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불을 끄고 자거라! 깨어 있는 것은
오직 옛 샘에서 들려오는 물줄기 소리 뿐
내 지붕 아래 손님이 된 사람은
누구든지 이 소리에 익숙해진다
그대가 깊은 꿈에 잠겨 있을 무렵 어쩌면
집 근처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올 것이다
거친 발자국 소리와 샘가에서 자갈 소리가 나고
감미로운 물소리는 뚝 그치나니
그러면 그대는 눈을 뜨게 된다
- 하지만 놀라지 마라!
별들이 모두 땅 위에 떨어지고
나그네 한 사람이 대리석 샘가로 와서
손은 그릇 삼아 물을 받는 것이다
그 사람은 곧 떠나고 물줄기 소리가 다시 들리리니
아 기뻐하여라, 그대는 여기 혼자 있는 게 아니고
별빛 속에 수많은 나그네들이 길을 가며
또 그대에게로 다가오는 사람이 있다
- 한스 카롯사, ‘옛 샘’ 전문
나는 지금 제주의 구 코리아극장에서 하는 프랑스 영화를 좀 늦게 들어가 내용 연결이 안 돼, 슬며시 일어나 그 옆 공간의 탁자 앞에 앉아 있다. 좀 전에 산 윤대녕의 산문집을 다시 펼친다.
‘지난 겨울 나는 차를 몰고 그동안 내가 머물렀던 작업실을 찾아가보았다. 「천지간」을 썼던 성산 일출봉호텔, 「흑백 텔레비젼 꺼짐」을 썼던 협재 스카이호텔, 『달의 지평선』을 신문에 연재할 때 두어 달 머물렀던 대정읍 영락리 바다 앞의 별장, 「찔레꽃 기념관」을 썼던 구엄 바다 앞의 통나무 펜션에도 가 보았다. 「탱자」와 「고래등」을 썼던 한라수목원 아래에 있는 원룸에도 가보았다’. 그가 제주에 머물 때, 어느 모임에서 잠깐 대면했는데, 낯을 좀 가렸다.
그는 이 시를 보고 눈시울이 붉어지고 가슴이 끓어올랐다고 한다. 제주 바다가 회색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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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혼자 있는 게 아니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