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에서 해방과 더불어 우리 민족사에 기록돼야 할 역사적 사실이 있으니 이는 바로 마니산 성화전수의 사적이다.
개천 4403년(1946년) 광복 제1주년기념 축하행사의 일환으로 서울의 세 명산인 남산-북악- 안현(안산)에서 3일간의 봉화제전(烽火祭典)을 거행하였는데 그 불씨는 대종교 총본사에서 전수받아 세 곳의 횃불을 지폈다.
그 당시 광복절 전야 오후 6시에 대종교 총본사 천진전에서 단애 윤세복 종사가 채화(採火)하여 성화 전송단 대표로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손기정(孫基禎)으로 하여금 임시정부 주석 백범 김구 선생에게 전송되어 남산에 마련된 봉화대에 점화되었다.
이를 계기로 이 횃불을 민족 성화로서 보본의 역사성이 깃든 제천단인 마니산 참성단으로 옮겨 전수시키기로 하고 그 해 10월 3일(음력) 개천절을 기해 그날 아침 6시에 대종교 총본사에서 성화 전수식을 거행하고 마라톤선수 함기용(咸基鎔)에 의해 마니산으로 전송되었다.
당시 민정장관인 민세 안재홍이 이를 받아 점화함으로써, 전국민의 축전으로 제천의식을 성대히 봉행하였다. 이로써 보본의식과 숭조(崇祖)의 정신을 앙양하고 민족전통과 정체성 회복에 횃불을 들었건만 반세기가 넘는 오늘날까지 외래사조(外來思潮)에 “얼”을 잃어버린 채 우리민족의 성화전수 내력조차 널리 알려지지 않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오늘날 남북한을 통해서 마니산 참성단처럼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고고학적 유적이 다시 없음을 감안할 때 사적 제136호로 안도한다는 것은 참으로 단제의 후손으로 부끄럽기 한량없다. 국보가 될 수 없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