목을 잘라서 대동맥을 잘라서 피를 콸콸 쏟아지게 해서 피를 다 빼고 먹어야 되는데, 올가미를 가지고 목매어 죽었다든지 하면 그 죽은 채로 피가 고기 안에 굳어버렸다는 거야.
그러면 고기를 피채 먹게 되는 거죠.
그래서 피와 목매어 죽인 것 하는 것은 다 피를 못 먹게 하는 겁니다.
어떤 피든지 피를 먹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쳐지리라.
그런데 세계에서 피를 제일 많이 먹는 나라가 한국사람 이예요.
순대 먹지 선지 국 먹지 또 올가미로 잡아서 다 먹지.
일절 순대 안 됩니다.
그런 것 먹어서 지옥 가는 게 아니라 머리가 나빠집니다.
성질이 못되어 지고 피부가 더러워지고.
그 피 속에, 피도 동맥피는 깨끗한 편이지만, 정맥피는 그 동물들이 이것저것 먹은 노폐물이 정맥피에 있다고.
거기다가 생혈은 더 안 돼요. 노루 피나 사슴피 이런 것.
또 보약 된다고 해서 먹는데 그 안에는 톡소포자충 같은 끔찍한 미생물이 있어요. 그 안에.
살아있는 피에는.
일절 그런 피는 먹으면 안 됩니다.
용케 그것을 먹고 별일 없이 넘어가는 경우도 있지만, 자꾸 먹으면 언젠가는 걸립니다.
그러니까 피를 먹지 못하게 하는 것 그 정도면 족하겠다.
해서 이방인 중에서 주께 돌아온 사람들은 할례 없이 세례 줄 수 있는 것으로 결정이 났어요.
15장 28절 보세요.
거기 줄을 그으세요.
[사도행전 15장]
28 성령과 우리는.
그래서 그 때부터 교회 다시 말하면 공의회라고 하는 공회 공의회, 카톨릭 처치라고 할 때 공의회라는 말은 로만 카톨릭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로만 카톨릭은 그로부터 530년 이후에 생긴 것이고, 560년 후에 되는 것이고, 지금 이때 말하는 공의회라고 할 때, 이 공의회는 공적으로 인정하는 공회.
이 공회가 결정할 때는 사람들끼리 모여 있는 것 같지만 그 사람들과 함께 성령이 함께 있기 때문에 그 때 교회가 결정하는 것은 성령과 우리는 이렇게 결정했다.
‘성령의 지도를 따라서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이렇게 결정했다’ 하면 권위가 있었어요.
지금도 우리가 교회 회의할 때는 사람들끼리 숫자로 밀어붙여서 확정되는 게 아니라, 우리 가운데 성령이 함께 하시는 줄 믿고 내 개인적인 사적 견해를 자꾸 피력해가지고 누구를 선동해서 밀어붙이는 게 교회 회의가 아니고,
마음을 다 비우고 사심 욕심 다 내려놓고, ‘제가 순수가 마음으로 사적 욕심 사심 없이 내 맑은 영이 성령의 감동된 줄 믿고 내가 믿기로는 이렇게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이 자리에 함께 하신 성령님의 뜻인 줄 믿습니다.’
이런 자세로 교회 회의에 임하는 겁니다. 원래가.
그런데 이런 교회 회의하는 것 전혀 우리가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그냥 민주주의 형식으로 한다.
이봐요. 그런 것은 국회가 하는 거예요. 국회가.
교회가 아니고 국회에 가서 민주주의하고, 교회는 민주주의가 아니고 신주주의야. 신주주의.
성령과 우리가 어떻게 결정하는가.
항상 성령의 뜻이 먼저이고 우리가 그 한 성령에 함께 감동 되어서 이렇게 결정했다. 이렇게 하는 거예요.
만약에 우리가 그렇게 했다면 우리 한국교회가 이렇게 콩가루 집안처럼 교단이 백 몇 십 개로 안 갈라지는 거예요.
전혀 교회가 회의할 줄 몰라가지고.
성령과 우리가 어떻게 결정한다는 그 원칙을 그 원리를 이해하지 못해서, 전부 사람이 막 주장해가지고 편을 갈라서 네편 내편 티격태격 왕배덕배 싸워가지고.
그래서 이 짧은 기간에 이렇게 많은 분열을 가져온 거야.
바로 ‘성령과 우리가’ 하는 이 말을 이해 못해 가지고 이렇게 교단이 쪼가리 난 거야.
그래서
[사도행전 15장]
28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가한 줄 알았노니
29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 할지니라 이에 스스로 삼가면 잘되리라 평안함을 원하노라 하였더라
하고 결정된 사안을 안디옥 교회에 전달하게 됩니다.
15장 36절에,
36 수일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니
우리가 씨를 뿌리는 과정이 있고, 그 다음에 물을 주는 과정이 있고, 돌아보면서 김을 메는 과정이 있는 거야.
씨를 뿌리는 과정으로 끝난 게 아닙니다.
씨 뿌려놓고 그 뒤에 물을 줘야 되고, 또 거름을 해야 되고 북을 돋우어야 되고 그 다음에 잡초가 나거나 김이 나면 또 메주는.
이단 사이비가 개입하면 척결하는 그런 일도 해야 돼요.
교회라는 것은 그저 씨만 뿌려놓으면 다 되는 게 아니고 항상 가꾸는 게 더 중요해요. 가꾸는 게.
그래서 1차 전도여행 때에 씨를 뿌려 놓은 곳에 다시 방문하자고 가는데,
37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38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한가지로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39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여러분 바울과 바나바라고 해가지고 전혀 다투지 않고 항상 사이좋게 사랑으로 충만해서 다녔더라. 이렇게 되어있지 않습니다.
심이 다투어서 피차 서로 갈라섰어요.
그래서 우리가 교회에서 가끔 다투는 것 안 해야 되는데, 안해야 되지만 또 다툼이 일어납니다.
우리 한국교회는 거의 다 어떻게 부흥되었느냐? 다투어가지고 부흥된 거야.
싸워가지고 부흥되고 다투어서 부흥되고.
찬송하면서 부흥된 교회는 많지 않고, 싸워서 갈라져.
놀랍게도 갈라지면 한국교회는 둘 더 커진다니까.
이것은 창세 이후로 그 유례가 없는 거야.
외국에서는 교회가 싸우면 이방인들이 와서 교회를 때려 부셔 버리는데, 놀랍게도 한국교회는 싸우면 다 부흥된다는 거야.
싸움하면 잘 해요. 한국 기독교인은 기도하고 싸우고 능력 받아 싸우고 금식하고 싸우고.
예배드리고 싸우니까 얼마나 싸움 잘 하겠어요?
그래서 갈라지게 되면 놀랍게도 남아 있는 교회보다 갈라져나간 교회가 더 열심이야.
제가 아는 어느 한 도시에는 교회마다 싸우는 게 유행이야.
그러더니 교회가 세배쯤 늘어났어. 교회가 숫자적으로 불어나고,
질은 모르겠는데, 양적으로 많이 불어났어요.
하도 교회가 개척을 안 하니까 결국은 싸움을 해서 갈라지더라고.
저는 제발 싸우기 전에 찬송하면서 갈라서 분립 하고 분립하고 개척하고.
지금은 한 개인이 보따리 끌러서 개척할 수 없는 시대예요.
홀 하나 얻는 것도 힘들고 처소 생활비 관리비 이것이 개인이 감당할 수가 없어요. 지금은.
큰 교회들이 정책적으로 지역교회에 규모 있게 개척해 나가지 않으면 개척하기 어렵습니다.
제가 전에는 교회가 가끔 다투는 것 너무 내가 부정적으로만 봤는데, 세월이 자꾸 흐르면서 보니까, 꼭 그것을 부정적으로 볼게 아닌 거야.
순리적으로 노래하면서 분립을 안 하니까 싸우면서 갈라지는 거죠.
그래서 저는 싸우되 때리지만 말고. 욕하지 말고.
싸우면 열심히 싸우라 부채질 합니다.
갈라질 때까지 싸우라. 교회가 두개 될 때까지 싸우라. 한개 더 되면 더 좋고.
그래서 어떤 교회는 계속 싸우는 게 재미 붙어서 계속 갈라내는 거야.
싸울 때에 감정을 앞세우지 말고, 정말 진리를 가지고 토론하고 변론하는 것 가능합니다. 안 해야 되지만, 어떻든 이견이 생겼을 때는 바울과 바나바도 다퉜다는 것 아닙니까? 그렇죠?
다퉜기 둘 다 망한 게 아니라 선교 팀이 두 팀이 된 거야. 그러면 잘 된 거지.
여러분 우리가 잘하고 잘해서만 잘 된게 아니라, 때로는 우리는 별로 잘 하지 못했는데,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분이 계시니까.
그래도 그런 부정적인 잘못된 일을 많이 해왔지만, 한국교회가 이만큼 성장한 겁니다.
39절에,
39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40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41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녀가며 교회들을 굳게 하니라
교회를 굳게 하니라.
믿음에 굳세게, 세파에 흔들려서 요동하지 않게 굳게 하는 것도 해야 돼요.
자 지도를 보겠습니다.
두 번째 전도여행 코스가 두 팀이 되어서 바나바는 생질 마가요한을 데리고 이쪽 구브로로 갔고,
바울은 이쪽으로 갔는데,
자기 고향 길리기아 다소 이쪽으로 해서, 여기 더베 루스드라 이고니온 비시디아 안디옥.
지난번에 1차 전도여행 때 걸어간 그 지역을 방문하는데,
우리가 2차 전도여행 때 눈여겨 볼 것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바울이 2차 전도여행 때에 평생 함께할 만한 위대한 인물들을 만났다는 거야.
여러분 굉장히 아름다운 일 거룩한 일 가치 있는 일들이 누군가를 만나서 이루어지는 거야.
그러니까 사람 만나기를 싫어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회피하거나 기피하거나 이런 사람들은 절대로 위대한 일 하지 못해요.
이 방송을 듣는 여러분 중에서 누구를 만나기를 다 싫어하고 대인공포증이 있다든지 대인기피증이 있다든지 이런 사람은 위대한 일 하지 못합니다.
배우지도 못하고 성장도 안 돼.
여기 제일 처음 만난 사람이 디모데죠. 디모데.
루스드라에서 디모데를 만났어요.
이 만남은 그야말로 일생일대의 만남이고 역사적인 만남 이예요.
이들은 이 때 만나서 사도바울이 순교할 때까지 영원히 헤어지지 않는 그런 만남이 되었어요.
지도를 보세요. 그 때 바울이 처음에 어디를 가고 싶었느냐 하면, 여기 에베소에 가고 싶었어요. 에베소.
에베소가 아시아의 중심 도시인데, 이 에베소를 가고 싶어 한다는 말은, 성경은 아시아에 가고 싶어 했다 하는 것은, 한국에 오고 싶었다는 말이 아니고, 여기 에베소를 아시아라고 합니다.
왜 여기 에베소를 아시아라고 하느냐?
아테네를 중심으로 볼 때, 아테에서 볼 때 정동방에 있는 땅에 ‘아스이아’, ‘아스’라는 말이 동쪽이고 ‘이아’가 땅이야.
아스이아. 아시아라는 말이 동방 땅이라는 말입니다.
아시아라는 말이 동방 땅에 산다. 우리가 사는 곳이 아시아 맞죠? 우리가 동방 땅에 산다 그런 말이고,
서방을 ‘에렙’이라고 해요.
에베소에서 볼 때 아테네는 에렙이고, 에렙이었던 아테네에서 볼 때 이쪽은 아시아 혹은 아나톨리아는 이런 말이 다 동방이라는 뜻 이예요.
혹 오리엔트라는 말이고.
동쪽을 ‘오리엔트’라고 할 때, 서쪽은 ‘옥시던트’라고 하고,
이쪽을 아시아라고 할 때, 이쪽은 에렙 이예요.
그러니까 동방과 서방을 가를 때, 에게 해를 중심으로 해서 동쪽이라는 말이 아스이아. 아시아예요.
그 대표적인 도시가 에베소였고, 그래서 이 때 2차 전도여행 때에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고 싶어서 갈려고 했는데,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않았다는 거죠.
그러니까 ‘아 이쪽으로 못 가게 하시는 구나.’
그러면 이쪽 비두니아로 가 볼까 하고 이쪽으로 염두에 두고 추진했는데, 이쪽도 안 되는 거야.
그러니까 좌로 아시아도 안 되고 우로 비두니아도 안 되니까, 곧장 갔어. 곧장.
좌로도 못가고 우로도 못가고 곧장 가다보니까 계속 가고 끝까지 가고 했더니 바다가 나타난 거야.
더 이상 못 가잖아요.
여기가 드로아예요. 드로아.
이 드로아에 와서 바울이 잠을 자는데, 잠을 자니까 꿈을 꾸고 꿈을 보니까 환상을 보고, 그 환상에 건너편 마게도니아 사람이 ‘이리로 와서 우리를 도우라.’ 그런 환상을 봤어요.
그래서 바울이 그 때는 ‘으흠, 왜 성령께서 아시아에서 복음 전하지 못하게 하고 비두니아에도 못 가게 했는지’ 여기 와서 알게 된 거죠. 드로아에서.
그래서 이쪽도, 다시 말해 터어키 땅도 아직은 복음을 다 전하지 못했지만 복음을 가지고 유럽으로 건너간 거야.
그래서 두 번째 전도여행 때에 중요한 것은, 바울이 일생동안 함께할 만한 위대한 인물들과 만남이 있었고, 두 번째 복음에 유럽으로 건너갔다.
이것을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세 번째는 바울이 편지를 쓰기 시작한 거야. 편지를.
그래서 나중에 보면 아시겠습니다만, 데살로니가전서 데살로니가후서 이런 것이 2차 전도여행 때에 자기가 손발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편지를 써서 사역하기 시작했는데, 문서전도가 시작되었다는 거야.
이런 것은 반드시 시험에 나옵니다.
자 2차 전도여행 때 기억해야 할 것이 뭐라고?
첫째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그렇죠?
둘째는 유럽으로 건너가게 되었다.
세 번째는 편지를 쓰게 되었다.
그 정도는 우리가 답을 써야 사도행전 공부하는 의미가 있는 거예요.
디모데를 만났을 뿐 아니라, 여기 드로아에서 누가를 만난 것 같아요. 누가.
여러분 바울이 누가를 만나지 못했다면 사도행전이 안 나와요.
그리고 누가복음도 안 나오는 거야.
여러분 신약성경에 사도행전 빠져버리고 누가복음 빠져버리면.
어제 누가복음에서 누가만 알고 있는 자료가 서른 몇 가지가 되었다는데.
그것 다 빠져버리면 신약성경에 그야말로 반쪽 성경이 되어 버리겠죠.
또 실제로 바울과 누가가 만나서 기록된 바울 서신 13개와 누가가 쓴 누가복음 사도행전 그러면 15권인데, 이 15권의 페이지를 제가 다 합산을 해 봤어요.
합산을 해서 신약성경 전체에서 프로테이지를 내니까 51%예요.
바울이 누가를 만나고, 누가가 바울을 만나서 이루어 놓은 역사적 업적이 신약성경 51%를 완성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역시 누가가 바울을 만난 사건도 일생일대의 만남이고 역사적 만남 이예요.
자, 여러분, 여러분 생애를 돌아볼 때 내 인생의 내가 누구를 만나서 오늘 내 인생이 이렇게 다른 삶을 살게 되었다. 그런 분 있다면 복 있는 사람이죠.
또 누군가가 여러분을 만나서 정말 다른 삶을 살게 되었다.
그러면 여러분이 위대한 사람이죠.
여러분 바울이 만약에 누가를 만나지 못했다면 바울의 활동이 거의 기록으로 남아있지 않아서 우리가 초대교회에 대해서 아주 무지하게 될 거예요.
누가를 만났기 때문에 바울 선교 사역이 고스란히 기록되어서 우리가 공부를 하고 있는 거죠.
반면에 누가가 만약에 바울을 만나지 못했다면 누가는 아마도 그냥 사랑받는 의사로서 제 몫을 충분히 톡톡히 할 수 있는 사람이었어요.
그는 훌륭한 의사였다고 봅니다.
그러나 의사로서 생을 보낸 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지만, 사도바울을 만나서 사도행전과 누가복음을 남겼다는 거예요.
그야말로 사도행전 한권과 누가복음 한권의 가치라는 것은 대영박물관 다 줘도 안 바꿔.
대영박물관 루블박물관 다 보태도 안 바꿀 그 정도의 가치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누군가와의 만남을 두려워하거나 회피하거나 기피하지 말고, 각종 하나님께서 은혜와 복과 진리를 주실 때 하늘에서 던져주는 게 아니라, 언제나 어떤 사람을 통해서 전달됩니다.
이해가 됩니까?
사람을 만나는 것을 소중히 여겨야 돼요.
만날 때마다 항상 기대를 가지고 ‘오늘 내가 누구를 만나서 어떤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가 전달 될 것인가?’
이런 기대를 가지고 만나고 그 만남을 소중히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바울이 누가를 만났듯이.
그 다음에, 16장을 보시면,
[사도행전 16장]
1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디모데’는 ‘티메데오스’, ‘티메’와 ‘데오스’의 합성어인데, 이것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자.’
티메데오스.
그러니까 이름이 벌써 하나님을 공경하는 자라 이렇게 이름을 지은 것을 보면,
그 모친은 믿는 유대 여자요 부친은 헬라인이라
그러니까 아버지는 아버지도 경건하면 참 좋겠습니다만 중요한 것은 어머니예요.
어머니가 믿는 유대 여자이었기 때문에 디모데는 훌륭한 사람이 되었는데,
여러분 2절 보세요.
디모데는 어떤 사람?
2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받는 자니
초대교회에서 일꾼을 뽑을 때, 예루살렘 교회에서 일곱 사람을 뽑을 때라든지 바나바라든지 디모데라든지. 전부 착한 사람 혹은 칭찬받는 사람 이예요.
앞으로 우리 교회에서 일꾼 뽑을 때 항상 착한 사람 그리고 칭찬 듣는 사람 이런 사람을 뽑아야 돼요.
그리고 목회자가 될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착한 사람 칭찬받는 사람.
꼭 그저 학교 다닐 때 숙제도 안 해오고 맨날 시험 칠 때마다 손바닥 20대 맞고 운동장 10바퀴 돌고 시험 성적도 안 되어가지고 하도 갈데없어서, ‘너 그만 신학교 가라’ 이래가지고 오면 안 되고.
그런 사람도 꽤 와요. 꽤.
그러면 곤란하다는 거야.
착한 사람이고 칭찬 듣는 사람이어야 돼요.
디모데는 그것도 한동네에서만 아니고 루스드라와 이고니온 상당히 거리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를 테면 우리 같으면 진주와 마산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받는 자라. 이런 정도가 디모데라는 사람 이예요.
쉬워요? 어려워요? 어렵습니다. 그렇게 할려면.
그리고 아들들 기를 때 그렇게 길러야 돼요. 착하게.
여러분 어린 애를 착하게 기를려면 일단 음식부터 가려 먹여야 됩니다.
음식을 쥐나 개나 다 먹고 하면 착하기 어려워요.
그리고 용돈 줘가지고 아이들이 학교 앞에 가서 인스턴트식품 과자 색소 든 것 이런 것 먹어서는 아무리 착하게 해도 안 돼. 기도해도 안 됩니다.
음식을 정갈하게 먹어야 돼요.
음식이 성격과 너무 밀접하게 관계가 있어요.
미국 캘리포니아에 가면 카이젤 퍼마멘트 메디칼 센터가 있어요.
거기가면 훼인 골드라는 닥터가 있는데 이분이 바로 이 분야에 전문가입니다.
식품 첨가물 이런 것들이 인격형성에 성격형성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어떤 역학관계가 있는가 하는 것을 전공한 아주 유명한 사람인데,
지금은 훼인 골드 식품이라 그런 말이 나올 정도로, 음식물이 사람 성격과 얼마나 밀접한 관계가 있는가. 이런 것을 연구하는 아주 세계적인 권위자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기본적인 것을 보면 아이들에게 음식을 가려 먹이지 않으면 머리가 나빠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성격도 더러워져요. 공부 못하는 것은 기본이고.
그래서 음식을 제일 아무 것이나 먹는 사람이 기독교인예요. 온 세계에서.
불교는 불교대로 가리고 힌도교는 힌두교대로 가리고 이슬람은 이슬람대로 가리고 유대교는 역시 음식을 가리고 몰몬교 다 가리고 안식교 다 가리는데, 기독교인만 아무 것이나 다 먹어치우는 거야. 그냥.
하여튼 기독교인은 네발 가진 것은 책상 말고 다 먹어.
바다에 있는 것은 잠수함 말고 다 먹어치우고.
날아가는 것은 비행기 말고 다 먹어치우니까.
그러니까 제일 성질이 못되고 머리가 나쁘고 공부도 못하고.
칭찬 하나도 못 받고 욕이나 먹고 다니고.
이게 교회 교육도 교육이지만 음식과 직접 관계가 있는 거예요.
안 믿어지거든 제가 시키는 대로 해봐요.
시장에 가서 지금 살 수 있고, 아니면 내년 3,4월 되어서 강아지를 두 마리 사요.
시골 할머니가 광주리에 담아서 파는 이른바 똥개 강아지 두 마리 사가지고 한 마리는 집 이쪽에 매어놓고 맨날 천 날 누룽지만 줘요. 누룽지만.
또 한 마리는 집 이쪽 모퉁이에 매어놓고 누룽지 주지 말고 통닭집에 가서 닭대가리 닭발 닭 내장 이런 것만 계속 먹이면 한 2년 정도만 음식을 가지고 다르게 먹여 기르면,
누룽지만 큰 개는 오는 사람 가는 사람 주인이나 손님이나 도둑놈이나 아무나 보면 사람만 보면 드러누워 버려.
온유하고 겸손하고 친절하고.
오줌을 싸고 드러누워 버려요.
그렇게 온유하게 됩니다. 개가. 누룽지만 먹고 큰 것은.
그런데 이쪽에 닭대가리 닭발 닭 내장 이런 것 먹고 큰 개는 주인이 와도 ‘음 맛있게 생겼다.’ 하고 코가 벌렁벌렁 거리면서 완전히 성질이 달라집니다.
그것은 동물성 단백질 중에 리신이라는 아미노산이 있는데, 그 리신 아미노산을 과잉섭취하게 될 때 성질이 포학해집니다.
그래서 여러분 음식을 자꾸 이야기 하는데, 구원과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건강과 성격에 직접 관계가 있어요.
그런 것은 최근에 발표된 논문들입니다.
이런 것이 앞으로 교과서에 실려서 우리가 인식을 할려면 20년 후에 그 때 여러분 후손들이 ‘오호라 그 때 우리 중에 예언자가 있었도다.’ 그럴 거예요.
그래서 디모데라는 사람은 칭찬받는 사람이다.
3 바울이 그를 데리고 떠나고자 할새 그 지경에 있는 유대인을 인하여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니 이는 그 사람들이 그의 부친은 헬라인인 줄 다 앎이러라
지도를 다시 보세요.
디모데를 여기에서 만났고, 누가를 여기에서 만났고,
16장 10절을 보세요.
10 바울이 이 환상을 본 후에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갑자기 여기 사도행전 기자가 ‘우리’라는 말을 써요.
다시 보세요.
10 바울이 이 환상을 본 후에 우리가
그렇죠?
‘우리가’ 라는 말을 쓸 때에 자기를 포함해서 1인칭 복수로 쓰고 있다니까.
바울을 말할 때 자기까지 포함시켜서 ‘우리가’
그러니까 사도행전을 누가가 썼는데, 어느 날 갑자기 ‘우리가’ 할 때는 그 때부터 다시 말하면 그 앞에 15장까지는 누가가 동행하지 않았고, 16장에서 볼 때 드로아인데 장소가 누가가 자기가 이미 동행하는 것을 나타낸 거야.
이해가 됩니까?
그래서 우리가 이런 단어 이런 구절들을 살펴서 누가라는 사람이 어디에서 바울을 만나서 동행하게 되었는가.
짐작할 수 있는데, 그 짐작하기로는 드로아에서부터 동행한 것은 확실하고, 꼭 거기에서 만났는지 그 이전에 만났는지 잘 알 수 없는데, 어떻게 만났는지는 전혀 우리가 알 수 없어요.
왜냐? 이 누가가 자기 개인적인 얘기를 전혀 안 쓰는 거예요.
저도 어지간하면 저 강의하면서 저 사적인 얘기를 잘 안 할려고 합니다.
물론 때로는 내 실수한 것 내가 얼마나 시원찮은 사람인가 간증 같은 것 가끔 할 수 있지만, 너무 많이 하면 안 돼요.
간증은 조금 잘못하면 자기 자랑이 되어 버립니다.
간증은 조심해야 돼요.
간증하는 사람도 조심해야 되고, 남의 간증 듣는 사람도 조심해야 돼요.
듣는 사람은 왜 조심해야 되느냐?
어떤 간증하고 다니는 사람이 처음에는 순수하게 간증하다가 점점 간증이 부풀어져요. 부풀어져.
그런 위험이 있습니다. 그런 유혹이 있고 위험이 있는데,
그 부풀어진 간증을 듣는 사람이 어떻게 적용하느냐?
‘그 사람에게 그런 은혜를 베풀어 주시니까 내게도 그런 은혜를 베풀어 주셔야지.’ 하고 보채는 거야.
위험합니다.
그 사람의 간증은 그 사람 한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케이스죠. 특별한 케이스이지.
모든 사람이 그 사람과 똑같은 간증을 체험한다는 아무 보장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런 간증을 들으면 그런 체험하게 해 달라고 보채는 거야.
이래서 간증이 위험하다는 거야. 때로는.
어떻든 여기 누가가 자기 얘기를 너무 안 쓰는 바람에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아주 제한됩니다.
누가에 대해서 별로 아는 게 없어요.
단지 여기에서 ‘우리가’ 라는 말이 나오는 것을 보고 이때부터는 확실히 누가가 동행했다는 하는 것을 짐작하는데, 누가가 바울을 만난 것 바울이 누가를 만난 것은 일생일대의 만남이요 역사적 만남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거기에서 사모트라케로 갑니다.
지도를 보세요.
여기 드로아에서 배를 타고 사모트라케라는 섬으로 가고, 다음에 네압볼리로 가요. 네압볼리.
‘네압볼리’라는 말은 ‘네오폴리스’입니다.
‘네오’라는 말은 ‘새로운’ 영어로 뉴(new)죠. 폴리스는 도시죠.
그러니까 새로 생긴 도시, 요즈음 말로 하면 신도시.
이 밑에 가면 분당 신도시죠.
누가 천당 밑에 분당이라고 하더니.
분당 판교 신도시 화성 동탄 신도시죠.
신도시라는 말이 네오폴리스, 네오폴리.
그런데 네오폴리를 네압볼리라고 한 거야.
네압볼리, 네오폴리스를 이탈리아식으로 발음하면 나폴리예요. 나폴리.
3대 미항 나폴리 있죠?
그 나폴리라는 말이 새로 생긴 도시다 그런 뜻 이예요.
우리말로 하면 신촌 그런 겁니다.
지금 네압볼리에 가면 사도바울이 유럽 땅에 유럽 대륙에 배에서 내려서 첫 발을 내딛었던 디딤돌이 있어요.
그 디딤돌을 굴려다가 네압볼리 바울기념교회 머릿돌로 삼았어요.
그 네압볼리 항구에 가면 항구 바로 부두 뒤에 갤럭시 호텔이라는 3류 호텔이 있고, 그 뒤로 가면 네압볼리 바울기념교회가 있는데 제가 두 번 거기 가봤는데.
그러니까 바울이 지나간 곳에는 성경 사도행전에 교회 이름이 나오지 않지만 네압볼리에도 바울이 지나갔고 거기에도 교회가 있어요.
바울이 머물다 간 곳에는 교회가 생기는 거야.
한국인이 지나가면 반드시 쓰레기가 생기고, 바울이 지나가면 앉은 자리에 교회가 생긴다고.
그는 아주 작은 거인이죠.
여러분도 어디 살다 가든지 살다 간 곳이 교회가 생겨야 돼요.
복음을 전해가지고.
그 다음에 거기에서 좀 더 가면 빌립보가 있어요. 빌립보.
빌립보라는 곳은 한때 마케도니아의 수도였어요.
수도였는데 그 도시를 왜 빌립보라고 하느냐 하면, 알렉산더 왕의 아버지 이름이 필립포스야. 필립포스.
필립포스라는 말은 ‘말을 사랑하는 자.’ 라는 뜻입니다.
말을 사랑하는 자는 대개 전쟁을 좋아해요.
그래서 알렉산더의 아버지 필립포스 대왕이 우리나라 같으면 세조 같은 사람 이예요. 세조.
자기 조카 단종의 왕위를 찬탈한 사람이죠.
바로 필립포스가 그런 사람이야.
그리고 필립포스 왕이 자기 조카의 왕위를 찬탈해가지고 왕이 되었다가 얼마 후에 암살당해요. 암살.
암살당하고 그 아들 알렉산더가 약관 20세에 자기 아버지 필립포스 왕의 뒤를 이어서 알렉산더 그레이트(Great). 알렉산더 대왕이 되는 거죠.
그 알렉산더 대왕 때까지만 해도 자기 아버지 때에도 알렉산더 때까지도 빌립보가 마케도니아 수도예요. 굉장했습니다. 거기가.
수도였는데, 바울이 거기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점하는 귀신들린 여자 하나 고쳐주고 얻어맞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죠.
그 감옥에 갇혔다가 지진이 나서 감옥이 터지는 바람에 간수가 벌벌 떨면서 간수가 죄수에게 ‘선생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죠.
그러니까 바울이 ‘주 예수를 믿으라. 그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한 것이 그런 말씀 중에 거기에서 나온 것이고.
그리고 거기에서 빌립보에서 만난 사람 중에 물론 간수도 간수지만, 자주장사 루디아라고 하는 사람을 만났어요.
기억나세요?
빌립보에서 만난 사람인데, 이 사람들의 만남도 참 소중한 만남이 되는데, 여러분 자주장사라는 말이 자주 온다 그 말이 아니고, 자주색 물감과 자주색 비단.
이런 것은 아무나 입을 수 있는 옷이 아닙니다.
그 때는 왕족 내지 귀족쯤 되어야 입을 수 있어요.
자주색 옷을.
너무 비싸기 때문에.
그 자주색 물감 염료가 어디에서 나오느냐 하면, 소라고동의 꽁무니를 깨면 그 창자 속에 천연염료가 나와요.
그게 얼마나 많이 소요되느냐 하면, 옷 한 벌 정도를 염색할려면 소라고동 8천 마리를 깨야 돼요.
그렇게 해서 추출된 것을 가지고 천연염료를 만드는데.
그러니까 왕족상대 귀족 상대 부자상대해가지고 자주색 물감 염료를 공급하는 그런 비지니스 여성으로서 그런 비지니스를 하는 사람인데, 아마도 유대인 같거든요.
유대인인데, 태어나기는 두아디라.
여기가 두아디라예요.
유대나라 사람인데, 두아디라에서 태어나서 마케도니아의 수도 빌립보에서 무역한다니까 이 여자가.
이쯤 되어야 일꾼이 됩니다.
안목이 벌써 2천 년 전에 안목이 그 정도로 열려있는 사람이었어요.
그리고 자기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우리 집에 와서 유하라.
바울 일행이 바울과 디모데 누가 혹은 디도 실루아노. 아마도 대여섯 명 넘게 될 텐데, 그런 사람을 다 자기 집에 와서 유하라 하는 것을 보면, 이 루디아의 재력이나 내지는 그 자기 집의 어떤 바이어들을 수용할 수 있는 객실들이 많이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거야.
그리고 그 남편 이야기가 없는 것을 볼 때 그 남편은 돌아가신 것 같고. 그러면서 여자가 돈 벌어서 뭐 하겠습니까?
좋은 일 하는데 사도바울을 후원하는데 일생동안 후원합니다. 이 때 만남이.
아주 좋은 후원자를 만난 거죠.
그래서 빌립보가 자주장사 루디아와 빌립보 간수 이런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가지고 교회가 된 거죠.
그리고 거기에서 다시 떠나서 바울이 어디로 가느냐 하면, 암비볼리아를 거쳐서 아볼로니아로 가서 데살로니가에 왔습니다. 데살로니가.
그 데살로니가라는 곳은 이 마케도니아 제 2의 도시죠.
빌립보에 있던 수도를 이쪽으로 옮겨서 데살로니가로 옮겨서 이쪽에 나중에 수도가 되는데, 알렉산더 왕이 죽고 나자 그 휘하에 있던 장군 중에 카산더라는 사람이 있어요. 카산더.
그 카산더 장군이 알렉산더가 죽고 나자 알렉산더의 아들을 죽여 버리고 그리고는 자기가 왕 되는데, 이 사람이 알렉산더의 아버지 다른 여동생, 씨 다른 여동생의 남편이야.
아주 어렵죠?
이것을 영어로는 하프 시스터(half sister)라고 절반만 여동생이다.
씨가 다른 엄마가 같은데, 씨가 다른 여동생이야.
알렉산더의 여동생입니다.
그래서 알렉산더가 죽고 나자 알렉산더의 아들이 있었는데, 알렉산더가 박트리아의 공주 록산나라는 여자와 결혼을 했어요.
결혼했는데, 그 낳은 아들을 싹둑 잘라버리고 카산더라는 사람이 자기가 왕권을 차지해요.
그래서 카산더 그레이트(Great)라고 카산더 대왕이 빌립보가 자기 장인영감이 조카의 왕위를 찬탈한 그래서 냄새가 좋지 않다 해가지고 수도를 옮깁니다.
이쪽이 원래는 델마이만 안으로 들어와서 온천도 유명하고 아주 굉장히 좋은 항구 터인데, 여기로 옮겨가지고 자기 아내 알렉산더의 씨 다른 여동생 이름이 살로니카인데, 그 살로니카의 이름을 따가지고 데살로니가로 이름을 지었어요.
카산더 대왕이 옮긴 겁니다.
그러니까 도시 역사가 3백 몇 십 년 밖에 안 되거든요. 바울이 갔을 때.
요즈음 같으면 3백 몇 십 년은 오래된 도시인데, 그 때는 3백 몇 십 년 되면 신도시야 아직도.
여러분 신도시에 교회를 개척해야 교회가 빨리 성장합니다.
뭐 이끼가 두껍게 끼어 있고 기와집이 고색창연하고 이런 곳에는 전혀 전도가 잘 안 됩니다.
신도시 일산 분당 평촌 삼본 동탄 판교 이런데 가서 개척하면 교회가 빨리 성장해요.
왜냐하면 그 때는 아직도 귀신도 아직 자리를 못 잡아가지고 핍박할 준비가 안 되었어.
그런데 진주 이런 데 아주 고색창연한 데에서 잘 교회가 성장이 안 돼요.
바울이 여기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을 전하는데, 너무 빨리 받아들이는 거야. 사람들이.
왜 이렇게 빨리 받아들이느냐?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은 안 받아들이는데, 이렇게 흩어져있는 사람들은 잘 받아들이는 거예요. 이 사람들이.
여기 우리가 설명이 필요하겠는데, 어떻게 유대인들이 이렇게 많이 흩어졌느냐 하면,
첫째는 BC721년에 앗수르 왕 살만에셀이 올라와서 사마리아를 다 함락시키고 다 잡아가거나 흩어져버리거나.
북왕국이 망한 결과로 유대인들이 디아스포라라고 해가지고 막 흩어져 세계 도처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어느 도시에 가면 꼭 그들이 취하는 직업들이 상업과 금융업을 합니다.
상업 금융업.
그래서 무역이 일어납니다. 무역이.
그래서 어떤 도시가 신설될 때 도시 구성원을 제일 처음 차출하거나 선발할 때 일정량의 유대인이 필수요원으로 필요하다는 거야.
그 사람들이 있어야 금융이 돌아가고 무역이 일어나고 상권이 형성되고.
그 때부터 유대인들은 돈 버는데 명수들이야.
그리고 그들은 돈 벌어가지고 반드시 다섯 가정 이상만 되면 조그마한 회당을 만들어요. 시나고개라고.
안식일마다 와서 성경을 읽고 탈무드를 배우고 삶의 정보를 나누고 협력하고 자기들이 똘똘뭉쳐 가지고 공동체를 만들어서 잘 삽니다. 항상.
그리고 대체로 일부일처를 지켜요. 유대인들이.
그리고 경건하고 도덕적으로, 물론 고리대금업 하는 것은 나쁜 일이지만 지금 와서 볼 때.
삶에 있어서 일반 세상 사람들보다 항상 규모 있게 살고 반듯하게 살고 문란하지 않고.
이런 것 때문에 이방인 세상에서 유대인들이 그 당시만 해도 유대인들은 성실한 사람들이예요.
그리고 경건하고 다른 여자 넘어다보지 않고 아주 가정적이고 그리고 경제적으로 윤택하고.
그리고 유능해요 이 사람들이 대개.
탈무드를 가지고 계속 지혜를 공부하기 때문에 그런 나라 잃어버리고 흩어져 살지만 결코 어디 가서 못 살지 않습니다.
우리 한국 사람은 그런 면에서 유대인들과 조금 닮았어요.
여러분 한국 사람은 어디가도 못 살지 않습니다.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빨리 잘 사는 사람이 한국사람 이예요.
그리고 흩어진 것도 참 희한한 게 세계 도처에 가면 어디가도 한국 사람이 있어요.
저 아라랏산 밑에 까지 가도 있어요.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가도 있어요. 뭘 하러 갔는지 가.
호기심이 많아서 오지 마라하면 더 가.
그리고 살다보면 얼마 안 가서 그 지역사람들보다 더 잘 살아요. 한국 사람들이.
때로는 미움을 많이 받습니다. 한국 사람이 너무 빨리 잘 사니까.
어떤 놈 코를 쥐어박았는지 몰라도 하여튼 빨리 잘 사는 거야.
미국 가서도 멕시칸들도 잘 못 살고 검은 친구들도 잘 못 사는데, 한국 사람은 얼마나 일을 열심히 하는지.
보통 직장이 세 개예요.
새벽직장 가고 오전직장 가고 오후직장 가고 저녁직장 가고.
직장이 세 개 네 개예요. 죽든지 살든지.
아이 공부 시킨다고 가서 아이와는 대화할 시간도 없고 온통 돈 벌려고.
너무 너무 빨리 잘사니까.
흑인들이 볼 때 꼴불견이야.
흴려면 희든지 검을려면 검든지. 희지도 검지도 않은 것들이 와가지고.
노랑 탱탱한 것들이 와서 발발거리고 잘 산다고 돈 좀 있다고 뻐기고 하니까 흑인들이 한국 사람들 미워하고 한때 흑인 폭동 나고 했잖아요.
너무 빨리 잘사니까.
멕시칸들은 그게 원래 자기들 땅이었죠. 캘리포니아가.
그런데 뭐 희도 검도 안한 것들이 와가지고 너무너무 빨리 잘사니까 미워하는 거죠.
유대인들은 어디가든지 그렇게 돈을 잘 벌고 경건하게 하니까 헬라인 귀부인들이 유대인들이 믿는 하나님을 따라 믿는 그런 경향이 있어요. 경건하니까.
그래서 여기 회당에 가면 바울이 어디가면 꼭 회당에 먼저 가요.
유대인들이 있는 곳에.
일단 대화가 되고 거기가면 같은 민족으로서 동질감이 있어서 동족감정을 서로 반기고 이런 게 있으니까 회당에 늘 갑니다.
그런데 회당에 가서 복음을 전하면 예루살렘 사람들은 안 받아들이는데, 이역만리에 있는 사람들은 고국에서 온 소식에 목이 마른 거야.
그럴 수 있겠죠?
그래서 그 나라 잃은 설움에 이방 나라에서 이렇게 어렵게 살면서 목마른 소식을 듣는데, 어느 날 갑자기 누가 와서 자기들이 그렇게 꿈에도 사모하던 메시야가 왔다는 거예요. 어떻게 왔느냐?
가까운데 사람은 안 믿는데, 먼데 사람은 안 봤으니까 어떻게 왔느냐 귀를 기울이는 거죠.
그래서 메시야가 이렇게 왔고 이렇게 왔고.
또 지난번에 사도행전 2장에 보면 세계 15개국으로부터 왔던 사람들 있잖아요.
이 사람들이 여렴풋이 소식을 가지고 갔겠죠. 그렇죠?
그래서 그 소식이 이렇게 세계 도처에 퍼졌는데, 그리고 그들이 부활했는지 말았는지 성령이 어떻게 임했는지 제대로 딱 부러지게 알고 간 게 별로 없어요. 그렇겠죠?
그런데 누가 와가지고 ‘정말 메시야가 왔다.’
그러니까 도대체 메시야가 와서 어떻게 되었느냐? 어떻게 생겼느냐?
전부 알고 싶어서 목이 말랐는데, 바울이 워낙 구약성경에 율법에 탁월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쭉 설명하니까 금방 받아들이는 거예요.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들은 안 받아들이지만, 이역만리 타국에 회당에 살면서 회당 중심으로 신앙생활하면서 그 목이 마르게 ‘우리도 메시야가 오면 우리 고국에 돌아가리라’ 하는 꿈이 있었겠죠.
그러니까 아주 달게달게 받아들여가지고 너무 빨리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받아들이니까 여태까지 회당에서 유대교를 지도해오던 사람들이 머쓱해진 거야.
그러면 우리는 뭐냐.
그래서 전부 다 바울을 추종하고 유대교 전통을 버리고 바울이 말하는 예수님을 따라서 믿겠다 하니까 회당에서 큰 혼란이 나면서 이 바울을 놔두면 안 되겠다 빨리 쫓아내야 되겠다 하고 쫓아낼려고 하는 거죠.
쫓아낼려고 시장에 가서 아고라 시장 통에 가면 항상 시장 통에는 이것 해가지고 먹고 사는 어깨들이 그 때도 있었다니까. 조폭들 데려와서.
‘저자의 어떤 괴악한 자’
성경에 저자의 어떤 괴악한 자라고 하는데, 저자하는 아고라 시장 통의 어떤 괴악한 자 조폭 이런 사람들을 끌고 와서 바울을 때려잡으려니까 바울이 피해가지고 베뢰아로 가죠. 베뢰아.
베뢰아 사람들은 더 신사적이야.
그래서 여기서 성경을 가르치는데, 날마다 모여서 성경에 그러 한가해서 성경을 상고하니까 더 많은 사람들이 믿고 돌아오고 하는데, 문제는 데살로니가 조폭들이 거기까지 따라왔어요. 그 먼길을.
와서 바울을 잡아죽일려고 하는데, 바울은 숨어서 몰래 빠져나와서 배타고 아테네로 갔어요.
아테네에 와서 시내 한 바퀴 빙 둘러봤는데, 자기는 철학의 본고장 아테네에 왔다 싶었는데, 와보니까 철학은 무슨.
온통 미신 충만한 거야.
어떻게 신들이 많은지.
바울이 속으로 분한 마음을 느끼면서 아레오바고 언덕에 올라가서 철학자들과 변론이 벌어진 거야.
‘아덴 사람들아, 내가 너희를 보니까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
이렇게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하는 것은 칭찬이 아닙니다.
헬라어 원어를 보면 ‘데이시 다이모네스 테로스’ 이렇게 했는데, 이 말은 ‘너희가 꽤 미신적이다.’ 그런 말 이예요.
꽤 미신적이라는 거야.
좋은 말이 아닙니다.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 번역을 이렇게 완곡하게 한 것이고, 실제로는 아주 미신적이다.
심지어 내가 다니다 보니까 ‘알지 못하는 신에게’ 라고 쓴 것을 내가 봤는데,
너희가 안다는 것은 엉터리이고,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쓴 그분을 내가 알게 하겠다. 하면서 하나님을 소개하는 거죠.
너희 안다는 신은 다 엉터리이고, 너희가 모른다는 하는 신 중에 진짜가 있어.
그런데 그들은 안 받아들입니다. 안 받아들여요.
왜냐하면 바울이 설교를 잘못해가지고 안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대상들이 돼먹지 않은 사람들이야.
에피큐리어스 학파는 향락주의 쾌락주의 철학자들이고, 스토이시즘은 금욕주의 철학자들이야.
둘이는 앙숙입니다. 에피큐리어스와 스토이시즘은 아주 상극을 이루는 그런 변론하기를 좋아하는 철학자들이기 때문에 바울이 아무리 신실해도 안 받아들이는 거예요.
바울이 딴데 가서 바울이 전한 것을 잘 받아들이는 사람은 이방인들이 아니고,
유대인들 중에서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이방나라에서 서러움 받으면서 살면서 목이 마르게 메시야를 기다리는 그런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것은 속히 받아들인 것이고, 아레오바고 언덕에서 설교는 바울의 설교가 잘못된 게 아니라 대상들이 잘못된 거예요.
수많은 복음주의 목사님들 설교를 들어보면, 그 때 바울이 십자가를 말하지 않아서 안 받아들였다. 꼭 하는 소리가 그래요.
이것 보세요.
아레오바고 언덕에 있는 그 에피큐리어스 학파라든지 스토이시즘 학파 사람들은 십자가 한 짐 짊어지고 가도 안 돼.
십자가를 말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대상들이 근본적으로 들을 위인들이 아닙니다. 그게..
그래서 그런 배경을 잘 모르니까 오해를 가끔 하는데, 사실은 바울의 설교가 잘못된게 아니라 대상들이 들을 만한 인물이 아니었다는 거예요.
그리고 거기에서 어떻든 재미가 없어서 어디로 가느냐 하면, 고린도로 갑니다.
여기가 고린도입니다.
바로 여기 발칸반도 남쪽에 이쪽에 아테네가 있고, 그 반대쪽에 고린도가 있는데,
이 고린도와 당시에는 쌍벽을 이룰 정도로 아테네 고린도가 비등할 정도로 아주 균형 잡힌 도시였는데, 지금은 형편없어요.
고린도는 그야말로 인구 5만도 채 안 될 정도로 일그러져버렸고, 아테네는 3백만 넘어 될 정도로 지중해에서 큰 도시가 되었죠.
그것은 1858년도에 고린도에 큰 대지진이 한번 나고, 1928년도에 또 한 번 났어요.
대지진 두 번 겪으면서 고린도는 완전히 무너져버리고 지금 사람 살기 어려운 그런 땅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는 그야말로 그 전체가 다 폐허가 되다시피 되었어요.
그러나 바울이 갔을 때는 고린도가 상당히 번창했던 도시였는데, 지금 무너진 터에 널부러진 돌들을 봐도 한 때 고린도가 영광스러웠던 때가 어느 정도 규모였는가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굉장한 도시였습니다.
고린도에서는 1년 6개월을 유하게 되는데, 1년 6개월 유하면서 고린도에서 어떤 사역을 했는지는 우리가 다음 시간에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리]
◎ 사도행전 15장 : 예루살렘 총회
- 할례당의 주장 : 이방인 중에서 주께 돌아온 사람을 그냥 세례주면 안 되고 일단 할례를 받게 해가지고 유대인이 된 다음에 거기다가 예수 믿고 세례받게 해야 된다.
- 총회의 결론 : 이방인 중에서 주께 돌아온 자를 괴롭게 하지 말고, 우상의 제물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 그런 것 먹지 못하게 하고 피를 먹지 못하게 하고 그런 정도면 족하다.
◎ 사도바울의 2차 전도여행(행15:35~18:22)
◎ 사도바울의 2차 전도여행 코스
- 안디옥 → 다소 → 더베 → 이고니온 → 루스드라 → 안디옥 → 갈라디아 → 부르기아 → 드로아 → 마게도니아 → 네압볼리 → 빌립보 → 암비볼리아 → 아볼로니아 → 데살로니가 → 베뢰아 → 아테네 → 고린도 → 에베소 → 로도 → 바보 → 가이사랴 → 예루살렘 → 안디옥
◎ 사도바울의 2차 전도여행의 특징
1) 전도 팀이 두 팀으로 갈라짐
- 바나바, 마가 : 구브로(키프로스)로 감
- 바울, 실라 : 수리아, 길리기아 다소로 감
2) 일평생 동역할 동역자들을 만남
- 디모데, 누가, 루디아, 아굴라 브리스길라
3) 복음이 에게해 바다를 건너 유럽으로 전파됨
4) 편지를 쓰기 시작함. 구두전도→문서전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