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프랭크를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다. 그런데도 남편은 마치 내가 그를 잘 알고 있다는 듯 틈만 나면 프랭크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두 사람은 어릴 때 바로 앞뒷집에서 친형제처럼 자랐고, 함께 공수도 도장엘 다녔으며, 좀더 나이가 들어서는 그들이 살던 동네뿐만 아니라 앞뒷동네까지도 휩쓸고 다녔다. 그러다 이십 년 전, 프랭크는 캐나다로 이민을 가서 작은 카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정확하게 그는 남편의 아버지의 누나의 아들, 즉 고종사촌이다. 그는 캐나다로 가면서 이름을 프랭크라고 바꿨다.
이것이 내가 알고 있는 남편의 사촌형, 프랭크에 대한 모든 정보이다. 남편이 늘어놓는, 그의 사촌형에 대한 이야기의 패턴은 대개 비슷비슷하다. 대충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두 사람은 기타를 메고 유원지로 놀러 간다. 예쁜 여대생들이 옆에서 놀고 있다. 우연히. 그들은 별로 관심이 없다. 그러나 여대생들이 먼저 접근해서 함께 어울린다. 할 수 없이. 분위기가 무르익는다. 그 동네 건달들이 나타난다. 언제나. 물론 ‘쪽수’는 그쪽이 훨씬 더 많다. 그들은 시비를 걸어온다. 당연히. 프랭크는 참는다. 꾹. 참다가 한마디 타이른다. 점잖게. 하지만 말을 듣지 않는다. 그들은 여자들을 희롱한다. 치사하게. 그래도 참고 타이른다. 따끔하게. 역시 말을 듣지 않는다. 그들이 먼저 주먹을 날린다. 휙. 한 대 맞는다. 뻑. 참는다. 꾹. 다시 주먹을 날린다. 휙. 한 대 더 맞는다. 뻑. 계속 참는다. 꾸욱.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말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타이른다. 간곡하게. 그들은 코로 웃는다. 픽. 그리고 다시 주먹을 날린다. 휙. 이번에는 맞지 않는다. 엇? 피한다. 샥. 피하며 정의의 주먹을 날린다. 가볍게. 그리고 건달들은 바닥에 깔린다. 쫙. 걸음아 날 살려라 도망친다. 여자들이 박수를 친다. 짝짝짝. 프랭크는 쑥스러운 듯 웃는다. 씩. 그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기 전에 다시 건달들이 몰려온다. 우르르. 이번엔 이십 명 이상이다. 최소한. 각목이나 쇠파이프, 오토바이 체인 등을 소지하고 있다. 비겁하게. 건달들 중의 한 명이 프랭크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형님이 앞으로 나선다. 형님의 얼굴엔 칼자국이 있다. 무시무시한. 문신도 있다. 징그러운. 그리고 손에는 회칼도 들고 있다. 살벌한. 형님은 이빨 사이로 침을 뱉는다. 찍. 쪼갠다. 씩. 그리고 휘두른다. 사정없이 휙휙. 피한다. 아슬아슬하게 샥샥. 잠시 후, 형님 역시 바닥에 깔린다. 부하들이 달려든다. 일제히. 허공을 가른다. 쇠파이프가. 날아다닌다. 회칼이. 역시 모두 바닥에 깔린다. 쭈악. 결국 승리한다. 정의가.
언제나 이런 식의 화려한 무용담으로 끝나는 사촌형에 대한 남편의 결론은 매번 한 가지인데 그것은, 프랭크야말로 사나이 중의 사나이요, 의리파 중의 의리파라는 것이다. 사실인지는 알 수 없으나 남편의 주장에 의하면 그는 이민을 가기 전까지 ‘맞짱’을 떠서 단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사촌형을 언제나 프랭크라고 불렀다. 그렇게 하면 자신은 마치 폴이나 리처드라도 되는 양.
남편은 언젠가 프랭크와 찍은 사진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프랭크가 해병대에 입대하기 전 도장에서 함께 찍은 거라고 했다. 두 사람 모두 웃통을 벗은 채, 권투경기의 포스터처럼 서로 주먹을 겨누고 카메라를 향해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 키는 남편이 조금 더 컸지만 피부가 검고 어딘가 다부져 보이는 인상을 하고 있는 사람은 프랭크 쪽이었다. 두 사람 모두 군살 하나 없이 단단해 보이는 몸 어딘가에 아직 채 성인이 되지 못한 미숙함이 남아 있었다.
내가 당신도 언제 저렇게 날씬한 적이 있었냐고 묻자 남편은, 보고도 모르겠냐고, 옛날엔 자신도 무술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두 발로 벽을 타고 다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사진을 찍은 시점부터 나를 만나기까지 남편은 이십 킬로그램이 늘었고 결혼한 시점부터 지금까지 십오 년 동안 다시 이십 킬로그램이 늘었다. 그렇게 남편은 백 킬로그램을 넘어섰다. 185센티미터의 키에 백 킬로그램이 넘는다고 생각하면 좀 무시무시하지 않겠나 싶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남편은 덩치답지 않게 애교도 많고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다가 곧잘 울기도 한다. 그는 연예인들을 흉내내서 나를 즐겁게 해주는가 하면 기분이 내킬 때는 ‘덜렁이춤’을 추어 배꼽을 빼놓기도 한다. 덜렁이춤은 내가 붙인 이름인데 목욕을 마치고 나와 양팔을 어깨 위로 올리고 엉덩이를 상하좌우로 흔들어대는 춤이다. 그러면 두툼한 뱃살 아래 붙어 있는 고추와 구슬 두 개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제멋대로 흔들리며 신나게 춤을 춘다. 귀엽기도 하고 징그럽기도 하고, 하여간 아무리 화가 나 있어도 그 춤을 보면 도저히 웃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다. 상상해보라. 몸무게가 백 킬로그램도 넘는 거구의 사내가 발가벗은 채 엉덩이를 흔들며 고추를 흔들어대는 모습을.
그러던 그가 실직을 했다. 거리엔 이미 실업자들이 넘쳐나고 파산의 위기가 사람들 머리 위에 어두운 그림자를 짙게 드리우고 있을 때였다. 처음에 나는 국가공인 기술자격증을 대여섯 개나 가지고 있던 남편이라 어떻게든 취직이 되겠거니 하고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엔 국가공인이 아니라 그보다 더한 것도 아무런 힘을 쓰지 못했다. 몇 군데 이력서도 보내고 여기저기 아는 사람들에게 부탁도 해보았지만 돌아온 대답은 한결같이, ‘지금은 시기가 안 좋다’는 것이었다.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한 남편은 전문대를 거쳐 헤어드라이어를 생산하는 한 중소기업에 다니고 있었다. 어느 날, 그는 백화점에 체육복을 사러 왔다가 스포츠매장에서 근무하고 있던 나를 만났다. 마침 그에게 맞는 사이즈가 없어 나는 나중에 다시 오면 맞는 사이즈를 갖다놓겠다고 약속했다. 며칠 후 다시 백화점에 들른 그는 나에게 데이트를 신청했다. 매장 직원들 사이에선 그의 사이즈가 화제가 되었지만 오히려 나는 그의 커다란 덩치가 주는 위압적인 매력에 반해버렸다.
결혼한 뒤에 그는 두 번 직장을 옮겼다. 한 번은 전기면도기를 생산하는 회사였고 또 한 번은 전기밥솥을 만드는 회사였다. 전기밥솥을 만드는 회사가 바로 그가 마지막으로 다닌 회사였다. 실직했을 당시, 우리에겐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있어 이미 학원비도 만만치 않게 드는데다 다달이 갚아야 하는 주택대출금까지 있었다. 밤에 잠자리에 누우면 괴물이 머리맡에서 성큼성큼 걸어다니는 것 같은 절박한 위기감이 우리를 짓눌렀다.
결국 여기저기 일자리를 알아보던 내가 먼저 쇼핑센터의 계산원으로 취직을 했다. 결혼하기 전에 백화점에서 일한 것이 도움이 된 것이다. 가뜩이나 쥐꼬리만한 월급 때문에 늘 생활비에 시달려오던 나는 차라리 잘된 일이라고, 남편도 곧 취직이 되어 둘이 같이 번다면 생활이 좀더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몇 달이 지나도록 남편은 여전히 집에서 펀들펀들 놀고 있었다. 가만히 보니 그는 별로 취직할 생각이 없는 듯했다. 나는 아연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볶아대기 시작했다. 결국 남편은 무거운 엉덩이를 일으켜 다시 일자리를 찾아 나섰지만 여전히 취직은 쉽지 않았다. 그 동안 적자는 차곡차곡 빚으로 쌓여갔다. 백만원도 못 되는 나의 월급을 가지고는 한 달 생활비도 안 되는데다 그 동안 노느라고 본 적자폭도 만만치 않아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어갔다. 해결방법이라곤 오로지 하루라도 빨리 남편이 취직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프랭크가 우리 인생의 전면에 등장했다. 밤늦게 일이 끝나 완전히 파김치가 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남편은 어찌된 일인지 신이 나서 벙글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자리에 앉자마자 그날 있었던 일을 속사포처럼 쏟아놓았는데, 얘기의 요지는 다음과 같았다.
프랭크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두 사람은 안부 인사를 주고받았다. 프랭크는 요즘 사업이 잘된다고 했다. 몸무게가 많이 늘어서 걱정이라고 했다. 드디어 백이십 킬로그램이 넘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남편은 어떠냐고 물었다. 남편도 얼마 전 백이십 킬로그램이 넘었다고 했다. 프랭크는 그게 아니라 일이 잘되냐고 물은 거라고 했다. 남편은 잠깐 망설이다 벌써 일 년째 놀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걱정이라고 했다. 잠도 안 온다고 했다. 밥도 넘어가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살은 왜 안 빠지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자 프랭크가 웃었다. 호탕하게. 그깟 일로 남자가 기가 죽어서야 쓰겠냐고 했다. 그러면서 차라리 잘된 일이라고 했다. 마침 좋은 사업거리가 있다고 했다. 남편이 뭐냐고 물었다. 캐나다에 있는 랍스터를 수입하는 일이라고 했다. 랍스터가 뭐냐고 물었다. 랍스터는 한국말로 바닷가재라고 했다. 바닷가재라면 남편도 안다고 했다. 그런데 돈이 없다고 했다. 돈이 없어서 못 하겠다고 했다. 그는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자신이 캐나다에서 랍스터를 사서 한국으로 보내겠다고 했다. 남편은 한국에서 받아서 팔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팔고 나서 이익금은 다 갖고 자신에겐 원금만 돌려주면 된다고 했다. 정말 그래도 되느냐고 물었다. 그래도 된다고 했다. 그게 의리라고 했다.
남편이 설명을 마치고 나자 생전 랍스터라고는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는 내가 뜨악한 표정으로 물었다.
“한국에서 랍스터가 팔릴까?”
“무슨 소리야? 우리만 이러고 살지, 남들은 적어도 일 주일에 한 번씩은 랍스터를 먹고 산다구. 어떤 집은 매일 먹는 집도 있어. 하루도 안 빼놓고.” 남편은 주먹을 불끈 쥐고 대답했다.
“그게 그렇게 맛있어?”
다음날, 우리는 아이를 데리고 랍스터를 먹으러 갔다. 남편은 삼인분을 먹고 아이는 이인분을 먹고 나는 일인분을 먹었다. 한 달치 월급의 반이 랍스터 값으로 지불되었다. 랍스터를 한 번 먹어보고 그 맛에 완전히 반한 남편은 바로 다음날부터 시장조사를 하러 다닌다고 밖으로 나다니기 시작했고 하루에 한 번씩 프랭크와 길게 통화했다. 나머지 월급의 반이 국제통화료로 지불되었다.
한 달 뒤, 드디어 남편은 자신이 직접 캐나다에 갔다 와야겠다고 말했다. 내가 불안한 표정으로 꼭 그럴 필요가 있냐고 묻자, 남편은 반드시 그럴 필요가 있다고 했다. 자신이 직접 가서 랍스터의 가격도 알아보고 프랭크와 만나 구체적인 판매계획도 세워봐야겠다는 것이었다. 이는 프랭크의 의견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이번 기회가 아니면 언제 프랭크를 만나겠냐며 캐나다에 갔다 올 비용을 마련해달라고 했다. 그는 덧붙여, 프랭크가 비행기표를 끊어서 보내겠다고 했지만 이번 여행은 자신이 필요해서 하는 여행인데 아무리 친해도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며, 공짜로 랍스터를 대주겠다는 사람에게 비행기표까지 끊어달라고 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뻔뻔스러운 짓이라고 했다.
할 수 없이 나는 낚시가게를 하는 오빠에게 돈을 빌리기로 했다. 오빠는 전화에다 대고 요즘 손님이 많이 줄어들어 매달 근근이 생활하고 있다고 죽는소리부터 했다. 오빠의 말에 의하면 요즘 사람들은 낚시를 안 한다는 것이다. 내가 낚시를 안 하면 무얼 하냐고 묻자 오빠는 자기도 그게 궁금하다고 했다. 나는 남편에게서 들은 랍스터 수입계획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을 하며 넉넉잡고 세 달만 있으면 돈을 갚을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결국 오빠는 돈을 빌려주기로 했다. 옆에서 조바심을 내며 통화하는 나를 지켜보던 남편은 오빠가 돈을 빌려주기로 했다고 하자 환호성을 질렀다. 그는 손을 마주 비비며 말했다.
“그래, 그래. 잘됐어. 이제 캐나다에 가서 랍스터만 들여오면 모든 문제는 다 해결되는 거야.”
그날 밤, 그는 나에게 덜렁이춤을 보여주었다.
남편은 수학여행을 앞둔 어린애처럼 잔뜩 들떠서 캐나다에 갈 준비를 시작했다. 그로선 난생 처음 하는 외국 나들이였다. 캐나다에 대한 여행 안내책자를 사들이고 갖가지 겨울옷을 장만했다. 캐나다는 한국과 비교가 안 될 만큼 춥기 때문에 지금 상태로 갔다가는 얼어죽기 딱 알맞다는 프랭크의 조언에 따른 것이었다. 여행에 필요한 물품을 계속 사들이는 한편, 프랭크와의 통화는 점점 더 잦아졌다. 두꺼운 오리털파카도 새로 사고 양털로 된 벙어리장갑과 덧신까지 준비했다. 또한 캐나다에선 담배값이 비싸다는 말을 듣고 국산담배를 다섯 보루나 샀으며 지사제와 해열제, 진통제 등 갖가지 응급약도 준비했다. 그가 사들인 물품 중엔 여자들이 쓰는 클렌징크림까지 들어 있어 내가 이걸 뭐에 쓰려고 샀냐고 묻자 남편은 멀뚱한 표정으로 그게 클렌징크림이냐고 되물으면서 자신도 그걸 왜 샀는지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결국 캐나다에 갈 비행기표를 끊으려고 보니 통장에 돈이 하나도 남아 있질 않았다. 할 수 없이 나는 오빠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오빠는 여전히 죽는소리부터 했다. 그는 자신이 알아본 결과, 요즘 사람들은 낚시를 안 하는 대신 다들 스쿠버다이빙을 한다고 했다. 그래서 앞으로는 가게에서 낚시도구와 함께 스쿠버다이빙 장비를 취급하기로 했는데 가격이 보통 만만찮은 게 아니라 자기도 돈에 쪼들려 죽겠다고 했다. 나는 랍스터에 대한 수입계획에 대해 약간의 과장을 섞어가며 좀더 장황하게 설명해야 했다.
“오빠, 걱정하지 마. 캐나다에서 랍스터만 들어오면 문제는 다 해결될 거야.”
나는 자신도 모르게 남편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했다. 결국 오빠는 돈을 좀더 빌려주기로 했다. 대신 여름 시즌이 되기 전엔 반드시 가게에 스쿠버 장비를 들여놔야 되니까 세 달 안엔 꼭 갚아야 한다고 몇 번씩 다짐을 받았다.
그럭저럭 비행기표도 끊고 캐나다에 갈 준비를 대충 마쳤다. 그 동안 남편은 포켓북으로 된 영어회화 책을 사서 시간이 날 때마다 영어공부를 했다. 혹시 프랭크와 떨어져서 혼자 돌아다니게 될 때를 대비한 것이었다. 그는 아이에게 회화 책을 건네주었다. 아이가 한국말로 물어보면 자신이 영어로 대답해보겠다는 거였다.
“반갑습니다가 영어로 뭐야?” 아이가 물었다.
“하우…… 하우……”
“그럼, 시청이 어디입니까는 뭐야?”
“시청? 그게 그러니까…… 시청? 힌트 좀 줘봐.”
“시청은 시티홀이야. 그게 힌트야.”
“아, 시티홀! 그래. 맞아, 시티홀이지. 그럼 이제 알았다. 시청이 시티홀이니까…… 시티홀…… 시티홀……”
대충 이런 식이었다.
어쨌거나 남편이 캐나다로 떠나는 날이 다가왔다. 나는 직장에 가느라고 아침에 집에서 나오는 길에 그와 작별인사를 했다. 그는 공항에서 출발하기 전에 전화를 하겠다며 나를 껴안고 키스를 했다. 나는 괜히 콧날이 찡해져서 서둘러 집을 나섰다. 그런데, 직장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에게서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했다. 선글라스가 없어졌는데 혹시 내가 치우지 않았느냐는 것이었다. 그건 이미 작은 가방에 넣어두었으니까 잘 찾아보라고 하자, 그는 알았다며 전화를 끊었다. 그런 식으로 그는 공항에 도착하기 전까지 모두 일곱 번이나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공항에 도착해서도 두 번 더 전화를 했다. 한 번은 비행기표가 없어졌다며 전화를 걸었고 또 한 번은 프랭크의 전화번호를 적어놓은 수첩이 없어졌다고 전화를 걸었다. 밀려드는 손님들 때문에 정신이 없는 가운데, 나는 전화가 걸려올 때마다 가슴이 덜컥덜컥 내려앉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남편에게 흥분하지 말고, 처음부터 천천히, 잘 찾아보라고 말하곤 했는데 결국 비행기표는 볼일을 보느라고 잠깐 들렀던 화장실에서 찾았고 프랭크의 전화번호를 적은 수첩은 끝내 찾지 못했다. 남편은 토론토에 도착하면 공항에 프랭크가 나와 있기로 했고, 혹시 나중에라도 전화번호가 필요하면 집에 있는 전화번호수첩에 따로 적어두었기 때문에 아무 걱정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모든 게 잘될 거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캐나다에 도착하는 즉시 전화를 하겠다고 하며 마지막으로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 나는 남편이 과연 그 멀고 먼 캐나다에까지 가서 랍스터를 가지고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을지 갑자기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남편이 다시 전화를 걸어왔을 때 나는 한창 꿈을 꾸고 있었다. 거대한 랍스터들이 집게발을 놀리며 깊은 바다 속을 천천히 헤엄쳐다니고 있었다. 딱딱한 갑각 아래, 한결같이 통통하게 살이 올라 있었다.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꿈속에서 나는 어떻게 이렇게 고요한 바다 속에서 전화벨 소리가 들리는지 의아했다. 그러다 문득 눈을 떴다. 머리맡에서 전화벨이 계속 울리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새벽 네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남편이 비행기를 타고 토론토로 출발한 지 열일곱 시간 뒤였다. 전화를 받자 남편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잘 도착했느냐고 묻자 그는 이미 세 시간 전에 캐나다에 도착했으며 공항에서 전화를 걸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아직 프랭크를 만나지 못했다고 했다. 내가 어떻게 된 거냐고 묻자 자신도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다며 전화번호수첩을 뒤져서 빨리 프랭크의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다. 나는 잠결에 놀라 일어나 수첩을 뒤졌다. 한참 만에야 겨우 프랭크의 전화번호를 찾아 알려주자 남편은 잠을 깨워서 미안하다고, 걱정하지 말고 빨리 자라고 하며 전화를 끊었다. 나는 마음이 심란해져서 한숨도 못 자고 동이 틀 때까지 이리저리 뒤치었다.
몇 시간 뒤, 피곤한 몸으로 쇼핑센터에 출근해서 막 일을 시작하려고 할 때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남편이었다. 내가 프랭크를 만났냐고 묻자, 아직 만나지 못했다고 했다. 그리고 프랭크에게 전화를 걸어봤지만 아무도 받지 않는다고, 아무래도 무슨 일이 생긴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혹시 프랭크에게 전화가 오면 자신은 13번 출구 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니까 그렇게 전해달라고 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 생각해보니 프랭크가 내 휴대폰 전화번호를 알 리가 없었다. 그날 나는 계산을 하며 여러 번 실수를 했고, 허둥대다가 생선을 싼 포장지가 찢어져 계산대 위에 고등어가 굴러다니기도 했다. 하루 종일 계산대 근처에서 비린내가 진동을 했다.
퇴근을 해서 아이를 막 재우고 났을 때, 한 남자가 집으로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자신이 프랭크라고 했다. 나는 처음에 목소리만 듣고는 그가 도저히 남편이 얘기하던 의리의 사나이 프랭크라는 게 믿어지지가 않았다. 왜냐하면 목소리가 마치 모기처럼 앵앵거리는데다 발음조차 부정확했고 성대가 약해 가늘게 떨리기조차 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남편이 도착하는 날짜를 잘못 알아 공항에 늦게 도착을 했고 아직 남편을 만나지 못했다고 했다. 나는 남편은 이미 오래 전부터 13번 출구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그는 알았다며 나중에 기회가 되면 캐나다에 꼭 한 번 놀러 오라고 말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 나는 프랭크의 목소리 때문에 혼자 실소를 금치 못하는 한편, 남편이 떠나기 전부터 슬슬 고개를 들기 시작한 불안감이 조금 더 커져 있었다.
그날 이후, 일 주일이 지나도록 전화가 걸려오지 않았다. 그 동안 나는 남편이 프랭크를 만났는지, 랍스터를 수입하는 일은 잘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했지만 살인적인 전화요금 때문에 전화도 못 걸고 그냥 다 잘되겠거니, 마음을 편하게 먹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불안감은 점점 더 커졌다.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 아침, 나는 프랭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나는 캐나다의 현지시간을 따져가며 수시로 전화를 걸었다. 막연하던 불안감이 좀더 구체적인 걱정으로 바뀔 때쯤 뜻밖에 누군가가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에서 잔뜩 겁먹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헤, 헬로.”
목소리만 듣고도 나는 바로 남편임을 알아챘다. 잔뜩 화가 나서 어떻게 된 거냐고, 왜 진작 전화를 하지 않았냐고 다그치자 남편은 전화를 건 사람이 외국사람이 아니라서 매우 다행이라는 듯 밝은 목소리로, 그날 프랭크를 만나 함께 그의 집으로 왔으며 둘은 오랜만에 만나 회포를 푸느라 클럽에 가서 이틀 동안, 그야말로 코가 삐뚤어지게 술을 마셨고, 그 다음날부터 프랭크와 함께 낚시를 갔다 왔다고 했다. 그리고 내일부터 당장 프랭크와 함께 나가서 랍스터를 수입하는 문제를 알아볼 작정이라고 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좀 있어.” 남편이 목소리를 죽였다.
“뭐가 문젠데?” 퍼뜩 불길한 예감에 나는 바짝 긴장했다.
“콘수엘로가 화가 많이 났거든.”
“콘수엘로? 콘수엘로가 뭐야?”
“콘수엘로는 프랭크의 부인이야. 정확하게 말하면 부인은 아니지. 결혼한 건 아니니까. 아무튼, 프랭크하고 같이 살고 있는 여잔데 내가 오고 나서 프랭크가 자기랑 안 놀아주고 술만 먹고 다니니까 화가 잔뜩 났어. 낚시하러 갈 때도 콘수엘로를 떼어놓고 우리끼리만 갔거든.”
“그 여자, 한국여자야?”
“아니, 멕시코 여잔데 그 여자도 몸무게가 백 킬로그램이 넘어.”
백 킬로그램이 넘는 두 명의 한국남자와 한 명의 멕시코 여자가 나란히 소파에 앉아 시리얼을 먹으며 텔레비전을 보는 모습이 떠올랐다.
“그래서 뭐가 문제라는 거야?”
“프랭크는 나한테 말은 안 하지만 눈치를 보니까 콘수엘로는 내가 자기네 집에 얹혀 있는 게 아무래도 불만인가봐. 당신도 알다시피 여기 사람들은 프라이버시를 중요하게 생각하잖아. 그래서 나는 내일이라도 시내 호텔에다 방을 얻어서 지내야 될 것 같아.” 남편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어떻게 해? 돈도 없는데……” 나는 울상이 되었다.
“걱정하지 마. 제일 싼 데를 찾아보지, 뭐. 혹시 나중에 돈이 좀더 필요할지도 모르겠어. 물론, 프랭크에게 얘기하면 자기 돈으로 호텔을 잡아주겠지만 언제까지 신세만 질 수는 없잖아.”
돈 얘기가 나오자 나는 머리칼이 쭈뼛 서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얼마나 걸릴 것 같아?” 나는 애써 차분하게 물었다.
“빨리 서둘러야지. 아마 길어도 보름이면 될 거야. 걱정하지 마. 다 잘될 거야.” 남편은 전화를 끊으며 마지막으로 “굿 나이트, 허니”라고 말했다. 도대체 토론토는 몇시이기에 아침부터 굿 나이트란 말인가. 나의 등엔 이미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때마침 내가 일하는 쇼핑센터에선 개점 5주년을 맞아 대대적인 세일을 시작했다. 사은품을 받기 위해 가정주부들이 줄을 섰고 근무시간은 두 시간 연장되었다. 일이 끝나고 나면 나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고 싶을 만큼 완전히 지쳐 머릿속엔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서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그대로 소파에 쓰러져 잠들 때가 많았다. 그날도 새벽에 남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나는 잠결에 전화를 받았다. 그는 현재 호텔에 묵고 있으며 랍스터 가격을 알아본 결과 우리가 처음에 계산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이익을 남길 수 있다고 했다. 대신 호텔비가 생각보다 비싸서 돈이 거의 다 떨어졌으니 돈을 좀 부쳐달라고 했다. 내가 얼마나 필요하냐고 묻자, 그는 우선 급한 대로 칠백 불 정도만 있으면 될 거라고 했다. 나는 잠결에 알았다고 대답하고 그대로 쓰러져 잠이 들었다.
남편이 돈을 부쳐달라고 한 말이 다시 생각난 것은 다음날 점심을 먹으러 가다 쇼핑센터 입구에 있는 현금지급기 앞을 지나칠 때였다. 나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칠백 불이 우리나라 돈으로 얼마나 되는지 머릿속으로 대충 따져보았다. 그리고 그 액수가 나의 한 달치 월급과 맞먹는다는 사실을 알고 경악을 했다. 오빠에겐 도저히 돈을 빌려달라고 부탁할 수가 없었다. 염치도 없었지만 이젠 더이상 빌려줄 것 같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날 오후, 나는 신용카드 두 개로 현금서비스를 받아 캐나다에 있는 남편에게 송금했다. 엄청난 수수료와 이자를 생각하면 피를 뽑아내는 심정이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나로선 제발 일이 잘되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다시 일 주일 동안 남편에게선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나는 남편이 돈을 제대로 받았는지, 언제쯤 랍스터가 도착하는지 궁금했지만 캐나다로 전화를 걸기가 두려웠다. 내가 먼저 전화를 걸면 뭔가 나쁜 소식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에서였다. 그러다 세일이 끝나기 며칠 전, 남편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왠지 목소리가 잔뜩 가라앉아 있었다. 그는 생각보다 일이 좀더 늦어질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애써 마음을 가라앉히며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다.
“프랭크에게 안 좋은 일이 생겼어.” 남편이 한참 망설이다 대답했다.
“무슨 일?”
“콘수엘로가 그저께 집을 나가버렸어.”
“왜 집을 나가?”
“알고 보니까 콘수엘로한테 다른 남자가 있었어. 고등학교 축구 코친데 칠레에서 이민 온 남자야.”
“칠레? 그 길쭉한 나라 말이야?”
“그래, 둘이 사귄 지 일 년도 넘은 것 같아. 그 동안 콘수엘로가 그 남자한테 완전히 빠져 있었는데도 프랭크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어.”
“그래서?” 내가 떨리는 가슴을 손바닥으로 누르며 물었다.
“어젯밤에 둘이 밴쿠버로 도망을 갔어. 프랭크가 랍스터를 사려고 가지고 있던 돈하고 차도 다 가지고.”
“그럼, 어떻게 해?” 나는 곧 울음이 쏟아질 것 같았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 프랭크가 차를 빌려가지고 콘수엘로를 잡으러 갔어.”
“밴쿠버로?”
“그래, 그래서 프랭크가 돌아올 때까지 내가 대신 가게를 맡아봐야 돼. 프랭크는 두 사람이 어디로 갔는지 알 것 같다고 했어. 곧 잡아올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기다리래.”
걱정하지 말고 기다리라고? 맙소사!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남편의 말에 의하면 토론토에서 밴쿠버까지는 차를 타고 열흘쯤 걸린다고 했다. 콘수엘로, 프랭크, 칠레, 밴쿠버, 축구 코치, 랍스터, 랍스터……
그날 밤 꿈에 다시 랍스터가 나타났다. 여전히 깊은 바다 속이었고 랍스터들은 거대한 집게발을 천천히 흐느적거렸다. 그런데 내가 다가가 몸을 건드리자 갑각이 힘없이 떨어져나갔다. 갑각 안의 살은 시커멓게 썩어 있었다. 이상한 냄새도 풍겼다. 썩은 살들은 몸체에서 떨어져나와 곧 바닷물 속에 흩어졌다. 나는 흩어지는 살들을 손으로 움켜쥐려고 애썼지만 그 살들은 미끄덩거리며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물 속에서 흐늘거리다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 나는 막막한 허탈감에 사로잡혀 한동안 멍하게 앉아 있었다.
이야기를 좀더 빨리 진행하자. 어차피 그 얘기가 그 얘기니까. 며칠 뒤, 남편이 다시 전화를 걸어왔고 나는 쇼핑센터에서 일하는 동료들이나 친구들에게 몇 푼씩 돈을 꾸어 간신히 천 불을 만들어 캐나다로 송금을 했다. 남편은 매번 원화 대신 달러화로 계산을 해서 나도 곧 그 단위에 익숙해졌지만 돈을 빌릴 때마다 피가 마르는 기분이었다. 그 동안 프랭크는 밴쿠버에서 돌아와 있었다. 콘수엘로와 축구 코치는 못 잡았다고 했다. 그러나 프랭크는 걱정하지 말라고, 자기가 곧 돈을 마련해서 랍스터를 사줄 거라고 했다. 환율도 떨어지고 랍스터의 현지가격도 점점 더 떨어지고 있어 될 수 있으면 늦게 사는 게 이익이라는 말도 했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콘수엘로가 집을 나가버렸기 때문에 남편이 더이상 호텔생활을 안 해도 된다는 점이었다. 그는 이제 프랭크의 집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그 점이 실의에 빠져 있는 프랭크에게 도움이 된다고 했다. 어려울 때 자신이 옆에 있어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도 했다. 대신, 프랭크는 실연의 상처를 잊지 못하고 매일 밤, 클럽으로 술을 마시러 다닌다고 했다. 물론 남편과 동행을 해서. 나는 제발 딴생각은 하지 말고 하루빨리 일을 진행할 생각이나 하라고 몇 번이고 다그쳤다.
이쯤에서 일이 끝나면 좋으련만, 상황은 더욱 복잡해졌다. 프랭크가 클럽에 가서 술을 마시다 한 흑인과 시비가 붙었다. 가뜩이나 화풀이할 데가 없어서 몸이 근질거리던 프랭크였으니 그야말로 울고 싶은 아이를 때려준 셈이었다. 맞짱을 떠서 한 번도 져본 적이 없는 해병대의 사나이답게 흑인을 작신나게 패주었다. 그 일로 프랭크는 경찰서 유치장으로, 흑인은 병원으로 각각 실려갔다. 며칠 뒤, 프랭크는 보석금을 내고 풀려났지만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프랭크가 때려준 흑인은 토론토에 마약을 판매하러 LA에서 온, 유명한 갱단의 일원이었다. 그는 권총을 지니고 프랭크를 잡아 죽이겠다며 동료들과 함께 온 시내를 뒤지고 다녔다. 프랭크는 겁에 질려 집에 숨어 있느라고 랍스터고 뭐고 신경 쓸 경황이 없었다.
“미안해, 여보. 나도 상황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 만약에 내가 프랭크 옆에 있었다면 말렸을 텐데 하필이면 내가 화장실 간 사이에 시비가 붙어서……” 얘기를 듣다 급기야 울음을 터뜨리고 만 나를 위로하기 위해 남편은 온갖 변명을 늘어놓았다.
“너무 걱정하지는 마. 걔네들은 곧 돌아갈 거야. 찾다가 못 찾으면 지들도 지쳐서 돌아가겠지, 어쩌겠어. 여긴 LA보다 훨씬 춥거든. 흑인들이 추위에 약하다는 거 알지? 내가 여기서 봐서 아는데 걔네들은 조금만 추워도 손난로를 가지고 다녀. 그리고 아까 일기예보를 들었는데 이번 주말부터 날씨가 더 추워질 거라고 했어.”
나는 흑인들이 추위에 약한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들이 빨리 천사의 도시로 돌아가길 기다리는 한편, 프랭크와 남편이 한국에 있을 때 둘이 얼마나 많은 사고를 치고 돌아다녔을까 상상해보았다. 그리고 그런 남편과 함께 헤쳐가야 할 미래가 갑자기 너무나 막막하게 느껴졌다.
그때쯤 나는 카드 빚에 쫓기고 빚쟁이들의 전화를 받느라 완전히 탈진한 상태였다. 늘 신경이 곤두서서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기 일쑤였고 손님들에게 친절한 얼굴로 대할 수가 없었다. 한번은 손님과 상소리를 해가며 대판 싸우다 점장에게 불려가 호된 질책을 받기도 했다. 나는 화장실에 들어가 문을 걸어잠근 채 혼자 큰 소리로 엉엉 울었다. 랍스터가 커다란 집게발로 우리의 행복을 잘근잘근 씹어대고 있었다.
다시 각설하자. 혹독한 시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 동안 나는 캐나다로 천 불씩 두 번을 더 송금해줬고, 흑인 갱들은 그때까지도 LA로 돌아가지 않고 있었다. 돌아가기는커녕 아예 한 명이 더 왔다.
“여보, 큰일났어.” 남편이 전화를 걸어왔다. 나는 별로 놀라지도 않았다.
“뭐가 큰일났는데?” 나는 덤덤하게 물었다.
“LA에서 프랭크가 왔어.” 남편은 대뜸 프랭크 얘기부터 꺼냈다.
“프랭크가 오다니? 토론토에 있는 프랭크가 왜 LA에서 와?”
“아, 사촌형 프랭크 말고 마피아 프랭크 말이야.”
“마피아 프랭크?”
“그래, 전에 프랭크한테 두들겨맞은 그 흑인 갱들 있잖아. 걔네들 두목이 바로 프랭크야. 사촌형하고 이름이 똑같아. 근데, 그 프랭크가 바로 프랭크한테 맞은 흑인 놈의 사촌형이래.”
프랭크? 사촌형? 나는 도무지 뭐가 뭔지 헷갈렸다.
“근데, 그 프랭크가 왜 왔대?”
“왜 오긴, 복수하러 왔지. 그 프랭크는 LA에서 다들 알아주는 무서운 갱인데 FBI에서도 요주의 인물로 꼽히는 놈이래. 걔네들은 배신자는 반드시 처단하고, 절대로 당하고는 못 사는 애들이라 얼마 전엔 마약을 빼돌린 콜롬비아 애들 두 명을 볼리비아까지 쫓아가서 잔인하게 죽였다는 거야. 물론 증거가 없어서 프랭크는 그냥 풀려났지.”
맙소사! 이번엔 LA의 갱두목인 프랭크까지 등장을 했다. 한국의 평범한 가정주부가 어떻게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일을 짐작이나 하겠는가. 나는 오히려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그래서긴 뭐가 그래서야. 우린 지금 밖에도 못 나가고 음식도 배달해서 먹고 있어. 어제 프랭크는 출입문에 자물쇠를 일곱 개나 더 달았어.”
세상에! 백이십 킬로그램도 더 나가는, 세상에 무서울 것 없는, 맞짱을 떠서 한 번도 져본 적이 없다는, 전설의 사나이 두 명이 자물쇠를 일곱 개나 달 정도로 무서워하는 그 프랭크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그리고 마피아 프랭크는 한국인이라면 아예 이를 간대. 왜냐하면 LA에 있을 때, 한인타운에서 코리안 갱들한테 호되게 당한 적이 있었나봐. 코리안 갱들은 권총으로 프랭크의 머리를 겨누고 무릎 사이로 기어가라고 시켰대. 그리고 강제로 김치도 먹였다나봐. 아무래도 프랭크는 다른 도시로 잠깐 피신해 있어야 될 것 같아.”
나는 남편에게 랍스터고 뭐고 당장 보따리를 싸가지고 한국에 돌아오라고 말했다. 하지만 남편은 지금이라도 당장 비행기표를 끊어서 한국으로 돌아갈 수는 있지만 프랭크가 너무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에 자신이 곁에서 그를 보호해줘야 한다고 했다. 그게 의리라고 했다. 나는 의리고 나발이고 더이상 송금해줄 돈도 없고 완전히 파산한 상태니까 당장 한국으로 돌아오든, 흑인 갱들의 총에 맞아 죽든 마음대로 하라고 소리를 지르고 전화를 끊었다.
다시 랍스터 꿈을 꾸었다. 여전히 깊은 바닷속이었고, 랍스터들은 먼저 꿈에서 본 것보다 훨씬 더 커져 있었다. 집게발 하나의 크기가 거의 사람 크기만했다. 어찌된 일인지 랍스터들은 흑인처럼 검은색을 띠고 있었고 나를 향해 맹수처럼 으르렁대는 소리를 냈다. 물 속이라 그런지 그 소리가 더욱 음침하게 들렸다. 그들은 나를 쫓아왔다. 나는 알몸인 채로 공포에 질려 바닷속을 허우적대며 도망다녔다. 물 속에서 계속 헛걸음을 내디뎠다. 랍스터들은 너무나 빨랐다. 그들은 거대한 집게발을 가지고 나를 희롱했다. 온몸을 더듬었다. 숨도 막혀왔다.
이야기는 계속된다. 마피아 프랭크는 사촌형 프랭크를 찾기 위해 부하들과 함께 토론토 시내를 구석구석 뒤지고 다녔다. 남편은 프랭크가 묵고 있는 호텔의 한국교포 직원을 통해 그들의 움직임을 속속들이 전해듣고 있었다. 사촌형 프랭크는 어느 날 새벽, 토론토를 몰래 빠져나가 오타와에 있는 친구 집으로 피신했다. 결국 토론토에는 마피아 프랭크와 남편만 남게 되었는데 둘이 사촌인데다 뚱뚱한 것까지 비슷해서 남편 또한 마음대로 나다닐 수가 없었다.
내가 한국에서 엄청난 경제적 압박에 시달리는 동안 남편은 토론토의 프랭크 집에 혼자 남아 하릴없이 시간만 죽이고 있었다. 우리는 제발 프랭크가 모든 걸 용서하고 따뜻한 LA로 돌아가길 간절히 기도했다. 그가 LA로 돌아가기만 한다면 친구 집으로 피신해 있는 사촌형 프랭크도 다시 돌아올 것이고 그러면 곧 돈을 구해 랍스터를 사서 한국으로 보낼 것이다. 그러면 모든 건 해결된다.
누군가 저 높은 곳에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을 주었는지 드디어 희소식이 들렸다. 프랭크가 마침내 복수를 포기하고 LA로 돌아가기 위해 짐을 싸고 있다는, 믿을 만한 호텔 웨이터의 전언이 있었던 것이다. 그 소식을 마지막으로 남편에게서 한동안 전화가 걸려오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남편이 랍스터를 사서 모으는 한편, 수입절차를 알아보러 다니느라 바쁜가보다 하고 좋은 쪽으로 해석했다. 아니, 제발,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런데, 며칠 뒤 남편의 전화를 받고 나서 나의 기대가 여지없이 무너진 것을 알았다. 프랭크는 아직 토론토에 남아 있다고 했다. 그 이유가 또 걸작이었으며 거기엔 로맨스까지 곁들여져 있었다. 그가 LA로 돌아가기 위해 짐을 싸서 막 호텔을 빠져나오는 순간, 호텔 프런트에서 일하는 스위스계 백인여자와 그만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는 거였다. 그 여자의 이름은 에이프릴이었다. 그는 부하들만 먼저 돌려보내고 체류기간을 연장했다. 그리고 매일 밤, 에이프릴과 만나 데이트를 했다. 두 사람은 함께 저녁을 먹고 극장에도 갔다. LA에도 여자라면 차고도 넘쳤지만, 그리고 대개 그들이 훨씬 더 섹시했지만, 그는 좀더 지적이고 아직도 어딘가에 유러피언 분위기가 남아 있는 캐나다의 여자가 더 마음에 들었다. 그는 점점 더 토론토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LA에 있는 부하들이 수시로 전화를 걸어 처리할 일과 처리할 애들이 많이 밀려 있다고 했지만 사랑에 빠진 그의 귀에 들어올 리 없었다. 그는 마피아 생활을 정리하고 우아한 스위스계 백인여자와 함께 토론토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고 싶은 희망이 생겼다. 우리에겐 절망적인 희망이었다. 그래도 아직 우리에게 한 가지 희망이 남아 있다면, 그것은 에이프릴이 LA에 가서 살고 싶어한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프랭크의 생각과 달리 LA 같은 화려한 도시에서 좀더 극적인 인생을 살고 싶어하는 허영심이 있었다. 그 허영심이 바로 우리의 희망이었다.
남편이 캐나다로 간 지 두 달이 넘어서고 있었다. 친구 집으로 도망간 프랭크에 대한 이야기가 뚝 끊어진 대신 마피아 프랭크의 이름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프랭크, 프랭크, 프랭크…… 제기랄! 나는 남편에게서 프랭크의 이름을 지겨울 정도로 많이 들어서 그의 이름이 친절하고 인사성 밝은 이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사촌형 프랭크가 됐든, 마피아 프랭크가 됐든 그들의 이름은 한결같이 우리의 희망과 절망을 한손에 움켜쥐고 있는 절대자의 이름이었다.
다행히, 프랭크는 에이프릴의 희망을 들어주기로 했다. 늘 총소리가 난무하고 피가 튀는 도시에서 살아온 그 자신도 토론토의 조용한 생활에 조금씩 진력이 나기 시작하고 있었다. 갑자기 LA의 부하들도 걱정이 됐고 처리해야 할 애들의 얼굴도 떠올랐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문제가 하나 남아 있었다. 에이프릴은 가족과 함께 살고 있었는데, 그들의 가족은 북유럽 출신답지 않게 보수적인 데가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열렬한 히틀러의 추종자였으며 인종차별주의자였다. 그래서 자신의 딸이 흑인과 사귀는 것에 대해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었다. 프랭크는 면전에서 노골적으로 자신을 경멸하는 그녀의 부모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에이프릴은 반드시 부모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고집했다. 그래서 프랭크는 그녀의 부모에게 환심을 사기 위해 선물공세를 펼쳤다. 그녀의 어머니에겐 그들의 고향에서 만든 값비싼 시계를 선물했으며, 그녀의 아버지에겐 일본제 골프채를 선물했다.
아무리 강고한 인종차별주의자라고 해도 물질 앞에선 약한 법, 에이프릴의 부모들도 차츰 마음을 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평생 지켜온 그들의 신념을 단숨에 무너뜨릴 수는 없었다. 그들은 저녁식사 때마다 프랭크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프랭크의 선물공세는 계속되었다. 에이프릴의 아버지에게 육만 불짜리 컨버터블 캐딜락을 선물하던 날, 드디어 그녀의 아버지는 가족들 앞에서 프랭크에 대한 결론을 내렸다. 다소 애매하긴 하지만 가족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선언한 그 결론은 다음과 같았다.
‘흑인은 사람이 아니다. 흑인은 짐승과 같다. 고로 나는 흑인을 미워한다. 프랭크는 까맣다. 하지만 프랭크는 흑인이 아니다. 흑인은 흑인이되 진짜 흑인은 아니다. 그는 겉만 흑인이지 속까지 흑인은 아니다. 그의 속은 백인이다. 그의 영혼은 백인의 그것처럼 순결하다. 그러므로 그는 백인이다. 그러므로 나의 딸과 결혼하는 것에 아무 문제가 없다. 이상이다.’
우리의 희망이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했다. 남편은 오타와에 있는 사촌형 프랭크와 수시로 통화를 하며 곧 돌아올 준비를 하라고 일러두었다. 그런데 다시 사고가 터졌다. 누군가 에이프릴의 부모에게 프랭크와 에이프릴이 나체해수욕장에 놀러 가서 마리화나를 피웠다고 일러바친 것이다. 에이프릴의 부모는 프랭크의 영혼이 진짜 하얀지 다시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때쯤, 그녀의 아버지가 선물로 받은 캐딜락이 훔친 차로 밝혀졌다. 에이프릴의 아버지는 경찰서에 불려가 조사를 받았다. 다시 피어나기 시작하던 희망의 불꽃이 바람 앞에서 가물거리고 있었다.
남편이 캐나다로 떠난 지 세 달이 가까워오던 어느 날, 오빠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오빠는 대뜸 본론부터 꺼냈다. 스쿠버 장비를 빨리 준비해놔야 되는데 돈이 모자라 죽겠다며 빌려간 돈을 언제쯤 갚을 수 있냐고 물었다.
“미안해, 오빠. 지금은 당장 언제라고 약속할 수가 없어.” 나는 온몸이 쪼그라드는 기분이었다.
“왜 약속을 못 해? 전에 세 달이면 된다고 그랬잖아.” 오빠가 짜증을 냈다.
“그래, 전엔 그랬지. 그런데 일이 좀 복잡하게 됐어.”
“뭐가 복잡해. 랍스터 수입한다더니 아직 물건이 안 왔어?”
“그래, 안 왔어. 아직 프랭크가 토론토에 있어서 그래. 프랭크만 LA로 돌아가면 되는데……”
“프랭크? 프랭크가 누군데?” 오빠가 물었다.
프랭크가 누구냐고? 오, 맙소사! 이 모든 상황을 처음부터 다시 설명해야 한다니.
그로부터 두 달 뒤, 남편이 돌아왔다. 아침부터 발바닥이 달아오르고 갈아입은 지 삼십 분도 지나기 전에 속옷이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들던 한여름이었다. 때마침 비번이어서 나는 차를 가지고 공항으로 마중을 나갔다. 캐나다에 가 있는 몇 달 동안 남편은 몸무게가 삼십 킬로그램이나 빠져 있어서 처음엔 그를 잘 알아보지 못했다. 남편의 모습을 보고 나는 왈칵 눈물을 쏟을 뻔했지만, 그는 나를 보고도 반가운 건지 어떤 건지 종잡을 수 없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마치 심한 고문을 당하고 나온 사람처럼 멀뚱한 표정으로 커다란 눈동자를 이리저리 빠르게 굴려댔다. 그는 피곤하다며, 빨리 집으로 가자고만 했다. 차를 타고 집으로 오는 동안, 자동차 경적 소리가 들릴 때마다 그는 화들짝 놀라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집으로 돌아와 남편은 씻지도 않고 곧바로 침대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 하지만 두 시간도 채 안 돼 잠에서 깨어나 거실로 나왔다. 너무 더워서 못 자겠다는 거였다. 그리고 그제야 생각이 난 듯 거실을 두리번거리며 아이가 어디 갔냐고 물었다. 학원에 갔다고 하자 그는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목욕을 하고 난 뒤, 그가 살이 찌기 전에 입었던 옷을 꺼내 입히자 다행히 딱 들어맞았다. 오래된 옷에선 좀약 냄새가 났으며 색깔이 바래 옛날사진을 보는 것처럼 우스꽝스럽기도 했다. 남편은 옛날 옷이 낯설고 어색한 듯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모습을 이리저리 꼼꼼히 비춰보았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숙인 채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마음이 아파진 나는 남편에게 다가가 그의 머리를 가만히 끌어안았다. 그는 무너지듯 나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어린애처럼 큰 소리를 내며 울었다. 나는 주먹만한 눈물을 흘리며 엉엉 우는 그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그는 우느라고 잘 알아듣기 힘든 말로 나에게 계속 미안하다고 말했다. 어느새 나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나의 입에선 그가 캐나다로 떠나기 전에 나에게 들려줬던 말이 나도 모르게 계속 되풀이되어 흘러나왔다.
“걱정하지 마, 다 잘될 거야.”
남편은 한국으로 돌아온 지 두 달 만에 취직이 되었다. 이번엔 전기난로를 만드는 회사였다. 보수가 형편없었지만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기 때문에 남편은 군소리 한마디 하지 않았다. 오히려 요즘 같은 때에 취직이 된 것만 해도 다행이라는 눈치였다.
그해 겨울, 사촌형 프랭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오타와에 가게를 새로 내고 아예 그쪽에 자리를 잡았다고 했다. 그는 도망 간 콘수엘로에 대해 완전히 잊었으며 새로운 여자도 생겼다고 했다. 브라질 출신의 여자인데 그녀 역시 백 킬로그램이 넘는, 콘수엘로 못지않게 뚱뚱하지만 콘수엘로보다 더 어리고 예쁘다고 자랑을 했다. 두 사람은 나이 차이가 스무 살도 넘는다고 했다.
그리고 덧붙여, 드디어 마피아 프랭크가 LA로 돌아갔다고 했다. 남편이 어떻게 된 거냐고 묻자 그는, 에이프릴의 부모가 어느 날 밤 강도들의 총에 맞아 모두 살해당했으며 홀로 남은 에이프릴은 며칠 동안 울다가 결국 프랭크를 따라 LA로 갔다고 했다. 그가 떠난 뒤, 사람들은 여자의 부모가 살해된 것은 틀림없이 프랭크가 한 짓이라며, 과연 무서운 놈이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제 아무 문제가 없으니 다시 랍스터를 수입하는 문제에 대해 얘기해보자고 했다. 남편은 뜻은 고맙지만 자신은 지금 직장일이 너무 바빠서 그런 일에 신경 쓸 처지가 못 된다고 했다. 프랭크는 무슨 말인지 알았다며 다음에 기회가 되면 나와 함께 꼭 캐나다에 놀러 오라고 했다.
캐나다에 다녀온 뒤, 남편은 사람이 많이 달라졌다. 장난기 가득하던 얼굴엔 인생의 고달픈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싱거운 웃음도 사라지고 말수도 줄어들었다. 프랭크에 대한 무용담도 사라졌고 이따금씩 나를 즐겁게 해줬던 덜렁이춤도 더이상 볼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모두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갔다. 그 동안 우리는 조금씩 빚을 갚아나갔고, 마침내 오빠의 빚을 마지막으로 모든 빚을 다 갚게 되었다. 오빠는 가게에 스쿠버 장비를 들여놨지만 생각만큼 잘 팔리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사람들이 스쿠버다이빙을 하는 대신 무얼 하는지 알아보러 다닌다고 했다. 나는 쇼핑센터에서 계속 일을 했다. 전후반에 연장전까지 다 뛰고 난 축구선수처럼 늘 지쳐 있었고 얼굴엔 주름과 기미가 늘어갔다. 아이를 돌볼 시간이 거의 없어 항상 불안하고 미안한 심정이었다. 뭔가 엉터리로 사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아이는 쑥쑥 커주었다.
얼마 전 남편은 좀더 보수가 나은 곳으로 직장을 옮겼다. 그 기념으로 우린 랍스터 집에 가서 외식을 했다. 어찌된 일인지 몇 년 새에 동네마다 랍스터 집이 한두 개씩 생겨나 있었다. 우리는 이인분을 시켜 셋이 나눠먹었다. 랍스터를 먹으며 우린 마피아 프랭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는 그가 LA에서 에이프릴과 함께 행복하게 살길 바랐다. 그리고 코리안들을 더이상 미워하지 않기를 바랐다. 또한 스무 살이나 어린 브라질 여자가 사촌형 프랭크의 곁을 떠나지 않기를 바랐다. 얘기를 나누며 우린 조금씩 키득거리고 웃기 시작했다. 프랭크, 그리고 또다른 프랭크, 토론토, 밴쿠버, 콘수엘로, 칠레, 축구코치…… 이야기는 끝도 없이 이어졌고 우리는 점점 더 크게 웃었다. 볼리비아, 콜롬비아, 에이프릴, 마리화나, 캐딜락 자동차……
한때 우리의 희망이기도 했고 절망이기도 했던 그 이름들을 하나하나 들춰내며 우리는 끝내 배꼽을 잡고 의자에서 뒹굴었다. 랍스터를 먹던 사람들이 우리를 쳐다보았지만 우리는 도저히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천명관 1964년 경기 용인 출생. 2003년 문학동네 신인상 소설 부문에 <프랭크와 나>로 당선. 2004년 문학동네 소설상에 장편소설 [고래] 당선.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