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것과 옛것이 기대와 추억을 교차시키는 3월의 대학가. 쉽사리 변화하지 않기로 유명한 중앙대앞 거리도 오존(03)학번의 생기와 더불어 봄옷을 갈아입기 시작한다. 오밀조밀한 골목문화로 상징되는 중대앞 거리가 머금고 있는 시간은 서울 시내 여느 대학가와는 사뭇 다르다.
#93학번, 03학번을 만나다
AM 09:00새학기를 맞은 학교앞 길은 달뜬 가슴을 드러낸 채 새근거린다. 1교시 수업시간에 맞춰 84번 버스 종점에서 강의실까지를 올라가는 일은 등산에 가깝지만, 정문 터에 마련된 ‘걷고 싶은 거리’는 학생들의 발걸음을 늦춘다. 중앙대는 지난해 정문과 담을 허물고 이 자리에 걷고 싶은 거리를 조성해 캠퍼스와 외부의 경계를 없애고 아담한 거리공원을 만들어 놓았다. 주말이면 유모차를 끌고 나오는 신혼부부나 산책나온 노인들을 쉽게 마주칠 수 있다.
대학과 지역사회는 이렇게 서로를 환대하게 됐다. 수업에 늦어 허둥지둥 이곳을 지나는 새내기들은 벌써 수업 후가 기다려진다. 커피 한잔 테이크아웃해서 이곳 벤치에 앉아 봄햇살을 즐기다 보면 밥 사줄 선배가 눈에 띄겠지….
#유명 패스트푸드점이 없는 대학가PM 12:50
점심식사를 하러 나온 학생들로 북적거리는 시간. 시장통의 국수와 떡볶기, 라면덮밥이 이 지역 최고의 점심메뉴였던 10년 전에 비교하면 중대 앞에도 스파게티 집이나 퓨전 음식점이 늘어나긴 했다. 그러나 1980년대부터 이곳을 지켜온 전통의 밥집들에는 지금도 자리가 모자란다. 갖가지 밑반찬이 정성스러운 ‘미림방’, A4용지만한 돈가스를 내주고도 말만 하면 더 주는 ‘남녀공학’, 회식장소 1순위 ‘거구장’, 중국음식점 ‘안동장’과 ‘영합반점’이 모두 10년 이상 주머니 가벼운 학생들의 배를 데워준 음식점들이다.
중대앞에서는 유명 프랜차이즈 업체의 피자나 햄버거를 먹기가 힘들다. 92년에 롯데리아, 94년에 KFC가 발을 뻗어봤지만 장사가 잘 되지 않아 몇달 만에 문을 닫은 ‘전설’은 유명하다. 현재 자리잡은 패스트푸드 업체는 파파이스가 유일한 정도이니 ‘촌스럽다’고 할 만도 하다.
PM 02:00일찌감치 수업이 끝난 학생들이 “갈 데가 없다”고 하소연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중대앞은 새 문화 유입이 늦다. 요즘 다른 대학가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는 보드게임 카페도 이 동네엔 아직 소식이 없다. 이번 학기 복학한 99학번 임현준씨는 “휴학 전과 비교해도 학교 앞은 별반 달라진 게 없다”며 멋쩍게 웃는다.
어떤 학생들은 새로움을 찾기 힘든 학교 앞을 두고 ‘읍내’라고 자조하기도 하지만 이곳엔 중앙대만의 단출하고 가족적인 분위기가 있다. 집이 수원인 03학번 황희선씨는 서울에서의 대학생활이 며칠 안됐지만 “학교 앞이 꼭 우리 동네 같아 편하다”고 한다. 화려함보다는 소박함이 자리한 지역 분위기 덕에 80년 문을 연 사회과학서점 ‘청맥’과 헌책방 ‘남영서적’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중앙대 민속학과 김선풍 교수에 따르면 이 지역은 풍수지리학적으로 봤을 때 달마산을 등지고 한강을 내려다보는, 장풍득수(藏風得水·바람을 갈무리하고 물을 얻음)의 길지이지만 그 지형지세가 금계포란형(金鷄包卵型·황금 닭이 알을 품고 있음)의 형상인 탓에 다소 폐쇄적이라고 한다. 김교수는 “사통팔달의 형국이 아니라 발전이 늦는 편”이라며 “지하철 7·9호선이 학교 앞뒤를 터주면 상황이 달라질 것”이라고 내다본다.
#오순도순 가족같은 분위기PM 05:00
수업을 마치고 약속을 기다리는 학생들로 정문 터는 들썩거린다. 무선통신이 보급되지 않은 시절 정문 앞 메모판의 북적임은 사라졌지만 오후 5시쯤 이곳은 각종 학회·동아리·동문회 모임으로 술렁인다. 학교 인구에 비해 동네가 좁아서 사람은 더 많아보인다. 입학한 지 5년째인 97학번 배성준씨는 오늘도 인사하기 바쁘다. 학교앞 길을 따라내려가면서 아는 친구, 후배와 마주치길 10여차례. 그는 “이 사람 저 사람 인사하는 학교 주변 분위기를 보면 타학교 친구들이 놀랄 정도”라고 한다. 중대를 오래 다녔거나 조금만 발이 넓은 학생이 이곳을 걷다보면 아는 이들이 발에 차인다. 지역이 좁기도 하지만 그만큼 오붓한 분위기가 형성돼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그렇게 만나 눈을 맞추면 자연스레 술집으로 향하곤 했다.
PM 09:00술자리가 깊어지기 시작한다. 학기초라 10명 이상 단체로 몰려다니는 모임이 많이 눈에 띈다. 예전처럼 잔디밭에 앉아 새우깡에 막걸리를 마시는 일은 드물어졌지만, ‘찌개 하나, 소주 여러병’은 아직 중대앞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요즘은 가볍게 병맥주를 홀짝일 수 있는 바도 많이 늘었다. 대학가에 맥주집이 밀려들던 80년대 후반까지도 중대앞 맥주집은 두세군데에 불과했다. 이후 들어선 ‘안전지대’ ‘잠꾸러기’ 등 비교적 큰 맥주집이 10년 이상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금도 ‘안전지대’에 가면 1만원짜리 한장으로 남학생 서너명은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세트안주를 맛볼 수 있다. 유명한 ‘먹자골목’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90년대 후반부터는 손님이 들지 않아 문을 닫는 감자탕집과 갈비집이 몇몇 생겨나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늦은 시간 외상을 받아주는 ‘이모님’이 계시는 곳은 먹자골목뿐이다. 시간이 깊어 술자리가 2차, 3차를 거듭하게 되면 으레 먹자골목에 발길이 닿는다. 일치된 집단을 다양한 개인들이 대체하는 요즘 대학가, 그 가운데 중대앞은 이렇게 옛것과 새것을 한품에 안은 채 나름의 기억을 만들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