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 봄비에 젖다
최 화 웅
기차는 봄비를 뚫고 달렸다. 부전역발 포항행 무궁화호 열차는 09시 46분에 떠났다. 이번 포항행은 지난 날 함께 등산을 다녔던 대학후배 영민과 동행을 했다. 그는 신문사 편집부장 출신답게 필요한 말만 한다. 말이 헤프지 않고 쓸 데 없이 벅벅거리지도 않는다. 그를 만나면 기사 헤드라인을 뽑던 실력이 몸에 베인 듯 대화의 상대로 분명하고 말하는 화자의 역할에 충실하다. 부전역의 대합실은 여객들로 들떴다. 역을 에워싼 부전시장은 없는 것 빼고 다 있다는 화계장터 못지않다. 명절대목이나 제사가 들면 알뜰한 주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을 만큼 서민의 체취가 묻어난다. 동해남부선은 어릴 적 불국사 수학여행을 다녀온 추억의 기찻길이다. 그 길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철길로 31번 국도와 동해를 끼고 나란히 달리다 호계, 불국사, 경주, 안강에 들어서면서 내륙평야를 가로지른다. 동해남부선은 울산을 지나 바다와 멀어지기 시작하더니 수영, 해운대, 송정, 일광역이 없어졌다. 그 옛날 동요 ‘기찻길 옆 오두막집’을 노래하던 아이들은 노인이 되었고 ‘삶은 계란’이라고 외치던 이동주부의 그때 그 시절이 그립기만 하다. 그 철길에는 봄꽃들이 합창하듯 일제히 피어나고 겨우내 빈 둥지로 지낸 보금자리가 가족들을 불러들인다.
차창이 계절의 끝과 시작을 전한다. 기차역에는 만남과 석별의 정이 이어진다. 부전역을 출발한 열차는 이내 센텀, 기장, 일광, 좌천을 지나 쉼 없이 달렸다. 출발한 지 한 시간 만에 기차는 대운산 자락의 남창역을 지날 무렵 하늘에서는 비가 뿌렸다. 달리는 차창에 봄비 스치는 빗줄기의 모습을 지켜보던 영민이 수첩을 꺼내 ‘춘우차창(春雨車窓)’이라는 제목의 한시를 써내려간다. 글렌 굴드가 연주하는 골드베르그 변주곡이 옛 나무 침목의 그리움을 일깨운다. 차창에는 잎보다 먼저 핀 개나리와 배꽃, 벚꽃과 하얀 오얏꽃이 잔치를 이루고 새잎이 나기 시작하는 나무에는 새들의 둥지가 그림 같다. 동해남부선은 1930년으로부터 1935년 사이에 외가닥 철길 67km를 차례로 개통한 철길이다. 부전역에는 동해선 여객열차가 닿고 떠난다. 경부선과는 전혀 인연이 없는 역이다. 부산역이 고속철도 전담역이 되면서 부전역은 나머지 일반열차가 서고 떠나는 일반역으로 바뀌었다. 1930년 7월 부산진에서 착공한 동해남부선은 1934년 7월에 부산진∼해운대 사이 18.9km를 완공 개통하고 1934년 12월 해운대∼좌천 간 22.3km, 1935년 12월에는 나머지 좌천∼울산 간 31.8km를 차례로 개통했다.
1943년 서면역이 부전역으로 옮겼다. 처음에는 단선의 외가닥 철길로 한적했으나 도심개발과 복선전철화의 추진에 따라 이태 전 동해선에 편입되면서 동해남부선은 어느 시인의 낡은 시집처럼 추억의 기찻길이 되었다. 개통 당시 부산진역이 시발역이자 종착역이었으나 부전역이 여객을 부산진역에서 화물을 취급하면서 역사(驛舍)를 새로 지었다. 부전역은 다른 역전 분위기와는 다른 여유가 물씬하다. 그 철길에는 세속에 찌든 우리의 심신을 풀어주는 푸른 바다와 널찍한 평야가 따라다닌다. 포항역은 지난 지진으로 부서진 역사를 고치고 있었다. 포항역에 도착한 우리는 영일만해수욕장으로 넘어갔다.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 때부터 옛 사람들은 영일만 갯마을을 ‘설머리’라 불렀다고 한다. 언덕바지 절에서 내려다보면 바닷가 고운 모래밭이 마치 눈이 덮인 듯 하얗게 보였다고 눈 ‘설'자라고 부른데서 유래했다고 전한다. 포항 고래등 분수의 물기둥 너머 울릉도를 오가는 쾌속선의 뱃길이 뭍에 사는 사람들을 유혹하기에 충분했다.
포항물회는 죽도시장보다 북부해수욕장 환여횟집 물회가 더 맛있다. 비가 내려 번호표를 뽑아 차례를 기다리는 번거로움은 없었다. 봄도다리물회를 먹은 뒤 영일만 해안선을 따라 걸었다 영일대에 올라 망망대해를 바라보고 여객선터미널까지 2km남짓 걸었다. 우리는 비 내리는 동해의 아름다운 서정에 흠뻑 젖었다. 깨끗한 자연의 바람이 미세먼지와 황사에 지친 우리를 말끔히 씻어주는 듯 했다. 확 트인 바다를 내다보는 커피숍에서 한 잔의 커피를 마시는 여유와 끊이지 않은 대화가 즐거웠다. 부산을 떠나면서 일정에 쫓기지 않으려고 오후 4시 5분 포항역을 떠나 부전역으로 가는 기차표를 미리 사두었다. 동해남부선은 단선인 만큼 개통 이후 열차다이얼에 의한 정시운행이 철저히 지켜졌는데 공사가 계속되고 있어서 남창을 비롯한 몇 곳에서는 반대편 기차가 지나가도록 기다렸다가 운행을 하곤 했었다. 그러나 기차는 오래 머물지 않는다. 새해 첫날 해돋이열차를 시작으로 봄, 여름, 가을, 겨울 따라 테마열차가 꿈과 희망을 실어 나른다. 봄이면 봄꽃열차, 여름에는 바다열차, 가을에는 단풍열차, 한겨울이 닥치면 눈꽃열차가 눈꽃을 따러간다. 태마열차는 차창으로 스치는 아름다운 자연과 계절풍경을 속삭인다.
부푼 기대와 호기심과 함께 달리는 동해남부선은 낭만의 서정을 맛보게 한다. 한적한 간이역에서 한두 명의 여객이 내리고타는 한산하다 못해 쓸쓸하기까지 한 시골역 정경이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세상살이를 곱게 채질해주었다. “기찻길 옆 오막살이 아기아기 잘도 잔다. 칙~폭 칙칙폭폭 칙칙폭폭 기차소리 요란해도 아기아기 잘도 잔다. 기찻길 옆 옥수수 밭 옥수수는 잘도 큰다. 칙~폭 칙칙폭폭 칙칙폭폭 기차소리 요란해도 옥수수는 잘도 큰다.”라고 무심코 노래한 동요 속에도 시대의 저항정신이 새삼 가슴에 저려온다. 느끼는 만큼 공감공간의 폭이 파도를 타듯 넓혀졌다. 우리도 그렇게 늙어가나 보다. 동해남부선에는 낡고 오래되어 우중충한 증기기관차가 산뜻한 디젤과 유선형의 전기기관차로 새 옷을 갈아입었다. 기적소리도 전자음으로 바뀌고 침목은 기름 먹인 나무를 걷어내고 콩크리트 침목을 놓고 그 위에 철로를 새로 깔았다. 기적이 멀리까지 메아리치던 기차소음은 이제 점점 커지는 주위의 생활소음에 비해 작은 그리움으로 남았다. 이번 나들이는 봄과 꽃을 한꺼번에 즐기는 기회였다. 기찻길 옆 오두막과 그 주위의 조그만 이랑밭에 옥수수가 줄지어 늘어서고 그 아래 콩과 푸성귀가 더부살이 하는 풍경이 고즈넉하다.
세상이 바뀌면서 기차와 역사주변도 새로워졌다. 그마저 작용과 반작용현상일까? 겨울이면 조개탄이나 나무로 눈이 맵도록 연기를 피워 달구던 대합실의 난로도 온 데 간 데 없고 향학열에 불타던 열차통학생들과 새벽 통근열차를 이용하는 근로자도 흔치않다. 가슴 뛰게 한 사랑과 낭만을 싣고 달리던 옛 기차의 추억은 두 눈의 망막 위에 남았을 뿐이다. 우리 모두 건강해야 한다. 그래서 통일이 되는 그날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타고 흰 눈 쌓인 시베리아 동토대를 달리며 태고의 자작나무숲이 풍기는 울림을 다시 듣고 싶었다. 양정 ‘늘해랑’에서 저녁을 나눈 뒤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