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암 고영화 생일
2023년 5월 1일 오전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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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영동군 백화산 심산유곡 천년고찰 반야사(般若寺) 한시(漢詩). 2편> 고영화(高永和) --앞글에 이어--
● 다음 ‘眞’ 운(韻)의 오언율시 <숙반야사(宿般若寺)>는 경북 문경 출신 조선후기 성리학자 입재(立齋) 정종로(鄭宗魯 1738~1816)의 작품이다. 저자는 해질녘에 반야사에 이르러 하룻밤 묵게 된다. 사찰 옆에 푸른 시내가 있고 달빛에 바람에 흔들리는 회나무 그림자가 체질한다. 부처의 감실에는 향기 가득하고 상서로운 빛이 산뜻하다. 밤새도록 이야기가 끊이질 않는데 이미 산천은 가을이 완연하여 기러기가 날아든다.
4) 반야사에 묵으며[宿般若寺] / 정종로(鄭宗魯 1738~1816)
暮投般若寺 저녁에 반야사에 투숙하니
寺在碧溪濱 사찰이 푸른 시냇가에 있네.
月檜風篩影 달빛에 회나무 그림자 바람이 체질하고
秋山雨洗塵 가을 산의 먼지 비가 내려 씻었네.
佛龕香氣滿 부처 감실에는 향기가 가득하고
御筆瑞光新 임금의 글씨에는 상서로운 빛 새롭네.
夜話竆朝旭 밤의 대화를 아침 해가 뜰 때까지 하니
平沙鴈已賓 평사에는 기러기가 이미 날아와 있네.
어필은 곧 선조(宣祖)의 글씨이다.(御筆卽宣廟筆也)
[주1] 반야사(般若寺) : 충북 영동군 황간현(黃澗縣) 백화산(白華山) 자락에 있다. 신라 문성왕 13년(851) 무염국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주2] 불감(佛龕) : 불상을 모셔 두는 집 모양으로 된 장. 부처와 보살(菩薩) 등(等)을 안치(安置)하는 주자(廚子)
[주3] 어필(御筆) : 본디 조선 세조의 글씨인데 여기 기록에는 선조의 글로 표기되어 있다. 반야사에 간 세조에게 문수동자(文殊童子)가 따라오라 하면서 절 뒤쪽 계곡인 망경대(望景臺) 영천(靈泉)으로 인도하여 목욕할 것을 권하였다. 동자는 “왕의 불심(佛心)이 갸륵하여 부처님의 자비가 따른다.”는 말을 남기고 사자를 타고 사라졌다 한다. 세조는 황홀한 기분으로 절에 돌아와서 어필(御筆)을 하사하였는데 지금까지도 보관되어 있다.
● 다음 ‘侵’ 운(韻)의 칠언절구 <반야사 판상 운에 차하다(次般若寺板上韻)>는 조선전기 문신 경북 예천출신 별동(別洞) 윤상(尹祥 1373~1455)의 작품이다. 강가 절벽 사잇길로 나귀 타고 깊은 산중으로 들어가니 흥취 거나하다. 마침내 도착한 반야사 정원에는 잣나무 몇 그루가 서 있다. 모든 은자(隱者)들의 선(禪)은 볼 수는 있어도 손으로 잡을 수 없는, 물에 비친 달의 마음일 것이다.
5) 반야사 판상 운에 차하다[次般若寺板上韻] / 윤상(尹祥 1373~1455)
路入懸崖境轉深 낭떠러지 사잇길로 들어가니 땅은 더욱 깊어지고
興餘驢背放淸吟 흥취 거나해 나귀 등에서 맘대로 맑은 시를 읊조리네.
靑靑數箇庭前柏 푸르디푸른 몇 그루의 잣나무가 정원 앞에 서 있는데
應是諸禪水月心 응당 모든 선(禪)은 물에 비친 달의 마음이라지.
[주1] 선(禪) : 마음을 가다듬고 정신을 통일하여 번뇌(煩惱)를 끊고 진리(眞理)를 깊이 생각하여 무아 정적(無我靜寂)의 경지(境地)에 몰입(沒入)하는 일. 선종(禪宗). 좌선(坐禪). 선학(禪學)
[주2] 수월심(水月心) : 수월관음(水月觀音), 물에 비친 달을 내려다보는 형상의 관음보살. 수월관음은 물가의 기암괴석 위에 유희좌(遊戱坐)라고 불리는 편한 자세로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는 모습의 관음을 말한다. 관음의 등 뒤로 달처럼 크고 둥근 광배가 있고, 관음은 발아래 물과 선재동자를 굽어보는 형상이기 때문에 마치 물에 비친 달을 보는듯하다는 의미이다. 여기 수월심은 관음의 자태를 문학적으로 비유한 것이다. 또는 볼 수는 있어도 손으로 잡을 수 없는 마음을 비유한 말.
● 다음 ‘魚’ 운(韻)의 오언율시(五言律詩) <반야사 판상 운에 차하다(次般若寺板上韻)>는 경북 예천출신 조선전기 문신 별동(別洞) 윤상(尹祥 1373~1455)의 작품이다. 그가 반야사를 방문하여 여러 판상시(板上詩)를 보고 그 중에 ‘魚’ 자(字) 운(韻)을 차운하였다. 이 율시는 전반부에서 반야사의 자연 경관이나 사물에 대한 묘사를 먼저하고 후반부에 자기의 감정이나 정서를 그려 내는 선경후정(先景後情)의 방식을 채택했다. ‘새벽녘에 도착한 사찰에는 눈이 살짝 내리고 물가 나무에는 찬 안개가 어렸다. 불법에 이르길, 형체가 있다하여 본래부터 실재한 건 아니고 실상이 없다 해도 근본은 있는 것이니 일체(一切)의 번뇌를 해탈한 최고의 경지를 이루어야 한다는 무생법(無生法)을 일러 주고 있다.
6) 반야사 판상 운에 차하다[次般若寺板上韻] / 윤상(尹祥 1373~1455)
爲愛山中靜 산중의 고요함을 좋아해
凌晨訪古廬 새벽녘에 옛 집(사찰)을 찾았다.
巖亭微雪灑 바위 가 정자에는 눈이 살짝 내리고
潭樹冷煙疏 못 가의 나무에는 찬 안개 성기네.
有象元非實 형체가 있다하여 본래부터 실재하는 건 아니고
無生本自虛 실상이 없다하니 근본을 스스로 비워야 한다네.
應嫌塵世客 티끌세상 나그네라고 무조건 싫어하진 말라.
泚筆强留書 붓에 먹을 묻혀 억지로 편지를 남기노니.
[주] 무생(無生) : 모든 사물과 현상이 공이므로 생기고 사라짐의 변화란 있을 수 없음. 모든 법(法)의 실상(實相)은 나고 없어짐이 없다는 뜻.
● 다음 ‘眞’ 운(韻)의 <반야사 차주인운(般若寺次主人韻)>은 조선전기 문신 금계(錦溪) 황준량(黃俊良 1517~1563)의 오언율시이다. 반야사 스님의 시에 차운하여 이 시를 지었다. 사찰을 신선의 누각에, 스님을 신선에 비유하여 아름다운 노을 속의 반야사를 표현했다. 저자도 속세를 떠나 자신의 본성을 찾기를 희망하며 마무리했다.
7) 반야사에서 주인의 운에 차운하다[般若寺次主人韻] / 황준량(黃俊良 1517~1563)
夜醉仙樓月 밤에는 신선의 누각에서 달에 취하고
朝尋古寺春 아침에 옛 절에서 봄을 찾네.
瑤岑元逈俗 옥빛 뫼는 원래 속세에서 멀찍하고
石澗不生塵 계곡물엔 티끌이 생기지 않네.
結夏眠雲衲 결제에 들어 하안거하는 스님은 조는데
棲霞想羽人 노을에 깃들어 우인(羽人)을 생각하네.
何緣置茅宇 어찌하면 초가집을 지어
林壑養吾眞 골짜기에서 나의 본성을 찾을까
[주1] 하안거(夏安居)하는 스님 : 결하하는 승려라는 뜻이다. 결하는 비구들이 음력 4월 보름부터 3개월 동안 사찰 밖으로 나가지 않고 한곳에 머물면서 정진 수행하는 기간을 말하는 것으로, 하안거 또는 우안거(雨安居)라고도 한다.
[주2] 우인(羽人) : 신선을 달리 이르는 말인데, 우객(羽客)이라고도 한다. 《초사》 〈원유(遠遊)〉에 “단구로 우인에게 나아감이여, 죽지 않는 고장에 머무르련다.〔仍羽人於丹丘兮 留不死之舊鄕〕”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 다음 ‘陽’ 운(韻)의 칠언절구 <증반야사승(贈般若寺僧)>는 조선전기 문신 백록(白麓) 신응시(辛應時 1532~1585)의 작품이다. 반야사 강 위의 위태로운 봉우리에 대숲 속에 선방(禪房)이 있고 맑은 풍경소리가 창망하게 골짝에 울려 퍼진다. 고고한 늙은 승려가 작은 배를 타고 바삐 가는 속인을 보며 미소를 지으며 앉아 있다.
8) 반야사 승려에게 주다[贈般若寺僧] / 신응시(辛應時 1532~1585)
江上危峯掛竹房 강 위의 위태로운 봉우리에 대숲 선방(禪房)이 있고
半空淸磬墮蒼茫 허공에 울리는 맑은 풍경소리가 창망하게 퍼져가네.
窓間老宿心無事 창문 사이 노숙(老宿)한 승려가 마음 둘 일 없는데
應笑舟行有底忙 배를 타고 저리 바삐 가는걸 보면서 웃고 앉았네.
[주] 노숙(老宿) : 학식이 높고 견문이 넓은 사람. 불도(佛道)에 지식이 많은 승려
--이어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