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천주교회 기관지인 ‘경향잡지’ 7월 호에 주교회의 의장이시자 제주교구장이신 강우일(베드로) 주교님께서 ‘가톨릭 교회는 왜 사회문제에 관여하는가?’라는 제목으로 글을 연재하셨습니다. 우리 모두가 숙고해야 할 귀한 말씀이라고 생각되어 2회에 걸쳐 요약본을 게재합니다(본당신부 드림).
1. 교회의 존재이유
... 그리스도인이 믿는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과는 아무런 인연을 맺지 않고 초연하게 산야에 묻혀서 명상과 기도와 영신적인 수련에만 몰두하신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나자렛에서 30여년 간을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사시면서, 그 시대의 세상이 차별하고 억압하고 외면하였던 보잘 것 없는 이들의 고통과 슬픔을 온 몸으로 느끼시고, 그들 가운데 함께 계시며,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신 분입니다.
또한 그분께서는 탐욕과 불의와 죄악으로 얼룩지고 억압이 가득한 세상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침묵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불의한 이 세상을 하느님께서 친히 다스리시는 정의로운 세상으로, 압제자의 왕국에서 ‘하느님의 왕국’으로 변화시키려고 복음을 선포하며 도전하시다가 반대자들의 음모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른다는 것은 단순히 내 개인의 마음과 평화, 심리적인 안정을 얻는 것만으로는 너무 부족합니다. 예수님께서 세우신 교회의 일원이 되고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예수님이 사랑하신 이 세상에 포함된 불의와 고통, 슬픔과 연민, 다툼과 평화를 다함게 끌어 안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과 함께 고민하고, 예수님과 함께 참된 의를 실천하고, 예수님과 함께 연민과 수난의 길을 걷는 고달픈 여정입니다... (중략)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결코 영육으로 안락하거나 편안한 인생을 보장받을 수 있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어쩌면 본질적으로 피곤하고 고달픈 삶을 선택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하여, 자신의 현실이 과연 예수님의 제자로서 가야 할 올바른 길에 부합하는지에 대하여 끊임없이 도전을 받기 때문입니다.
이 피곤함과 도전을 마다하면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습니다. 교회를 생각이나 수준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친목을 도모하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서로의 마음을 상하지 않고 평온하게 지내는 인생 ‘동아리’정도로만 이해한다면 그것은 수많은 종교 단체 가운데 하나일 수는 있어도, 더 이상 진실한 그리스도의 교회는 아닙니다... (중략)
그러므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교회의 일원이 된 모든 이는 세상을 향하여 세심한 관심과 배려와 연민으로 다가가고 일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이 비록 오염되고 타락하고 폭력의 도가니라고 해도 이를 도피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그 한복판에서 씨름하며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과 평화를 선포하지 않는다면 그런 교회는 결과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태생적으로 처음부터 세상 속에서 사회적 관심을 갖고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다음 호에 계속합니다).
2010년 8월 1일 천주교 현리성당 주임신부 이태원(시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