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0년대를 풍미한 노래‘비의 탱고’가 수록된 가수 도미의 히트곡 앨범 재킷 사진.
[문화일보 자료사진]
청포도 사랑
도미| 도미 일생일대작
(1956년) 작사 이화촌 작곡
나화랑
파랑새 노래하는 청포도 넝쿨 아래로
어여쁜 아가씨여 손잡고 가잔다
그윽히 풍겨주는 포도향기
달콤한 첫사랑의 향기
그대와 단 둘이서 속삭이면
바람은 산들바람 불어준다네
파랑새 노래하는 청포도 넝쿨 아래로
그대와 단둘이서 오늘도 맺어보는 청포도 사랑
파랑새 노래하는 청포도 넝쿨 아래로
어여쁜 아가씨여 손잡고 가잔다
파랗게 익어가는 포도열매 청춘이 무르익는 열매
희망은 하늘 높이 핀 무지개
구름은 꿈을 싣고 두둥실 떴네
파랑새
노래하는 청포도 넝쿨 아래로
그대와 단 둘이서 오늘도 맺어보는 청포도사랑
▶ 1961년 해병대 연예대 복무 시절. 뒷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가수 박일호씨, 소대장,
중대장,
가수 도미씨, [출처: 중앙일보]
상주출신 가수 도미(본명
吳宗洙)선생입니다.
가수
도미(都美)선생은
1934년
상주시 서성동에서 오세덕씨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1951년
대구에 있는 대구극장에서 오리엔트 레코드사 주최한 <제1회
전속가수 선발 경연대회>에,
당시
대구 계성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도미(都美)선생이
출전하여 방운아(본명은
方昌萬)선생과
함께 입상(入賞)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현인(玄仁)선생의
창법(唱法)과
노래 연기를 흠모했던 도미(都美)선생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기가 무섭게 가수 현인(玄仁)을
발굴했던 작곡가 박시춘(朴是春)선생을
찾았습니다.
이때
도미(都美)선생이
부른 노래는 현인(玄仁)선생이
불렀던 <신라의
달밤>이었다고
합니다.
노래를
다 듣고 난 박시춘 선생은 도미(都美)선생의
실력을 크게 인정하고,
그
자리에서 야인초(野人草)선생에게
작사(作詞)를
부탁하고,
본인은
작곡(作曲)을
해서 만든 <신라의
북소리>를
도미(都美)선생에게
취입(吹入)하도록
했습니다.
이때부터
도미(都美)선생은
본격적으로 가수생활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가수
도미(都美)선생이
부른 노래는 약 60곡이
되며 이들 중에서 <청포도사랑>
<하이킹의
노래>
<청춘브라보>
<비의
탱고>
<오부자의
노래>
<사랑의
메아리>
<하이킹의
노래>
<방랑시인
김삿갓>
<효녀
심청>
<사도세자>
<백마강>등
수많은 노래가 크게 힛트해서 지금도 우리들 가슴 깊숙이에 있습니다.
특히
1956년에
발표한 <청포도사랑>은
당시 젊은이들의 가슴에 사랑의 불을 질렀고,
그
무렵 전국에 있는 포도밭은 모든 연인(戀人)들의
데이트 장소였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상주출신
가수로써는 전후후무한 힛트곡으로 우리나라의 톱 가수반열에 우뚝 섰었고,
1970년대에
연예협회(演藝協會)
이사장에
취임하여 역동적으로 일을 하다가 1984년
홀연히 미국 뉴욕으로 이민(移民)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비록 가수 도미(都美)는
떠났지만,
그의
노래는 고국에 남아서 옛 추억을 더듬는 사람들에 의해서 지금도 불리어지고 있으며,
더구나
청포도가 익어가는 계절이 되면 가수 도미(都美)가
부른 <청포도
사랑>이라는
노래가 입가를 맴돕니다.
지금
전국에는 약 40여
곳에 노래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상주에는 현대 가요사에 큰 족적을 남긴 가수가 있는데도 그 흔한 노래비 하나없이 외면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따라서
이제 전문 가수를 선발하는 <삼백가요제>도
자리를 잡았고,
15년
동안 지켜왔던 <상주전국민요경창대회>가
대통령상으로 격상되었기 때문에 상주에는 문화향기가 서서히 돌고 있습니다.
여기에
도미(都美)
선생의
노래비를 더한다면,
상주의
자랑거리가 하나 더 느는 셈이 되고,
특히
도미(都美)
선생과
같은 길을 걷고자 하는 고향의 후인(後人)들에게는
큰 표상(表象)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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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상주 감나무골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부터 낙동강이 한반도지도처럼 흐르는 곳에서 멱을 감으며
발성을 익혔다. 현인의 창법과 노래 연기는 그의 사표. 그리하여 고등학교를 나오기가 무섭게 작곡가 박시춘을 찾았다. 박시춘은 현인을 발굴하지
않았던가.
그가 박시춘 앞에서 부른 노래는 ‘신라의 달밤’.
박시춘은 도미에게 야인초 작사, ‘신라의 북소리’를 작곡하여 취입시킨다.
‘서라벌 옛 노래냐 북소리가 들려온다/말고삐 매달리며 이별하던 반월성/사랑도 이 목숨도 이 나라에
바치자/맹세에 잠든 대궐 풍경홀로 우는 밤/궁녀들의 눈물이냐/궁녀들의 눈물이냐 첨성대 별은.’
이 무렵은 역사를 소재로 한 노래들이 많았다. ‘방랑시인 김삿갓’ ‘효녀 심청’ ‘사도 세자’
‘백마강’ 등이 그랬다. 예상한 대로 도미의 노래는 폭발적인 인기였다.
이후, 도미는 박시춘 작곡으로 화려하게 명성을 떨친다. ‘오부자의 노래’ ‘청춘 부라보’ ‘사랑의
메아리’ ‘하이킹 노래’ 등으로….
‘파랑새 노래하는 청포도 넝쿨
아래로/어여쁜 아가씨는 손잡고 가잔다/그윽히 풍겨주는 포도향기 달콤한 첫사랑의 향기/그대와 단둘이서 속삭이던/바람은 산들불어
불어준다네/파랑새 노래하는 청포도 넝쿨 아래로/그대와 단둘이서 오늘도 맺어보는 청포도사랑.’
1956년에 발표한 도미의 ‘청포도 사랑’은 당시 젊은이들의 가슴에 사랑의 불을 질렀다. 포도밭은 이
무렵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였기 때문.
‘금이야, 옥이야. 태자로
봉한몸이/뒤죽안에 죽는구나 불쌍한 사도세자/꽃피는 청춘도 영화도 버리고/흐느끼며 가실 때엔 밤새들도
울었소.’
작곡가 나화랑(본명 조광환)은 경북 김천 태생. ‘나그네
설움’의 작사가 고려성(본명 조경환)과는 친형제. 나화랑이 동생이다. 일본중앙음악학교 바이올린과를 나온 한 때 KBS 경음악단 상임 지휘자로
활약하면서 ‘삼각산 손님’ ‘제물포 아가씨’ ‘도라지 맘보’ ‘향기 품은 군사우편’ ‘닐리리 맘보’ ‘서울의 지붕 밑’ ‘서귀포 사랑’ ‘뽕따러
가세’ ‘웬일인지’ 등을 작곡한다.
특히 데뷔곡 ‘삼각산 손님’을
비롯해 송민도의 노래 ‘내일이면 늦으리’ ‘푸른 꿈이여 지금 어디’ ‘행복의 일요일’ ‘목숨을 걸어놓고’ 그리고 남인수의 노래 ‘울리는 경부선’
‘무너진 사랑탑’ ‘이미자의 노래’ ‘열아홉 순정’ ‘임이라 부르리까’ ‘정동대감’, 남일해의 노래 ‘이정표’ ‘핑크 리본의 카드’는 그의
대표곡.
‘슬어진 빗돌에다 말고삐를 동이고/초립끈 졸라매면 장원꿈도
새로워/한양길이 멀다해도 오백 리라 사흘 길/별빛을 노려보는 눈시울이 곱구나, 백화난 잿마루에 물복숭아 곱던 밤/아미월 웃어주는 들마루가
즐거워/죽장망혜 늙은 손님 일러주던 글 한수/산허리 굽이굽이 풍악소리 들린다.’
형님 고려성이 작사한 이 노래, ‘삼각산 손님’을 작곡한 나화랑. 그 자신이 노래를 부르려 했지만
형님의 권유로 가수 태성호가 부르게 된다. 작곡가 나화랑은 본디 세계적인 성악가가 되는 게 꿈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작곡가 이재호에게 곡을
받아 취입한 적도 있었다.짧은 생애. 하지만 이 기간에 그는
음악적 재능을 마음껏 발휘했다. 클래식풍에서 민요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곡을 펼쳤던 것이다.‘초록 바다 물결위에 황혼이 오면/사랑에 지고 새는 서귀포라 슬픔인가/임 떠난 부두에 울며 불며 새울
때/칠십 리 밤하늘에 푸른 별도 슬퍼라.’1956년에 가수
송민도가 부른 강사랑 작사, 나화랑 작곡. 클래식풍의 ‘서귀포사랑’이다.
첫댓글 `청포도 사랑,이 상주출신가수 노래임을
처음 알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