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동인도회사
동인도회사(東印度會社)는 식민지 경제의 대명사이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 여왕(재위기간
1558∼1603)이 최초로 동방무역의 독점권을 준 회사이다. 1600년이다. 전성시대 동양에서 면화, 비단, 인디오 염료, 소금, 초석, 차, 아편 등을 가져왔다. 대금은 은으로 지급했다. 항해의 범위는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에서 남아메리카 남단 마젤란해협이다. 즉 인도양과 태평양이다. 1492년 신대륙을 발견했지만 신대륙은 생활수준이 떨어져서 유럽에서 필요한 물건을 가져올 것은 없었다. 당시 세계에서 가장 부자의 나라는 중국과 인도였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1602년에 설립했다. 중심지는 지금 인도네시아 전역이었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1800년까지이고, 1800년∼1942년까지 네덜란드 정부가 동인도회사를 국유화했다. 일본이 항복한 후 다시 네덜란드가 지배했으나 독립운동으로 인도네시아에서 물러났다. 네덜란드의 인도네시아 지배는 320년간이다. 인도네시아는 유럽 국가들의 식민지 중에서도 가장 이익이 나는 식민지였다. 유럽인으로는 포르투갈인이 처음으로 1512년 들어왔다. 열대지방은 음식이 쉽게 부패하기 때문에 방부제 역할을 하는 향료를 많이 썼다. 대표적인 향료가 후추이다. 식민지 관리는 엄격한 사회 계급으로 이루어졌다. 화란인은 최상위이고 다음은 중국을 비롯한 외국상인, 그리고 현지인이 최하급이다. 현재의 인구구성은 97%가 인도네시아인이고, 2%가 중국인, 0.4%가 네덜란드인이다.
1595년 네덜란드 상선이 도착해 향신료를 수입했다. 향료의 수입으로 엄청난 이익을 남겼다. 왕실과 귀족 부자가 투자하는 회사들이 나타났다. 무역선을 건조하여 수십개의 무역회사들이 난립하여 문제가 일어났다. 황제의 허가 아래 '연합 동인도회사(Vereenigde Oost-indische Compagnie/VOC)'를 만들었다. 황제는 회사에게 외국에서 전쟁을 할 수 있는 권한, 조약을 체결할 권한, 도시를 만들 권한을 주었다. 이윤을 추구하는 회사이지만 국가권력을 대행하는 회사이다. 정부군보다 많은 군대도 보유하고 있었다. 동인도회사의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본사를 인도네시아 자바섬 바타비아(현재 자카르타)에 두었다. 독점 상품은 육두구(nutmeg), 후추, 정향(clove), 계피였다. 처음에는 원주민이 채취해 온 향신료를 수입했지만 동인도회사는 원주민에게 주식인 쌀 대신에 열대기후에 적합한 외래 농산물 커피, 차, 카카오, 담배, 고무, 사탕수수, 아편을 재배토록 했다. 플랜테이션(plantation)이다. 원주민이 재배하게 했고, 중국인 관리인을 통해 수집하여 유럽에 수출했다. 플랜테이션 농업으로 회사의 수입은 크게 늘어 네덜란드 예산의 25%를 차지했다. 회사는 큰 수익이 났지만 현지인 식량이 부족해 수입해야 했고, 기근이 일어나 굶어죽는 사태가 일어났다.
자바전쟁(1825∼1830)이 일어났다. 중국인과 자바인이 연합하여 동인도회사에 저항했다. 동인도회사가 고용한 용병과 신무기로 중국인과 현지인을 학살하고 진압했다. 식민지 착취경제에 대한 원주민의 저항이 강해지고 한계가 드러났다. 쌀을 재배할 땅을 현지인에게 유보해 주었고 회사는 네덜란드에 도로 철도와 학교를 건설해 주는 등 투자를 시작했다. 동인도회사의 상품, 키니케, 후추는 전 세계의 대부분을 공급했고, 고무 1/3, 코코넛 1/4, 설탕, 커피, 석유의 1/5을 공급했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가장 많은 이익을 내는 회사였다. 1600년대의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상선은 영국,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독일 상선을 합한 것보다 많았다. 네덜란드 국민 총생산은 전 세계의 50%를 차지했다.
당시 인도네시아는 통일된 국가가 아니고 수십개의 왕국이 난립했다. 인도네시아는 현재 1만 3466개의 섬으로 구성되어 있는 통일국가이다. 인도네시아는 온전히 열대지방에 놓여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섬나라이다. 자바어(40%), 순다어(16%)와 700개의 언어를 쓰고 있다. 회교 87%, 기독교 10%, 힌두교, 불교 순이다.
영국의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를 모델로 일본은 1908년 동양척식주식회사(東洋拓殖株式會社)를 설립했다. 1910∼1918년 토지조사사업을 했다. 3각측량을 하여 조선반도의 지적도와 지도를 만들었다. 목적은 식민지 경제수탈을 위한 것이지만 대단한 토지조사사업이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지도제작이었다. 1만 2천명을 동원하여 8년 8개월 만에 한반도 전체를 삼각 측량하여 토지자원을 조사했다. 조선의 자원은 쌀이다. 한반도에 490만ha의 땅이 있고, 1910만 7520필지가 있고, 81만 2093매의 지적대장을 만들었다. 농민들에게 소유권을 신고토록 했다. 동척은 신고되지 않은 땅을 국유지로 분류했고 한일합방으로 조선의 국유지는 일본땅이 되었다. 국유지를 통척이 인수하여 일본인에게 불하했다. 지주의 권한이 강화되고 소작인은 경작권을 잃었다. 동인도회사와 동양척식주식회사는 수단은 다르지만, 식민지를 수탈하여 모국의 이익을 도모하는 목적은 같았다.
2018년 6월 7일 목요일 大邱내일신문 朴贊石(전 慶北大 총장⋅국회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