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항포를 찾아서>
-2003. 2. 21. 금. 신형호-
너무나 애통해서
하늘이 흘리는 눈물일까?
이따금 촉촉이
이슬비 되어 내리는 빗방울을 바라보며
집결지에 도착하는 동안
안개가 짙게 치장을 하고 있었다.
안타깝고 참담한 심정이야
이루 말할 수 없지만은
대학동문회에서
이미 계획된 일이라
오늘은 남해 고성군에 위치한
당항포로 연수를 가게 되었다.
예정인원보다
절반이나 줄은
소수의 정예를 실은 전세버스가
88고속도로를 접수할 무렵
햇빛은 약간씩 눈을 비비고
뿌우연 커튼 같은 안개를
입김으로 녹여내고 있었다.
500여 년 전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왜적 수십 척을 침몰시킨
당항포대전의 현장인
당항포에 도착하니
눈앞에 펼쳐지는 잔잔한 바다.
아니 바다라기보다는
둥글게 만으로 둘러싸인 이곳은
한 폭의 수채화 같은 호수로
나그네의 가슴에 푹 안긴다.
"석자 되는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과 물이 떨고
한 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강산을 물들인다."
이 글은 당항포 충무공 기념관에서
만난 이순신 장군의
長劍에 새겨진 劍銘이다.
이 장검을 늘 벽에 걸어놓고
자신의 마음을 추스르고
바람 앞의 촛불 같은
나라를 생각하고
한사람의 연약한 인간과
나라의 장수라는 신분에서
한없는 고뇌와 싸우며
몸부림치며
한 시대를 마감했으리라.
바다를 안고 누운
산책로를 100여m 감아 도니
崇忠祠라는 충무공 사당이 나타난다.
눈앞에 탁 트인 바다를 품고
해송으로 둘러싸인
야트마한 언덕에 자리잡은 사당.
그 당시 전쟁터에서
생사를 넘나드는 전투 속에
장군의 호령이 들리는 듯 하다.
바다안개가 꿈틀거리고
꿈을 꾸는 지
자는 지
부서지는 햇살 속에
이따금 이름 모를 새소리만
은은히 귓전을 스친다.
자연사박물관을 지나
자연조각공원도 이색적으로
단장을 해 놓았다.
깔끔하고 산뜻한 해송이
팔을 벌려 반기고
머리 위에서는 까치가 손님을 맞고
온갖 기기묘묘한 바위들의 군상들.
산을 오르는 길가에는
핏빛보다 진한 붉은 동백꽃이
속살을 군데군데 내비치고
꼭대기에는 12地神像이
둥글게 원을 그리고 있더라.
500년 전을 생각하며
모터보트에 몸을 싣고
바닷바람에 모든 것을 날려 버렸다.
짜릿한 겨울바람이
쉴 새없이 마음을 후려치건만
푸르디푸른 바다는
묵묵히 눈을 감은 선비와 같이
하얗게 펼쳐지고
첩첩이 둘러싸인 섬 봉우리들을
어루만지고 있더라.
썰물로 조금씩 밀려나간
갯벌에는 따닥따닥 밀집한
따개비와 굴들이 와글거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눈에 담으면서
돌아오는 차창에 기대니
해는 뉘엿뉘엿 저물어 가더라.
<강 안개 오는 밤에>
-2003. 2. 22. 토. 백장미-
갑작스레 오른 기온으로
한낮은 훈풍이더니
산처럼 쌓인 눈이 녹으면
홍수가 난다고
길 막은 밤엔 눈 실어
바다로 가는 행렬 소리에
잠을 설치는데
비가 오기 시작하는
야속한 이 밤엔
강바닥에서 슬슬 밤안개가 피고
한 치 앞은커녕
전혀 보이지 않는 강을 따라
물은 넘치고 마음은 분주해
눈오는 날 기어오고
비오는 밤 기어가며
안개 낀 밤 미물이 되어 간다.
달은 흔적도 없고
청명한 낮은 오해였는지
밤이 울고 있는데
밤새도록 퍼부을 양이
지독한 눈 못지 않다니
내일은
홍수주의보에
피난 갈 사람 많아
슈퍼는 또 만원이겠다.
대구는
울고 싶어 울고
여긴 왜 울어야 하는지
알지 못한 하늘의 눈물이
주님의 실수를 자책하심일까?
여전히
좁은 통로 같은
굴을 뚫고 들어 온 차고엔
오들오들 부삽이 떨고 있다.
낙숫물 떨어지는
밤비 소리에
오늘밤엔
잠이라도 제대로 오려는지
공연한 걱정이 밀려온다.
눈뜨는 내일이면
산더미 같은 눈은
기적처럼 사라지고
쏟아 붓는 비 지나 간 후
소금 바닥이나 말끔 하고
군데군데 패인
상처 난 겨울 메우는 소리나
아픈 듯 들었으면 좋겠다.
강 안개가
덮치듯 동리를 감싸니
아무래도
알라딘의 지니가 피어올라
뭔가 대단하고 신나는 일을
만들어 줄 것도 같아
연신 창 밖을 본다.
가로등은 처연하고
내 마당은 하얀 보자기라
지니에게 주문 외워
초록빛이 되게
명령이라도 하고 자야겠다.
강바닥에선
우는소리
달래는소리
협주곡처럼 귓전을 때려
지휘라도 해야 할까
고민하며 창을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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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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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25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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