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황금사자기]노길상 첫 노히트 노런 ‘황금의 왼손’
입력 2004-06-21 18:18업데이트 2009-10-09 20:12 동아일보
1970년 성남고 노길상, 대회 첫 노히트 노런
1947년 8월 21일 성동원두(동대문구장)에서 동산중과 군산중의 개막전으로 막이 오른 황금사자기 고교야구대회가
올해로 58회째를 맞았다.
그동안 대회를 거쳐 간 스타들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72년 제26회 대회 결승전에서 군산상고가 부산고에 1-4로
지다가 9회말 5-4로 역전승한 경기 등 명승부도 야구팬들의 기억에 생생하다.
명승부의 주역들은 고교는 물론 실업과 프로무대에서 최고의 스타로 부상해 한국야구의 대들보로 활약했다. 그만큼
황금사자기는 스타 탄생의 산실.
1회 대회부터 3회 대회까지 3연패를 달성한 경남중의 ‘태양을 던지는 사나이’ 장태영(작고)은 말할 것도 없고 백인천도
59년과 60년 경동고를 2연승으로 이끌었다. 백인천은 훗날 일본 프로무대에 진출해 맹활약했다.
수많은 스타들 중에서 대기록을 작성한 선수는 성남고 투수 노길상. 왼손투수로 변화구에 능했던 노길상은 70년 24회 대회
경북고와의 2차전에서 대회사상 첫 노히트노런 기록을 세웠다. 왼손투수로 구속이 빠른 데다가 커브 낙차가 워낙 커 타자들
이 타석에서 멀거니 바라만 보다 당하기 일쑤였다. 고려대에 진학한 뒤 실업 한일은행에서 76년까지 선수생활을 한 그는
이후 일반 은행원 생활을 하다 퇴직해 농사를 짓고 있다.
73년 27회 대회에서 대구상고의 장효조는 타격 1위(타율 0.428), 최다안타 등을 기록하며 우승을 이끌었다. 장효조는 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서도 우승 주역으로 활약한 뒤 83년 프로에 데뷔하자마자 타율 0.369를 기록하며 그해 타격왕에 등극
하며 ‘타격의 달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는 92년 은퇴할 때까지 4차례나 타격왕에 올랐다.
고교야구의 전성기인 70년대 말부터 80년대 초 오빠부대의 우상은 선린상고의 박노준. 박노준은 2학년이던 80년 34회 대회
에서 선동렬이 버티고 있던 광주일고에 3-2로 간신히 앞서고 있던 8회말 승리를 굳히는 쐐기 투런홈런을 날렸다. 마운드에서
5회부터 2안타 1실점만 내주며 호투, 투타 모두에서 승리의 주역이 됐다. 박노준은 프로야구에선 무릎과 인대 부상 등으로
빛을 보지 못하다가 미국 유학 후 방송해설가로 제2의 야구인생을 살고 있다.
거포로서 이름을 날린 스타는 심재학(기아). 투수와 타자를 겸업한 심재학은 충암고 3학년 시절인 90년 44회 대회에서 타율
0.471을 기록했다. 8개의 안타 중 무려 7개가 홈런.
과연 올 58회 대회에선 어떤 스타가 빛을 발할지 궁금하다.
전 창기자 jeon@donga.com
고교 야구 「스카우트」 싸고 잡음|노길상, 중대로 전격 번의
중앙일보
입력 1970.11.25 00:00
지면보기
내년 봄 성남고를 졸업할 「사우드포」 노길상 투수를 둘러싸고 중앙대와 고려대가 치열한 「스카우트」 쟁탈전을 전개, 야구계
의 주목을 모으고 있다.
지난 10월 전국 지구별 초청 고교 야구 대회에서 성남고가 패권을 차지하는데 투·타에서 크게 공헌, 일약 「히어로」로 등장한
노길상 투수는 그 동안 「팀·메이트」인 1루수 강진규와 함께 학교 종용에 의해 고대에 진학하기로 확정이 됐던 것.
그러나 팀 창설 첫 해인 금년에 대학 선수권 대회에서 준우승까지 차지한 중앙대가 내년도 전력 보강에 노길상 투수를 강력히
포섭하겠다고 맞서 소용돌이 속에 말려들었는데 중앙대는 노 선수에게 「스카우트」비로 1백만원을 주기로 하고 1차 분으로
우선 50만원을 지급했다는 풍문도 있으나 고대 진학을 포기하기로 번의 시킨 것은 사실.
이에 놀란 고대는 본인과 중앙대 등과 지난 23일 3인 회담 등을 마련까지 했으나 아무런 결론을 맺지 못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