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을 쉽게, 많이 먹는 한국인
조금만 머리가 아파도 습관적으로 두통약을 찾는 사람들을 주변에 한 번쯤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한다. 약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내성(耐性)이 생겨 약을 찾는 횟수는 점차 잦아지게 된다. 한국에서는 의사가 한 번 처방할 때 4.16가지의 약품을 쓰는 반면, 일본은 3.0, 호주 2.16, 미국 1.97가지의 약품을 쓰고 있다. 우리나라 성인 1,000명이 하루에 소비하는 항생제 사용량은 OECD 34개국 중 5위로 꽤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다. 또 다른 문제는 각종 건강기능식품에 의존하며 많은 종류의 약을 쉽게 먹고 있다는 점이다.
약이 아닌 새로운 처방의 발상
# 직장인 A씨는 한 달에 한 번은 꼭 진통제를 먹는다. 심한 생리통에 어쩔 수 없이 약을 찾곤 하지만 약에 대한 내성이 생길까 늘 걱정이 크다.
# 대학생 B씨는 저녁 식사 후 속이 더부룩해 힘들어하고 있다. 주변 친구들이 마시는 소화촉진제를 사 먹을 것을 권했으나, B씨는 약을 함부로 먹는 것이 싫어서 그냥 참기로 했다.
우리는 위 두 사례와 비슷한 경우를 주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약을 먹으면서도 약에 대해 부정적이거나, 약을 쉽게 먹지 않고 자연스럽게 치료하고자 하는 이들이다. 만약 약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처방할 수 있다면, 약에 대한 의존도와 소비량이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 반드시 약을 먹어야만 금방 낫는 것 같은 기분을 다른 방법으로 해결해 줄 방법은 없을까?
심리적 효과를 처방하다, “플라스크립션(Pla-Scription)”
심리적 효과를 이용하여 약효가 전혀 없는 거짓 약을 진짜 약으로 가장, 환자에게 복용토록 했을 때 실제로 환자의 병세가 호전되는 현상을 가리켜 ‘플라시보 효과’라고 말한다. 선의의 거짓말이 효과를 가져다주는 사례이다.
이번 아티클 에서는 심리적 효과를 기대하는 의미를 지닌 플라시보(Placebo)와 처방전을 뜻하는 프리스크립션(Prescription)의 합성어인 플라스크립션(Pla-scription)형태의 새로운 비즈니스적 영감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단순히 플라시보 효과를 이용하거나 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 효과를 이용해서 직접적인 처방을 한다는 개념이 이전의 플라시보 효과와의 차이이다.
이럴 때 이런 음악, 스무 가지 클래식 처방전
일본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광고 대행사에서 합작하여 진행한 JAPAN PILL-HARMONIC이라 불리는 이 프로젝트는 지루하고 어려울 수 있는 클래식 음악을 재밌는 방법으로 들려주기 위해 마련되었다. 많은 사람이 어렵고 지루하다고 느끼는 클래식 음악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아이디어를 모색한 것이다.
마치 약국에서 약을 처방받듯이 원하는 기분이나 목적에 따라 각각의 클래식 음악을 처방되는데, 약 봉지 안에는 처방된 클래식 음악이 들어있는 작은 SD카드 혹은 USB가 포장돼있다.
깨끗한 피부를 위해 비발디의 ‘사계-봄’을, 편안한 수면을 원하는 고객에게는 말러의 ‘교향곡 10번’, 식욕부진으로 힘들어하는 환자에는 로시니의 ‘세비야의 이발사’가 처방된다. 각각의 클래식 음악의 음률, 리듬에 따라 감정이나 증상과 연결한 것이 흥미롭다. 큰 질병을 낫게 할 순 없겠지만 작은 고통에도 약에 의존하는 일을 조금은 줄여 줄 수 있다.
단순히 음악을 들을 때와, “편안한 수면을 위한 말러의 교향곡 10번”을 처방 받아 들었을 때, 음악이 주는 효과는 분명히 다르다. 약봉지 안에서 조제된 약을 꺼내듯 USB를 꺼내 음악을 듣게 되면 평소보다 더 나른하고 편하게 숙면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으로 감상하게 될 것이다. 심리적 효과를 이용한 색다른 처방, Pla-scription을 바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플라스크립션은 어떤 새로운 비지니스 영역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새로운 처방, 새로운 Therapist 직업 발생 가능성
평소 쉽게 접근하기 어려웠던 클래식이나 와인 등을 감정의 상태에 맞게 분류하여 처방의 개념으로 제시한다면 마케팅의 방법으로 쓰이면서도 실제로 치유의 목적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매일 한 잔의 와인은 건강에 좋다는 연구결과가 있고, 음악 또한 치료의 한 부분으로 주목받고 있다.
와인을 포도종, 숙성 정도, 원산지에 따라 구별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와인의 풍미와 맛의 느낌에 따라 소비자가 느끼는 고통 혹은 감정과 연결하여 치료의 수단으로 제공할 수 있다. 수면 장애, 실연의 고통, 우울증, 향수병, 사랑의 묘약 등으로 스토리화, 패키징하여 연결 짓는 것이다. 소비자들은 현재 본인의 감정에 맞는 와인을 추천 받음으로써 평소보다 와인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면 싸운 부부가 화해를 위해 ‘사랑의 묘약’으로 패키징 된 와인을 구매하게 된다면 와인을 사는 것만으로 의미 있고 값진 처방이 될 수 있다.
아마도 올바르고 객관적인 처방을 위해 와인을 구별하려면 철저한 평가가 바탕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는 곧 Wine therapist, Classical Music therapist 등의 새로운 직업 등장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 음악이 왜 피부미용에 효과적인지, 이 와인에서 느껴지는 풍미, 숙성 정도가 왜 수면 장애 개선에 도움을 주는지를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기준을 정해주는 처방사를 만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꼭 약을 먹어야만 증세가 호전되는 병도 있겠지만, 우리가 약국에서 쉽게 구매하는 약 가운데는 굳이 먹지 않아도 될 가벼운 증상을 위한 약이 꽤 많다. 쉽게는 두통, 생리통, 우울증 등이 그렇다. 환기를 자주 해라, 휴식을 취해라, 배를 따뜻하게 해라, 자기 전에 따뜻한 우유를 마셔라 등 전문가들도 자연적 치료를 권하는 가벼운 증상들이다. 가벼운 질병에도 약에 대한 의존도가 비교적 높은 대한민국, Pla-scription이 그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작은 탈출구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