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6:1-15
찬송가: 3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자기 민족을 향한 예레미야의 외침(1-5)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멸망이 갑자기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살전 5:3) 하나님이 없는 거짓 평안, 거짓 안전. 많은 사람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말하는 그때가 어쩌면 가장 위험한 순간일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경고를 듣고도 괜찮다고 여기는 ‘안일함,’ 그것을 위기로 인식하지 못하는 ‘영적 무감각’이 그들 가운데 깊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때, 죄악으로 가득한 세대를 향한 사도 바울의 이 선언은 결코 새로운 메시지가 아닙니다. 이미 오래전,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 먼저 선포되었습니다. 본문 1절입니다.
(1) 베냐민 자손들아 예루살렘 가운데로부터 피난하라 드고아에서 나팔을 불고 벧학게렘에서 깃발을 들라 재앙과 큰 파멸이 북방에서 엿보아 옴이니라
심판의 대상을 본문은 이렇게 부릅니다. “베냐민 자손들아.” 베냐민 지파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 중 비교적 작은 규모에 속했지만, 그 영향력은 작지 않았습니다. 성전이 위치한 예루살렘 가까이에서 하나님을 예배했던 지파, 왕정시대, 이스라엘의 초대왕 사울을 배출한 지파, 그들이 바로 베냐민 지파였습니다. 오죽하면 당시 예루살렘 성문 중 하나가 ‘베냐민의 문’이었겠습니까(렘 37:13). 그렇게 하나님의 곁에 가까이 있었던 그들, 그들이 이제 하나님을 멀리하고,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 성전을 더럽히며, 그곳에 자기를 위한 우상을 만들고 그 우상을 주인으로 삼았습니다. 그것이 죄라는 것을 몰라서가 아니라, 알면서도 그렇게 행하였습니다.
그들을 포함한 예루살렘 전체를 향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재앙과 큰 파멸이 북방에서 엿보아 옴이니라.” 이는 북방의 ‘바벨론’을 도구 삼아 그들 모두를 심판하겠다는 하나님의 선언입니다. 이제 곧 임박한 하나님의 심판, 그런데 지금 그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는 전달자가 누구입니까? 그 역시도 베냐민 사람, 선지자 예레미야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레미야서를 읽으며, 이 글을 기록한 그의 마음도 함께 읽어 내려갈 필요가 있습니다. 자기 민족의 범죄와 타락을 누구보다 안타까워하고 슬퍼하는 예레미야의 심정, 그리고 그 심정 너머에 있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 이는 마치 자녀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그 잘못을 엄히 질책하고 징계하는 부모의 마음과도 같은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심판은 단순한 분노의 표출이 아니라, 언약을 무참히 깨뜨린 자기 백성을 향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본문 2절입니다.
(2) 아름답고 우아한 시온의 딸을 내가 멸절하리니
새번역성경은 이 구절을 이렇게 번역합니다. “딸 시온은 아름답고 곱게 자랐으나, 이제 내가 멸망시키겠다.” 하나님이 친히 양육자가 되셔서 그들을 곱고 아름답게 키우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자녀를 자신의 손으로 직접 멸망시키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랑으로 길러진 존재가 심판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이 역설적인 상황 속에서, 심판의 순간은 더욱 그들 곁으로 가까이 다가옵니다. 본문 3-5절입니다.
(3-5) 목자들이 그 양 떼를 몰고 와서 주위에 자기 장막을 치고 각기 그 처소에서 먹이리로다 너희는 그를 칠 준비를 하라 일어나라 우리가 정오에 올라가자 아하 아깝다 날이 기울어 저녁 그늘이 길었구나 일어나라 우리가 밤에 올라가서 그 요새들을 헐자 하도다
본문은 북방의 군대, 곧 바벨론이 예루살렘으로 쳐들어오는 장면을 목자들이 양 떼를 몰고 오는 모습으로 비유합니다. 이는 예루살렘을 침략하는 일이 마치 목자가 양들을 몰고 와 풀을 뜯게 하는 것과 같은 지극히 평범한 일이라는 것을 보여주며, 예루살렘이라는 존재가 그들에게는 그저 쉬운 먹잇감에 불과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일이 사람이 아닌 하나님의 계획과 의지 가운데 하나씩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전쟁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 그래서 이어지는 본문은 하나님을 ‘만군의 여호와,’ 바로 군대의 하나님으로 부릅니다. 그 하나님께서 또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본문 6-8절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6-12)
(6-8)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하노라 너희는 나무를 베어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목책을 만들라 이는 벌 받을 성이라 그 중에는 오직 포학한 것뿐이니라 샘이 그 물을 솟구쳐냄 같이 그가 그 악을 드러내니 폭력과 탈취가 거기에서 들리며 질병과 살상이 내 앞에 계속하느니라 예루살렘아 너는 훈계를 받으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 마음이 너를 싫어하고 너를 황폐하게 하여 주민이 없는 땅으로 만들리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직접 북방의 군대를 지휘하십니다. “너희는 나무를 베어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목책을 만들라,” 여기서 ‘목책’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סֹלְלָה(sōlelāh)는 성벽을 공격하기 위해 높이 쌓아 올린 전쟁용 토성을 가리킵니다. 여기에는 죄악 된 그 도시를 반드시 무너뜨리겠다는 하나님의 강한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계속해서 하나님은 경고하십니다. “너는 훈계를 받으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 마음이 너를 싫어하고 너를 황폐하게 하여 주민이 없는 땅으로 만들리라,” 이것은 심판 중에 주어지는 마지막 기회입니다. 또 기회를 주셨다는 것은 심판의 목적이 진멸이 아니라, 회개 곧 그들의 돌이킴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끝내 이 모든 경고를 외면한다면, 결과는 자명합니다. 하나님이 떠난 도성은 멸망하게 되고, 결국 황폐한 땅이 되고 마는 것이죠. 만군의 여호와께서 또다시 말씀하십니다. 본문 9-10절입니다.
(9-10)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포도를 따듯이 그들이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말갛게 주우리라 너는 포도 따는 자처럼 네 손을 광주리에 자주자주 놀리라 하시나니 내가 누구에게 말하며 누구에게 경책하여 듣게 할꼬 보라 그 귀가 할례를 받지 못하였으므로 듣지 못하는도다 보라 여호와의 말씀을 그들이 자신들에게 욕으로 여기고 이를 즐겨 하지 아니하니
이번에는 하나님의 심판을 포도를 수확하는 일에 비유합니다. 그러나 이 모습은 일반적인 형태의 수확은 아닙니다. “말갛게 주으리라,” 단 하나의 포도알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거두어 가는 것, 즉 완전한 멸망을 의미합니다. 철저한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그들은 알아 듣지 못합니다. 깨닫지 못합니다. “그 귀가 할례를 받지 못하였으므로,”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합니다. “말씀을 자신들에게 욕으로 여기고,” 심지어 그 말씀을 비웃고 조롱하기까지 합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극렬히 분노하십니다. 본문 11-12절입니다.
(11-12) 그러므로 여호와의 분노가 내게 가득하여 참기 어렵도다 그것을 거리에 있는 아이들과 모인 청년들에게 부으리니 남편과 아내와 나이 든 사람과 늙은이가 다 잡히리로다 내가 그 땅 주민에게 내 손을 펼 것인즉 그들의 집과 밭과 아내가 타인의 소유로 이전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제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참지 않으십니다. 그 분노가 더는 억누를 수 없는 상태에 이른 것입니다. 하나님의 분노는 특정 사람이나 일부 계층에만 머무르지 않고, 거리에 있는 아이들과 청년들, 결혼한 남자와 여자, 나이 든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든 세대를 향해 쏟아집니다. 그 냉엄한 심판 앞에 누구도 예외일 수 없고, 어느 한 세대도 비껴갈 수 없습니다. “내 손을 펼 것인즉,” ‘하나님의 펴신 손,’ 지난날 자신의 손을 펴사 언약 백성에게 복을 주셨던 하나님. 그 하나님께서 동일한 손으로 이제 범죄 한 예루살렘의 소유를 빼앗아 버리십니다. 그리고 그 소유를 다른 민족에게 넘겨버리십니다. 이만하면 죄에서 돌이킬 만도 한데, 이만하면 하나님께로 돌아올 법도 한데, 예루살렘은 패망의 끝을 향해 더욱 빠르게 달려 나갑니다. 본문 13-14절입니다.
부끄러움을 상실한 예루살렘(13-15)
(13-14) 이는 그들이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탐욕을 부리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함이라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가볍게 여기면서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선 그들이 선택한 것은 회개가 아닌 거짓과 탐욕이었습니다.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공동체 전체가 병들어 버린 것입니다. 특별히 선지자와 제사장, 즉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들이 앞장서 거짓을 주도하는 모습은 예루살렘의 타락이 얼마나 심각한 상태에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말씀을 맡은 자들은 언제나 그 말씀 앞에서 정직하고 진실해야 합니다. 가감 없이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말씀만을 전해야 합니다. 그러나 당시 예루살렘의 선지자와 제사장은 어떠했습니까?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그들은 멸망 직전에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 평강을 말하고, 현실을 왜곡하여 백성들을 오판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 사람들이 듣기 좋아하는 말만 늘어놓습니다.
무엇보다 그 백성이 ‘내 백성,’ 곧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한다면, 저들의 죄와 책임은 더욱 크고 무겁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한 개인의 실수나 일탈로 끝나지 않고, 백성 전체를 잘못된 길, 죄악의 길로 이끄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백성들에게서 부끄러움이 사라졌습니다. 죄를 짓고도 그것이 죄인지 모르는 상태, 잘못된 일을 행하면서도 전혀 마음에 찔림이 없는 상태, 바로 ‘영적 무감각’에 빠져버린 것입니다. 이어지는 본문 15절입니다.
(15) 그들이 가증한 일을 행할 때에 부끄러워하였느냐 아니라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을 뿐 아니라 얼굴도 붉어지지 않았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엎드러지는 자와 함께 엎드러질 것이라 내가 그들을 벌하리니 그 때에 그들이 거꾸러지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들은 가증한 일, 즉 역겨운 일을 행했습니다. 그런데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얼굴조차 붉어지지 않았다는 말은 죄에 대한 감각 자체가 마비되어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졌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죄로 가득한 인간의 마음은 마치 딱딱하게 굳어버린 돌과 같습니다(겔 36:26). 오늘 본문을 한번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수없이 말씀하셨는데, 단 한 번도 그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고, 그렇게 수많은 기회를 주셨는데, 단 한 번도 하나님을 선택하지 않았던 그들, 그런데 어쩌면 그런 예루살렘의 모습이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은 아닌지요? 지금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선명하게 들을 수 있는 영적인 귀를 여는 것과 그 말씀에 기꺼이 순종할 수 있는 공경의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말씀에 비추어 자신을 돌아보는 일보다, 늘 더 큰 은혜를 찾고 구하곤 합니다. 한국교회의 많은 성도님들이 은혜 받기를 참 좋아합니다. 그래서 종종 이렇게 서로 인사를 건네기도 합니다. “은혜 많이 받으세요.” 조금 전 우리가 불렀던 찬송가 3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의 원래 제목은 놀라운 은혜, “Amazing Grace”입니다. 이 찬양의 가사처럼 주님의 은혜가 나에게 진정 놀랍고, 고맙기 위해서는 먼저 이 고백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큰 죄악에서 건지신.” 은혜는 나의 죄인 됨을 철저히 인정하는 그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욕심과 욕망의 신을 벗고, 하나님과 정직하게 대면해야 합니다. 그분께 나의 죄인 됨을, 나의 부끄러움을 진실하게 고백해야 합니다. 그럴 때 내 삶의 은혜는 깊어지고, 부끄러움을 아는 그 마음 위에 주님의 은혜는 충만하게 임할 것입니다. 그렇게 더 깊은 은혜의 자리로, 더 충만한 은혜의 자리로, 날마다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죄인 된 나를 구원하신 주님의 은혜가 어찌 그리 크고 놀라운지요. 어찌 그리 고마운지요. 이 시간 정직함과 진실함으로 다시 주님 앞에 섭니다. 겸손히 거룩하신 주님의 얼굴을 마주합니다. 혹여나 여전히 죄된 자리에 머물러 있다면, 속히 돌이키게 하여 주시고, 우리가 주님 앞에서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는 부끄러운 존재였음을 기억하며, 감사함으로 오늘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이 시간 주신 말씀 붙들고 오늘 하루를 살아갑니다. 우리의 시선과 인생의 방향이 세상을 향하지 않고, 오직 주님만을 향하여 우리에게 주신 그 은혜를 충만하게 누리며, 많은 사람들에게 흘려보낼 수 있는 은혜의 통로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묵상을 돕는 질문
1. 하나님이 없이도 “평안하다 안전하다”라고 여기는 내 삶의 영역은 어디인가요?
2.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아무렇지 않게 흘려보내거나 불순종했던 일이 있나요?
3. 하나님 앞에서 나의 죄인 됨과 부끄러움을 얼마나 솔직하게 인정하고 있나요?
4.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오늘날 내 삶 속에서 순종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작성: 이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