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31편은 다윗의 시로서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입니다. 다윗은 성전에 올라가는 심정을 젖 뗀 아이에 비유하였습니다. 2절에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고 하였습니다. 젖을 떼었다는 것을 젖을 먹었다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은 시편63편에서 “골수와 기름진 것을 먹음과 같이 나의 영혼이 만족한다”(5)고 하였고, 131편에서는 젖을 먹음과 같이 만족한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최고 만족의 상태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최고의 만족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특히 다윗이 이러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욕심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1절에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왕으로서 못할 일이 없었고 크고 많은 일을 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러한 욕심이 없었습니다. 오직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이 가득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18:3)고 하셨습니다. 또한 세베대의 어머니가 두 아들을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해 달라고 요구하였을 때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리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마20:25-27)고 하셨습니다. 다윗은 왕으로서 임의로 주관하고 권세를 부렸던 것이 아니라 어린아이가 젖을 사모함 같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였습니다.
베드로가 말하기를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가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벧전2:1)고 하였습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첫째, 교만한 마음을 버리고 낮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1절에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20:28)고 하였습니다. 사도바울은 “서로 마음을 같이 하여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체 하지 말라”(롬12;16)고 하였고, 베드로는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벧전5:6)고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였지만 예루살렘 교회를 섬겼습니다.
둘째,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1 절에 “내가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은 왕이 되면 큰 업적을 남기려고 노력을 합니다. 그러다 보면 국가의 재정이 바닥나고 민심이 돌아 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러한 욕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사도바울은 디모데에게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딤전6:7,8)고 하였습니다.
셋째, 신령한 젖을 사모해야 합니다.
3절에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라고 하였는데 어린아이가 젖을 사모함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할 때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됩니다(벧전2:2).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