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길목에서 10
―입원 5
그러면서도 불러오는 배의 고통도 고통이지만 병원 생활의 지겨움이 더 아내를 지치게 하는지 무서워도 빨리 수술해서 병원을 나갔으면 좋겠다는 말을 여러 번 하기도 했고, 아내보다 훨씬 늦게 들어온 사람이 출산하고 퇴원을 한다며 짐을 챙기면 아내는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면서 나는 언제나 퇴원 하나며 답답한 마음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내는 작은 병에도 아픔을 잘 참지 못하고 엄살을 잘 부리는 나에 비해서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잘 드러내지 않는 성격이었다.
아내는 첫 아이를 낳을 때도 얼마나 조용했는지 나는 아기 낳는 일이 그렇게 큰일인지 잘 모르고 있었다. 뭐가 뭔지 잘 모르는 상태에서 첫 아이를 낳을 때였다.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이야 배가 점점 불러오면서 정비례 되어 갔지만 막상 예정일이 가까워지면서 불안감은 더욱 심해져 갔다. 오전 10시쯤이었는데 어디 마땅히 물어볼 데도 없었고 무작정 병원으로 쳐들어갔다. 간호사가 살펴보더니 아기 나오려면 아직 멀었다고 하면서 하늘의 별이 노랗게 보이면 다시 오라고 한다. 다시 집으로 왔는데 배가 자꾸 아프다고 하니까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도 어찌어찌하면서 저녁까지 버티었는데 저녁 어스름이 내리자 불안감은 더 커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믿을 곳은 병원밖에 없어서 또 갔더니 간호사의 말은 아침하고 똑같았다. 아직도 멀었으니 집으로 가 있으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겁이 나서 못 가겠으니 입원시켜 달라고 떼를 써서 바로 입원했다.
개인 산부인과라 입원실이 어느 집의 방 같았다. 아무것도 도와줄 게 없어서 옆에 앉아서 책을 보고 있었는데 아내는 진통으로 계속 괴로워하고 있었다. 아기는 나올 기미도 안 보이고 아내가 몹시 힘들어하자 간호사는 촉진제를 놓았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아내는 출산실로 들어갔는데 그때 나는 산실 문밖 바로 앞 복도에서 안에서의 소리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그러나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동네 조그만 개인 산부인과 병원이었는데 시대의 저출산으로 지금은 문을 닫았다. 그때 담당했던 간호사는 아기 낳는 사람이 이렇게 참을성이 많고 침착한 사람은 정말 처음 보았다고 하면서 아내의 인내심을 칭찬할 때도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알 수 없었다. 그렇게 큰 소리 한 번 한 지르고 아내는 첫 아이를 무사히 낳았고 아침이 되자 병원에서 퇴원하라고 해서 바로 집으로 왔다. 무섭고 겁도 나고 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순산이어서 나는 애 낳은 일이 그렇게 힘들고 어려운 일인 줄을 정말, 정말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둘째를 수술한 후 침대에 누워있는 아내를 보고는 여자에게 있어 출산의 고통이 얼마나 크고 아픈 것인지 조금 차츰 알게 되었다. 거기다가 둘째는 자연분만이 아닌 제왕절개를 해서 낳았기 때문에 아내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그때 새삼 알았던 것은 산모와 아이가 위험하지 않으면 정말 제왕절개는 할 게 못 되는구나 하고 가슴 깊이 느끼게 되었다. 지금은 자연분만이 대세가 되고 생각들이 바뀌었지만 한때 제왕절개가 유행처럼 생각되던 시기도 잠시 있었다. 그리고 그때 누가 자연분만은 아프고 힘들다며 제왕절개를 하려고 하면 제왕절개의 후유증을 이야기하면서 산모와 아이가 위험하지 않으면 웬만해서는 제왕절개를 절대 하지 말라고 말을 해주기도 하였다.
자연분만은 낳을 때만 힘들고 고통스럽지 제왕절개에 비해 출산 후에는 회복되는 속도도 훨씬 더 빨랐다. 일단 해산하면 산모는 오래 누워있지 않아도 되고 주렁주렁 달린 것도 없으니 얼마 후 바로 걸어 다닐 수도 있었고 소변도 스스로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제왕절개는 수술 후가 더 문제였다. 생 배를 갈라서 아이를 꺼냈으니 그 후유증으로 몸도 잘 가누지 못하고 소변도 오줌 호스를 통해 배출해야 하고 식사도 장이 제 자리를 찾을 때까지 먹을 수도 없었다. 요즘은 수술한 지 하루면 장기들이 제자리를 빨리 잡으라고 강제로 일어나 걸으라고 운동도 시킨다고 하는데 침대에서 혼자 일어나기도 힘들어하는 산모를 자꾸 걸으라고 하니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럽겠는가.
거기다가 아내는 둘째를 수술할 때도 부분마취가 듣지 않아서 전신마취를 했다고 한다. 처음에 부분마취를 했는데 아프다고 하는데도 자꾸 수술을 진행해서 소리를 질렀더니 그제야 전신마취를 해서 정신이 없었다고 하는데 문제는 부분마취보다 전신마취를 했을 때가 나중에 깨어났을 때의 고통이 더하다고 한다. 그리고 마취 주사도 다른 주사에 비해 엄청 아프다고 했다. 그런데 그러한 경험이 한 번 있는 아내가 이번에는 셋째를 위해서 또 배를 가르고 출산하려고 병원에 입원해 있으니 절절히 말은 다 안 해도 그 속이야 얼마나 불안하고 초조하겠는가.
그런데도 아내는 수술에서 오는 불안과 공포보다 병원의 입원이 더 지겹다고 하고 있으니 그 병원이라는 것이 쉬는 것이 아니라 정말 지겹고 할 게 못 되는 모양이었다. 나 같으면 이때다 싶어서 책이라도 실컷 볼 텐데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아내에게 그런 말은 할 수는 없었다. 책도 마음이 편안하고 어느 정도 여건이 맞아야 머릿속에 들어 오지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면서 마음은 콩밭에 가 있는데 책을 읽으면 그 내용이 가슴속에 들어오기나 할까. 그런데 왜 나는 병원에 있을 때 아내에게 진정으로 위로의 말을 한마디도 건네지 못했을까 지금은 가끔 후회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