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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유람遊覽
남 상 기
2021년 5월 17일 춘향의 역사가 깃들인 예향 남원을 찾았다. 언젠가는 한번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이루어 진 것이다. 2시간 반이면 갈 수 있는 거리지만 왜 그것이 어려웠는지 후회스럽기도 했다. 이번에 남원을 찾은 것은 겸사겸사다. 오래전부터 광한루廣寒樓, 만인의총萬人義塚등 역사의 숨결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있었고, 때마침 5월 18일 춘향제에 참가해 달라는 초청장을 받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춘향제 초청장을 받은 연유는 내가 무슨 심사위원 자격이 있는 사람도 아니고 집사람 때문이다. 2019년도 남원춘향제 시니어 모델(60세이상) 전국선발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것이 계기다. 작년에 ‘대상왕관’을 물려주어야 했으나 코로나19 때문에 연기되어 금년(2021) 5월 18일 춘향제에서 왕관을 후임자에게 물려 주어야 하기 때문이 었다. 주최측에서 특별히 배려하여 남원에서 제일가는 명품 한옥호텔인 ‘남원예촌南原藝村’에 무료숙박 초대권까지 배려해 주어 마누라 덕에 호강을 한 셈이다. 2019년 결선 춘향전에는 나는 참석하지 못했다. 나는 참가하는줄도 몰랐다. 내가알면 반대할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남해 1박여행을 갔다온다고 하고 남원춘향제에 참가한 것이었다. 주위의 모임회원들에게 떠밀려 억지로 참가했다고 했다. 몇 년전 부산에서 두 단체가 시니어모델 대회가 있었을 때는 나도 참가한적이 있고 두 번다 결선에서 상을 받은 적은 있지만 전북 남원춘향제에서 그것도 전국시도 대표들이 모인 선발대회에서 ‘대상’을 받아왔으니 가상嘉祥하기도 했다. 그러니 이번에는 내가 체면상 안갈수 없었다. 이번에 같이안가면 구박당할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한옥호텔인 ‘난원예촌南原藝村’은 5년전인 1916년에 남원시가 광한루원廣寒樓苑 북문쪽에위치한 대규모 문화시설단지였다. 최기영 대목장과 장인들의 손길이 더해진 전통한옥 체험관(한옥호텔)외에 조갑녀명무관, 관서당, 예루원, ‘안숙선명창의 여정’등 문화체험시설등이 잘정비되어 있었다. 우선 호텔에 체크인 하고 바로 인접한 광한루원廣寒樓苑관광에 나섰다. 광한루원은 춘향과 이몽령의 사랑이야기 ‘춘향전’의 배경지로 신선이 사는 이상향을 지상에 건설한 조선시대 대표적인 정원이다. 특히 ‘광한루廣寒樓’는 우리나라 4대누각인 밀양 영남루嶺南樓,진주 촉석루矗石樓, 평양 부벽루浮碧樓, 남원 광한루廣寒樓)중 가장아름다운 전통누각중 하나로 광한루를 중심으로 천상의 은하수를 상징하는 호수와 호수를 가로지르는 ‘오작교烏鵲橋’와 ‘삼신산三神山’인 영주산瀛洲山(한라산), 봉래산蓬萊山(금강산). 방장산方丈山(지리산)을 상징하는 세 개의 작은섬들을 호수에 조성했다. 섬들은 목책다리로 연결되어 있고 영주산섬에는 사각정四角亭의 영주각, 방장산섬에는 육각정六角亭의 방장정을 조성했다. 방장정에 앉아 광한루를 바라보는 기분은 과히 신선이된 기분이다. 삼신산의 3섬은 대나무숲으로 조성되어 춘향의 일편단심을 표현한듯하다.
현 광한루건물은 383년의 역사를 품고 있다. 광한루는 본래 조선초에 지어진 건물이다. 1419년 남원으로 유배온 세종때 명재상 황희가 현재보다 규모가 작은 광한루를 건립했다. 당시의 이름은 광통루廣通樓였다. 1434년 중건의 과정을 거쳤는데, 정인지가 ‘광한청허부廣寒淸虛府’라 칭한 후 ‘광한루廣寒樓’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광한청허부는 달나라의 옥황상제가 사는 궁전을 뜻한다. 1597년 정유재란으로 남원성이 왜병에 함락되면서 광한루도 전소全燒되었으나 1638년(인조16) 남원부사 신감이 재건했다. 광한루는 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이루어지고 1층은 돌기둥과 원목기둥 30개가 받쳐주는 팔작지붕형태의 건물로 보물 제281호로 지정되어 있다. 정원인 광한루원은 명승 제33호로 지정되어 매우아름다운 정원이다. 넓이는 6만9795m2로 2만천평이 넘는다고 한다. 평지인 광한루원은 수령400년이 넘는 팽나무등 고목古木들이 듬성듬성 역사를 지키고 서있고 푸른잔디 정원에는 완월정玩月亭, 춘향의 어머니 월매집, 춘향사당등의 볼거리들로 조성되었다. 나는 이광한루원에 매료되어 다음날 아침산책을 나와 두번이나 사방을 둘러보았다. 남원이 이런 아름다운 정원을 가졌다는건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몽룡이 과거시험보러 한양에 올라간 사이 남원에는 신관 변사또가 지배했다. 그는 수청守廳을 거절하는 춘향을 감옥에 가두고 괴롭혔다.
마침 변사또의 생신날 잔치를 베풀고 춘향을 포박하여 관아 마당에 끌고 나왔다. 수청을 거절한죄로 고문을 당하고 주리가 틀리는 와중에도 그는 수청을 거절했다. 그는 일편단심으로 죽음을 각오하고 있었다. 잔치에는 탐관오리貪官汚吏들과 간신배들이다모였다. 때마침 다 떨어진 허름한 옷차림을한 거지 한명이 잔치에 참가하게 된다. 마루에 앉지도 못하고 양반들이 벗어놓은 신발춧담에 걸쳐앉아 막걸리 한사발을 얻어 마시고 칠언절구七言絶句 시한수를 쓴다. 잔치는 절정에 오르고 모두들 술에 만취상태다. 거지 시한수에 머리에 먹물이 들고 눈치빠른 놈들은 줄행낭을 치고 눈치가 늦은 놈들은 부엌, 변소, 마구간, 마루밑에 숨기도 한다. 잔치에 모인 화객들은 혼비백산했다. 암행어사출두를 짐작했다. ‘암행어사출두는 산천초목이 뜬다’라는 말이 있지 않는가. 변사또는 술에취해 눈치채지 못했다. 이몽룡의 칠언절구 시詩가 어떤시 였길래 화객들이 혼비백산魂飛魄散 했을까!
이몽룡(암행어사) 시
금준미주는 천인혈 金樽美酒 千人血(금술독안에 담겨있는 맛나는 술은 천사람의 피요)
옥반가효는 만성고 玉盤佳肴 萬性膏(옥쟁반에 맛나가는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이요)
촉루낙시에 민루낙 燭淚落時 民淚落(촛불물이 떨어지는 때에 백성의 눈물이 떨어지고)
가성고처에 만성고 歌聲高處 怨性高(노래소리 높은곳에 만백성의 원성이 높도다)
이시를 쓰고난후 이몽룡은 잠시 잠적했다가 암행어사 복장으로 다시 나타났다. 포졸 수백명들은 불시에 변사또 관아를 포위하고 이 잔치의 주체인 변사또를 비롯한 탐관오리들과 간신배 모두체포했다는 줄거리다. 춘향전은 숙종때 나온 소설로 작자 미상이다. 당시에 발표된 옛시조도 작자미상의 명시가 많았다. 보복이 두려워 이름을 못밝힌 것이다. 중식은 호텔건너편에 위치한 종가宗家라는 규모가 큰 한옥식당에서 보리굴비로 식사를 했다. 박정희 대통령과 함께한 남원주민사진과 박대통령 청와대 정원 가족사진이 걸려있었다. 어쩐지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한옥식당은 옛날에는 남원에서 이름난 한옥호텔이 었는데 박대통령이 하룻밤 묵어갔다는 소중한 인연이 있다고 주인 아줌마의 설명이다. 다음날 중식은 남원에서 가장유명하다는 남원추어탕을 맛보았다.
18일 오늘은 춘향제가 1시부터-4까지 행사시간이 잡혀있어 나는 우선 아침일찍 광한루원을 가로질러 요천蓼川에서 가장아름답고 남원시민들이 보름달구경으로 유명한 승월교昇月橋를 넘어 춘향테마파크로 걸음을 재촉했다. 승월교는 무지개를 연상하는 반달형 다리로 보름달이 떠오르면 하늘에는 보름달이 다리밑 요천에는 물속의 달을 감상할수 있는 아름다운 다리다. 요천은 남원의 젖줄이며 남쪽으로 섬진강과 연결되어 있다. 춘향테마파크공원은 요천의 동쪽산비탈에 조성된 관광단지로 볼거리들이 많았다. 춘향전을 모티브로 조성된 관광지로 임권택 감독의 명화 ‘춘향전과 드라마 쾌걸춘향” 촬영지로 유명한 곳이다. 만남의 장, 맹약의 장, 사랑의 장, 이별의 장, 시련의 장, 축제의 장 등 5개의 마당으로 춘향의 일대기를 재현하고 있으며 이곳에는 향토박물관, 심수관 도예전시관 등이 잘조성되어 있었다. 그 외도 많은 볼거리들이 있었으나 시간관계로 다 둘러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다음은 “만인의총萬人義塚“을 관람하고 참배했다. 만인의총은 정유재란(1597)당시 남원성 전투에서 왜군과 맞서 싸우다가 순절한 민.관.군 1만명의사들의 충혼을 모신곳으로 호국의 얼이 서려있는 성스러운 곳이다. 매년 9월 26일 ’만인의사萬人義士순의제향殉義祭享‘을 지내며 선조들의 숭고한 뜻은 기리고 있는곳이다. 임진왜란(1592)당시 이순신장군과 진주성의 김시민장군 김성일 이광악 최경희장군과 의병장 곽재우장군등의 격렬한 저항으로 왜병들의 호남지방 진격은 차단되었다. 호남점령의 실패가 전쟁의 패인이라 판단한 왜군은 1597년(정유재란)에 11만대군으로 전라도를 침공하고 우군은 전주성을 좌군(5만6천명)은 남원성을 공격하였다. 조정에서는 남원성을 사수하기 위하여 전라병마사 이복남 장군이 이끄는 1천여명의 군사와 명나라 부총병 양원의 3천명병사로 하여금 남원성을 지키게 했다. 왜적은 1597년 8월 12일 남원에 당도하여 성을 겹겹이 포위하고 13일부터 16일밤까지 치열한 전투를 벌였으나 중과부적으로 성민 6천명을 호함한 1만여 의사들은 혈전분투血戰奮鬪하다가 장렬하게 모두 순절하였다. 전쟁이 끝난 뒤 피난에서 돌아온 성민들이 시신을 한 무덤에 합장合葬하여 모시고 1612년(광해군4년)에 사당을 건립하여 전라병마사 이복남 등 7충신을 모셨으며 1653년(효종4년)에는 충렬사액이 있었고 1675년(숙종원년)에 남원역뒤로 이건한뒤 1836년(헌종2년) 오흥업을 추배하여 8충신이 되었다. 그러다 1871년(고종8년) 사우 훼철령毁撤令에 의거 사당이 철패되어 제단을 설치하고 춘추로 향사享祀하여 왔다. 그러나 일제가 재단을 파괴.재산을 압수하고 제사마져 금하였다. 그러다 광복과 더불어 다시 사당을 세우고 제사를 모셔오다가 1963년 (고) 박정희 대통령이 만인의총(구 남원역)을 방문하여 허술한 묘역을 보고 이장을 검토하도록 지시하여 1964년 현위치에 이장 확장하고 재조성되었다. 1981년 사적 제272호로 재지정되었다. 호국성현 유적정화사업의 일환으로 충렬사. 내. 외삼문, 기념관, 관리사무, 순의탑殉義塔, 등이 포함된 성역화 확충사염을 실시하였다. 부산충렬사와는 비교가 안될정도로 넓은 면적에 건물들이 잘조성되었고 특히 3개의 수직기둥과 상단부에 불꽃으로 형상화한 15.7m의 순의탑殉義塔이 눈길을 끌었다. 전체면적은 10만 866m2로 3만평이 넘는다. 고 박정희 대통령의 애국,충혼,호국의정신을 이곳 남원에서도 다시 보게되었다. 2016년 05월부터 문화재청이 관리하고 있다.
18일 오후 1시부터 4시까지 이곳 남원출신 ’안숙선명창의 여정‘ 한옥정원에서 개막된 춘향제는 전국각지에서 모인 16명의 결선선발미인들이 참가했다. 다양한 색깔의 전통한복이 무대를 아름답게 장식했다. 대회는 남원시장과 의회의장의 축사로 시작되었다. KBS아나운서 사회로 시작된 대회는 KBS드라마 작가 심사위원장의 심사기준설명에 이어 개별스피치. 장기자랑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진행되었고 특히 중간중간 남원출신 국악명창들이 등장하여 춘향의 사랑가, 심청가등 국악의 진수를 직접듣는 기회도 가졌다. 다양한 레파토리로 관중들의 환호와 박수를 받았다. 코로나19로 엄격히 규제하여 관중은 99명초청으로 제한되었으나 분위기는 대성황이 었다. 이날 금년(2021) 시니어춘향 대상에는 전주출신이 영광의 자리를 차지했다. 마지막으로 대상왕관 전달순서가 되어 전임자(2019)인 집사람이 무대에 올라 손을 흔들며 무대를 한바퀴도는 석별의 분위기를 연출하고 왕관을 신임자에게 전달했다. 관중들의 많은 박수를 받았다. 마지막 인사말에 남편과 함께부산에서 왔다는 말에 나도 졸지에 소개되어 무대와 관중들에게 인사로 보답했다. 많은 박수를 받았다. 감격스런 순간들이 었다. 마누라 덕에 춘향전에 참가하여 박수까지 받았다는 글을 쓰고 보니 마누라 팔불출이 된것같다. 남원이 예술의 도시이고 국악의 도시이고 순국선열의 도시인 것을 새삼깨닫는 기회가 되었다. 19일 코로나 2차접종약속으로 부산으로 되돌아 왔지만 다음기회에 꼭한번 더 남원을 방문하여 못다한 유람을 하고 싶다. 남원이 이렇게 아름다운 도시인 것을 미쳐몰랐다. 남원은 농촌도시지만 동남부지역은 지리산국립공원 일부인 산내면의실상사 뱀사골 삼도봉분기점에서 서북쪽이 남원시, 서남쪽이 구례군, 동남쪽이 하동군이다. 반야봉(1,732m) 만복대(1,433) 정령치(1,172m) 제2고리봉(1,305m) 세걸산(1,220m) 바래봉(1,186m) 일대가 남원시로 편입되어 있다. 젊은시절 지리산에 매료되어 젊음을 불태웠던 영봉들이다. 남원은 인구는 8만명을 조금넘는 소도시이나 면적은 752.20km2(부산광역시면적과 비슷)이고 1개읍과 15개면을 소유한 거대한 시市라는것도 처음알게되었다. 이번 남원유람에 교통편을 마련해주시고 시종 자리를 함께해주신 ㈜대정 임영택회장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2021.05.19
첫댓글 남 회장님의 남원 유람기를 너무 늦게 읽었습니다.
사모님께서 시니어 메이퀸에 뽑혔셨다니 가문에 큰 영광이며
우리 부산의 인물이셨군요.
평소 삼락에서 가끔씩 뵙올 때 마다 인품이 훌륭하시고 따뜻하신 모습에서
보통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만
오늘 이렇게 좋은 글을 읽고 보니 남회장님의 사모님께서 더욱더 아름다우신 모습이 상상 됩니다.
늦었지만 축하의 박수를 보내 드립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