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월간 모던포엠 원문보기 글쓴이: 風吼 전형철
현대 한국 詩의 위상과 전개 방향
시인 유창섭
(**) 이달에는 2009년 정초에 발표된 각 신문의 신춘문예 당선작품(시)을 읽어 보며 현대 한국시의 위상과 그 전개 방향을 살펴보는 시간으로 준비하였습니다. 매년 발표되는 신춘문예 작품들을 읽으면서 우리 시가 나아가고 있는 경향이나 형식들을 살펴보는 일은 우리 시인들이 시 창작을 하면서 한번쯤 자신의 시는 어떤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인지, 새로운 경향이란 어떤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인지를 눈여겨보면서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에 이번 달에는 그러한 변화를 살펴보는 시간을 가지기로 하였습니다.---필자(註)
2009년 신춘문예 시 감상을 중심으로
신년을 맞으며 가장 기다려지는 것은 “신춘문예 당선 시”의 모습이 어떻게 변모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러한 변화는 앞으로 우리 한국시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될 것인가를 살펴보는 일이 그 하나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매년 그랬듯이 수고를 거듭하며 신춘문예작품을 모으는 일은 번거로운 작업의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작업이 젊은 세대들의 시적 형식의 변모와 우리 한국시의 발전 방향을 가늠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 변화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 번거로운 작업을 중단할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우선 찾아낼 수 있는 16개 신문의 신춘문예작품을 한자리에 모아 읽어 보기로 하였습니다. 물론 16개 신문의 신춘문예 당선작이 대표적 사례의 전부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이 정도의 시를 수집한 것만으로도 그 경향이나 새로움에 대한 시적 변화를 읽어내기에는 충분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신춘문예작품 수집의 수고를 이쯤에서 접기로 하였습니다.
1. 시적 성향의 변화들
최근 수년 동안 신춘문예에서는 젊은 시인들을 중심으로 전개된 포스트모던하고 보다 경쟁적으로 난해하고 애매한 실험시를 흉내 내는 시들이 많았는데, ‘응모작의 경향이 변화하고 있음이 확인된 것은 고무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과거의 실험정신과 발랄한 어투의 젊은 시가 문단에 활력을 준 것이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도 사실이지만, 삶의 현장과 그 상징성 언어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헛바퀴 돌 듯 그 이미지들이 왜 그 자리에 있어야 했는지 이유도 모르고 따로 놀았다는 인상을 지우기도 어려웠던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이번 신춘문예작품들 중에는 2007년경에 나타나 중심을 이끌었던 미래파적 요소의 범람과 같은 난해성, 엽기성, 또는 애매성의 흐름이 크게 줄어든 반면 삶의 현실에 더 근접하여 그 현실의 뒤편을 응시하면서 미학적 접목을 시도하려는 의도가 상대적으로 늘어난 것처럼 보입니다.
그것은 시가 혼자만 즐기는 시인의 전유물이 아니라, 아직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시의 감상자(=독자)와의 감성적 소통을 중시하는 경향으로의 전환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시 속에 스며들어 있는 이미지가 시인 자신의 자기담론적自己談論的 즉, 혼자만이 해석할 수 있고 혼자만이 알 수 있는 애매하고 난해한 이미지--마치 암호와도 같은 해독하기 어려운 이미지--를 나열하여 독자들이 그 이미지나 의미 탐색을 어렵게 만들어 독자가 시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요소를 제거함으로써 공통의 인식과 상상력의 공간에 시를 내려놓고 그 정서를 교감할 수 있도록 하는, 독자와의 호흡을 통해 그 정서적 상상력이 더 넓게 발현될 수 있다는 시인 자신들의 인식과도 무관치 않음을 인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그 뒷면에는 시를 가르치며 시의 새로운 경향을 선도하는, 신춘문예제도에 직, 간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지도자들의 성향에도 많은 영향을 받았음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시적 소재도 사회성이 짙은 소재라든가, 개인적인 삶의 본질에 다가서려는 현상은 최근의 경제적인 어려움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지만, 이것은 기존의 시적 경향이 없어지거나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그러한 시적 경향을 수정하여 받아들이려는 신인들의 의식이 변화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물론 그러한 시적 경향이 지나치게 개인주의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소재에 머물러 시가 왜소화해 진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2. 시의 문체, 형식의 변화
이번 신춘문예 당선 시 작품의 형식을 살펴보면 2000년대 초 산문시적 흐름이 3분의 2에 육박하던 때에 비해서는 산문시의 형식이 2편, 자유시의 형식이 14편으로 형식상 산문시의 형식이 크게 퇴조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 뒷면을 살펴보면 “시의 행이 점점 길어져서 그 속도감을 중시하는 경향을 보이면서 시의 경계가 산문화의 흐름에 바짝 다가서고 있다”는 형식적 특징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과거의 시 형식이 연을 나누어 이미지의 집적도와 압축의 묘미를 살리는 연 나누기 수법은 14편 중 4편--그것도 실제 적인 모습으로는 연을 나누는 형식이 아니라고 볼 수 있는 2편을 제외한다면 겨우 2편--에 불과하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시의 형식이 활달하고 속도감 있게 달리는 행간의 이미지 변조를 더 선호하는 경향이 보인다는 점입니다.
어떻든 시는 바야흐로 산문시와 자유시의 경계면에서 그 흐름이 형성되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전통시에 대한 운율의 갇힘을 파괴하고 압축이라는 형식을 배제함으로써 활달하고 역동적인 흐름을 가진 운율 파괴를 통한 시적 정서의 변조에 더 가까이 다가서고 있다는 의미가 될 수 있습니다.
종전의 시에 비하면 최근의 시의 내용은 훨씬 장시화長詩化되어가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것은 소설에서도 과거의 소설형식으로부터 다소 난해한 소설적 흐름이나, 꿰맞추며 읽어야 하는 퍼즐식의 구성plot이 나타나고 있는 흐름의 난해함을 가진 소설이 시적 영역으로 바짝 다가서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 구조를 가진 시가 소설적 경계면에 바짝 다가서는 경향과도 무관치 않은 것 같습니다.
여기에서 필자가 말하는 그러한 경향의 변화는 이 변화가 옳다 그르다 하는 이분법적인 판단을 위한 제언이 아니라 새로운 틀의 시적 형식으로의 변화가 앞으로 우리 한국시에 어떻게 자리매김하게 될 것인지, 또 그러한 성향이 어떤 진화를 거듭하여 보다 더 새롭고 멋진 시의 세계를 열어가게 될 것인지를 살펴보고자 함입니다.
아마도 이러한 추세의 시쓰기 형식은 인터넷의 발달과 더불어 새로운 젊은 세대의 즉물적이고 단순 명쾌하며 많은 정보의 양을 편식하며 쉽게 소화되는, 활달하고 빠른 속도감을 유지하면서 즉각 반응하는, 감성적 이미지를 선호하는 경향과 맞물려 당분간 상당한 영향을 주게 되고, 그 안에 이미지를 변용하는 새로운 기교가 탄생하고 소멸하면서 진화를 계속하게 될 것이라는 예상을 하게 합니다.
시를 쓰고 어느 곳에 함께 모여 동인 활동을 하며 비슷한 소재를 앞에 던져 놓고 습작으로 다듬어 내는 일은 흔한 일이고 또 당연히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몇 년간의 시적 성취 속에서는 묘하게도 아주 우연하게도 낯익은 소재들의 집중이 눈에 뜨이고 자주 그러한 이미지들과의 대면을 하게 된다는 사실을 경험하게 됩니다. 특히 시를 한 군데에 모아 놓고 보면 더욱 그런 느낌이 강하게 다가온다. 시를 지도하는 분들이 좀 더 깊은 사고력을 끌어내기 위한 새로운 소재의 제시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게 되는 대목입니다.
예를 들면 노숙자라든가, 모자, 나무, 의자, 책상, 지하철, 신발이라든가 하는 소재들이 바로 그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소재의 편협성“이 산견된다는 말이지요. 매년 우리는 이 시대에서 발견하는 소재의 상투성을 만나게 된다는 의미가 됩니다. 이제 좀 더 다른 소재로 눈길을 돌려 새로움을 착상해 내는 때가 되지는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없지 않았습니다.
다음에는 이번에 당선된 신춘문예 당선 시를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각 신문사의 신춘문예 심사위원들이 당선작으로 선選한 작품은 그 작품 전체의 완성도를 중심으로 한 것이 아니라 응모한 시들 중에서 가장 완성도가 높고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에 무게를 실어 당선시킨 시 이므로 그 자체의 내용적인 적합성이나 이미지의 정합성, 그리고 개별적인 완전성을 가진 시라고 평가할 수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그 이미지 내용의 변별성보다는 그 완결성을 살펴보는 정도의 시읽기를 통해 금년의 신춘문예가 가지는 내용, 형식, 그 변화의 모습을 개괄적으로 살펴보는 일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3. 2009년 신춘문예 당선 시 감상과 심사평 발췌문 인용과 감상
<동아일보>
술빵 냄새의 시간 / 김은주
컹컹 우는 한낮의 햇빛,
달래며 실업수당 받으러 가는 길
을지로 한복판 장교빌딩은 높기만 하고
햇빛을 과식하며 방울나무 즐비한 방울나무,
추억은 방울방울*
비오는 날과 흐린 날과 맑은 날 중에 어떤 걸 제일 좋아해?**
떼 지은 평일의 삼삼오오들이 피워 올린 하늘
비대한 구름떼
젖꽃판 같이 달아오른 맨홀 위를 미끄러지듯 건너
나는 보름 동안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나도 후끈 달아오르고 싶었으나 바리케이드,
가로수는 세상에서 가장 인간적인 바리케이드
곧게 편 허리며 잎겨드랑이며 빈틈이 없어
부러 해 놓은 설치처럼 신비로운 군락을 이룬
이 한통속들아
한낮의 햇빛을 모조리 토해내는
비릿하고 능란한 술빵 냄새의 시간
끄억 끄억 배고플 때 나는 입 냄새를 닮은
술빵의 내부
부풀어 오른 공기 주머니 속에서 한잠 실컷 자고 일어나
배부르지 않을 만큼만 둥실,
떠오르고 싶어
*1991년에 발표된 일본 애니메이션 제목.
** ‘추억은 방울방울’에 나오는 대사.
△1980년 서울 출생 △한양여대 문예창작과 졸업
[심사평] 친숙한 어조로 삶의 다양성 포착
“김은주의 작품은 심각한 현실에 정공법으로 대응하기보단 가볍게 우회해서 대응하는 여유와 다채로운 화법이 돋보였다. 비근한 현실에서 예기치 않은 놀라움을 끌어낼 줄 아는 이 응모자의 시는 친숙한 어조로 삶의 다양한 양태를 포착하고 있다.
김은주의 작품은 함께 투고한 다른 작품들이 보여주듯 대상에 따라 화법을 다채롭게 변주할 줄 아는 능력을 보여주고 있어 당선작으로 선택했다. (이시영 시인·남진우 시인 )“--(인용)
실직한 후 실업수당을 받으러 가는 시인의 발걸음은 예전과 같이 경쾌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 환경 속에서 길어 올린 시적 이미지들이 다양하게 제시되는 능력이 높이 살만 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시를 읽으면서 어딘지 모르게 자꾸 걸림이, 끄윽~ 소리가 나며 편안치 않음이 느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비오는 날과 흐린 날과 맑은 날 중에 어떤 걸 제일 좋아해?”라는 인용구가 왜 필요했을까? 어떤 이미지를 강화시키려는 의도가 있었을까? 하는 그 물음이 그 첫 번째이고, “부러 해 놓은 설치처럼 신비로운 군락을 이룬 / 이 한통속들아” 하는 외침이 주는 시인의 정서와는 달라져 버린 세상에 대한 원망怨望이 담긴 나무들에 대해서 시인이 자신도 그 속의 하나의 존재론적 의미로서 떠오르고 싶다는 의미라면 마지막 “배부르지 않을 만큼만 둥실, /떠오르고 싶어”라는 의미적 연결을 위해서는 “한통속들아”에서는 그 호칭의 “아”를 생략함으로써 (의미론적 문법적 문체) 그 의미가 잘 전달이 될 수 있었으리라는 생각이 머리에서 뱅뱅 돌고 있는 까닭입니다. 이처럼 시는 그 단어 하나, 호칭 하나에도 무게가 실린다는 것을 심사숙고하여 갈무리하여야 할 것입니다.
..................................
경향신문
맆 피쉬 / 양 수 덕
땡볕더위에 잎맥만 남은 이파리 하나
지하도 계단 바닥에 누워 있던 청년은
양말까지 신고 노르스름한 병색이었다
젊음이 더 이상 수작 피우지 않아서 좋아? 싫어?
스스로 묻다가 무거운 짐 원 없이 내려놓았다
맆 피쉬라는 물고기는 물 속 바위에 낙엽처럼 매달려 산다
콘크리트 계단에 몸을 붙인 청년의
물살을 떨다 만 지느러미
뢴트겐에서 춤추던 가시, 가물가물
동전 몇 개 등록상표처럼 찍혀 있는 손바닥과
염주 감은 손목의
그림자만이 화끈거린다
채 풀지 못한 과제 놓아버린 손아귀
청년이라는 이름만으로도 세상의 푸른 이마였던 그의
꿈이 요새에 갇혀서
해저로 달리는 환상열차
잎사귀인지 물고기인지를 한 땀 바느질한
지하도 계단으로 오르내리는 이들이
다리 하나 하늘에 걸칠 때
[심사평]- 개성있는 언어 활달하게 구사
“시를 쓰고 있는 자기 세대의 어법을 개성적으로 연출하고 있다는 점이 돋보였다. 그러나 행과 행의 관계를 긴밀하게 조직하는 힘이 부족해 보였고, ‘숙련공’을 제외한 나머지 작품들은 감각적인 표현에 구체적인 사유를 담지 못한 허약한 표현이 많았다. 시에서 강한 정신력과 숙련된 언어는 함께 이루어진다. 그러나 그가 갈고 닦은 언어는 새롭다기보다 익숙하고 편안해서, 아직 발견되지 않은 언어나 세계를 향한 모험이 보이지 않는다. 시에 지루한 감이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양수덕씨는 다른 응모자들에 비해 개성있는 언어를 활달하게 구사하고 있다. 언어에 개인적 표현이 많아 소통부재의 위험이 보이기도 하나, 당선작 ‘맆 피쉬’에서는 지하도의 걸인이라고 하는 익숙한 소재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치밀한 묘사력과 참신한 비유로 대상을 섬세하게 구현해내었다.
말은 자신의 생각을 갈고 닦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또한 우리 자신을 이 세계로 실어보낼 수 있는 도구이기도 하다. (심사위원 황지우·최정례 )“--(인용)
시를 습작하는 사람들의 어느 집단에서나 비슷한 제재를 다루게 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번에도 어김없이 노숙자를 대상으로 한 시가 당선작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그 소재를 탓할 일은 아니나 습작 중에서 얻은 많은 이미지들 중에서만 그런 시가 당선작으로 올라온다는 것도 우연치고는 이상한 일입니다.
요즘의 시대가 실직이라는 사회적 문제가 하나의 화두가 되어 있으니 그런 소재들이 등장하는 것이려니 하면서도, 과거 몇 년간의 신춘문예의 낯익은 소재들이 되풀이되어 등장하는 것을 보면 얼핏 필자의 머리에도 그러한 인식이 각인되어 편견으로 작용하지나 않을까 염려스럽습니다.
그러한 익숙한 소재를 매우 다른 시선으로 정서적 끈끈함을 묻혀 시로 빚어낸 것은 이 시인의 커다란 장점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이 시대의 젊은이 모두 고용이나 실업의 문제에 부딪히고 있을 때, 그 사회적 이슈issue가 시의 소재로서 등장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하나의 현상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절망 속의 노숙하는 젊음을 하나의 물고기 “맆.피쉬”로 형상화하여 그 아픔의 흔적을 어루만지는 마음이 잘 그려져 있습니다. 젊음만이 가지는 희망이나 야망이 사라진 그는 지하철 소리에 잠들면서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요? 그 형상화 능력이나 이미지를 잘 버무려진 하나의 인식으로 담아낸 것은 상찬받을 수 있는 일이 아닐까 합니다.
..........................................
<문화일보>
즐거운 장례식 / 강지희
생전에 준비해둔 묫자리 속으로
편안히 눕는 작은 아버지
길게 사각으로 파 놓은 땅이
관의 네모서리를 앉혀줄 때
긴 잠이 잠시 덜컹거린다
관을 들어 올려
새소릴 보료처럼 깔고서야
비로소 제자리를 찾는 죽음
새벽이슬이 말갛게 씻어 놓은 흙들
그 사이로 들어가고 수의壽衣 위에
한 겹 더 나무그늘 옷을 걸치고
그 위에 햇살이불 끌어당겨 눕는 당신
이제 막 새 세상의 유쾌한 명찰을 달고
암癌 같은 건 하나도 안 무섭다며
둘러선 사람들 어깨를 토닥거린다
향 같은 생전이 다시 주검을 덮을 때
조카들의 두런대는 추억 사이로
국화꽃 향기 환하게 건너온다
▲1963년 영천 출생/ ▲영남대·경주대 사회교육원 문창반 재학중/▲페이퍼 로즈 공예연구실 원장
[심사평] 죽음에 대한 생각 뒤집는 역설의 묘미 탁월
“‘즐거운 장례식’ 또한 단순한 면이 없지 않다는 점이 지적됐으나 그러한 단점보다는 죽음을 보는 눈이 새롭다는 장점을 더 높이 샀다.
누구의 죽음이든 죽음은 슬프고 고통스럽다는 기존의 생각을 즐겁게 뒤집는 역설적 묘미가 공감대를 형성함으로써 나름대로 높은 시적 성취도를 이루고 있다.
‘관을 들어올려/ 새소릴 보료처럼 깔고서야/ 비로소 제자리를 찾는’ 작은아버지의 죽음은 죽음에 대한 긍정성과 순응성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이자 기쁨의 축제다.
작은아버지는 ‘암 같은 건 하나도 안 무섭다며/ 둘러선 사람들 어깨를 토닥거릴’ 정도로 오히려 남은 가족들을 위로한다.
죽은 자가 산 자를 위로하는 이 반어적 발상을 통한 시적 구현은 이 시인의 앞날에 대한 신뢰의 깊이를 더해준다. 앞으로 한국시단을 빛내는 시인으로 대성하길 바란다.“--<시인 황동규, 정호승씨.> --(인용)
작은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돌아가신 작은 아버지는 ‘뒤에 남은 자‘(=산자)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아주 평안하게 미련을 남기지 않으려는 모습으로 그려져 산자들에게 차라리 하나의 위안을 주는 미덕을 찾아내는 시선을 보여 주는데 성공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다소 단조롭다는 면을 지적할 수 있으나 죽음을 모두 슬픔으로 형상화하는 기존의 틀을 깨고 역설적인 의미를 담아내었다는 점이 이채롭게 느껴집니다.
...........................................
<2009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
오늘은 달이 다 닳고 / 민구
나무 그늘에도 뼈가 있다
그늘에 셀 수 없이 많은 구멍이 나있다 바람만 불어도 쉽게 벌어지는 구멍을 피해 앉아본다
수족이 시린 저 앞산 느티나무의 머리를 감기는 건 오랫동안 곤줄박이의 몫이었다
곤줄박이는 나무의 가는 모근을 모아서 집을 짓는다
눈이 선한 저 새들에게도 바람을 가르는 날카로운 연장이 있다 얼마 전 죽은 곤줄박이에
떼 지어 모인 개미들이 그것을 수거해가는 걸 본 적이 있다
일과를 마친 새들은 둥지로 돌아와서 달이 떠오를 무렵 다시 하늘로 솟구치는데,
이때 달은 비누다
뿌리가 단단히 박혀서 번뇌만으로는 달에 못 미치는 나무의 머리통을 곤줄박이가 대신,
벅벅 긁어주는지, 나무 아래 하얀 달 거품이 흥건하다
오늘은 달이 다 닳고 잡히는 족족 손에서 빠져나가 저만치 걸렸나
우물에 가서 밤새 몸을 불리는 달을 봐라
여간 해서 불어나지 않는 욕망의 칼,
부릅뜨고 나를 노린다
▲민구 _ 1983년 인천 출생. 명지대 문예창작학과 재학 중.
[심사평] 특별함 끄집어내는 시적 상상력 보여
“민씨의 작품들은 시가 일상언어 사용의 중력으로부터 벗어나서 시 아닌 것들과 스스로를 변별케 하는, 고유한 층위를 갖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 층위란 산문의 평지에서 좀 떠 있는 부력, 흔히들 말하는 시적 상상력에 의해 '새롭게 발견된' 영역을 지칭하는 것인데, 민씨에게는 그러한 발견이 있다는 말이다. 이를테면 "새들은 (…) 달이 떠오를 무렵 다시 (…) 솟구치는데,/ 이때 달은 비누다"라든가, 그의 다른 시 〈배가 산으로 간다〉에서의 "물속에 매달아 놓은 조등" 같은 대목은 범상치 않은 발견이다. 그것이 있을 때 시가 스스로 뜬다. 이런 좋은 부력이 있음에도 그것을 방해하는 좋지 않은 버릇이 민씨에게도 있다. 다분히 서술적인 말투라든가, 시라고 하는 대단히 인색한 지면에서 동어반복하면서 낱말들을 낭비하는 것, 시적 상념이 더 깊은 데로 들어가지 못하고 제자리걸음하고 있는 것 등등이다. 이런 악습은 대부분의 응모작들에게 더 해당된다 하겠다. 특히 근래 판타지에의 경향성 속에서 스스로도 감당 못할, 실패한 은유들의 범람은 참 견디기 힘들다. /▲심사위원 _ 시인 문정희, 황지우 ”--(인용)
“일과를 마친 새들은 둥지로 돌아와서 달이 떠오를 무렵 다시 하늘로 솟구치는데, 이때 달은 비누다”와 같은 표현에서는 그 상상력의 비약이 남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으며, 바람에 잎새 많은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그늘을 “바람만 불어도 쉽게 벌어지는 구멍”으로 표현해 내었다든지, 달빛이 흥건히 뿌리를 적시는 근처를 “발거품이 흥건하다.”라고 표현해 내는 상상력이 매우 새롭습니다. 나무와 어울려 사는 곤줄박이의의 기대어 사는 모습을 형상화한 점도 재미있게 읽힙니다.
“우물에 가서 밤새 몸을 불리는 달을 봐라 / 여간 해서 불어나지 않는 욕망의 칼,”에서는 역설적 의미를 담고자 했는지 모르겠으나 ‘소극적, 반어적’ 사실로 나타내어 “줄어들지 않는”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아닐까 싶습니다.
..............................................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
무럭무럭 구덩이 / 이우성-
이곳은 내가 파 놓은 구덩이입니다
너 또 방 안에 무슨 짓이니
저녁밥을 먹다 말고 엄마가 꾸짖으러 옵니다
구덩이에 발이 걸려 넘어집니다
숟가락이 구덩이 옆에 꽂힙니다.
잘 뒤집으면 모자가 되겠습니다
오랜만에 집에 온 형이
내가 한 눈 파는 사이 구덩이를 들고 나갑니다
달리며 떨어지는 잎사귀를 구덩이에 담습니다
숟가락을 뽑아 들고 퍼 먹습니다
잘 마른 잎들이라 숟가락이 필요 없습니다
형은 벌써 싫증을 내고 구덩이를 던집니다
아버지가 설거지를 하러 옵니다
반짝반짝 구덩이
외출하기 위해 나는 부엌으로 갑니다
중력과 월요일의 외투가 걱정입니다
그릇 사이에서 구덩이를 꺼내 머리에 씁니다
나는 쏙 들어갑니다
강아지 눈에는 내가 안 보일 수도 있습니다
친구에게 전화가 옵니다
학교에서 나를 본 적이 없다고 말합니다
나는 구덩이를 다시 땅에 묻습니다
저 구덩이가 빨리 자라야 새들이 집을 지을 텐데
엄마는 숟가락이 없어져서 큰일이라고 한숨을 쉽니다
[심사평] 희귀한 감각과 상상력… 신인다운 신선함 돋보여
“응모작의 경향이 변화하고 있음을 확인한 것도 고무적인 일이었다. 최근 수년 동안 신춘문예나 문예지 응모에서는 젊은 시인들을 중심으로 전개된 포스트모던하고 전위적인 실험시를 흉내 내는 시들이 많았다.
실험정신과 발랄한 어법을 특징적으로 보여주는 젊은 시가 문단에 활력을 준 것은 긍정적이지만, 삶의 현장과 역동적으로 맞물리지 못하고 헛바퀴를 돌리는 듯한 아쉬움을 준 것도 사실이다.
이번 응모작들에서는 이런 흐름이 크게 줄어든 반면 삶의 현실을 체감하거나 강하게 끌어당겨 미적으로 형상화하려는 시도는 상대적으로 늘었다. 이것은 기존의 역량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시적 경향이 변화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최근의 경제적인 어려움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까지 논의된 작품은 이우성의 '무럭무럭 구덩이'와 장예은의 '만월'이다. 이우성의 시는 감각과 상상력이 희귀하고 개성적이며 생기있고 활력이 있다. 목소리도 힘 있고 거침없고 속도감과 리듬감이 있어 신인다운 신선함이 돋보였다.
심사위원 신경림(시인) 김사인(시인ㆍ동덕여대 교수) 김기택(시인) “--(인용)
구덩이와 모자의 이미지를 통해 가족들 각자의 삶이 가지는 의미를 활달한 상상력으로 막힘없이 그려나간 시입니다.
밥그릇의 밥을 가운데서 파먹고 있는 구덩이, 그 구덩이를 뒤집어 머리에 쓰면 모자가 되는--먹고사는 일이 하나의 삶이 되고 모자가 짐이 되고 모자가 사회적 역할의 상징이 되는--그 상상력의 행간에 다소간의 환상적이고 애매한 이미지를 덧칠하여 감추어진 걱정(숟가락, 설거지, 외투)들이 가족 각자의 역할적 “삶의 짐”으로 그려 있다는 점이 이채롭게 읽힙니다.
.........................................
<국제신문>
난쟁이행성 134340에 대한 보고서 / 도미솔
명왕성이 태양계에서 퇴출됐다
수금지화목토천해명의 끝별 명왕성은
난쟁이행성 134340번이란
우주실업자 등록번호를 받았다
그때부터 다리를 절기 시작한 남편은
지구에서부터 점점 어두워져 갔다
명왕성은 남편의 별
그가 꿈꾸던 밤하늘의 유토피아
빛나지 않는 것은 더 이상 별이 될 수 없어
수평선 같았던 한쪽 어깨가 기울어
그의 하늘과 별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는 꿈을 간직한 소년에서 마법이 풀린
꿈이 없는 중년이 되어버렸다
명왕성은 폐기된 인공위성처럼 떠돌고
남편의 관절은 17도 기울어진 채 고장이 났다
상처에 얼음주머니 대고 자는 불편한 잠은
불규칙한 삶의 공전궤도를 만들었다
이제 누구도 남편을 별이라 부르지 않는다
알비스럼 낙센에프정 니소론정
식사 후 늘 먹어야하는 남편의 알약들이
그를 따라 도는 작은 행성으로 남았다
남편을 기다리며 밝히는 가족의 불빛과
아랫목에 묻어둔 따뜻한 밥 한 그릇이
그의 태양계였으니, 늙은 아버지와
아내와 아들딸을 빛 밝은 곳에 앞세우고
그는 태양계에서 가장 먼 끝 추운 곳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노예처럼 일했을 뿐이다
절룩거리고 욱신거리는 관절로
남편은 점점 작아지며 낮아지기 시작했다
그도 난쟁이별로 변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가 돌아오는 길이 점점 멀어진다
그가 돌아오는 시간이 점점 길어진다
그 길을 작아진 그림자만이 따라오는데
남편은 그 그림자에 숨어 보이지 않는다
지구의 한 해가 명왕성에서는 248년
그 시간을 광속에 실어 보내고 나면
남편은 다시 별의 이름으로 돌아올 것이다
명왕성과 함께 돌아올 것이다
〈약력〉본명 도순태 ▷1957년 경북 경산 출생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심사평] 긴 시를 장중하게 끌고 가는 저력 돋보여
“경향 각지는 물론 해외에서까지 보내온 많은 시들을 읽었습니다. 다양한 시의 형식과 더욱 다양한 주제들 앞에서 심사위원은 고심하면서 오랫동안 시를 읽었습니다.
심사위원들은 '장롱을 열어두고'와 '난쟁이행성 134340에 대한 보고서'를 두고 두 분 다 표제작은 물론 함께 보내온 탄탄한 구성의 시들에서 오랫동안 시를 써온 분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장롱을 열어두고'는 맑은 서정과 부드러움이 빛나는 시였고, '난쟁이행성 134340에 대한 보고서'는 시가 갖는 힘과 긴 시를 흔들리지 않고 장중하게 끌고 가는 저력이 돋보이는 시였습니다.
명왕성이 태양계에서 퇴출된 것과 우리 사회의 구조조정이란 문제를 서정적인 문체로 제시하며 '희망'이란 메시지를 선물하고 있는 '난쟁이행성 134340에 대한 보고서'를 만장일치로 당선작으로 결정했습니다. <본심 심사위원 천양희 정일근 문태준(시인)>“--(인용)
현대사회, 특히 요즘 우리가 겪고 있는 사회에서 구조 조정이니, 퇴출이니 하는 용어는 어디에서나 “일상화된 언어”로서 자리 잡기 시작하였습니다.
“난쟁이 행성 134340에 대한 보고서”는 현재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화두의 하나로서 그 의미가 적지 않게 무겁다. 그러나 그 이면에 희망을 버리지 않는 미덕이 깔려 있어 정겹게 읽힙니다.
“남편은 점점 작아지며 낮아지기 시작했다 / 그도 난쟁이별로 변하고 있는지 모른다 / 그가 돌아오는 길이 점점 멀어진다 / 그가 돌아오는 시간이 점점 길어진다 / 그 길을 작아진 그림자만이 따라오는데 / 남편은 그 그림자에 숨어 보이지 않는다”를 읽으면 남편에 대한 측은한 마음이 가득함을 느끼게 됩니다.
한 때, 억압받는 소외된 서민의 슬픔을 대변하는 듯이 보였던 소설가 조세희의 소설 “난쟁이가 쏘아 올린 직은 공”이 떠오릅니다.
“지구의 한 해가 명왕성에서는 248년”라는 대목에 이르면 한 해 한 해를 힘겹게 살아가는 남편의 1년은 248년 만큼이나 지루하고 힘든 세월이었으리라는 안타까움과 사랑의 마음이 겹쳐 읽힙니다.
이번의 신춘문예작품 중 호흡이 길고 멋진 감성이 그려진 시의 하나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
<무등일보>
아르정탱 안을 습관적으로 엿보다 / 윤은희
1
골목의 연탄 냄새 부풀어 전생의 어스름 빛으로 울적한 저녁
길바닥의 검푸른 이끼들 엄지손톱 半의 半 크기 달빛에 물들었다
아르정탱Argentan * 에 맨발로 들어가 자주 꾸는 꿈 벗어두고 나왔다
2
예전에 방앗간이었다는 전설 알고 있다
아,르,정,탱, 하고 불러보는데 안쪽 벽 타고 ‘돌돌돌’ 물소리 흘러내린다
남자들의 이야기 소리, 쉼 없는 흐름에 세월 함께 묻혀졌다
무대 뒤쪽 갤러리 프리다 칼로는 디에고 리베라의 The Flower Vendor를
힐끔, 끌어당기고 있었다
사계절의 호흡이 울다가 지쳤나보다
3
나무로 된 제단祭壇은 사라지고 없었지만
높지 않은 천장과 벽을 지나 기억字 다락방에 들어갔다
먼지 깔린 마루 위, '다락방의 미친 여자'가 눈꺼풀 깜빡인다
습기 묻어 닳은 웃음 나무 계단을 미친 듯 닦고 있다
안타깝게도 그곳에는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는 없었다
4
하루 종일 굶었다
마티니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소리에 은그릇 반짝거림이 딸꾹질 한다
이슬 맺힌 잎사귀 후려치는 듯, 벽난로의 기둥이 꽃화분 훔쳐보고 있다
5
미친 여자의 하이힐처럼 똑딱대는 子正무렵
오늘은 '도둑맞은 시간에 걸어오는 연인에 대해 이야기 해 볼까 합니다
연인을 능욕한 천박한 권태는 그녀의 머리카락 끝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손도 닿기 전에 시들기 시작하는 마른 허브잎
그날은 불안을 잠식하는 비를 맞고 집으로 돌아 왔다
의심은 달착지근한 냄새로 붙어 있었다
6
詩를 생각하다 그만,
생선 눈알처럼 벌겋게 달구어진 자음子音들, 꼭꼭 밀어 넣어 반죽한다
슬픔 뚝뚝 떠내어 ‘대리만족’ 이라는 수제비를 굽는다
기호를 품지 않은 낱말 대리만족을 모른다
세상의 조롱거리 내 몫이 아니지
7
물안개 추파秋波처럼 미끄러지다 까무러치는 호수 주변을 손잡고 뛰었다
파르테논 신전 앞에서, “그대에게 사랑을” 고백하겠다던 맹세는 황사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갑자기 입술의 냄새는 서걱거리는 먼지처럼 까칠해졌다
사나흘 내린 비 끝에 다시 아르정탱에 갔습니다
본능의 능숙함이 당신의 입술을 더듬거렸습니다.당신의 입술은 나의 미각만을 기억할 뿐
두 시 방향으로 기운 햇살의 온화함이 묻어 있어요
8
주인장
오늘은 Leonard Cohen의 Famous Blue Raincoat를 들을 수 있겠소
내 인생이 파편으로 취급당하고 싶지 않아서 그렇지요
약하게 슬어지는 음조音調, 불구가 된 기억에는 없다
건너 편 테이블의 핑크재킷과 홍차 사이에는
말해야 하는 것이 있음에도 말할 수 없는 어색함 감돌았다
다만 성스런 스푼이 빛바랜 비단옷 차림으로 춤추고 있다
9
그날은
교리의 꽃봉오리에 충실한 교회 사람들
마음씨 좋지만 우둔한 젊은 청춘들 빈틈없이 가득 차 있었다
매끈하게 빠진 조약돌 하나 주머니에 넣고 땀이 나도록 문질러도
손이 헤지 않을 그런 신부와 결혼식이 있을 예정입니다
각별한 의식儀式
주인장이 누구에게나 봄소식 하나 던져 준 날이다
10
오늘은
여자들 불편하게 하는 소박한 음악 연주회가 있어요
콘트라베이스를 든 남자의 팔뚝이 검게 그을다만 남성성을 과시하고 있어요
첼로의 숨결소리, 매일 밤 떠오르는 해가 되었다
그렇다고 카스트라토를 죽이지는 마세요
수족관의 주홍빛 물고기들
살아, 살아 외침을 거듭하고 있다
함께 살고 싶어 안달하는 소년 소녀를 위로하는
무조건적인 달, 높이 떠올라
호수는 물안개의 소름으로 노닥거리고 있었다
(손끝 적셔주는 빗방울 떨어져 분열증 낚아챌 때, 정신과적 치료가 필요해요)
11
한 사람이 두 사람을 기다린다
서로 같은 나라 말을 쓰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한 사람은 표준말에 서투르고, 다른 한 사람은 사투리에 서투르다
그런데 표준말을 잘하고 또한 사투리도 잘하는 사람이 죽는다
무슨 뜻, 어떤 의도였는지 아무도 모른다
관객들은 짐작만 할 뿐
12
남자 둘 여자 하나
쭈그린 술친구들입니다
한 사람의 맹세가 나뭇가지 위 잔설殘雪에 반짝이고 있어요
술 그리고 여름날의 여자만 저울질하겠다 말했지요
맥주의 쓴맛을 혀 위에 굴리며 곁눈짓으로 농담을 엿들었다
혼자 잠드는 침대처럼 사는 게 아쉽다고 느껴질 때면
Bevinda의 “다시 스무살이 된다면”이 떠올랐어요
13
'장미빛 인생'을 닮지 않은
장미 입술에 입맞춤 한다고 장미가 웃겠어요
오히려 우리가 울었지요
그대 떠났을 때 나는 온통 그림자로 드리워질 거예요 건너 보이는 트라이엄프 아파트의 커튼 찢겨져 방향 없이 나부낀다
不在의 냄새, 비온 후의 버섯이 되었다
14
서리 내리는 차가운 11월
골목길 빠져나오는데
검은 상복 벗어던지지 못한 숙녀의 얼굴 빤히 쳐다보는 여름날의 구름은 못내 불편하다
잘못 보낸 시간의 보복을 염려하고 있는가
구름의 맥박은 거의 고동치지 않았다
15
밤이면 내 꿈을 흔들어 놓던 그대는
홀린 듯 둥글게 닫힌 가방을 열고 몰래 감추어둔 햇빛을 쏟아 부었다
- 숨쉬기 운동에는 적당한 햇빛이 필요해
16
큐피드의 화살을 맞고서,
미처 빠져 나오지 못한 경절형 심장이
베네딕트 여자 봉쇄 수도원 55m 종루에 사로잡혀 길게 하품하더니
졸음을 재촉하고 있다
다트의 화살은 한 방울의 피도 남기지 않고 쏟아내는구나
17
빵 굽는 냄새 속,
기억은 회초리 맞은 정情에 사로잡혀
한낮의 깊은 그림자 소진해 버렸다
걸어 두어 목이 잘린 꿈 외투 걸치듯 입고 나왔다
* 대구 수성구 파동 664번지에 있는 카페
▲경북 경주 출생 / 계명대 일반대학원 영문학과 졸업
[심사평] 시적 요건 장치 담긴 총체적 기상도
“'신춘문예'는 한 신문사의 대단한 일년농사다.
그리고 이 일을 기다리는 많은 사람들에겐 두꺼운 지층을 열고 나온 새싹의 그 파릇한 정신과 가능성을 보여드리는 일이다.
이들 작품들은 저마다 신인에게 필요한 패기와 발랄함, 시적 개성 등이 숨쉬고 있어서 어느 작품을 당선에 올려도 손색이 없겠다 싶었다.
허나 선택에는 항시 '보다 더 좋은'이라는 조건이 걸리는 터여서 '아르정탱…'이 뽑힌 것이다.
당선작은 우선 시적 길이부터가 근년의 경향에서 조금 예외이다 싶게 장시적 모습을 띠고 하나의 이야기를 담아낸 작품이다.
그리고 당선작이 지닌 장시가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지만 여기에는 갖가지 시적 여러 요건이나 장치들이 담겨 있어서 그야말로 시에 대한 총체적 기상도를 읽어낼 수 있다.
이같은 길이를 파탄 없이 끌고 가는 시인의 저력이 돋보였고 후일의 야심 또한 읽을 수 있었다. 적어도 손끝에 달린 몇개의 감각과 재주로 세상에 덤비는 얄팍함도 덜어낼 수 있었다.“<김종 시인>--(인용)
이 시는 상당한 수련과 호흡의 길이를 가진 시인이 아니면 쓰기 힘들만큼 그 길이부터 길었습니다. 아마도 자주 찾아가는 “아르정탱...”이라는 카페를 중심에 두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상의 모습과 자신의 내면에서 실려나가는 감성을 접목시켜 시화해 보려는 시도였던 것 같습니다.
장시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그러한 실험적 정신이 시적 정서를 다양하게 접목시키는데 어느 정도 성공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단편적인 의식의 흐름이나 다양한 형상화에 담겨져 있는 중심정서(뼈대)는 무엇일까요? 다양한 언어의 표현기교일까요? 그리고 그 속에 장치하여 담아내고자 하는 일상의 모습이 독자의 감성과 어떻게 소통될 수 있는 것인지 고려한 이야기가 숨어 있는 것일까요?
시 속에 등장하는 “네루다의 우편 배달부”같은 시적 영감의 교류를 위해서는 피카소의 그림이나 그 제목이 어떻게 연결되는 것인지 그렇게 하여 시적 상상력을 전개하려는 목표는 무엇일까요? 어찌 보면 다소 현학적 취미가 끼어든 현상은 아닐까요?
이 시인의 언어를 다스리는 능력이 탁월하게 느껴지는 각각의 17개나 되는 이미지 조각을 퍼즐처럼 끼워 맞춰 보며 내내 떠나지 않는 생각이었음을 토로해야겠습니다.
.....................................
<전남일보>
기와 이야기 / 이수윤
육차선 도로가 생기고
청과물 도매시장이 부쩍 몸피를 키워
산 밑의 각화동 마을은 몸을 더 엎드린다
예쁜 눈썹으로 웃는 기와는
알고 보면 지나온 이야기가 무거워
한평생 돌아눕지도 못한 거였다
아팠던, 그리고 달던 들숨과 날숨의 흔적에
풀꽃을 피우며 결리는 어깨뼈를 겯고
너나들이를 한다
그러다 문득
세월은 생각을 돌려놓는 큰손이라며
기와는 가끔씩 스스로를 돌아본다
된장 꽃으로 핀 푸른곰팡이도 밉지만은 않은 객
선선히 걷어내면 풋고추가 달다는 어머니는
먼데 소식에 귀를 세우는 능소화
하늘을 능멸하고 조소하는 그것을 왜 심으셨나
기와는 말없이 다 알고 있다
어머니의 젊음, 비릿한 날개를 단
붉은 꽃잎이 기와의 머릿속에 별처럼 누벼질 때
어머니는 오이냉국에 찬 밥 한 그릇의
밥상을 받기 위해 칠십 평생 달려온
밭고랑을 또 달린다
모서리가 닳아서 어머니 같은 기와 속엔
시간의 붉은 피가 이야기로 갇혀 있다
△1961년 진도 출생/광주대 대학원 석사, 희곡창작 전공/시조시집 '은행이 익어 갈 때'출간
[ 심사평 ] "평범한 삶의 풍경 따스한 표현"
“본선에 오른 작품들을 숙독하는 과정에서 선자의 초점은 새로움이었다. 삶과 언어를 대하는 관점이 새로우면서도 이미지의 전개 속에 시인이 꿈꾸는 따뜻한 유토피아가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았다.
이명순의 '기와 이야기'는 우리 일상 주위에서 찾을 수 있는 평범한 삶의 풍경을 노래한 것이다. 따스한 힘이 핏줄로 스며드는 우직한 느낌이 있다. 우직하게 다가오는 따뜻한 삶의 꿈을 선자가 새로움으로 해석한 결과이지만 정영희 씨의 미래에도 함께 박수를 보낸다. (곽재구 시인ㆍ순천대 교수)“--(인용)
기와처럼 자꾸 낮아지는 낮은 곳의 소박한 서민들, 그 삶의 이야기 속에 구수하고 우직한, 한국적이고 옛것의 상징처럼 되어 잊혀져가는 미덕을 지닌 어머니를 등장시켜 잔잔한 감동으로 그려낸 시입니다.
아주 현란한 언어의 유희도 눈에 뜨이지 않지만 그 감각적 언술이 뚜렷한 시어를 곁들여 가면서 무리 없이 풀어내는 힘이 느껴집니다.
..........................
<경상일보>
골목 안으로 열리는 봄날의 동화童話 / 정 원
봄은 아이들 시린 손끝에서 왔다
골목 안은,
어김없이 가위질 소리로 짤랑거리고
덩달아 온 세상 흰 밥풀꽃 가득한 뻥튀기 소리
와아, 골목 안 가득 풀려나오면
햇살처럼 환하게 웃음이 되는 아이들
달그락달그락 알사탕 같은 꿈들은 호주머니 속 숨겨둔
꽃망울처럼
시린 바람 끝에서도 붉었다
햇살에 투영되는 꽃무늬, 유리알 속엔
알록달록 봄을 틔우는 화원花園이 열리고
동네 골목골목 안은 그 화음에
구슬 같은 아이들의 눈빛으로 가득 채워지곤 했다
냄비, 헌 세숫대야, 그렇게 찌글찌글한 "찌글이" 아저씨는
아이들 입에서 동실동실 허연 엿가루의 봄날을 띄우고
봄바람에 갈라 터진 손등, 닳아빠진 소매 깃엔
이따금 춘삼월을 어루는 흰 조팝꽃 같은
이른 봄빛이 마구 피어오르곤 했다
골목 길,
아이들 하나 둘 길 위에 비워지고
전등불 스윽 노란 개나리꽃 한 다발 피워낼 즈음
봄날은 그렇게 장난기 많은 얼굴로
아이들의 긴 그림자 꼬리를 물고 서 있곤 했었다.
< 프로필 >
정 원(본명 김균태)/1960년 서울 출생./대전 목원 대학교 경제학과 졸업./현 대전지하철 영상광고사업단 /(주)엠파크코리아 국장./1996년 오늘의 문학 신인상./2007년 대전문인협회 공로상./2006년 시집 <어느, 어느 봄날에>./2008년 현대시문학 신인상.
[심사평] 선명한 생동감 넘쳐
“본심에 올라온 시들은 대체로 수준이 높았다. 이미 많이 공부하고 많은 문학수련을 거쳤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시들이 대부분이었다. 반면에 어떤 시는 너무 잘 쓰려고 공연히 어렵게 쓰고 있는 시도 있었다. 아주 개성적인 시도 있었다. 그러나 지나치게 주관적 심성에 매몰되어 있어 화자가 말하고자 하는 고통이 고통으로 전달되지 못하는 게 안타까웠다. 산문시의 지나친 산문성이 시 읽는 재미를 떨어뜨리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이미지의 비약 적절하지 않은 비유가 도리어 시상을 흐트러뜨리는 경우도 발견됐다.
여러 번을 망설인 끝에 ‘골목 안으로 열리는 봄날의 동화’외 4편을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다섯 편 모두 안정돼 있었다. 이미지가 선명하고 생동감이 넘치는 게 장점이었다. 과장과 현란한 수식 없이도 충분히 다 말하고 있는 시였다. 한 행도 함부로 쓰지 않는 섬세함과 문장 하나도 팽팽한 긴장으로 끌고 가는 게 보였다. 그리고 그렇게 끌고 간 문장의 끝에 새로운 이미지를 생성하는 서술어를 배치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복고적 서정에 머물고 있는 점, 작품마다 ‘그렇게’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고 있는 점 등이 걸리기는 했으나 작품마다 연륜의 무게가 느껴져서 당선작으로 밀었다. / 심사위원 도종환 “--(인용)
밝고 희망찬, 그리고 환한 글을 쓰기란 쉽지 않다. 자칫 그 밝음이 종교적 바탕을 가진 어색한 밝음이거나 꾸며진 심상처럼 보여서 그런 시가 쓰기 힘들다는 것일 것입니다.
밝고 순수함이 깃든, 천박한 가난이 아닌 그 넉넉하지 못함 속에 존재하는 여유와 버풂의 미덕이 환하게 피어나고 있음을 봅니다.
“골목 안 가득 풀려나오면 / 햇살처럼 환하게 웃음이 되는 아이들”에서 보는 것처럼 그 뻥튀기 골목이라는 소박한 공간에서의 환한 웃음이 되는 아이들을 그려낸 솜씨가 깔끔합니다.
“그 화음에/ 구슬 같은 아이들의 눈빛으로 가득 채워지곤 했다”이나 “이따금 춘삼월을 어루는 흰 조팝꽃 같은/ 이른 봄빛이 마구 피어오르곤 했다”는 광경은 상상만으로도 정겹고 훈훈하게 느껴집니다. 바로 그렇게 “봄날은 그렇게 장난기 많은 얼굴로/ 아이들의 긴 그림자 꼬리를 물고 서 있곤 했었다.”는 언술이 아주 밝고 정답게 그려진 아름다움이 깃들여져 있습니다.
.........................................
<한라신문>[특집/2009 신문 한라문예]시 당선작-
오래된 잠 / 이민화
다섯 송이의 메꽃이 피었다.
아버지의 부재를 알리는 검은 적막을 깨고,
돌담을 딛고 야금야금 기어올라
초가지붕 위에 흘림체로 풀어놓는다.
무게를 견디지 못한 바람벽이
움찔 다리를 절면,
마당가에 선 감나무도 키를 낮춘다.
아버지의 귀가에서 나던 솔가지 타는 냄새
너덜너덜해진 문틈으로 새어나오고,
가쁜 숨을 몰아쉬던 수도꼭지
끄윽끄윽 울음을 뱉어낸다.
산 그림자 마당으로 내려서면,
거미줄에 걸린 붉은 노을
점점 시력을 잃어가고,
먼지 쌓인 잠을 쓱쓱 문질러 닦아내면
아버지의 오래된 시간이 푸석한 얼굴로 깨어난다.
늙은 집이 메꽃을 피우고 있다.
▷65년 경남 남해 출생 ▷방송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다층문학동인▷제주MBC 여성백일장 시부문 동상 ▷제주신인문학상 시당선 ▷동서커피문학상
[ 심사평] 언어로 잘 그려낸 아버지의 폐가 풍경
“모두 만만찮은 시 쓰기의 경지에 있다. 그런데도 모두 조금씩 부족감을 느끼게 되는 것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구두점 쓰기 등에 좀 더 마음 썼으면 한다. 여기서 '부족감'이라고 지적하는 바는 읽고 난 뒤에 받는 시 읽기의 감동이다. 시 읽기는 혼의 울림을 깨닫는 자리가 아닌가. '11월의 대정 골'은 제주어로 시를 쓰고 그 시를 표준어로 다시 쓰고 있다. 아무리 인간의 혼이 언어라 하더라도 그 혼의 노래를 두루 알려져 있지 않은 토박이어로 쓴다는 것에 대한 논의는 계속되어야 마땅하다.
시의 구조가 견고하지 못한 점도 없지 않지만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는데 아기자기한 사물들의 이미지를 통해 절제된 감정을 언어로 수채화 그리듯이 잘 그려내었다. 시간 구조도 과거를 현재로 잘 풀어냈다. 아버지가 살았던 집이 폐가인 데도 '낡은 집'이 아니고 '늙은 집'으로 의인화시키는 놀라운 표현을 간단히 해내고 있다. “<문충성>--(인용)
아버지가 떠나신 후 아무도 살지 않아 폐가가 된 빈집의 모습이 그리움처럼 매달리는 시로 잘 그려져 있습니다.
어찌 제멋대로 핀 메꽃이 아버지의 글씨처럼 “초가지붕 위에 흘림체로 풀어놓는다./ 무게를 견디지 못한 바람벽이 / 움찔 다리를 절면,” 예전의 모습으로 되돌려지는 것처럼 느껴지는 마당 가의 오래 사용하지 않고 버려둔 수도에서 물이 흘러나오는 모습을 “가쁜 숨을 몰아쉬던 수도꼭지/ 끄윽끄윽 울음을 뱉어낸다.”고 그려낸 것이나 “거미줄에 걸린 붉은 노을 /점점 시력을 잃어가고,”와 같이 늙어가는 빈집의 모습이 “아버지의 오래된 시간이 푸석한 얼굴로 깨어난다./늙은 집이 메꽃을 피우고 있다.”는 풍경으로 안타까움과 그리움의 정서를 매달고 나타나 잘 그려진 한 폭의 을씨년스런 그림처럼 읽혀집니다.
독특한 시선에 정감이 가면서도 현대 우리나라의 농촌의 모습이 투영되어 쓸쓸함이 덧칠되고 있는 시입니다.
-------------------
<영남일보 문학상>
나무의 공양 / 이경례
졸참나무가 제 몸통을 의탁해왔네
지난 태풍에 겨우 건진 살림살이지만
기와 불사를 생각하며 제 몸 선뜻 내 놓았다네
오래도록 산문의 입구를 지켜 온 졸참나무와
딱따구리, 한참을 골몰한 붉고 노란 머릴 조아리며
하피첩서霞帖書를 떠올리다, 마침내
졸참나무, 거친 한 생의 피륙에다
제가 살아온 산야의 사적비를 짜기로 했네
구족口足 화가가
붓을 입에 물고 넝쿨처럼 뻗어 오르는
푸른 영혼을 펼쳐내듯
한 땀 한 땀이 딱따구리 혼신의 필사
졸참나무 나이테에 누가 바늘을 올렸나
아득한 시간의 엘피판에서 흘러나오는
여든 아홉 암자의 일천성인 득도의 날들과
어느 날 산사의 소신공양燒身供養
졸참나무의 한 생이 받드는 허공 속으로
무거운 산 울대 오래 공명하는 딱따구리의 필력
노을치마인 듯 소슬히
산야가 제 온몸 펼쳐 품안에 보듬는 저녁이라네
[심사평] "투명하고 맑은 서정의 힘 돋보여"
“'흔적'은 당선을 두고 마지막까지 겨룬 작품이다. 이 응모자가 선택하는 깊이 있는 시어들은 주제를 끌고나가는 끈질긴 사유의 힘과 어울려 상당한 설득력과 무게를 차지해 보인다. 그럼에도 당선작의 뒷자리에 설 수밖에 없었던 것은 어딘가 익숙한 수사로 가로질러 오는 언술들이 잦았던 탓이었다. 새로운 도약을 위해서는 자신에게도 낯선 자리를 마련해주려는 용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나무의 공양'은 오래 묵힌 소재를 활달하고 투명한 상상력으로 맑은 샘물처럼 산뜻하게 변주한 작품이다. 대상을 새롭게 부조하여 오롯이 완결된 한편의 서정으로 빚어내고 있어서 이 응모자의 숙련된 공력을 느끼게 한다. 시가 직선도 곡선도 아닌 얼개를 갖고 있다는 것을 어느 정도 깨우친 결과이리라. ■ 심사위원 이하석(시인), 김명인(시인·고려대 문예창작학과 교수)“--(인용)
산사의 기와 불사佛事를 위하여 서까래로 쓰기 위해 베어지는 졸참나무의 연륜 속에 새겨진 곡진한 생의 역사를 구석구석 자연과 소통하는 언어로 형상화시켜 정감있게 그려낸 시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펼쳐진 이미지의 크기에 비해 의미전달이 활달한 표현기교에 치우친 감이 있으나 그 상상력의 전개가 폭넓게 펼쳐진 점은 시적 탁마의 연륜을 느끼게 하는 데 충분히 기여하고 있습니다.
--------------------------
[2009 대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비 온 뒤 / 구민숙
빨랫줄에 매달린 빗방울들
열일곱 가슴처럼 탱탱하다
또르르! 굴러
자기네들끼리 몸 섞으며 노는
싱싱하고 탐스런 가슴이 일렬횡대, 환하니 눈부시다
그것 훔쳐보려 숫총각 강낭콩 줄기는 목이 한 뼘 반이나 늘어나고
처마 밑에 들여 놓은 자전거 바퀴는 달리지 않아도 신이 났다
빗방울의 허물어지지 않은 둥근 선 안에는
주저앉지 않은 꿈들이
명랑한 송사리 떼처럼 오글거리고
서른여섯 나는, 물컹해진 나의 그것과 비교하며
녀석들을 살짝 만져보고도 싶다
그래, 내게도 저런 가슴이 있었지
열일곱, 연분홍 유두가 장식처럼 화사하던,
주눅 들지 않은 노래로 충전되어
금방이라도 둥실 날아오를 수도 있을 것만 같던
나는 바구니에 담아 내 온
일곱 살 아이의 반바지와 말 안 듣길 소문 난 신랑의 양말과
목욕 수건들과 75 A컵 내 분홍 브래지어를 널지 못한다.
[심사평] ˝메시지 분명하고 시적 논리 합당˝
“<비 온 뒤>는 우선 깨끗하게 정돈된 작품이며 메시지가 분명하고 시적 논리가 합당하다는 점에서 앞의 작품들의 결점을 충분히 뛰어넘고도 남는 작품이었다. “빨랫줄에 매달린 빗방울들/열일곱 가슴처럼 탱탱하다/또르르! 굴러/자기네들끼리 몸 섞으며 노는/ 싱싱하고 탐스런 가슴이 일렬횡대, 환하니 눈부시다”라는 첫 부분의 표현들에서 보듯 이 시는 어느 날 우연히 목격된 ‘빗방울들’에서 시적 사념을 출발시켜 그것을 약동하는 언어의 충전으로 끌고 나가다가 마침내 그것을 ‘시로써’ 터트릴 줄 아는 기량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선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으며, 괜스리 어렵거나 추상적이거나 한 표현 한 구절 없이 자기 소리를 하나의 작품 안에 오롯이 담아낼 줄 아는 그 시적 절제 또한 믿음직스러웠다. 한마디로 싱싱하고 단정하며 마지막 연에서 보듯 장난기 어린 웃음이 배시시 행간 밖으로 삐어져나올 듯한 작품이다. (오세영, 이시영) “--(인용)
빨랫줄에 매달린 빗방울을 보는 시선이 싱싱하고 활달합니다. 이제 중년이 된 시인이 빗방울이 가진 싱그러움과 꿈에 대한 상상력 앞에서 주춤거리며 “물컹해진 나의 그것과 비교하며 / 녀석들을 살짝 만져보고도 싶다 /그래, 내게도 저런 가슴이 있었지” 라며 펼쳐내는 시적 정서가 정겹고 미소를 짓게 만듭니다.
....................................
[2009 전북일보 신춘문예]
입춘 / 안성덕
골판지는 골판지대로 깡통은 깡통대로
끼리끼리 모여야 밥이 된다고
삼천변 요요要要자원* 파지 같은 생들이
마대자루에 빈 페트병 고봉으로 눌러 담는다
오락가락하던 진눈깨비가 물러간다
유모차에 생활정보지 걷어오는 할머니
치마꼬리 따라온 손주 볼이 발그레하다
어슬렁거리던 누렁이가 꼬리친다
쥐불 놓는 아이들의 함성 오종종 모여 있는 갈밭
풀린 연기 사이로 북녘을 가늠하는
오리떼 몸통이 통통하다
버들개지 은대궁도 제법 토실하다
모두 요요夭夭하니
풀려나간 요요yoyo가 제 목줄 감아올리듯
스르르 계절조차 되돌아온다
쥐불 놓은 갈밭에도 펜촉 같은 새순이 돋아
돌아올 개개비떼 노래 낱낱이 기록하겠다
코흘리개 맡겨놓고 감감 소식 없는 며느리도
한 소식 보내오겠다
*전주 삼천변에 자원재활용센터 요요자원이 있다
(*)1955년 전북 정읍 출생/현 한국전력 전주전력관리처 근무
[심사평] 촘촘한 얼개, 지난한 삶 극복의 따뜻한 주제의식
“당선작 '입춘'은 구조의 일관된 응집력과 나무랄 데 없는 언어 표상, 그리고 선명한 주제와 함께 시의 내면을 가득 채운 따뜻한 훈김이 삶을 지탱하게 하는 역동성으로 작용하여 당선작 선택에 두 사람의 의견이 일치했다. 읽을수록 깊이 깨물려 단물이 고였다. 참신한 이미지의 거듭됨이 안정된 어조로 짜여 있다. 더할 수 없이 살기 힘든 현실의 가난과 외로움을 따뜻이 끌어안고 삶의 밑바닥을 뒤지면서도 절망하지 않는 이웃의 아름다움이 측은지심을 넘어 감동을 이끌어낸 수작이다. 그라시아스 합창단의 크리스마스 칸타타처럼 생명감이 넘치는 노래다. 재활용품 수집이 생계수단인 할머니와 어린 손주, 이들 가족사의 진정성을 뒷받침해줄 끝 부분의 희망의 불씨 또한 시의 완성도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 심사위원 : 이운룡(시인·문학평론가) 정양(시인·문학평론가)“--(인용)
이 시를 읽으면 조손祖孫 가정의 고단한 모습에도 정감이 묻어 있다. 손주녀석 같은 아이들이 모여 놀고 있는 갈밭에선 북쪽으로 날아갈 준비를 끝낸 오리떼의 통통한 몸통과 새봄 펜촉처럼 솟아오를 새순이 개개비의 삶을 또박또박 적어나갈 봄의 희망 속에 며느리의 소식도 기다려지리라는, 희망을 걸어 놓은 입춘에 거는 시적 힘이 우리의 삶을 재활용하게 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시 한편입니다. 중간에 끼워 놓은 “모두 요요夭夭하니 / 풀려나간 요요yoyo가 제 목줄 감아올리듯”은 동음이의어同音異意語를 통해 다시 돌아오는 계절이나 소식없는 며느리의 소식에 대한 기대를 장치하고자 하는 시인의 의도가 보이지만 다소 억지스러운 면이 없지 않아 보입니다.
...........................
<매일신문>
구름모자를 빼앗아 쓰다 / 최정아
한 떼의 구름이 내게로 왔다. 한쪽 끝을 잡아당기자 수백 개의 모자들이 쏟아졌다. 백 년 전에 죽은 할아버지의 모자도 나왔다. 그 속에서 꽹과리 소리와 피리 소리도 났다. 할아버지는 끝이 뾰족한 모자를 쓰고 어깨 흔들며 춤을 추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아버지는 삼십년 전에 죽은 아버지의 모자를 긴 손에 들고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나는 그 모자 속에서 망사 모자를 집어 들었다. 망사 모자를 쓰자 세상도 온통 모자로 가득했다. 빌딩이 모자를 쓰고 있었고, 꽃들은 모자를 벗겨달라고 고개를 흔들고 있었고, 새떼들은 모자를 물고 날아갔다. 수세기에 걸쳐 죽은 친척들도 줄줄이 모자를 쓰고 따라오는 것이 보였다.
사람들은 소리를 지르고 할아버지는 꽹과리를 치고 새들은 노래를 부르고 나는 그들을 데리고 바다로 간다. 둥둥둥 북을 친다. 풍랑에 빠져죽은 영혼들이 줄지어 걸어 나온다. 파도에게 모자를 던져준다. 모자를 쓴 파도가 아버지처럼 걸어온다. 갈지자로 걸으며 손을 흔든다. 친척들은 환하게 웃으며 춤을 춘다. 아버지가 두루마기를 입고 넘어진다. 그러나 아버지는 영영 일어서지 못한다. 아버지 모자를 다시 구름이 빼앗아간다.
◆ 약력
본명 최정순 /▷ 1950년생 /▷ 장안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 중앙대학교 문예창작 전문가 과정 수료
[심사평]
“예심을 거친 21명의 작품을 읽으면서 대체적으로 신선한 감각에 호감이 갔다. 그러나 거개의 작품이 산문적인 발상이거나 묘사에 그쳐 있어서, 패기 있는 언어의 구조물이라는 느낌은 주지 못했다.
시가 삶이나 자연의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그것을 새로운 시각으로 재창조하는 과정이라면 그 과정에는 날카로운 인식과 상상력이 요구된다.
최정아의 이 작품은 활달한 상상력에서 터져 나오는 내면세계가 제의적(祭儀的)으로 살을 채워나가면서도 상당한 예술적인 즐거움과 깊이를 주어, 당선작으로 선정하는 데는 긴 논의가 필요 없었다“--(인용)
시가 전후좌우의 중앙에 있는 정답으로서의 합리성을 갖춘 과학적 논리를 갖추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상상력은 다수의 복잡한 이미지의 나열 속에서도 그 이미지가 살아 생동하는 공간이 존재하고 그 이미지들이 서로 연결되어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구름모자“의 활달한 상상력이나 역동성 있는 힘은 높이 살만 한 것이었으나 그 행간을 넘나드는 이미지의 복합적 연결이나 어울림에 대해서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빌딩이 모자를 쓰고 있었고, 꽃들은 모자를 벗겨달라고 고개를 흔들고 있었고, 새떼들은 모자를 물고 날아갔다. 수세기에 걸쳐 죽은 친척들도 줄줄이 모자를 쓰고 따라오는 것이 보였다.”는 역동적인 이미지나 그 뒤에 이어지는 바다의 광경 속에서 파도의 흔들림이나 역동성이 주는 정서적 감동이나 이미지의 형성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이야기하려는 것인지 중심이 보이지 않음은 필자만의 생각일까? 를 되돌아 보게 됩니다.
..................................
<부산일보>
담쟁이 넝쿨 / 조원
두 손이 바들거려요 그렇다고 허공을 잡을 수 없잖아요
누치를 끌어올리는 그물처럼 우리도 서로를 엮어 보아요
뼈가 없는 것들은 무엇이든 잡아야 일어선다는데
사흘 밤낮 찬바람에 찧어낸 풀실로 맨 몸을 친친 감아요
그나마 담벼락이, 그나마 나무가, 그나마 바위가, 그나마 꽃이
그나마 비빌 언덕이니 얼마나 좋아요 당신과 내가 맞잡은 풀실이
나무의 움막을 짜고 벽의 이불을 짜고 꽃의 치마를 짜다
먼저랄 것 없이 바늘 코를 놓을 수도 있겠지요
올실 풀려나간 구멍으로 쫓아 들던 날실이 숯덩이만한 매듭을 짓거나
이리저리 흔들리며 벌레 먹힌 이력을 서로에게 남기거나
바람이 먼지를 엎질러 숭숭 뜯기고 얼룩지기도 하겠지만
그래요, 혼자서는 팽팽할 수 없어 엉켜 사는 거예요
찢긴 구멍으로 달빛이 빠져나가도 우리 신경 쓰지 말아요
반듯하게 깎아놓은 계단도, 숨 고를 의자도 없는
매일 한 타래씩 올을 풀어 벽을 타고 오르는 일이
쉽지만은 않겠지요 오르다 보면 담벼락 어딘가에
평지 하나 있을지 모르잖아요. 혹여, 허공을 붙잡고 사는
마법이 생길지 누가 알겠어요
따박따박 날갯짓하는 나비 한 마리 등에 앉았네요
자, 손을 잡고 조심조심 올라가요
한참을 휘감다 돌아설 그때도 곁에 있을 당신.
조원 / 1968년 경남 창녕 출생. 동의대학교 미술대학 회화 전공. '잡어' 동인.
[심사평] 격조 높은 사랑 고백 그윽한 울림
“당선작 '담쟁이 넝쿨'은 담쟁이 넝쿨이라는 시적 대상에다 건강하고 격조 높은 사랑의 고백을 매우 탁월한 기법을 이용해 얹어놓았다. 이 시가 발산하는 그윽한 울림을 우리 모두의 것으로 받아들여도 좋을 것이다. 함께 응모한 '시루 속 콩나물'의 대담한 상상력도 이 시인을 믿음직스럽게 만들었다. 축하드린다. /심사위원 -김종해 강은교 안도현 시인”--(인용)
함께 인생을 살아가야 할 당신에게 대한, 화합과 이해를 간곡히 얹은 “담쟁이 넝쿨”은 어쩌면 살아가는 동안 서로 위안을 주며 아량을 베풀어야 할 금도襟度를 설득력 있게 고백하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자, 손을 잡고 조심조심 올라가요 / 한참을 휘감다 돌아설 그때도 곁에 있을 당신.”이라고 말하면서 완벽한 삶보다는 더러는 놓치고 실망할 수도 있을 삶을 껴안고 살아가자는 따뜻함이 읽힙니다.
......................................
불교신문
가게 세 줍니다 / 유금옥
나뭇가지에 빈 가게 하나 있었어요. 참새 두 마리가 날아와 화원을 차렸죠. (햇살 꽃방) 정말 그날부터 햇빛들이 자전거 페달을 쌩쌩 밟았다니까요.
가게에 봄이 한창일 때는 산들바람도 아르바이트를 했죠. 사랑에 빠진 벌 나비가 주 고객 이였는데요 창업에 성공한 사례였어요.
참새들은 날개 달린 유니폼을 입고 있었고요. 가위로 꽃대를 자르다 서로 눈이 부딪치면 재재거리며 웃었어요. 앗! 그때 여름이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갔어요.
가을이 이삿짐 트럭을 타고 지나간 다음 날 나는 보았죠. 양은냄비 브래지어 구두 숟가락들이 낙엽이 되다니 아스팔트 바닥에 나 뒹굴다니
비 내리던 가을 밤 무슨 일이 있었나요? 꽃방은 다시 문을 닫았어요. 가랑잎 한 장만한 쪽지를 붙여 놓았지만 겨울 내내 가게는 나가질 않았어요. 가게 세 줍니다.
[심시평] 일상 속 깨달음 발견한 시적통찰 탁월
“‘가게 세 줍니다’는 스케일이 크거나 문제성을 지닌 작품은 아니다. 그러나 평범 속에서 진리를, 일상 속에서 깨달음을 발견한 시적 통찰이 돋보였다. 그리고 그것을 미학적 차원에서 신선하게 형상화시킬 수 있는 언어적 감수성도 탁월하였다. 자연과 하나 된 인생의 참 모습이 나무의 사계절을 통해 잘 표현되어 있다. 모든 훌륭한 시는 쉽게 읽히면서도 감동을 주는 법이다. 굳이 어렵게 쓸 필요가 없다. 당선작은 이 같은 시의 원리를 잘 터득한 듯하다.
심사평 / 오세영 (서울대 명예교수 )[불교신문 2490호/ 1월1일자]“--(인용)
1,2연은 봄, 3연은 여름, 4연은 가을, 그리고 마지막 연은 겨울로 이미지를 분화시켜 인생을 정서적으로 잘 순치시켜 그려낸 시라고 느껴집니다. “가게”라는 어휘의 뒷면에 가려진 인생의 의미 또한 가볍지 않아 보입니다. 짧은 행을 운위하면서도 적절한 비유가 돋보이는 시로 읽혀집니다. 마지막 “가게 세 줍니다” 라는 종결이 한층 그 의미를 강화시켜 주는 기능을 잘 수행해 내고 있습니다.
앞에서 각 신문사의 신춘문예 시 詩 작품을 읽었습니다. 그 중 몇 편은 종결어미에 경어敬語를 섞어 씀으로써 시를 읽는 데에 걸림으로 작용하고 있는 점도 보였습니다. 물론 그러한 장치가 시의 중간에 인용이나 독백의 모습으로 치환하고자 하는 의도가 숨어 있으리라고 짐작하며 읽을 수도 있겠으나 그러한 의도가 좀 더 계산된 의도적인 장치가 아니라면 우리말의 문법적 의미를 살리면서 종결어미의 통일을 기하여 시의 정서적 흐름을 막지 않도록 하는 배려 또한 필요할 것입니다.
4. 새로운 시의 지평이 열리기를 기대하며…….
이상에서 신춘문예 당선 시 작품을 일별一瞥하여 보았습니다.
다행이 이번 작품 속에는 수없이 되풀이하여 읽어도 그 이미지나 그 생성되는 이미지를 건져내기 힘든 작품, 즉 고된 시 읽기를 강요하는 작품이 없었다는 점이 시를 읽는 필자를 편안하게 만들었습니다.
금년의 독특한 경향은 대체로 서정적 경향에 치중된 작품이 주류를 이루었다고 생각됩니다.
일시적으로 유행하며 문제작인 것처럼 포장된 난해한 실험이 보이지 않았으며, 지나친 비약으로 또는 문법적 오류를 하나의 “문법 뛰어넘기“쯤으로 포장된 작품도 보이지 않은 것은 저간의 시적 실험에 대한 반동反動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아직도 시적 정서의 중심이 분명하지 않은 작품도 보이고 소재의 빈곤을 드러내는 시도 보인다는 점에서는 우리 사회의 곳곳에 드리워져 있는 많은 이야기들이나 문제의식들이 시인의 품으로 들어오지 못한 아쉬움도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습니다.
지나치게 개인적인 모습에 골몰하는 것은 큰 틀의 의미를 새기지 못하고 표피적인 재미에 탐닉하면서 게임에 몰두하여 시간을 죽이는 현재의 젊은 세대의 모습과도 닮은 것이 아닐까 하는 기우杞憂와 함께.
시를 읽는 자, 즉 필자 자신의 소양에도 문제가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튼, 시대는 변하고 있고, 그 경향이 서정적이든 신 서정주의 적이든 그 이름의 여하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시가 진화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보다 새롭고 신선하며 발랄한 의식의 물결이 곧 우리를 압도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잠시 숨고르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금년의 경향만으로 그 변화를 단정 짓지 못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신춘문예 외에도 많은 문학지들이 쏟아낼 신인들의 변화 또한 이러한 변화의 축을 담당하게 될 것입니다.
과거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의 난해한 실험적 경향이나 해체적 시도, 또는 애매성을 편승한 환상성의 시적 경향에서 벗어나 새로움이 충만한 서정성이 회복되는 경향을 보이는 것은 시의 본류에로의 회귀를 짐작하게 합니다. 물론 앞으로도 과거와 같은 실험적 시도는 끊임없이 시도되고 변화를 가져오는 새로운 형식이 등장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서 우리의 시가 더욱 넓은 시적 흐름을 가지면서 보다 아름다운 시에로의 진화를 거듭하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바로 그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신춘문예 작품들의 흐름을 견주어 보면서 시인 각자들의 시적 변화를 접목시켜가며 새로운 시의 지평을 열어가는 노력을 해나가는 데에 그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첫댓글 전 며칠 전에서야 2009년 신춘문예 당선시집을 사서 읽었습니다 이 글을 읽고 다시한번 당선집을 더 읽어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편안한 언어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 詩의 진보된 발전에 문인의 한사람으로써 자축하고 싶습니다.
시를 사랑하는 분들의 무던한 각고의 노력으로 시를 알게 해준 댓가라 하겠지요~ 열심히 노력하여 공부하지 못하는 마음 부끄럽습니다~^^*
좋은 자료입니다. 퍼온 글,그림 게시판에서 이리로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