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다낭
지난주에는 travel world라는 작은 여행사를 하고 있는 그곳의 대표와 다낭에 있는 쉐라톤 그랜드에 묵고 왔다. 별 아들이 엄마보다 편하게 소통하고 있는 그녀가 다낭에 있는 특급호텔이 펑크가 나게 생겼는데 버리기는 아까운 곳이라고 하며 연락이 왔다. 손님을 위해 예약된 방이었는데 어떤 이유로 지불한 방값만 고스란히 날아가게 되었다고 한다. 같이 가자고 했을 때 조금은 고민을 했다. 그리고 얼떨결에 ‘네’ 하고 대답을 하고 여행을 따라 나섰다. 주중에 있는 사소한 약속들도 다 펑크내버리기로 했다.
언제부터 페이스북에 그 호텔의 광고가 왜 떴는지는 모르지만, 간다고 대답을 하고 보니 화려한 그곳이 실시간인 듯 자주 눈에 들어 왔다. 저렇게 긴 수영장이 있단말야?
다낭의 쉐라톤 그랜드 호텔에서 4박 5일간 보냈다. 다낭에 와서 호이안에 야간 투어만 나갔다 왔고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호텔에서 보냈다. 긴 수영장이 있고 아침 일출까지 볼 수 있는 근사한 호텔이었다. 수영장 끝에는 모래사장이 있고 바다와 연결되어 있었다. 호텔방에서 수영장이 보이고 베란다에 서면 바다까지 한꺼번에 눈에 들어오는 곳이다.
두 시간 동안 아침을 먹으며 이야기를 하고 긴 수영장을 바라보았다. 야자수 아래 야외 침대에 누워 코코넛을 통으로 마시며 삶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의 소설 같은 긴 인생이야기도 들었다. 물속에서 숨쉬기가 어렵다고 해서 임시 수영강사가 되었지만 능력부족으로 끝내 숨쉬기를 터득하게 하지는 못했다.
삼일째 되는 날은 챙이 넓은 모자를 벗고 수영모자와 수경까지 챙겨 쓰고 도전을 했다. 긴 수영장의 끝까지 헤엄쳐서 가기로 했다. 200m 보다 넘는 듯 했으나 자세한 길이는 찾아보지 못했다. 수영장을 가로로 건널 때는 자유형과 배영으로 놀다가 세로의 긴 수영장은 평형으로 헤엄쳐서 건넜다. 예전 여행 때 보았던 북한과 중국 사이를 흐르던 두만강보다 긴 거리 같았다. 두만강을 바라보며 헤엄쳐서 건널 수 있겠다 했던 기억이 났다. 그리고 그때 중국 쪽에서는 엄청난 철조망을 세우던 기억이 난 것은 긴 수영장의 길이 때문이었다. 수심이 120cm로 일정하니 빠질 염려가 없다는 것도 시도를 하게 된 계기일 것 같다. 중간에 다리가 두개나 있는 수영장을 끝까지 헤엄쳐 갔다. 생각들이 치고 들어올 때는 발을 바닥에 내려 놓고 싶기도 하는 것을 보며 마음 작동을 느꼈다. 생각들을 버리고 오로지 헤엄만을 치며 앞으로 나가니 긴 수영장을 어렵지 않게 건너왔다.
발이 땅에 닿지 않는 것을 아는 순간부터 마음은 겁을 집어먹고 엉뚱하게 두려움을 불러온다는 것도 이제는 안다. 우리의 마음 즉, 에고는 자신의 의지대로 나름 조정해왔던 것을 아는 지금은 그것들의 작동을 바라보는 습관이 생겼다. 항상 내 안의 나를 바라보며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을 보았다. 마음이 나 고유한 나 위에서 군림하는 것을 바라보면 그것들이 꼬리를 내리고 고요해지는 것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모든 것들은 흐르는 대로 따라 흘러가는 것이다. 단지 흘러가는 과정에서 지금 내가 사용하고 있을 뿐, 현재 내가 가지고 있다고 하는 것이 다 내 것이 아님을 안다. 몸에 힘을 빼고 천천히 주위을 바라보면 많은 감사함이 가득찬 것을 알게 된다. 끌림의 알아차림으로 사람들과 만나고 몸이 말하는 것을 들으려 한다.
아침 바닷가를 걸었다. 맨발로 걷는 모랫길에 파도가 다가오며 말을 걸기도 한다. 부서지는 파도가 하얀 말들을 뱉어놓은 것들이 사라질 때 또 다른 언어들이 다가온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폴 발레리의 시 ‘해변의 묘지’와 ‘바다의 묘지’를 설명했던 스페인 시 수업이 생각났다. 야자수 나무 아래 나팔꽃 닮은 메꽃?이 모래위로 기어 나온다. 보라색 나팔꽃이 피어있는 집 앞을 생각나게 하는 사막에 피는 나팔꽃이 모래위로 듬성듬성 땅을 짚고 바다로 뻗어 나오고 있다. 심장의 하트 닮은 잎들 위에 분홍색 나팔꽃이 피어 있다.
태양이 내 몸에 문신을 새기는 동안에 나는 무지개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야자수가 서 있고 바다는 방금 무지개를 탄생시킨 듯 나는 파도의 거품위에 서 있었다.
아침잠이 일찍 깬날 붉게 달아오른 여명을 보고 바다로 달려갔다. 일출을 보고 긴 해변을 걸었다. 그녀는 바다가 건져 올리는 일출을 처음 본다고 했다. 당연히 맨발로 걸었다. 북한산 어씽 대신 바다를 산책했다. 북한산을 맨발로 걷던 발이 상큼하게 파도와 노는 모양을 보는 것도 즐거웠다. 모래밭에 심은 발바닥 나무처럼 성큼성큼 걸었다. 뻗어가는 나팔꽃 줄기처럼 북한산의 기운과 바닷물이 만나는 시간이다.
저녁 어스름에 다시 바닷가로 나가서 파도타기를 했다. 바닷가 모래위에 그녀는 그동안의 아픔을 적듯이 ‘괜찮아’를 적었다. 파도가 달려와 지운다.
‘괜찮아’
파도가 달려와 그녀를 한번 어루만지고 또 지웠다.
첫째 아이 훈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썼던 지우개라는 동시가 생각났다.
파도는 지우개가 되어 글자들을 지웠다.
긴 해변에 발가락으로 쓴 내면의 소리를 파도는 흔적도 없이 지워가고 그녀의 아픔도 씻겨가고 있었다.
나는 언제나 처럼 ‘사랑해’를 적었다.
‘사랑해’
파도가 또 얼른 지우며 걷어가 바다에 풀어 놓았다
사랑이 번지기 시작했다
태평양 대서양 사람들이 붙여준 이름 없이도 모든 바다에 마른 불길보다 빠른 속도로 번지고 있었다. 바다는 전해질 그것들로 만들어진 것들이라 바다가 사랑이 되었다.
사랑을 적은 발가락이 꼬물꼬물 거렸다.
내가 잘 했다며 토닥거려 주었다.
별똥별 하나가 바다로 풍덩하는 것을 순간에 보았다.
사랑이 하늘과 연결되는 순간이었다.
그곳에 가서야 알게 되었다.
이 여행의 그 어떤 이유의 시초는 결국에는 나였음을. 매듭을 만들어준 원인 자리의 단초는 내가 만든 것이었다. 쥘수록 빠른 속도로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는 물, 모래, 사랑은 꽉지면 사라지는 공통점이 있다. 모든 일들에 보이지 않는 끈들로 엮여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이는 가끔씩 패션쇼를 하듯 입고 나와 사진도 찍었다.
나중에 어느 한 순간에 보면 그때에 지금을 그리며 추억하고 있을 거라며 웃었다.
비행기를 타고 가며 공중에서 만들어진 360도 둥근 무지개를 보았다. 물방울 알갱이들이 태양과 만나 조화를 부리고 있었다. 하나의 분리 없이 우리 모두는 연결되어 있다. 반짝이는 사랑에너지가 실핏줄처럼 연결된 하나를 본다. 이 행성의 시작은 그리고 이 삶의 여행도 나였음을 조그맣게 느끼고 알아가며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존재들에 감사함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