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베이 산장 100미터 위 지점까지 왔을 때, 우리는 그만 주저 앉고만 싶었다 .
배가 고파 더 이상 움직일 수가 없어 알파미 세 봉을 꺼내 끓여 먹으며 따뜻한 태양을
대하니 , 설악산 종주등반을 끝내고 , 낙산 해변가에서 뜨거운 햇볕이 온몸을 노곤하게 만들어
버렸을 때처럼 졸음이 살금살금 밀려든다 . 그러나 빨리 내려가서 대장과 대원들을 만나야
했다. 그들과 만나게 되면 , 이제까지 잠자고 있던 가슴 떨리는 , 기쁨이 소리내어 폭발하리라
정상에서는 잊고 있던, 그리움이 새로운 느낌이 되어 , 우리의 환희를 그들에게 빨리
전해 주고 싶었다. 전 박사와 욱이 형이 잠깐 동안의 단잠을 애써 털며, 일어나 우리는
솔베이 산장으로 향했다 .
< 1980년 8월 3일-4일 . 한국 등반대 다섯 명 , 북벽 등반 성공 > 산장의 방명록에 펼쳐진
싸인이 춤을 추듯 즐거웠다. 각자 책속에서 보아왔던 위대한 등산가의 필적을 흉내내며
멋지게 싸인을 했다. 훼른리 능선은 , 능선 자체가 워낙 크고 경사가 급해 길을 잃어
버리기 쉬운 곳이어서 , 가이드가 따라야 했다. 때문에 스위스 가이드들의 최대의 수입은
바로 이 마터호른 등반이였는데, 만일 돈을 지불한 자기 손님외에 다른 사람이 가이드
뒤를 쫒아오면 , 화를 내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이 그토록 아끼는 마터호른은 수많은
낙석으로 조금씩 부서져 나가고 있지 않나 , 생각 되었다 .
긴장이 풀리자 낙석이 준 고통이 슬며시 살아나 , 아픔으로 온몸이 부서지고 찢기는 듯이
괴로웠다. 이곳으로 신혼여행을 오겠다고 했었는데 아마 모르긴 해도 , 신혼여행이 아니라
이혼여행 내지는 , 죽음의 여행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혼자 피식 웃고 말았다.
사실 그토록 심한 낙석에 전원이 살아 나왔다는 것은 , 믿기지 않는 사실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서울에서 인수봉 암벽 등반중에도 자주 다급한 외마디 소리를 듣긴 하지만 , 그
낙석에 맞아 사고가 나는 것은 보지 못했었다. 다섯 명 중, 네 명이 낙석에 심하게
두들겨 맞아 , 부상을 입었다는 것은 , 그만큼 낙석의 규모가 컸었다는 것을 짐작 할 수
있을 것이다 .
드디어 산장이 가까워지며 , 암벽이 끝나는 평평한 능선에 베이스의 대원
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것이 보이면서, 점점 다리 힘이 빠져 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언젠가 극도로 추웠던 겨울, 한규와 잦은 바위골 빙벽등반을 마치고 , 공룡능선의
베이스로 갈 때와 같은 , 그런 기분 속으로 빠져 들었다.
대장의 환한 얼굴이 점점 , 확대되더니 , 우리는 어느 새 , 그의 넓고 따듯한 가슴속에
묻혀 있었다. 푸근한 이 가슴, 엄마의 품속에 안긴 아기처럼 , 나는 한없는 편안함을
느꼈다. 환호와 박수 , 외침의 소용돌이가 귓전에 열화같이 끓어 올랐다. 상기 형이
열심히 무비카메라를 돌리고, 동성 형은 마이크와 녹음기를 들고 , 우리들 사이를 분주히
뛰어 다니고 있었고 , 준교 형은 조용하고 차분하게 셔터를 누르고 있었다 . 모두 정다운
얼굴들, 그들의 극성스런 환영에 피곤은 어디론가 도망가 버렸다 .
택현 형이 서울로 , 승전고의 기사를 , 좀더 빨리 보내기 위해 젤마트에서 파리와 연결 중
이였다. 잠시 후면 , 아니 지금쯤 이면 한국에서 이 소식을 듣고 기뼈 하리라 ! . 부모님께서
기뼈하실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뿌듯해 오며 , 군대에서 100킬로미터의 도보행군을 끝내고
부대로 돌아올 때의 , 부르튼 발과 몸을 휘감고 있던 따가운 위장풀의 지친 몸에 , 군악대의
경쾌한 행진곡이 들리면 , 어느 새 피곤함을 잊어 버렸던 일이 생각났다 .
과일 통조림을 두 개나 먹어치워 버렸다. 내려오면서부터 , 과일생각이 간절했는데 상기 형이
싱그럽고 맛있는 통조림을 우리에게 먹이기 위해 , 아침에 젤마트에서 부터 지고 올라
왔다고 하니, 형의 성의에 더욱 맛이 더한 것 같았다. 이 순간처럼 우리보다 더 행복한
사람은 아마도 없었울 것이다 .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돌아온 자와 그들의 귀환을 애타게
기다린 자만의 특권처럼 우리는 알프스의 골짜기 마다 , 골골이 울리도록 떠들어 대었고
주위의 외국인들도 축하를 아끼지 않았다 . 죽음의 북벽에서는 생각도 못했던 이 기쁨 !
저녁 먹기 전에 , 차를 한잔 하려고 코펠을 닦는데 , < 여기서는 세척이 금지되어 있는데요 >
하고 종업원이 내게 말했다. 그때 < 꼬레아 ? 클라임드 노우스 페이스 ? > 하는 소리가
등뒤에서 들려 왔다.
내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리자 그는 난데없이 내게 달려들어 키스를 퍼부었다. 수염이 듬성
듬성 나 있어, 따가왔지만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우고 , 계속 축하해
주는 그들의 순수한 마음, 그것은 국경도 인종도 초월한 산악인들만의 따스한 마음
같았다. 주인은 손수 뜨거운 물과 세척기를 가져다 주었고 , 간밤의 천둥과 번개를 손짓
발짓으로 흉내내며 살아나온 것에 대한 놀라움을 거듭거듭 나타내었다 .
저녁에는 산장 특식이 나오고 , 붉은 포도주가 나왔으며 , 콜라를 시켰더니 , 콜라켄에
< 즐기자 코카콜라 > 라고 한글이 선명하게 적혀 있는 것이 보였다 . 우리를 진심으로
축하해 주며 , 같이 즐겨주는 그들의 여유가 가슴 깊숙이 느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