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1년 7월 23일 방정환 선생이 세상을 떠났다. 본래 ‘선생’은 아주 대단한 존칭이었다. 통일신라 시대까지 선생으로 불린 사람은 기록상 강수와 백결뿐이다. 임금을 가르칠 만한 사람을 선생이라 규정한 까닭이다. 영화 〈선생 김봉두〉가 선생이라는 어휘의 존엄성을 땅바닥까지 떨어뜨렸지만, 나는 선생이라는 극존칭을 방정환에 바치고자 한다.
방정환은 ‘어린이’라는 말을 만들고, 1923년 어린이날을 처음 제정한 어린이운동가이다. 1919년 민족대표 손병희의 사위인 그는 불과 32세 나이로 요절한 아동문학가이기도 하다. 우리는 방정환이 어린이운동가로서 이룩한 위대한 업적에 경도된 나머지 그가 아동문학가라는 사실을 잊고 지내왔다.
1922년 작품 〈형제별〉을 읽어본다. 천도교 소년회가 마련한 연극 〈언니를 찾으러〉에서 극중 소녀들이 부른 이래 알려진 작품이다.
날 저무는 한울(하늘)에
별이 삼 형제
빤작빤작 정답게
지내더니
웬일인지 별 하나
보이지 않고
남은 별이 둘이서
눈물 흘린다
삼형제의 이산은 임진왜란 초기 상황을 담은 박인로의 시조에도 언급되어 있다.
동기로 세 몸 되어 한 몸같이 지내다가
두 아운 어디 가서 돌아올 줄 모르는고
날마다 석양 문 외에 한숨 겨워하노라.
마종기의 1997년 발표작 〈별, 아직 끝나지 않은 기쁨〉에도 죽은 형제를 별로 표현한 인식이 나온다. ‘밤새껏, 착하고, 신기한 별밭을 보다가 나는 문득 돌아가신 내 아버지와 죽은 동생의 얼굴을 보고 반가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그에 견주면, 황순원의 1941년 발표작 〈별〉은 동기 사이의 애틋한 정을 사뭇 다르게 묘사한다. 소설의 소년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어머니는 대단한 미인으로 여기지만 살아있는 자신의 누이는 아주 못났다고 생각한다. 소년은 누이가 어머니를 빼닮았다고 평한 이웃 노파에게 쫓아가 반대로 말하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시집 간 누이가 죽었다는 연락이 온다. 소년은 두 눈에 별이 비치자 오른쪽 눈의 별은 어머니, 왼쪽 눈의 별은 누이라고 생각하다가 이내 고개를 가로젓는다. 누이가 어머니와 같은 별이 될 수는 없다고 판단한 탓이다. 이런 소년이 존재하는 사회가 가련하고, 이런 소설을 써야 하는 작가도 가련하다. 역시 세상이 아름다워야 문학의 내용도 아름다워지는가 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