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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인시인은 1955년 충북 보은 태생으로, 1982년 동인지 『시와 경제』동인으로 시단에 나왔고 현재는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시집으로는 1988년에 첫시집 『 밤에 쓰는 편지』를 출판했고, 19년의 간격을 두고 2006년 4월에 두번째 시집『가만히 좋아하는』을 창비사를 통해 출판했습니다.
김사인의 시에는 가난하고, 외롭고, 슬픈 민초들에 대한 연민이 짙게 배어있습니다. 아마도 80년대에 출판된 첫시집에는 이러한 경향이 민중시의 색깔로 좀더 짙게 나타나있으리라 생각됩니다. '키 낮은 풀들' '새끼발까락' ' 헌털뱅이들' '천지에 기댈 곳 없는 사람 하나' 등의 표현으로 삶의 중심에서 소외된 보잘것 없는 존재들에 대해 시인은 따뜻한 눈길을 보내는데, 이러한 연민의식은 가난하고 외롭고 슬픈 시인의 정서와 하나로 연결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연결에 있어서 자아와 세계(시적 대상)의 경계 자체가 모호한 경우가 많다는 점이 김사인 시의 특징이라고 할 수있습니다. 또한 토속적인 언어를 사용한 능청스런 입담으로 민초들의 애환을 읊고 있는 시편들도 정겹게 다가옵니다.
풍경의 깊이
바람 불고
키 낮은 풀들 파르르 떠는데
눈여겨보는 이 아무도 없다.
그 가녀린 것들의 생의 한순간,
의 외로운 떨림들로 해서
우주의 저녁 한때가 비로소 저물어간다.
그 떨림의 이쪽에서 저쪽 사이, 그 순간의 처음과 끝 사이에는 무한히 늙은 옛날의 고요가, 아니면 아직 오지 않은 어느 시간에 속할 어린 고요가
보일 듯 말 듯 옅게 묻어 있는 것이며,
그 나른한 고요의 봄볕 속에서 나는
백년이나 이백년쯤
아니라면 석달 열흘쯤이라도 곤히 잠들고 싶은 것이다.
그러면 석달이며 열흘이며 하는 이름만큼의 내 무한 곁으로 나비나 벌이나 별로 고울 것 없는 버러지들이 무심히 스쳐가기도 할 것인데,
그 적에 나는 꿈결엔 듯
그 작은 목숨들의 더듬이나 날개나 앳된 다리에 실려온 낯익은 냄새가
어느 생에선가 한결 깊어진 그대의 눈빛인 걸 알아보게 되리라 생각한다.
노숙
헌 신문지 같은 옷가지들 벗기고
눅눅한 요 위에 너를 날것으로 뉘고 내려다본다
생기 잃고 옹이진 손과 발이며
가는 팔다리 갈비뼈 자리들이 지쳐 보이는구나
미안하다
너를 부려 먹이를 얻고
여자를 안아 집을 이루었으나
남은 것은 진땀과 악몽의 길뿐이다
또다시 낯선 땅 후미진 구석에
순한 너를 뉘였으니
어찌하랴
좋던 날도 아주 없지는 않았다만
네 노고의 헐한 삯마저 치를 길 아득하다
차라리 이대로 너를 재워둔 채
가만히 떠날까도 싶어 묻는다
어떤가 몸이여
코스모스
누구도 핍박해본 적 없는 자의
빈 호주머니여
언제나 우리는 고향에 돌아가
그간의 일들을
울며 아버님께 여쭐 것인가
다리를 외롭게 하는 사람*
하느님
가령 이런 시는
다시 한번 공들여 옮겨적는 것만으로
새로 시 한 벌 지은 셈 쳐주실 수 없을까요
다리를 건너는 한 사람이 보이네
가다가 서서 잠시 먼 산을 보고
가다가 쉬며 또 그러네
얼마 후 또 한 사람이 다리를 건너네
빠른 걸음으로 지나서 어느새 자취도 없고
그가 지나고 난 다리만 혼자서 허전하게 남아 있네
다리를 빨리 지나가는 사람은 다리를 외롭게 하는 사람이네
라는 시인데
(좋은 시는 얼마든지 있다구요?)
안되겠다면 도리없지요
그렇지만 하느님
너무 빨리 일고 지나쳐
시를 외롭게는 말아주세요, 모쪼록
내 너무 별을 쳐다보아
별들은 더럽혀지지 않았을까
내 너무 하늘을 쳐다보아
하늘은 더럽혀지지 않았을까
덜덜 떨며 이 세상 버린 영혼입니다
* 이성선(李聖善) 시인(1941~2001.5)의 「다리」전문과 「별을 보며」첫부분을 빌리다.
새끼발가락과 마주치다
스타킹 속에 든 그 새끼발가락을 우연히 보게 된 순간, 나는 술이 번쩍 깼다. 눈 내리깐 채 몸의 제일 후미진 구석에 엎드려 있는 그것은 백만년 인류사를 배경으로 갖는 것이어서, 애잔하다거나 안쓰럽다거나 하는 따위의 감상적 형용으로는 감히 어리댈 수도 없었다. 아프가니스탄의 굶주림으로부터 정신대 끌려갔던 내 재당숙모에 이르는, 유구한 상처의 넋들이 그 숨죽인 다소곳함 속에는 서려 있다고 보였다.
그래서 그토록 꼬부리고 숨어 있는 그것이 혹 죽은 것은 아닌가 한순간 걱정되면서 나도 모르게 손이 뻗어가 그것을 건드리니,
아아, 가만히 움츠리며 살아 있다고 말하는 게 아닌가!
그 기척이 어쩐지 우리들 희망의 절망적인 상징처럼 여겨져서 눈물까지 핑 돌았다.
등을 보이고 앉은 그녀는 그런 내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발을 조금 당기고 치맛자락을 끌어내려 슬며시 덮고 마는 것이었다.
탈상
영정을 고여놓고
떡 고기 전 괴고
조율시이 홍동백서 진설하고
메 올리고 삽시(揷匙)하고 나서
땅 땅 땅 세 번 정저소리 울리고
유세차 축도 읽고
일곱살짜리 상주
꾸벅 절하고 잔 올리고
미망의 여윈 아내 울먹
절하고 잔 올리고 큰동생 절하고
친구들 하나둘 절하고
막내여동생도 잔 올리고
밖은 어느덧 어둡고
안개비 깔리고
그대 육신 이제 흙 속에서
많이 상했으리
잘 가라 그대
이승의 마지막 밥이니
배불리 들고
술 취해 흔들흔들
잘 가라 그대
아무도 모른다
나의 옛 흙들은 어디로 갔을까
땡볕 아래서도 촉촉하던 그 마당과 길들은 어디로 갔을까
나의 옛 개울은, 따갑게 익던 자갈들은 어디로 갔을까
나의 옛 앞산은, 밤이면 굴러다니던 도깨비불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런닝구와 파자마 바람으로도 의젓하던 옛 동네어른들은 어디로 갔을까 누님들, 수국 같던 웃음 많던 나의 옛 누님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나의 옛 배고픔들은 어디로 갔을까 설익은 가지의 그 비린내는 어디로 갔을까 시름 많던 나의 옛 젊은 어머니는
나의 옛 형님들은, 그 딴딴한 장딴지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나의 옛 비석치기와 구슬치기는, 등줄기를 내려치던 빗자루는, 나의 옛 아버지의 힘센 팔뚝은, 고소해하던 옆집 가시내는 어디로 갔을까
나의 옛 무덤들은, 흰머리 할미꽃과 사금파리 살림들은 어디로 갔을까
나의 옛 봄날 저녁은 어디로 갔을까 키 큰 미루나무 아래 강아지풀들은, 낮은 굴뚝과 노곤하던 저녁연기는
나의 옛 캄캄한 골방은 어디로 갔을까 캄캄한 할아버지는, 캄캄한 기침소리와 캄캄한 고리짝은, 다 어디로 흩어졌을까
나의 옛 나는 어디로 갔을까, 고무신 밖으로 발등이 새까맣던 어린 나는 어느 거리를 떠돌다 흩어졌을까
친구들
마굿간 시절
신용카드 한 장 변변찮은 헌털뱅이들이다
헌털뱅이 파카나 걸치고
이번엔 누구를 약올려줄까
눈에 개구가 반짝반짝 올라서들 온다
개구진 헌털뱅이들은 화투도 반은 입으로 친다
판에 오천원 내기 바둑이 하도나 꼬수워
낄낄낄 어쩔 줄을 모른다
구경하는 치들도 낄낄낄낄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른다
쇠죽 쑤는 아랫목인 듯
그 낄낄낄 위로 뒹굴며 모두 같이 등을 지진다
푹 삶은 누룽지처럼 서로를 한 대접씩 마시고
속을 데우는 것이다
오늘도 수세미수염에 부스스한 머리들을 해가지고 나타날 것이다
담배냄새를 구수하게 풍기며 이 어둑한 구석으로
옛날 아버지들처럼 모여들 것이다
치욕의 기억
영화배우 전지현을 닮은 처녀가 환하게 온다 발랄무쌍 목발을 짚고 (다만 목발을 짚고) 스커트에 하이힐 스카프는 옥빛 하늘도 쾌청 그런데 (뭔지 생소하다 그런데)
오른쪽 하이힐이 없다
오른쪽 스타킹이 없다
오른쪽 종아리가 무릎이 허벅지가 없다
나는 스쳐 지나간다
돌아보지 못한다
묻건데
이러고도 生은 과연 싸가지가 있는 것이냐!
조용한 일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
철이른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그냥 있어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
저도 말없이 그냥 있는다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풍경의 깊이2
이 길, 천지에 기댈 곳 없는 사람 하나 작은 보따리로 울고 간 길
그리하여 슬퍼진 길
상수리와 생강나무 찔레와 할미꽃과 어린 풀들의
이제는 빈, 종일 짐승 하나 지나지 않는
환한 캄캄한 길
열일곱에 떠난 그 사람
흘러와 조치원 시장통 신기료 영감으로 주저앉았나
깁고 닦는 느린 손길
골목 끝 남매집에서 저녁마다 혼자 국밥을 먹는,
돋보기 너머로 한번씩 먼 데를 보는
그의 얼굴
고요하고 캄캄한 길
경주 이씨 효열비*
딸 하나 남기고 남편 방수고리(方數古里)가 세상을 떠나자 선영에 장사지내고 삯방아 삯바느질로 젖먹이와 늙은 시모를 봉양하다. 마침 9년 큰 가뭄 들자 생계를 찾아 늙은 시모 업고 먼 영남 땅으로 가다. 1년이 채 안되어 시모가 세상을 떠나자, 시신 수습해 업고 700리를 걸어 고향 선영에 돌아와 장사지내다. 묘막을 짓고 3년을 애통해하며 시묘하다. 그후 얼마 안되어 자신마저 세상을 뜨니 경주 이씨 나이 47세였다.
라고 적힌 정문(旌門) 곁 잡초는 우거지고
큼큼한 얼굴로 자동차 우릉우릉 지나가는데
하느님은 아직까지 잘 돌봐주고 계실까
쓸쓸하다, 이름들이여
방수고리여
경주 이씨여
그의 시모여
* 경기도 평택시 현덕면 신왕리 소재 조선 중기의 효열비.
윤중호 죽다
'죽'은 대체 어디서 굴러먹던 글자일까
윤중호 석자 뒤엔 아무래도 설다
'ㅈ'이 'ㄱ'에 가닿을 동안
길가엔 어허이 에하 상두소리 울리라는 걸까
산 모양의 저 '죽'자 날망에는
고봉밥처럼 황토 봉분만 외로우란 걸까
'ㅈ'과 '욱' 사이 나지막한 비탈길
고통도 시름도 내려놓고
문지방 너머 가벼이 넋은 있으리
'주'의 복판 웅덩이엔
차마 못다한 말들 썩어 고여 우울하리
우울하여 마침내 긴 주름 아득한 'ㅈ'이겠네
'주'와 'ㄱ'사이 어느 고샅에
산동네 자취의 날들 있으리
떠나간 아버지와 삭발하는 여동생 있으리
눈물 훔치며 돌아나오던 옛동네도 숨어 있으리
그 고샅 끝에서 새 옷 갈아입고
쌀 세 알 물고
다락 같은 일주문 'ㄱ'자 문턱에 덜컥 걸려 넘어지면
문득 저승이리
왈칵 쏟는 뜨거운 국솥같이 통곡 있으리
기어이 일어나버린 저 '죽'자의 식은 정강이를 붙잡고
감꽃처럼 툭 떨어진 몸 허물 앞에서
어머니는 우시리
그저 우시리
* 충북 영동 사람 윤중호는 2004년 가을 4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아내와 아이 둘, 시집3권을 남겼다.
때늦은 사랑
내 하늘 한켠에 오래 머물다
새 하나
떠난다
힘없이 구부려 모았을
붉은 발가락들
흰 이마
세상 떠난 이가 남기고 간
단정한 글씨 같다
하늘이 휑뎅그렁 비었구나
뒤축 무너진 헌 구두나 끌고
나는 또 쓸데없이
이 집 저 집 기웃거리며 늙어가겠지
봄바다
구장집 마누라
방뎅이 커서
다라이만 했지
다라이만 했지
구장집 마누라
젖통도 커서
헌 런닝구 앞이
묏등만 했지
묏등만 했지
그 낮잠 곁에 나도 따라
채송화처럼 눕고 싶었지
아득한 코골이 소리 속으로
사라지고 싶었지
미끈덩 인물도 좋은
구장집 셋째 아들로 환생해설랑
서울 가 부잣집 과부하고 배 맞추고 싶었지
덕평장
세 개뿐인 손가락이 민망하다
면봉과 일회용밴드 뭉치를 들고 천원이요 외쳐보나
사는 사람 적다
땡볕에 눈이 따갑다
도토리묵 과부 윤씨가 같이 한술 뜨자고 소릴 지른다
묵국수를 말아내는 윤씨의 젖은 손엔
생기가 돈다
떨이옷 김씨가 농협 모퉁이에서
전대를 철럭거리며 쫓아온다
무친 닭발과 소주를 양손에 들었다
장사 참 어지간하네
차양모자 밑으로 땀을 훑으며 연실 엄살이다
잠긴 목에 거푸 몇잔을 부으니 나른해진다
받지 않는 줄 알면서도
번번이 지전 두어 장을 내밀어본다
윤씨의 환한 팔뚝이며 가슴께를 애써 외면하며
다시 거두는 몽당손이 열쩍다
내일 장에는 도루코 쎄트나 칫솔을 더 떼어가나 어쩌나
해는 아직 길고
한 보따리에 천원
문득 한번 소리를 돋워본다
나비
오는 나비이네
그 등에 무엇일까
몰라 빈 집 마당켠
기운 한낮의 외로운 그늘 한 뼘일까
아기만 혼자 남아
먹다 흘린 밥알과 김칫국물
비어져나오는 울음일까
나오다 턱에 앞자락에 더께지는
땟국물 같은 웃음일까
돌보는 이 없는 대낮을 지고 눈시린 적막 하나 지고
가는데, 대체
어디까지나 가나 나비
그 앞에 고요히
무릎 꿇고 싶은 날들 있었다
맨드라미
꺽인 맨드라미여
허리 꺽인 맨드라미여
청 좋은 나훈아가
서운히도 돌아서던 돌담길이다
대추나무 퀭한 가지 너머
하늘은 잿빛으로 얼어붙었다
잘리다 만 모가지이냐
꺾인 허리여
잿간 구석 던져진
몽당비만도 못하다
한 시절 눈부시던 선홍의 볏이
피흘리며 흙바닥을 쓸고 있구나
파장 뒤 굴러다니는
헌 신문지만도 못하다 저 목덜미,
저 목덜미 적셔
겨울비 하염없고
아무도 내다보지 않는다
맨드라미
마른 쑥대에 부쳐
마른 쑥대여
해설핀 섣달 저녁의 성긴 눈발이여
어머님 산소는 먼 곳에 있다
알고나 있는가
마른 쑥대여
잊지는 않았겠지
컴컴한 호두나무 그늘이며
기계충 머리로 보채던 어린 누이며
손등에 사마귀 많던 동무들...
제사도 지내야 하는데
제사도 지내야 하는데
비명에 간 없는 집 종손이여
마른 쑥대여
깊이 묻다
사람들 가슴에
텅텅 빈 바다 하나씩 있다
사람들 가슴에
길게 사무치는 노래 하나씩 있다
늙은 돌배나무 뒤틀어진 그림자 있다
사람들 가슴에
겁에 질린 얼굴 있다
충혈된 눈들 있다
사람들 가슴에
막다른 골목 날선 조선낫 하나씩 숨어 있다
파란 불꽃 하나씩 있다
사람들 가슴에
후두둑 가을비 뿌리는 대숲 하나씩 있다
꽃
모진 비바람에
마침내 꽃이 누웠다
밤내 신열에 떠 있다가
나도 푸석한 얼굴로 일어나
들창을 미느니
살아야지
일어나거라, 꽃아
새끼들 밥 해멕여
학교 보내야지
거울
겁에 질린 한 사내 있네
머리칼은 다복솔 같고 수염자국 초라하네
위태롭게 다문 입술 보네
쫓겨온 저 사내와
아니라고 외치며 떠밀려온 내가
세상 끝 벼랑에서 마주 보네
손을 내밀까 악수를 하자고
오호, 악수라도 하자고
그냥 이대로 스치는 게 좋겠네
무서운 얼굴
서로 모른 척 지나는 게 좋겠네
서귀(西歸)
날 잊지 말아라 노래 부르네
누구에게 말하나 비통에 대해
별은 빛나 적적한데 그대에게?
나 이승의 연(緣) 다하여
먼 길 가는 날
살쩍 고운 귀밑머리 흰 목덜미
그대 두고는 차마 못 가
자욱마다 소나기 오리
울고불고 몸부림치리
그래도 아마 나 시치미 떼리
시치미 떼고 휘파람 불리
한사코 무덤덤히 가서
한번도 뒤 안 돌아보리
머리칼 한 오락 안 빠뜨리리
누구에게 말하나 비통에 대해
별은 빛나 적적한데 그대에게?
사랑가
1
여뀌풀처럼 강가 사랑 퍼렇게 자라고
철 지난 멱감고 푸르동동 소름 돋은 아이들은 한 알 오디
따라오지 마 물귀신 어머니 검푸른 입술 새빨간 치마 입고
따라오지 마
아이들 돌아가 배탈 앓고
고추 내놓고 설사하는 뒷간 후미진 곳에
물귀신 어머니 긴 손톱 눈물 글썽글썽
따라오지 마
우리는 푸르청청 하늘에 별빛 귀신 푸르청청 강변에 여뀌풀 귀신
푸르청청 강가에서 어머니 젖줄 찾는 사랑 사랑 사랑 귀신
2
얘들아 얘들아 문 열어라 내가 왔다
차마 못 감은 눈 차마 못 뗀 걸음
무주 허공중에 둥둥둥 떠돌다가 아득한 황천길 목이 메어
에미가 왔다
문 열어라
3
햇빛 보고 자랐소 별빛 먹고 자랐소
산에는 독사풀 강가에 여뀌풀
우리는 다 죽어서 사랑귀신 되었는데
말라붙은 젖가슴 젖은 누굴 주고
비녀는 누굴 주고 머리칼은 천만 갈래
돌아가소 어머니
문설주 마른 등걸 피가 베어도
밥 한입 못 준 엄마 젖 한입 못 준 엄마
기다리다 기다리다 내 살 베어 내 먹었소
푸르청청 하늘엔 별빛도 좋아라
가소 어머니
다시는 오지 마소
여수(麗水)
함바 구들장은 쩔쩔 끓고
순천 석수 정씨는 종일 잠만 잔다
신월동 바닷가 겨울 저녁
광주로 공부 나간 둘째는
끼니나 제대로 찾아먹는가
몸만 상하고
돈은 마음같이 모이질 않고
간조가 아직도 닷새나 남았는데
땡겨먹은 외상값은 쌓여만 간다
바다는 촐랑촐랑 무언가를 졸라대고
개들은 바람을 좇아 컹컹컹 짖고
잠이 깬 정씨가 바다 쪽으로 부스스 괴타리를 푼다
힘없이 오줌이 옆으로 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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