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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IMF
11월도 말로 접어들면서, 정부가 IMF에 구제 금융을 공식적으로 신청한다는 발표를 했다.
인야는 그게 무슨 소린가 했다.
'그렇게 되면 경제가 풀린다는 말인가?'할 정도로 그 단어의 뜻조차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던 것인데.
12월에 있을 그룹전에 낼 작업을 하느라 인야는 여전히 바쁘긴 했는데, 일기마저 쓰지 못하고 있었다.
누님 집에 기생하고 있던 인야는, 또 그 상황에 익숙해져가는 것은 물론... 자신의 분수도 모른 채 나태해져 가고 있었던 것이다.
언제 11월이 다 지나갔는지 모르고 있었는데, 어느덧 11월의 마지막 밤이었다.
그 말은, 언제 가을이 다 갔는지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고, 어느새 겨울이 와 있었다는 말이었다.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11월을, 12월 그룹전에 낼 새로운 재료의 작업을 하느라, 그리고 한 출판사로부터 연락을 받아 멕시코 벽화 책 출판 문제를 조율하느라 신경이 곤두서... 세상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른 채 어수선하게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아쉬움이 남지 않을 수 없었지만, 그래도 그즈음엔 전시와 책 출판 같은 긍정적인 생각으로 정신없이 보내다 보니... 스스로 생각해도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날이 제법 쌀쌀했다. 눈이 왔어도 벌써 왔어야 할 시절이 돼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겨울이 된 것 같은데, 세상은 IMF라 나라의 경제는 곤두박질쳐 내려갔다고 하는데... 모두들 김장을 하고, 어느덧 교회의 종루엔 크리스마스 장식도 붙이고 있었다.
그렇지만 돌아가는 꼴을 보니, 인야 자신의 독일행도 더 힘들어질 게 분명했다.
지난 일곱 번째 개인전에 발목이 잡혀 늦춰진 독일행이, 지금도 또 다른 그룹전에 정신을 팔려 세월 가는 줄조차 모르고 있으니... 인야는 굶어 죽어도 전시는 할 모양이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전시가 무슨 효용일까 하는 우려가 없지는 않았다.
하루는 날이 더 추워져 작업실에서 조금 일찍 돌아왔는데, 편지가 두 통 와 있었다.
하나는 바르셀로나의 라울이었고, 다른 하나는 미국 시애틀의 H에게서 온 것이었다.
저녁을 먹자마자 멕시코 벽화 책 작업 원고 재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이미 몇 개월 전에 이 정도면 되겠지 하고 마감하면서 전시회 등으로 뒷전으로 밀려 중단됐던 원고였는데, 출판사에서 보다 심도 있는 원고를 요구해 와... 다시 한 번 짚어봐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 역시 쉽지만은 않을 것 같아서 걱정이었다.
IMF.
그 단어로만 보면 국제 통화 기금일 것이었다. 인야도 어렴풋하게 고등학교 시절에 배웠던 기억은 났다. IBRD 같은 단어처럼.
그렇지만 사실 인야는, 지금 한국에 내려진 IMF의 구제 금융 체제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개념조차 잘 모르는 상태였다. 그런 쪽엔 관심이 없기도 하고 또 그런 쪽은 상관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지금도 자신과는 다른 세상의 일로 치부하기 때문에, 갑자기 터진 그런 사회적인 악재에도 인야는 그저,
'그러려니……' 했을 뿐이다.
'그리고 설사, 내가 그 상황 파악을 다 하고 있다고 해도, 그게 뭐 어떻다는 건가? 나야 지금 신촌 작업실에 나다니는 교통비 걱정을 하며 사는 처지의, 어차피 더 내려갈 곳이 없는 최악의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인데, IMF면 어떻고 YouMF면 또 어떻단 말인가. 그런 게 터졌다고 내 삶이 더 나빠지기라도 한단 말인가?'하면서는,
'그러라지. 그래봤자 나에겐 어차피 마찬가지일 테니……'하는 식이었다.
그런데 그게 아닌 것 같았다. 아닌 게 확실했다.
인야가 멕시코에서 돌아올 때부터, 그 전부터 그랬는지도 모르겠지만... 경기가 안 좋아 굵직굵직했던 기업체들이 파산을 했다느니 부도를 맞았다느니 하던 뉴스가 심심찮게 올라오더니, 최근에는 정부가 공식적으로 국제 통화 기금의 구제 금융을 신청하면서, 인야 같이 사회적인 흐름에 둔감한 사람이 봐도... 주변에 난리가 난 모습이었던 것이다.
모두들 바짝 긴장한 상태로 '우리는 죽었다' 하는 자세와 흐름이 느껴지는 건 물론, 한때 잘 나간다고 소문이 났던 고등학교 동기 하나도 며칠 전 야반도주를 했다 하고, 그 가족들은 거리로 내몰렸다는 소식도 들리는데... 그러니까 여태까지는 힘들었어도 '앞으론 뭔가 나아질 거'라는 희망이라도 있었다면, 지금부터는...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것에 문제의 심각성이 더 큰 것 같았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이럴 거면 전쟁이라도 확 나서 세상을 뒤집어버리면 좋겠다!"고 하소연을 하던, 얼마 전엔 죽음이란 단어까지도 내뱉던 친구 P나,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어, 다시 떠나야 할까 보다."하고 멕시코 행을 준비하고 있는 K씨의 경우만 봐도, 뭔가 확실히 위기가 맞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나라고 IMF와 아무 관계가 없는 것인가. 아니다. 나 역시 최악의 상태라지만, 그래서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다고도 하지만... 이 세상에 혼자 살아가는 게 아닌, 어찌 됐든 다른 사람들과 얽혀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이 세태와 결코 무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따져보면, 멕시코에서 돌아온 이래 여태까지 뭐 하나 제대로 된 게 없이 고전했던 것 역시, 이 세상의 흐름과 무관하지 않았다는 얘기고, 지금부터 세상이 더 어려워진다는 건, 인야에게도 더 큰 시련이 기다리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인야 역시 IMF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얘기였다.
더구나 인야는, 작품을 판다든지 책을 내야 한다든지, 보다 구체적으로 대형 조형물 같은 걸 맡아 일을 해야만 할 사람인데,
이 사회적으로 돈이 있어야 그런 일이 되는 건데, 다들 거꾸로 나자빠지고 있는 상황에서 무슨 그런 일이 이뤄질 것인가 말이다.
경제가 어려우면 제일 먼저 타격을 받는 게 예술 분야라는데, 인야가 바로 그 일을 하는 사람 아니던가.
'아, 나는 역시 이런 사회적인 흐름에 둔한 사람이 분명하다. 다들 죽겠다고 난린데, 지금도 혹시나 작품이 팔리려나 하는 심정으로 전시에 낼 작품을, 그것도 빚을 얻어서 하고 있고, 또 이 난리통에 책을 낸다고 설치고도 있으니......'
인야는 요즘 정신이 없었다. 허긴, 뭔가 열심히 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아름다운 일일 수 있었고 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전시에 낼 입체 작품을 새로운 재료인 FRP로 작업을 하다 보니, 기술 면에서 서툴러 고전이었다. 그 와중에 감기가 걸렸는데, 쉬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멕시코에서 테라코타에 미쳐 작품을 만들어 내기 시작하면서, 스페인에 가서도 신부님의 주선으로 한 도예 공방에 가 흙 작업을 이어서 할 수 있었고, 한국에 돌아와서는 최근까지 빌라 작업실에서 주로 흙 작업 위주로 작업을 해오면서 일곱 번째 개인전은 어쩌면 조각가의 전시 같은 느낌으로까지 이어졌는데, 사실 그때까지는 전부가 흙만을 가지고 작업을 했었다.
그런데 신촌 지하 작업실에 온 이래, 아무래도 여기는 조각 작업실이라 조금 다른 재료를 사용하는, 소조로 형체를 만든 다음 실재 작품은 FRP로 뜨거나 청동 주물인 브론즈로 뜨기도 하는 등의 모습을 보고 접하면서, 당연히 인야도 그쪽에 흥미가 붙기 시작했고... 그런 작업도 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물론 그것도 돈이 수반되어야만 했다. 특히 브론즈는 아무래도 금속이고 청동이 비싸서 작품 하나를 하려 해도 목돈이 들어가야 했지만, 그래도 상대적으로 조금 싼 FRP는 인야도 할 수 있을 정도는 되었기에... 과감하게 그쪽으로도 시선을 돌렸던 것이다.
그런데 재료를 바꾸다 보니, 테라코타 작품은 여러 가지 특징 때문에, 가마 크기, 운반 도중 깨지는 등, 작은 작품이 될 수밖에 없는 약점이 있는데, FRP나 브론즈 같은 경우는 얼마든지 크게 해도 될 것이기에, 오히려 인야의 정서하고도 맞아 떨어지는 것이라서, 인야는 쾌재를 부르고도 있었다.
'돈도 없는 주제에, 욕심과 의욕만 앞서서는……'
아무튼 그렇게, 신촌 지하 작업실을 이용하다 보니, 입체 작업에는 그런 긍정적인 효과가 생겨나고 있었다.
앞으로 언젠간 하게 될 대형 조형물 같은 것에도 좀 더 친숙하게 다가갈 수도 있을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철없는 인야는, 이 IMF 시국에도, 오히려 더 신바람을 내며 작업에 임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작업실에서 작업 마무리를 하고 있는데 제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선생님, 밖에 눈이 오고 있어요!"
지하실에 있어서 보이지 않아 모르고 있었기에, 전화를 끊자마자 얼른 나와보니,
아! 밖에는 정말 눈이 내리고 있었다.
비 온 뒤끝이라 그런지 쌓이기도 전에 녹아내리고는 있었지만, 어쨌든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첫눈이었다.
다소 감상적인 기분으로 인야는 누님 집에 돌아와, 컴퓨터 앞에 앉아 책 작업 문서 작성을 하는데... 보통 시간이 걸리는 게 아니었다.
밤이 깊도록 씨름해도 큰 진전이 없었다.
그렇듯, 요즘의 인야는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누님 말대로... 실속도 없이 바쁘기 짝이 없었다.
그렇게 준비했던 그룹전이 시작됐다. 나라는 어려운 지경이고, 인야는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다고 믿고 있는데... 어느새 12월도 중순으로 한 해가 가고 있었다.
인야 딴에는 상당한 기대를 걸고 준비했고, 작품들을 전시장에 걸어 세상에 내보였는데... 개막이 며칠 지났는데도 아직 아무런 소식이나 반응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뭐가 잘못되었나?'하고 인야는 의아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 전시의 중요한 점은 새로운 재료로 한 FRP 입체 작품을 냈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 전시에 출품한 작품은 주로 사회성을 담아 눈으로 보기만도 처참한 작품들인데, 작품을 내면서는 어떤 반향을 일으킬 줄 알았는데 그런 일은 생기질 않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처음 전시 섭외가 들어왔을 때도 굴지의 대기업의 의욕적인 전시 유치와 사회적인 기여도 등을 들며 작품 판매의 가능성을 어필했기 때문에, 그래도 다른 곳과는 달리 어느 정도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그것도 복이라고 하필이면 이때 IMF가 터져 인야가 바라던 일은 당연히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게다가 지금 돌아가는 상황으로 보니 그런 기대는 애당초 갖지 않았던 게 나았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인야만 그런 게 아닌, 이 그룹전에 참여한 작가들 모두가 허탕을 친 셈이었다.
그런데 이 전시의 에피소드를 보면, 이 전시에 출품한 작품을 인야는 입체 작품 7점과 평면 작업 1점 등 적지 않은 공간에 걸었다.
제목이 ‘기도하면 살려주시겠습니까?’ ‘꿈’ ‘하늘이 무심하지 않다면……’ 하는, 아주 고통스런 삶을 살아가는 민초들의 모습을 표현한 특징이 있는데, 몇몇 사람들은 인야의 작품들을 보며... IMF에 맞춰 작품을 했냐고 묻기도 했다.
사실 인야는 이런 작품을 제작하거나 구상할 때는 IMF가 뭔지도 몰랐고, 그 이전이었기 때문에 실제 IMF에 맞춰서 했다는 말과는 어느 정도 차이가 있는 작품들이었다.
인야는 다만 그 당시의 입장과 시각에서 그 세태를 표현했던 작품으로, 비근한 예인 작품 ‘실직자 이씨’는... 조각하는 친구의 고향 친구로, 사람 좋기로는 그를 따라올 수 없을 정도라고 여기며 인야가 상당히 좋아하던 사람(이씨)이었는데, 하루아침에 회사에서 잘려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된 모습을 작품으로 옮긴 예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했던 작품들이 공교롭게도 이번의 IMF 사태와 딱 맞물린다니, 굳이 나쁠 것까지야 없지만... 인야 같은 사람에게도 이 IMF가 이렇게 공식화되기 전부터도 이미 삶에 침투되고 있었다는 뜻일 수도 있어서, 그 위기의식이 보통 심각하지 않았다.
전시를 하고 있기 때문에, 책 원고 점검하면서 집에 있을 수도 있는 흐린 일요일이었다.
그러나 인야는 지하철로만 두 시간 걸리는 신촌 작업실로 갔다. 요즘은 없는 형편에 교통비 들어가는 것도 만만치 않았지만, 마치 뭔가 의무적으로 해야 할 게 있는 사람처럼 작업실에 가서, 그저 흙을 주무르다가 돌아왔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눈이 내렸다면 좋았을 걸......'하고 생각했다.
인야는 밤에 두어 군데 전화를 걸었다.
그들이 근황에 대해 묻기에, 책 출판 얘기를 했더니... 두 군데 다,
"이제는 풀리려나 보다……"고들 했다.
'책 작업을 하면 풀리는 건가?'
김대중 씨가 드디어 대통령이 되었다. 세 번 떨어지고 네 번째 도전 끝에, 그것도 아슬아슬하게 대통령이 된 것이다.
인야는 TV 개표 방송을 보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잤다.
'하루쯤 잠을 못잔다 해도, 그분이 대통령이 된다면 얼마든지 그러리라.' 기대하며 끝까지 지켜보았다.
새벽녘에야 잠이 들어, 또 아침에 일어나 영어회화 학원 가서 종일 몸은 무거웠지만... 마음은 가벼웠다.
그동안 지역 차별에 의한 불이익 당한 것이 어느 정도 해소되는 느낌이었다.
아무튼 늙으신 어머니도 투표를 하셨고, 기도를 하셨다 하고, 밤 늦도록 개표 상황을 지켜보셨다 하니... 그 역시 인야에겐 하나의 감동이었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인야도 자신의 일을 더욱 열심히 하리라는 다짐도 했다.
주말을 정말 책 작업으로 보냈다.
그에 따른 번역도 해야 했고, 컴퓨터에 문서로도 옮기는 등... 쉬지도 않고 일을 했다.
‘사실 나는 책을 내는 학자가 아니다. 그러나 그림을 그리기 위해, 원하는 다른 일을 하기 위해 썩 내키지는 않지만, 아니 하루에도 몇 번씩 그만두고 싶은 마음임에도 이 일을 해야 한다.’
거울 속 인야는 머리가 제법 길어 있었다. 그래서 더욱 꺼칠해 보이기도 하고, 늙어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도 인야는 웃고 있었다.
'참내! 어쩌면 이런 상황도 내 운명인지도 몰라. 이렇게 끝없이 해야 할 일이 생기는 걸 보면...... 누님 말대로 실속 하나 없어 탈이긴 하지만......'
인야는 책 작업에 치여 사느라 정작 전시장에는 가보지도 못하는 형편이었다. 사실 가본들 달라질 건 없었다. 온 나라가 IMF라는 생경한 말에 움츠러들어 있었고, 작품이 팔릴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까웠으니까.
운이 나쁜 날들의 연속이었다.
잠이라도 푹 자고 좋은 꿈을 꾸길 간절히 빌었건만, 잠은 늦도록 오지 않았고 새벽같이 눈을 뜬 뒤 마주한 꿈의 잔상도 흉흉했다.
기대했던 계획들은 도미노처럼 무너졌다.
함께 전시장에 가기로 했던 정 신부님은 몸이 아파 못 나오겠다 했고, 홀로 찾아간 화랑의 큐레이터는 하필 전시가 다 끝난 뒤에나 돌아오는 휴가 중이었다. 그림 판매에 대한 실낱같은 희망이 수포로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발길을 돌려 도서관에서 번역 작업이라도 하려 했으나 월요일이라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돌아온 누님 집은 열쇠가 없어 두 시간 넘게 추위 속에서 떨어야 했다.
동짓날의 칼바람에 몸이 얼어붙는 동안 인야는 생각했다.
'정말 이렇게 살다간 말라비틀어지겠다.'
그렇게 돌아가는 꼴을 보니, 그날 신문 기자의 중재로 신문 연재 소설 삽화 그리는 문제도,
'포기하는 게 낫겠다.'는 자조가 밀려왔다.
크리스마스에도 인야는 의미 없는 축제 대신 컴퓨터 앞에 앉아 책 작업에 매달렸다.
스스로 선택한 고립이었으나 지겨움은 어쩔 수 없었다.
나라 전체가 경제 위기로 조용한 것이 오히려 인야에겐 위안이 되었다.
오도 가도 못한 채 생활에 끌려다니는 신세. 이제 전시가 끝나면 저 작품들을 또 어디로 치워야 할까.
누님 집 조카 방에 다시 그림 뭉치를 들여놓을 염치가 인야에겐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작품을 철거하던 날, 인야는 어렵사리 누님한테,
"전시 끝내고, 작품 실어와야 해요......'하자,
"그럼, 가져와야지. 어떡허냐?"
누님 역시 허탈한 듯한 투의 말이었다.
화랑에 가서 걸려 있는 작품을 보며, 인야는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하나 둘 그것들을 떼어 포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누님한테 곧 작품을 싣고 아파트에 도착하리라는 전화를 걸었는데, 얼마 전 신문사에서 전화가 왔다기에... 혹시 하고 그 기자에게 삐삐를 쳤다.
"저, 죄송합니다. 다른 사람이 하기로 결정됐습니다."
엊그제 그의 전화를 받고, 신문의 연재 소설 삽화를 그려볼 거냐고 물어오면서 네 명의 후보가 있는데 한 번 시도해 보지 않겠느냐기에... 그러겠다고 했었다. 그러나 거기에서도 인야는 탈락되었던 것이다.
'허긴, 내가 됐다면, 나머지 세 명은 지금의 내 심정이 돼 있으리라……'
그렇잖아도 암울한 심정으로 작품을 포장하고 있었는데, 설상가상이란 말이 인야에게 덮친 순간이기도 했던 것이다.
용달에 그림을 실어오면서도,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가 운전수가 묻는 길만을 겨우 알려줬을 뿐이다.
'내 인생이 이런 것인가. 더 밑바닥으로 내려가고 있는 것인가......'
펑펑 울어라도 보고 싶었다.
'아, 내 딴에는 뭐라도 해보려고 하는데... 모든 일들이 안 된다. 떠나야 할까 보다. 정말 떠나야 할까 보다.'
그 와중에도 삶은 이어졌다.
멕시코 벽화 원고를 간신히 출판사에 넘겼고, 연말을 맞아 군산에 계신 어머니를 뵈러 가기로 했다. 수중엔 고속버스비가 전부였다.
돈 때문에 어머니를 뵙지 못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는 오기로 길을 나섰다.
1997년 12월 31일 밤, 인야는 늙으신 어머니 곁에서 한 해를 마감했다.
빈털터리 아들을 반겨주는 이는 역시 어머니뿐이었다.
어머니가 지어주신 따뜻한 밥을 먹으며 인야는 비로소 마음 편한 아들이 되어 행복을 느꼈다.
곁에서 얇은 코를 골며 주무시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그는 빌었다.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다. 이 분의 자랑스럽지는 않을지라도, 부끄럽지 않은 아들만이라도 되고 싶다. 제발 그러고 싶다.
좋은 꿈을 꾸고 싶다. 오늘 밤엔, 어머니도 좋은 꿈을 꾸시면 좋겠다......'
새해 초 닷새를 어머니와 보내고 다시 서울로 올라오던 날, 오랜만에 눈이 내렸다.
자정이 다 되어 누님 집 근처 아파트 사잇길에 닿았을 때, 하얗게 쌓인 눈 위로 '뽀드득뽀드득'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세상일이 어찌 돌아가든, 인야의 처지가 어떠하든... 그 눈을 밟으며 걷는 시간만큼은 이상하리만치 평온하고 행복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