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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우리의 상황이나 근심을 알고 계신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래서 우리 마음이 항상 주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그래서 나는 주님앞에 비밀이 없어야 하고
자존심이나 체면을 세우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앞에 나를 다 보여주셔서 나를 고치시거나
진단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럴때 그 사람의 내면은 새롭습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그 사람 마음을
신선하게 바뀔 수 있는 은혜를 주십니다. 우리는 깨끗한 마음을 유지해야 하는데 그것은 내 마음에
걸림이나 고민이 나를 누르고 있지 않는 마음을 말합니다. 그것은 평안한 상태 안정된 상태를 말합니다.
항상 그것을 유지할 수는 없어요. 상황에 따라 마음이 요동칠 수 있어요. 그러나 그상태로 계속 있는 것이
아니라 빨리 비춤을 받아서 순환이 일어나고 떠나가게 하는 상태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불편이 오면 괴로워야
합니다. 주님에게 질문을 하면서 원인을 알려고 하는 것입니다. 사건 자체에 대한 잘못을 따지면 해결이 없습니다.
거기에는 승자도 없고 패자도 없습니다. 우리가 제일 중요한것은 내 마음 지키는 것입니다. 내 마음을 지킬때
음성이 들리고 지혜도 부어지는 것이고 우리를 이끄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문제나 사람에 묶여버리면
그 모든것들이 어두워지는 것입니다. 경로가 막히는 것입니다. 무슨 걸림이 올때 내가 왜 이게 불편하죠?
내가 왜 이러는 거죠? 하고 주님께 촛점을 맞추어 내 반응을 알려고 하면 좋으신 성령님이 그것을 알려 주십니다.
우리의 질문이 하나님의 뜻에 바르면 응답이 바로 옵니다. 그러면 매듭이 풀리는 것 같이 상쾌함이 옵니다. 그러면
해결이 옵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이 쉽게 내어주는 것은 우리의 생각입니다.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잘 지키면 하늘에 연결된 자로
잘 살수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음성을 어떻게 받아요? 환상, 꿈,느낌, 영적 직관으로 받을 수 있어요. 이런것을 분별해 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런것들이 다 하나님의 음성이냐 이것을 분별하는 것이 중요하죠. 여기서 진도가 잘 안나가
잖아요? 마귀의 음성이냐 하나님의 음성이냐 분별하는 것인데 이것은 단번에 되는 것이 아니고 훈련이 필요합니다.
경건의 훈련등 좋은 습관이 쌓이면서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은사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이것은 초자연적인 은사로
알아지는 것과 다릅니다. )그러나 여기서 음성을 분별하는 것은 그 분별력하고는 다릅니다. 그것은 평소에 말씀과 기도가 누적되면서 이제 신앙생활을 바르게 잘 하게 되었을때 자연스럽게 그것들이 내 안에서 이런것들을 분별하게끔 올라옵니다.
말씀이 올라올때 이 말씀과 맞는데..맞지 않는데 ...이것은 시간이 필요하고 훈련이 필요합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데 좀 혼란스러워, 이런 마음도 올라오고 저런 생각도 떠오르닌까. 이게 하나님 음성을 분별하는가 생각될 수 있습니다. 서로 상반된 생각이 뗘오를 수 있어요 이건 분별한다기 보다는 지금 혼란스러움을 겪는 거예요. 어떤 확신하지 못하는 가운데 갈등이 일어나는 거구요 분별이란 이것도 맞는것 같고 저것도 맞는것 같고 가려내는 것인데 갈팡질팡하는 것은 분별하는게 아닙니다. 그 상태에서 성령께서 주시는 것을 잘 순종해 나가면 분별력이 생겨요. 그러나 갈등만 계속해서 하고 있으면 분별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분별을 위한 것은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 중 중요한 것이 성경을 읽고 성경의 말씀들을 잘 알고 있어야 해요. 성경을 읽고 설교말씀을 듣고 이런것들이 쌓이면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만큼 분별이 쌓여요. 그래서 누군가 말할때 저건 하나님의 말씀과 맞지않아 라는 것이 자동적으로 일어납니다. 성경 말씀을 잘 알고 읽는것은 기본이 됩니다. 이것 없이 분별을 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분별을 신뢰할 수 없습니다. 느낌으로 한다는 것은 신뢰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때 가장 방해가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씀이 생각났는데 한쪽에서는 내 생각이 떠오르는 거죠. 그게 바로 내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음성을 헷갈리게 하는 내 혼의 소리입니다. 내 생각이죠. 이 두가지가 나를 헷갈리게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음성을 가장 방해하는 것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속의 내가 원하는 육신의 생각입니다. 항상 우리의 혼은 나를 원합니다. 의식하는 나이고 내 의지를 가지고 있는 나입니다. 이 혼은 항상 나 자신을 원해요
어떻게보면 하나님의 음성은 내가 원하지 않는 것들일 수 도 있어요. 말씀 읽어라..등등 그러나 내 혼은 뭐예요 항상 내가 했던
데로 하라고 해요. 친구 만나라..예수 만난 사람도 친구만나야지 하죠. 내 혼은 습관으로 했던 것 하라고 해요 너 그거해, 그거 편하잖아. 내 혼은 하나님의 음성듣는 것을 막아섭니다. 그것은 육신의 소욕들
내가 원하고 바라는것 내가 하고싶은 것들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이런 것들은 내 욕심을 따라 하려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래서 먼저 내 생각 내 속에서 들려오는 생각들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음성을 제대로 들을 수 있어요. 이런 갈등이 자주 일어난다.하는 사람은 먼저 내 생각을 내려놓습니다. 나의 혼이려 잠잠하라! 라고 선포하세요 그리고 하나님앞에 진심으로 내려놓는다고 고백하세요. 그리고 진심으로 하나님의 음성만을 듣고 싶다고 고백하세요.
그 혼이 잠잠해 진다면 다시 내면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의 의지가 내면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내 영이 알게 되었을때 거부하고 싶어서 의지가 발동될 수 있는데 그것을 밀어내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이렇게 하다가도 아 나 이거 싫은데 해요. 그러면 혼이 다시 신나서 힘을 얻어요.(그치 그치 싫지 하면서 ...) 이런경우가대부분입니다.
분별을 하는 부분에 있어서 내 삶을 점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규칙적으로 하나님 말씀을 읽고 있나요? 이게 늘 되어질 때 바른분별이 쌓여질 수 있어요. 암송, 묵상, 그리고 말씀으로 내가 행하는 삶으로 사는것으로 되어져야 합니다. 또한 기도생활을 잘
유지하고 있는지 보아야 해요. 우리는 기도를 통해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을 깨닫게 해주십니다. 여러 가지가 기도 가운데 일어납니다. 기도가운데 죄가 제거가 되면서 여러분이 투명해 지면서 하나님의 뜻을 잘 깨닫게 해줍니다. 물이 계속 흐르는 것 처럼 순환이 일어납니다.
둘째, 내 삶이 거룩함과 정결함을 쫓고 있는지 살펴봅니다. 이것은 주님만이 볼 수 있습니다. 이 때 내 양심의 소리를 거스리지
않고 그것을 따르는 것 이것이 정결함을 유지하게 하는데 이것을 무시하면 둔해지고요, 나중에는 어기고 살면서 찔림을 받지
않으니 이게 죄라는 생각도 들지 않습니다. 그리고 죄를 범하면서 합리화하는 습관을 가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스스로 내 죄에 대해 정의를 내립니다. 어떻게 하나도 죄를 짓지 않고 살 수 있겠어? 이것이 합리화입니다. 다른 사람과 상대적 비교를 하고
나는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면 나는 정결케되지 않고 죄는 점점 자랍니다. 작은 죄가 허용되면 점점 큰죄도 아무렇지
않게 됩니다. 바늘도둑이 쇠도둑 된다는 것이 맞아요. 기도만 많이 한다고 되는 것이아니예요. 순종할때 내 삶이 정결해 지는 것입니다. 어린신앙때는 죄를 모르면 거룩케 해주기도 하지만 이제 성장했을때는 다릅니다. 죄를 짓고 나서는 다시 돌아와야
해요. 회개는 유턴하는 것입니다. 그길을 떠나서 돌아와야 합니다.
네번째는 교회는 등록교인으로 예배와 공동체 모임에 잘 참석하고 있는지 봐야 합니다. 자신이 이 교회 저교회 다니면서 편리한데로 예배를 드리면 마귀에게 속는 것입니다. 공동체에 소속된다는 것은 내가 독립되고 홀로되지 않는 다는 것이예요.
내가 잘 가고 있는지 나는 겨우 볼 수 있는 것인데 다른 사람을 통해 내가 볼 수 있어야 되요. 공동체안에서 소속된 사람을
건강하게 세워주시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에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있어요. 요즘 여기저기 있는 사람은 영적 노숙자같은 사람이예요. 그 사람은 보호막이 없는 사람이예요. 그 사람은 독립적이고 자기중심적인것이 커져요. 나중에 자기 나름의 신앙이 형성되고 자기 신학이 형성됩니다. 그래서 나중에 판단을 하게 됩니다.
다섯째, 내가 하는 일이 사랑으로 행하고 있는지 봐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하면 분별력을 잃지 않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하면 지나친 열심과 애정으로 하지 않게 되죠. 문제가 일어나는 이유는 그게 내 애정이고 내 사랑이 되는 겁니다.
그러면 나중에 섭섭하고 상처를 받는 일이 생깁니다. 돌아오는 것이 내기대에 못미치면 상처를 받게 됩니다. 내기준으로 열심을 냈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는 모든일이 주님의 사랑으로 하는 것인지 점검해야 합니다. 내가 바르게 가고 있나, 나는 어떤 동기로 하고 있나? 그러면 인간적으로 뒤엉키지 않습니다.
우리의 음성의 출처를 알아야 합니다. 성령의 음성인지, 내 혼의 음성인지, 악한영의 음성인지. 성령님의 음성은 어떻게 듣나?
감동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것도 어떤 단계들이 있다는 것을 알 수있습니다. 경험으로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어떤 사람은 내적으로 성령의 음성을 잘 듣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이 많아요. 그래서 처음으로
감동으로 영에서 오는 느낌으로 알 수 있어요. 그러다 익숙해지고 훈련이 되면 내적음성을 들을 수 있게 되고 환상도 열리면서
더 많은 통로 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내 혼에서 들리는 음성은 어떻게 올까요? 우리의 감정은 과거의 여러일가운데 경험되어진 감정들에는 상처가운데 있는 감정, 죄가운데 있었던 감정들은 건강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것들이 나에게 생각을 줄 수 있어요. 왜곡된 혼에서 오는 생각들, 욕심에서 오는 생각이 자신의 혼에서 오는 음성입니다. 주님의 음성과 헷갈려 하는 부분이 이 부분입니다. 이 때 내려놓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주님의 뜻에 순복하겠다는 진지하고 진솔한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것은 도장을 찍는 역할을 합니다. 입술로 시인하고 고백한다는 것은 중요한 것입니다. 그 고백은 내 혼이 작동하지 못하도록 하는 힘을 발휘합니다.
순복하겠다고 하고 순복해야지 힘을 발휘합니다. 그러나 순복하겠다고 하고 5분도 않되서 번복합니다. 그건 성령의 음성을 가볍고 하찮게 여겨서 그렇습니다. 여전히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하고 싶어합니다. 그것이 너무 크기 때문에 주님이 음성을 들려주도 내가 원하는 것을 하는 이율배반적인 행위를 합니다. 주님의 음성에 순복하겠다고 해놓고는 또 내가 원치 않는 것을 하라는 음성을 듣고 " 이거 싫은데'''" 하면 내 혼이 알아듣고 펄펄 힘을 얻습니다. 그래 이거해도 괜찮아...이런 행동들 때문에 다시 혼란스러워 집니다. 순복하겠다고 고백하고 그 다음 들려주시는 것들을 분별하면서 거기를 따라가기 시작하면 분별은 정확해 집니다.
마태복음 18장의 베드로의 모습을 보면 베드로가 보여지는 예수님의 모습을 가로막는 모습이 혼적인 모습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예수님이 십자가 지로 간다고 하닌까 막 막는거예요.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을 향한 베드로의 육적 애정이예요
예수님의 십자가에 못박히고 고난당하는 것을 못본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엄청난 하나님의 일을 가로막는 것입니다.
이 육적인 애정이 마귀가 원하는 것입니다. 내 혼의 건강하지 못한 것이 나올때 사단이 거기에 힘을 더해줍니다. 혼은 언제나
나를 위하고 육을 위합니다. 사단은 언제나 그렇게 말합니다. 내 육을 쫓아가라고 합니다. 그게 사단의 전략입니다. 혼적인 것을 드러내면 마귀는 이것과 결탁해서 내 안에 영이 앞서가는 것을 방해하고 그것을 하지 못하도록 미혹합니다. 그래서 혼에서 나온 음성과 마귀의 코드는 같은것이다. 이렇게 분별하시면 됩니다. 성령이 내적 음성을 들려 줄때 그것에 반한 나를 위한 음성이 들린다. 그럴때 이 음성은 마귀는 같이 가고 있다 이렇게 분별하시면 가장 쉽다. 내 혼의 음성은 마귀가 좋아하는 것이다. 나를 위한 것은 언제나 마귀의 전략이구나. 이렇게 분별하면 쉬워집니다. 혼은 나를 위하지만 결국은 나를 넘어지게 합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내 혼아 너는 잠잠하라, 나는 성령님을 따라갈거야. 너는 내 안에서 충동질 하지 못해, 너는 일어나지 못할지어다. 너는 잠잠할지어다. 내영을 충동질하는 영아 너는 떠나갈 지어다. 이러면서 잠잠케 하면서 여러분 영안에 들려지는 성령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도록 청소해야 합니다. 마귀의 음성은 성경에 보면 광명의 천사로 가장 한다고 하죠. 곧후 11:14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자기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어딘가에 빌붙어서 역사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말씀을 알지 못하면 그렇게 광명의 천사로 과장하는 악한 영을 분별하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그 말이 매우 부드러운 것 같고 뭔가 나를 위하는 것 같고. 그러나 여러분 냉정해야 합니다. 나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좀 싫더라도 내 속에서 주님을 따르도록 하는 음성이 성령의 음성이예요. (육의소리는)나를 위하고 나를 막 세워줘요 그럴때 사람들이 막 속아요. 그런데 절대 성령의 음성이 아니예요. 성령님이 나를 세워주실때는요 나를 막 부추겨 세워주시는 것이 아니예요.
하나님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내 존재가 누구인지 알려주세요.나만으로 스스로 내가 잘났고 높고 그런게 아니라 나의 존재가 세워지는 것은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이 나를 만들어 주셨다는 것을 성령님이 알려주세요. 그래서 나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높이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이 말씀을 제데로 알면 들려오는 음성의 작은 차이인데도 그것을 분별해 낼 수 있게 되는 거예요. 마귀는 나를 위하는 것지만 결국 하나님 없는 나를 교만하게 만드는 것이므로 속으시면 안됩니다.
예언을 멸시하지 말라(덷전5:11)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죠. 은사들에 대해 열린마음과 사모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순종이 있어야 성취가 됩니다. 조건을 충족해야 성취가 됩니다. 듣고 행하는 것입니다. 이런 태도가 있을때 점진적으로 성취가 됩니다. 개인의 삶안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과 뜻이 있어요. 만일 내가 가고 있는 길이 하나님의 뜻과 맞지 않으면 돌이켜야 하고요 하나님이 하라하시는 일들을 순종해 가야 해요. 그래야 성취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예언이 성취되려면 인내해야 하는데 과정이 필요한데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때에 이루어져야 함을 믿고 해야할일들을 해나가야 한다.
예언이 정확한 증거를 얻을 수 있나요? 여러분안의 성령님이 증거해 주세요. 여러분 스스로 확신할 수 있게 합니다.
그 확신이 내가 가지고 계획한것이 아니라 성령의 영의 반응이 있다는 것입니다. 속에서 작동되어지는 것이 혼이 작동되어지고 영이 작동되어질 수 있는데 , 생각하고 사고, 추리하고 감정이 올라오는 내가 작동시키는 이런것이 아니예요. 그건 혼에서 일어나는 일이예요. 영은 사랑과 믿음이런것들 내 안에서 끓어오르듯이 나오는 이런것들이 작동되요. 올바른 예언을 분별하고 있는 것이 영인지 혼인지 육인지(오감) 분별하셔야 된다. 내가 가지고 있는 신념, 전통적 생각, 강한 의견들을 가지고 참된 예언을 분별해서는 않된다. 영의 반응은 내면깊은 곳에서 온다. 방향에 대해서 그 길이 아니다 조심해라 하는 소리가 내적음성으로 올라올 수 있어요. 그런데 영적으로 올라오는 것은 아니다. 맞다 를 가르쳐줍니다. 부정적인 생각은 혼이 알려줍니다. 이런것들이 그냥 느낌으로 올 수 있어요. 내면에서 마음이 편치 않다. 초조하다. 내가 주님안에서 답을 구하며 기도하는데 그것을 행동으로 옮긴다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가 않아요. 이것 자체가 빨간 신호등입니다. 멈춰라. 하지마라는 신호입니다. 이건 생각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께 묻거나 답을 얻을때 안에 영으로 느껴지는 것입니다. 평안과 기쁨과 마음이 평안하고 포근한 느낌이와요 그건 초록신호입니다. 기쁨이 차오르는 흥분되는 마음 이런것들로 옵니다. 이것도 저것도 잘 모를때가 있어요 그럴때 지켜보면서 기다리면 자연스럽게 열려지거나 풀어집니다. 기도하면서 성령님께 초점을 맞추려고 하세요
리뷰: 우리는 스스로 의로워 질 수 없다.
때로는 영적인 신비를 풀어냄에 있어서, 말씀외에 어떤 틀의 정답이 있을 수 있을까? 개인적 체험이 일반화 될 수 있을까? 70억 인구를 다 다르게 만드신 그 주님만이 정답을 알고 있을 것이다. 신앙의 본질이 있다면 그 본질을 찾아가는 개인의 체험이나 역사는 다 다르다. 그래서 사실 이런 영적인 체험으로 나온 글들을 올리는 것이 조심스럽다. 우리는 연약하기에 정답을
원한다. 그 정답은 주님만이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