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경찰2
TV를 돌라다가 바다경찰이라는 프로그램이 보여 잠시 보고 있는 중인데
헐,,완도해양경찰서의 ,해양경찰들의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완도, 노화도, 소안도,,,도대체 얼마 만에 들어보는 섬들인가?
지금 소안도에서 농사일을 하다가 다리 골절상을 당한 환자를 경비정으로 이송 중에 있다.
빙혼은 해양경찰 5X기.
빙혼이 근무할 때는 10개 지구대가 있었는데 요즘은 더 많아졌다고 들었다.
-조난선 구조
-조난자 구조 : 낚시꾼, 전복된 배들의 승선원 등
-불법어로 단속 : 연안의 한국배(고데구리), 중국어선 등
-섬에 사는 환자 이송
-해저 도굴범 단속(특히 신안 칠발도, 임자도 인근 바다)
-밀수, 불법무기 단속 등
환자는 완도로 이송되었고 다시 소방헬기로 목포병원으로 이동한다고 한다.
육지경찰도 고생을 많이 하지만 해양경찰 역시 만만하지가 않다.
빙혼은 250톤=>상황실=>25톤(P정)에서 근무를 하였기에 감회가 새롭다.
제일 기억 남는 것이 무엇일까?
너무나 많아 소설 3권도 나올 정도이다.
*흑산도 앞바다에서 맨손으로 시신을 직접 인양하던 일(소름이 쫘~~~악)
*대한민국 해역을 벗어나 조난선을 구조하던 일
*해저 도굴범을 잡기 위하여 시동도 끄고 일주일 숨어 있다가 기어이 잡았던 일
*해상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되어 목포에서 여수 다시 목포를 지나 인천까지 쫓아갔던 일
*폭풍우 속에서 낚시꾼들을 구조한 뒤 몇 대 쥐어 패던 일
*겨울만 되면 소흑산도 앞바다에서 중국 어선을 쫓아내던 일
*소흑산도 고교 수험생을 태우고 황천 3급의 폭풍우 속을 뚫고 나오던 일
*전복된 어선에서 생존한 어부를 SSU가 구해내면 기쁘고 시신이 나오면 괴롭던 일 등
야간당직을 마치고 나면 바다 위로 붉은 태양이 떠오르는 장관을 바라보는
그 황홀한 기분은 다시는 느낄 수가 없었다.
가사도 앞바다에서 일몰에 돌고래가 황금빛 물결을 따라 춤을 추는 광경 또한
생애 두 번 다시 볼 수 없는 휘황찬란한 장면이었다.
백파가 밀려오는 추운 겨울을 지나 멀리 하의도에 샛노란 유채꽃이 피면
봄이 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봄이 오는 삼학도에서 유달산을 바라보면 붉은 동백꽃이 듬성듬성 보였고
노적봉 뒤로 노란 개나리와 눈처럼 새하얀 벚꽃들이 유달산을 뒤덮었다.
북한의 이웅평 대위가 미그기를 몰고 남하했을 때 비상이 걸려
전쟁이 일어난 줄 알고 바다에 긴급출동 하면서 긴장하던 때도 있었다.
폭풍우 속에서 조난선을 구하려고 출동을 할 때면 배멀미에 시달리는 동료들.
빙혼은 뱃놈 체질이라 피칭(앞뒤 흔들림)은 물론 노링(좌우 흔들림)에도 멀미를 하지 않아
폭풍우속을 뚫고 달릴 때는 빙혼이 타(배의 운전대)를 잡고 달린 적이 많았다.
의아선박이 나타나 긴급출동을 할 때는 해제가 될 때까지 늘 긴장의 연속이었다.
상황실 근무를 할 때는 매월 바뀌는 암호를 외워야 하고 기상을 암호로 함선에 전달한다.
할미꽃당신에 가끔 들리는 토미가 해양경찰 동료이다.
빙혼 함정과 늘 같이 움직이는 함정에 신참으로 왔을 때부터 만났으니
30년도 훨씬 더 된 군대 동료라서 그런지 만날 때마다 늘 반갑기만 하다.
코로나가 안정이 되고 아내가 한국에 오면 제일 먼저 할 일을 정했다.
토미 쉬는 날 만나서 다시 한 번 근무했던 곳을 가보고 싶다.
그래서 아내에게 <장보고의 후예 해양경찰>을 반드시/꼭/필히 자랑하고 싶다.
빙혼이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자부심을 느끼는 것은 시력 불량으로 국방부 퇴짜를 맞았는데
불법(?)으로 기어이 진해훈련소에 들어가 자랑스러운 해양경찰 만기 제대를 했다는 것이다.
그 시절을 생각하면 고생도 무진장 하였지만 흐뭇한 추억이 남아 있어 너무나 보람을 느낀다.
첫댓글 인천에서 군 복무중 지인이 인천 해경으로 근무중이어서
종종 인천 연안부두에 지인을 만나술잔을 기울이던 생각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