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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의 세대> - 누가 한국사회를 불평등하게 만들었는가 -
이철승 지음, 문학과 지성사, 2019.
이 책은 근래에 내가 읽은 책들 중에 최고의 책들 중에 하나다. 저자의 주장은 처음에는 낯설지만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고, 자기주장을 뒷받침하는 논리와 자료제시가 깔끔하고 완벽했다. 학문이 가지고 있는 깊은 향기가 느껴졌다.
이 책의 저자는 이철승 서강대 교수인데, 나도 교수지만 나와는 급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갑자기 내 자신이 많이 초라해 보였다. 누구는 이러한 무게 있는 책을 쓰는데 누구는 독후감이나 쓰고 있다니! 하기야 책도 안 읽는 교수들도 많겠지. 저자는 미국에서 오랫동안 연구 활동을 하다가 2017년에 귀국하였는데 미국에서는 시카고 대학 종신교수까지 되었고 전미사회학 협회의 최우수와 우수 논문상도 받은 경력이 있다하니 미국에서의 연구업적도 탁월했겠다. 저자는 이러한 지식을 쌓고 이런 책을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공부하고 연구하고 골몰(汨沒)했을까? 저자는 386세대의 끝자락에 위치한 후배인 것 같은데 선배로서 경의를 표한다.
1960년대에 태어나 80년대에 대학 다니고 30대였던 그 세대를 90년대부터 368세대라고 부르기 시작했는데 이 386세대는 80년대에 1987년 민주항쟁을 통해 대한민국에 민주화라는 초유의 뚜렷하고 위대한 업적을 이루었고 지금도 우리 사회 모든 분야에서 뚜렷한 활약을 하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 국민들이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도 자유롭고 민주화된 나라에서 살고 있는 것은, 그 전부터 민주화 운동을 한 분들의 노고도 있지만, 많은 부분 그 386세대의 투쟁 덕분이다.
저자는 미국에서도 불평등에 관한 연구를 했지만 (어느 인터뷰에서) 한국에서도 이런 책을 쓴 계기가 젊은 세대들이 청년 실업과 극심한 취업 경쟁으로 인해 불안과 고통 속에서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바로 곁에서 지켜보면서 문제의식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저자가 주로 지켜 본 젊은이들이 주로 서강대 학생들이었을텐데 그 정도의 학생들이 그러하다면 많은 다른 학생들이야 오죽하겠는가? 이 책은 386세대가 우리 사회의 불평등에 책임이 있다는 논지의 책이다. 이 책은 이러한 질문과 함께 시작된다.
“왜 우리는 386세대와 함께 민주화 여정을 거쳤음에도, 우리의 아이들과 청년들은 더 끔찍한 입시 지옥과 취업 전쟁에서 살아남으려 발버둥 치고 있는가? 왜 민주주의는 공고화되었는데, 우리 사회의 위계 구조는 더 ‘잔인한 계층화와 착취의 기제'들을 발달시켜 왔는가? 왜 여성들은 여전히 입직(入直)과 승진, 임금에서 차별받는가?”(79쪽)
386세대는 어려서 식민지나 전쟁을 겪은 그 이전의 산업화 세대에 비해서 운이 좋은 편이다. 386세대는 대학 때에는 민주화 투쟁으로 승리의 감격을 맛보았고, 우리나라가 고도성장기여서 대학 때 공부를 안 했어도 취업이 잘 되었다. 그들이 사회에 진출했을 때 곧 1997년 IMF 사태가 터지는데 다행이도 연차가 낮은 신입사원 시절이라 산업화 세대인 고참들과 중참(?)은 구조조정을 당했어도 싼 임금 덕분에 구조조정의 칼날을 피할 수 있었다. (그 때에는 한창 구조조정이라는 말이 유행했는데, 말은 우아하지만 자기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조직을 위해서 해고 한다는 살벌한 얘기다) 대학을 안 나왔어도 한창 성장하는 기업에서 중견 간부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2000년대 들어 세계화와 정보화의 흐름을 타고 한국 기업들이 약진할 때, 윗세대의 빈자리를 386이 차지했다. 신자유주의 영향으로 노동시장이 유연화(이 말도 너무 쓸데없이 우아하다. 이는 고용주가 노동자를 자기 맘대로 해고할 자유를 말한다.)되고 파견직종 등 비정규직이 본격적으로 많이 도입되었지만, 그 와중에서도 정규직으로 굳건히 상층부를 차지하고 있는 게 지금의 386세대다.
저자는 우리 사회의 불평등은 노동시장에서의 임금불평등으로부터 창출되는데 임금불평등의 요인으로는 1. 개별 노동자가 속해 있는 기업 조직이 대규모인가 아닌가, 2. 고용 지위가 정규직인가 비정규직인가, 3. 사업장에 노조가 존재하는가 여부다 에 달려 있다고 보는데,
외환위기 이후에 안정된 대규모 사업장의 정규직을 차지한 386세대들이 중소기업-비정규직-무노조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착취하면서 자기들의 지위를 강화시키고 급여와 복지혜택 등을 독점했다고 보고 있다. 노무현 정권 시절에 시민단체와 정계에 입문하기 시작한 이들은 계속해서 정치권과 기업에서 활약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의 활약이 뭔 문제인가?
물론 386세대 중에 이러한 특혜를 입은 사람들은 소수(10% 정도, 많이 잡으면 20%정도)다. 그렇지만 그 전(前)세대 사람들이나 그 후 세대에 비하여 이들의 비율이 높고 지위는 확고하고 장기간 동안에 걸쳐 있다. 지금 사다리의 상층부를 차지한 이들 대기업 정규직 50대 임원이나 부장은 사다리 걷어차기를 하면서 자기들의 특권을 확보하기 위하여 납품업체와 하청업체에 가격 후려치기를 하고 비정규직 사원들을 상대로 갑질을 하고 자기들은 위험을 회피하기 위하여 위험을 외주화한다.
이들은 자기들의 특권을 수호하기 위하여 후세대의 진입을 가로 막고 있으면서 후세대의 비정규직화와 저임금을 강요하고 있다. 그 후세대에는 이제는 자기들의 자식들이 포함이 되고 있다. 특히 2010년대에 대학을 졸업한 많은 젊은이들은 노조도 없는 조그만 외주업체나 하청업체의 사원이 되거나, 단기 알바나 비정규직, 취준생(취업준비생), 실업자로 전락되고 있다. 이들이 만든 한국 사회의 위계 구조에서 희생자들은 청년과 여성이다. 그러니 젊은 여성은 최대의 희생자다. (대학을 졸업한 우리 딸도 취준생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 사회의 불평등이 만들어지고 세대 간의 불평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이것이 이 책의 골자다!
나는 1950년대 생이지만 대학원을 이 386세대와 동시대에 다녔기 때문에 이들의 정서를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고, 그리고 그 당시에는 계급이론이 대세이었기에 나에게도 이러한 세대 이야기는 낯설다. 이 책의 초반을 읽을 때는 계속 저자가 ‘우리 사회의 불평등 문제를 386세대에게 떠넘기려는’ 자기의 주장을 합리화-일반화하기 위하여 억지를 부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계속되었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을수록 책 내용에 빨려 들어갔고 수긍이 갔고 나중에는 전율이 일었다. 저자의 논리는 아주 일관되고 치밀했다. 막연한 느낌이 있는 문화론이 아니라 자기의 주장을 데이터를 통해서 증명하려 하고 있다. 나는 내가 전공한 법학이나 경제학에 비하여 사회학이나 심리학은 실증적이지 못하여 비과학적이라고 좀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 책을 통해서 사회학의 효능과 필요성을 절감할 수 있었다. 우리가 이런 책을 읽으면서 고민과 고민을 거듭해야 우리 사회의 (저출산 고령화 문제와 함께) 최대문제인 불평등 문제를 해결할 수가 있을 것이다.
이 책에는 나의 부모님과 나와 내 자녀들의 세대-불평등 문제가 이렇게 정확하고 적나라하게 서술하고 있다. 길지만 인용해 보면,
“오늘날 젊은 세대에게 나타나는 ‘금수저’ 대 ‘흙수저’ 논란의 근원은 그들의 할아버지 세대(1930년대 혹은 그 전후 출생)에 시작된 70~80년대 자산의 최초 축적과 그 이후 이 세대의 불균등한 자산 이전 및 자산 소비 활동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국형 위계 구조는 국가와 기업 내 조직하의 연공에 기반한 위계 구조, 기업 간 원ˑ하청 관계, 각종 고용 형태와 유연화 기제 등으로 작동되지만, 그 결과는 가구 세대 간 부의 이전으로 마무리된다. ‘역사적 세대’의 프로젝트가 ‘가문 세대’의 프로젝트로 탈바꿈된 것이다. 촌락형 위계를 근대화 프로젝트에 이식하고 작동시킨 산업화 세대는 이렇게 자신들의 소명을 다하고 무대에서 퇴장하고 있다. 그 소명은 그들이 농촌에서 물려받은 신분제적 위계를, 도시에서 자산을 축적하고 학벌을 획득함으로써 재생산하거나 극복하는 것이었다. 벼농사 체제의 신분제적 불평등을 기억하는 산업화 세대는 그들이 목표한 대로, 근대화 프로젝트와 가문별 자산 축적을 모두 추진했다. 전자가 집합적 목표였다면, 후자는 씨족의 목표였다. 이들은, 우리가 오늘날 계측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측면에서(소득, 자산, 성별, 세대 간, 세대 내) 불평등을 극대화했고, 우리는 그 불평등을 상속한, 또 다른 불평등의 세대인 것이다.” (212쪽)
그래서 지금은 부모가 가난하면 자식도 가난하고 부모가 부자면 자식들도 부자다. 1950년대 생까지의 산업화시대 보다도 지금 가난이 그리고 불평등이 더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그것이 극복되기 힘들고 대물림 된다는 데에 있다. 재산을 (합법 혹은 불법적인) 상속과 증여를 통하여 대물림 해 주는 것도 문제지만 합법적이고 제도적인 방법인 학벌이나 직업을 통하여 대물림 하는 방식은 태어날 때부터 취약한 환경에서 자라고 처음부터 기회가 적은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도저히 어찌할 방법이 없다. 이러한 책을 쓰고 읽는 부류도, 불평등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는 사람들도, 다 있는 집 자식들이고 배운 사람들이고 그 지위는 재생산되기 마련이다.
이 책을 꼼꼼하게 다 읽고 저자의 취지에 충분히 동의하지만 그래도 나는 지금도 세대론 보다도 계급(계층)론에 더 공감이 간다. 즉 나는 세대 내 불평등이 세대 간 불평등보다 더 크다고 보고 있다. 위의 흙수저 금수저 이야기는 다 세대 내의 불평등 이야기이다. 그렇지만 368세대가 지금까지 그리고 현재도 젊은 후세대를 취약하고 가난의 상태로 내모는 데에 가장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데에는 상당히 동의할 수밖에 없다.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우리 대학을 예로 들어보자. 대학에도 “다른 신분을 가진 노동자들끼리 연공과 고용 형태상의 차별적 신분이 결합된 위계구조가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정착되었다. 지금 대학에서 전임교수들은 겉으로는 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것 같지만 우리 학교에는 처음부터 (매년 오르는) 호봉제로 들어온 교수들(1그룹)과 2010년도 이후에 연봉계약제로 들어온 교수들(2그룹)이 거의 반반인데, 2그룹 교수들은 지위와 하는 일에서는 차이가 없지만1그룹 교수들에 비하면 연봉을 거의 절반 정도만 받는다. 그 1그룹 교수들은 (나 같은 50년대 생도 조금 있지만) 대부분이 386세대다. 또한 비정규직-계약직인 시간강사(우리 학교에서는 외래교수라 칭한다)들은 저임금에 매 학기마다 계약을 하는 매우 열악한 처지에 있다. 저자도 이 책에서 언급했듯이 대충 1000만원 연봉을 받는 그런 시간강사들보다도 약 8000만원~1억원 정도의 연봉을 받는 전임 교수들이 그 차이 정도만큼 강의와 연구와 학생지도를 잘 한다고 보기가 힘든데도 시간강사들의 처우개선 계획은 대학의 교묘한 반발로 계속해서 제대로 실행되지 못하고 있다.
또한 IMF 외환위기 이후 보편화된 파견직종인 청소 노동자와 경비 노동자는 열악한 대우와 환경에서 우리 학교를 깨끗하고 안전하게 유지시켜 주고 있고, 위계구조의 맨 밑에는 2년 계약직인 조교와 직원들이 있다. 우리 대학에서도 단순하게 보자면 1그룹의 386세대 교수들이 나머지 구성원들을 착취하고 구조다. 다른 대학과 다른 직장도 이러하지 않을까? 그래서 저자는 386세대를 우리 사회의 불평등을 만들고 유지시키는 주역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동의할 수밖에 없다.
이 책은 1928년 일제 강점기 때 태어나서 초등학교(그 때는 국민학교)와 중학교 까지 일본어와 일본식 교육을 받고 1960~1980대까지 활약한 우리 아버지 세대도 가끔 거론된다.
“1937년을 기점으로 조선에 대한 일본의 정책은...‘내선일체’ 혹은 ‘황국식민화’정책으로 바뀌었다... 집에서는 우리말을 쓰면서 학교에서는 일본말을 쓰도록 강요받으며 일본식으로 사고하고 훈련하는 세대가 길러진 것이다. 이 교육 체제는 일본의 패망과 함께 1945년 종언을 고한다. 하지만 햇수로 8년에 달하는 이 역사적 제동의 실험은 일제하의 초.중등 보통교육에 노출된 세대를 길러낸다. 7~9세에 초등교육을 받기 시작했음을 고려하면, 1920년대 말~ 1930년대 말까지의 출생자가 이 세대에 해당한다.“ 146쪽.
우리 아버지가 바로 그 세대다. 우리 아버지는 초등학교 졸업명부에는 창씨개명한 이름이 나와 있고 초등학교 중학교에서 일본어로 공부하셔서 일본말을 완벽하게 구사하셨다. 어렸을 때 배운 언어이다 보니 잊어 먹지도 않고 일본어를 별로 사용할 기회도 없으셨는데도 60대 후반에도 필요할 때에는 일본어 통역을 하셨다.
이 책에는 산업화세대와 관련된 재미있는 장면도 언급된다.
“태극기 부대의 ‘어르신’들이 두 나라(한국과 미국)의 국기를 양손에 들고 목이 터져라 성토하는 장면은, 사실 ‘원치 않는 주연’을 어쩔 수 없이 계속, 그것도 묵묵히 맡아야만 했던 세대들의 ‘정체성 확인’ 퍼포먼스이다. 이토록 힘들게 살았으니 좀 알아달라는 ‘인정투쟁’에 다름 아닌 것이다.” 144쪽
그렇지만 이 책은 주로 386세대와 그 시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지금은 많이 잊혀졌지만 그 당시는 절절했던 1997년의 IMF 외환위기 상황에서 우리가 겪었던 경험들을 많이 상기시켜 주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한국의 국민들은, 한국의 노동자들은 기존의 위계구조가 다른 새로운 위계구조로 대체되는 것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못했다. 노동자들의 대표체인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파견제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 채 자본의 요구를 덜컥 받아들였던 1998년 노사정 협약이 그것이다. 파견제를 손에 쥔 기업의 엘리트들은 이후 비정규직을 급속도로 확대함으로써 노동자들에 대한 분할 지배 체계를 기획한다. 연공제를 통한 안정적인 고용과 자동적인 임금 상승, 기업 복지 혜택을 받는 핵심 노동자층과 이 모든 것을 가지지 못한 주변부 노동자층으로 노동시장을 지위를 이분화하는 것이다.” 299쪽
이 대목은 역사적으로 두고두고 참으로 뼈아프고 후회되는 결정이었다. 이는 다들 민중을 위하고 나라를 위기에서 구하고자 하는 맘은 같았지만, 세계화 - 신자유주의화 되는 급물결 속에서 당면한 문제들에 대한 안목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서둘러 IMF의 요구에 쉽게 굴복했던 그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지도자들과 노조들의 한계였다. 물론 이러한 사태를 가져오게 했던 김영삼 정권의 책임이 더 크지만.
저자는 386 민주화 세대 이전에 산업화 시대에 대하여도 많이 언급하고 있다. 민주화 세대의 뿌리는 “세대의 다수가 농사일을 겪어”본 1930년대 생부터 1950년대 생까지 길게 드리워진 ‘농촌-산업화세대’이다. 1957년생인 나는 어릴 적에 농촌지역인 시골에서 자라다가 1970년대 초에 도시로 상경했는데 벼농사가 주였던 1960년대의 농촌의 정서가 아직도 내 머리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초등학교 때 우리들은 국민교육헌장을 외우고 간첩식별법을 배웠다.
산업화의 물결을 타고 도시로 일찌감치 이주한 나에게 도시에서 살아남고 성공하기 위한 노~오~력은 교육이라는 제도를 통하여 시도되었다. 그리하여 나도 중학교 입시부터 시작하여 입시경쟁에 시달리고 학벌을 쌓고 직장을 구하고 재산을 증여받고 아파트를 사들이면서 생존해 나아갔고 입신양명을 위해 노력하였다.
산업역군(産業役軍)으로 국내외의 산업현장에서 열심히 일한 사람도 있겠지만 나에게 일(work)은 공부였다. 뿌린 만큼 거두리라는 전통적이고 농촌적인 사고에 익숙하고 성실과 근면, 절약과 국산품을 애용하는 자세는 우리 세대 모두에게 공통된 삶의 자세였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1970~80년대부터 치솟던 부동산 상승에 힘입어 산업화세대에게는 일찌감치 부동산을 통한 부의 축척을 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있었고 그 재산은 증여와 상속을 통해서 자손들에게 넘어갔다. 이 책에서도 지금까지도 우리가 당면한 최고의 문제인 부동산 가격과 강남의 쏠림현상에 대한 문제도 언급되고 있다.
“한 세대 내에 자산증식에 성공한 자들과 그렇지 못한 자들이 나뉜다...똑 같은 노동을 했음에도 집을 어디에 장만했는지에 따라 자산 보유량이 억대 이상 차이가 나니, 자산 가격 불균등한 상승에 민감하지 않을 사람이 없다.” 186쪽
하기야 21세기가 오기 전까지는 대개 직장인들은 자기가 재직하고 있는 직장 근처에 집을 마련했다. 그렇지만 그 직장이 강남에 있었느냐 분당에 있었느냐 지방에 있었느냐에 따라 지금에 와서 자산가치는 엄청난 차이가 난다. 예컨대 김포공항에서 근무하는 직장인이 서울 강서구나 일산이 아닌 강남에 집을 마련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현재 우리 사회의 불평등 문제의 상당부분은 이 부동산의 자산가치에 기반한다. 강남 부동산 불패의 신화를 깨트려야 하는데 쉽지 않다.
그렇다면 대안은?
뛰어 넘을 수 없는 계급이 분명이 존재하고 고착화되고 있어도 계급을 없애고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으로서 계급이론에서 주장하는 계급투쟁이나 혁명을 이야기 하는 것은 지금 이 시대에는 바보스럽다. 작금의 촛불 시위나 태극기 부대의 시위는 혁명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 현상 유지 내지는 개선을 위한 온건한 운동들이다.
이 책에도 잠시 언급된 불평등에 관한 대작(大作)인 <21세기 자본>에서 토마 피케티는 20세기에 일어난 전쟁들이 불평등을 해소시켰지만 평화시에는 점점 자산소득이 근로소득보다도 많아져서 불평등이 더 심화될 수밖에 없다 것을 증명해 냈다. 우리나라도 한국전쟁 직후에는 국민의 삶의 질이 하향평준화 되었었다. 그렇지만 지금의 상황에서 전쟁을 통하여 불평등 해소를 바라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전쟁이 없고 사회주의 실험이 벌써 실패로 끝난 이 시점에서 저자는 ‘세대 간, 세대 내 불평등과 그 불평등 구조를 바꾸기 위한 방안’으로 사회적 자유주의를 제안한다.
이 사회적 자유주의는 자유경쟁의 이름으로 행하여지는 시장경제의 폐해, 예컨대 시장의 양육강식의 논리 내지는 시장의 폭압적 자기 재생산과 확장 같은 것을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을 통하여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희생자에게 기회를 주는 것을 말한다. 내가 보기에는 사회적 민주주의(사민주의)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러한 정책의 방안으로 저자는 청년 세대 일자리 문제와 관련하여 강력한 임금피크제를 시행하자고 주장한다. 지금 대기업, 공공부문, 전문직 등에서 시행하고 있는 임금피크제로 절약한 인건비로 기업들이 청년들을 고용하도록 하는 고용협약을 맺자는 것이다. 이는 사회정의의 차원에서 그 사회에서 가장 불리한 위치에 있는 오늘의 청년세대에게 최대한의 기회를 보장하자는 것이다.
일본과 한국에서만 발달한 연공제(나이나 입사 연도에 따라 지위와 봉급 수준을 결정하는 제도)는 한국형 위계질서를 대변한다. 어느 조직에서든 모두 다 승진하고 리더가 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연공제 아래에서도 “수많은 줄 세우기, 파벌의 구성, 내 편 만들기와 상대편 견제 및 말살과 같은 미시정치가 작동”하는데, 이런 행태는 공무원 조직, 정치권, 회사 그리고 웬만한 직장에서도 존재하며 마치 조폭 조직과 유사하다.
저자는 이러한 연공제를 바꾸어 급여를 직무에 따라 주는 직무급제와 성과에 따라 주는 연봉제를 실시하자고 주장한다. 이 책에서는 386세대가 연공제로 혜택을 보는 마지막 세대가 될 것이라고 하지만 아직도 연공제가 시행되는 직장이 많다. 서양에서는 합리적으로 잘 운영되겠지만 정규직으로 한국인의 정서를 가지고 있는 나도 직무급제와 연봉제를 환영하기 어렵다. 왜? 직종에 따라서 성과를 계측하기가 어렵고 구성원들을 피곤하게 하기 때문에. 합리적인 사회로의 발전을 위해서는 도입되어야 하겠지만 우리 정서에서는 조폭 같은 조직 문화와 기득권을 가진 나 같은 사람들의 편견과 저항을 극복하는 것이 큰일이겠다.
또한 실업보조금 지급과 재훈련 시스템, 국가 관리 취업 알선기관 등 지금도 시행되고 있는 제도들을 더 강력하게 실시하여 고용과 훈련 안전망 시스템을 구축하고, “인력회사나 파견업, 사적 재훈련 기관들이 편취하고 있는 ‘거간비용’을 (고(故) 김용균님의 경우 파견업체의 이 거간비용이 40%에 달했었다) 사회화 하자고 제안한다. 또한 더 나아가 신분제 사회를 해체하고 내 자식과 다른 자식들이 자유로운 개인으로 서로를 존중할 수 있도록 사회적 위험을 분담하며, 노동의 대가를 적절히 공유하는 사회를 만들자고 제안한다.
결국에 답은 지금 시행되고 있고 확대되고 있는 사회보장제도를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사회복지다. 사회복지란 사회적 약자들에게 국가가 현금급여나 현물급여 혹은 사회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볼 때 이 불평등을 해결하는 방법은 사회복지 밖에 없다.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소득세, 법인세, 보유세, 양도소득세, 증여세, 상속세 등의 세율을 높이고 탈세하지 못하게 엄격히 집행하여야 하겠다. 하기야 재산이 많은 사람들은 온갖 편법-탈법-불법적인 방법을 동원한 증여를 통하여 탈세를 하고자 할 것이다. 이러한 탈세는 이미 산업화세대들에게서 많이 행하여 졌었다. 오히려 지금은 전산화가 잘 되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어차피 불로소득을 방지하고 부동산 불패신화를 깨는 방법은 조세 강화 밖에 없다.
이 책에는 위에서 설렁설렁 언급한 내용들 이외에도 많은 이야기들이 나온다.
산업화시대를 가로질러 온 현재 노인들의 빈곤 문제, 공적 복지 안전망 확립이 무관심과 저항으로 인하여 지연되었다는 얘기, 여성의 경력단절과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사회에 대한 문제, 우리의 앎과 지식이 과거제도에서부터 발전되어 온 입시제도와 고시제도로부터 압살당하는 문제, 한국형 위계구조와 리더쉽이 기업에서 무능력과 비효율을 초래하는 문제....
이러한 문제들을 안고 있는 우리 사회 각 분야의 비효율과 부조리와 모순과 갈등들은 결국은 다 불평등 문제로 귀결된다. 불평등이 많은 사회에서는 부자들은 자기만의 담을 쌓아 안전을 도모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의 생존과 안녕은 계속 위협받는다. 그런 불평등은 산업화 세대로부터 전해 내려 온 것이지만 지금에 있어서는 386세대의 책임이 크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다.
이 책은 한편으로는 생소한 각종 형태의 통계와 그림들을 제시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적절한 사례를 등장시키고 정확한 언설(言說)로 시종일관 자기의 주장을 (세세한 부분에서 다 수긍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철저하게 뒷받침하고 증명해 내려고 하고 있다. 저자의 학문적 내공은 최고 수준이며 이 책도 완성도 면에서 최고의 수준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이 읽고 불평등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하여 더 잘 이해하면 불평등 문제의 해결의 실마리가 잡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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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스크롤압박이...^^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