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자매미용인)
“자매가 미용을 함께해서 행복합니다”
홍성에서 미용하는 정상은, 상희 원장
-자매 원장님 소개를 부탁합니다.
언니: 충남 홍성군 광천읍에 위치한 시골마을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자매 미용사입니다.
언니 정상은 나이 57살 미용경력은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미용 시작했으니 37년 경력에 지금 이 자리에서 미용실 개업한 게 1989년도이니 32년째입니다.
동생: 저는 누구보다 미용을 천직으로 여기며 미용을 사랑하고 살아가는 경력 28년차 정상희입니다.
-미용은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언니: 제가 아주 어릴 때 아버님이 불광동에서 이발소를 하시다가 시골의 할아버지 과수원을 물려받으시느라 이발소를 접고 내려오셨는데 어릴 적 제 머리를 아버지가 깎아주셨어요.
집에 이발도구가 있어서 겁 없이 동생머리 언니머리 옆집 언니친구 머리까지 잘라주었지요. 제가 초등학교 5학년쯤부터요. 중학교 때는 아예 반회비로 미용가위를 사놓고 반 친구들 머리를 잘라줬어요.
고등학교 때 친한 친구 언니가 제법 큰 미용실 원장님이셨는데 가끔 놀러 가면 눈썰미 있고 몸이 빠르다며 무조건 미용사감이라고 부추겼죠.
그래서 졸업과 동시에 천안의 친구 언니 미용실에 선 취업해서 일을 배우던 중 동료 디자이너 언니의 제안으로 서울 명동의 미용실까지 진출하게 되었어요. 그 당시 원장님은 중앙회 기술강사 1기분이셨고, 저를 선택해서 서울로 데리고 간 언니도 지금 중앙회강사하시는 분이십니다. 이런 좋은 기술의 원장님과 언니 밑에서 기술연마를 하고 실력을 쌓아 마침내 이곳에서 미용실을 개업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홍성군지부에서 임원 및 부지부장자리를 맡아서 봉사도 했고 지금은 고문으로서 지부에 적극협조하며 지냅니다.
치매병동과 정신과병동에 동생과 함께 미용봉사를 한 지도 20년이 넘게 해왔으나 작년 코로나 19로 잠정적 봉사 중단상태입니다.
서해미용연구회라는 스터디그룹도 동생과 같이 합류하여 평생 공부를 목표로 20년 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동생: 처음부터 미용을 시작한 건 아니었습니다. 직장을 다니던 중 여자로써 직무에 한계를 느끼게 되어 점심시간과 퇴근 후 시간을 짬짬이 내어 피부관리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미용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물론 먼저 미용인의 길을 걷고 있었던 언니의 영향으로 좀 더 미용이라는 직업이 저에게 쉽게 다가온 것도 있었지요. 그 후 미용사 메이크업 아티스트 발관리 두피전문가 등등의 자격증을 취득하며 전방위적인 미용인으로 영역을 확장해 나아갔습니다. 요즈음에는 전부터 관심을 가지고 공부해왔던 가발영역에도 도전하고 있습니다.
또한 꾸준히 미용대회도 도전하여 충청남도대회와 전국미용대회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며 기술을 발전 시켜왔습니다. 그리고 미용협회의 임원으로 이십여 년 간 지역미용 발전에 보탬이 되고자 노력해 왔습니다.
제가 미용을 하는 한 끝없이 배우고 탐구하여 고여있 지 않은 물이 되는 것이 저의 소망입니다.
-활동을 많이들 하고 계신데 미용실 소개와 자랑을 하신다면.
언니: 1989년에 개업하여 이 자리에서 32년째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직원들이 많을 땐 네 명까지 같이 일을 했었는데 급격한 시골화로 2년 전부터 혼자 일하고 있습니다.
한자리에서 30년이 넘게 일을 하고 있으니 손님들도 30년이 넘은 단골고객이 많아서 일하는데 어려움 같은 건 없이 서로서로 잘해주고 편리 봐주고 가족 같은 손님들이 대부분입니다.
항상 새로운 것 배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호기심이 가득하여 먼길 마다않고 어디가 되었든 배우려고 낮밤 가리지 않고 동생과 함께 다닙니다.
동생: 우솔헤어스케치에는 특이한 점이 있는데 그것은 작은 시골에 있는 관계로 젊은층은 거의 없고 손님층도 노령화되면서 매출에 크게 어려움이 있었는데 주변에 공장과 농장 등지에 외국인 노동자들이 최근 몇 년 사이에 빠른 속도로 늘어나면서 손님 층이 아주 다양한 나라에서 온 노동자들로 채워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양한 나라와 인종이 젊은층이 빠져나간 자리를 메우고 전체 매출의 반을 차지해 버렸습니다.
오랫동안 미용을 하면서 다방면의 공부를 폭 넓히며 해온 성과가 다양한 손님 층을 무리 없이 소화해 낼 수 있는 지금이 되었습니다. 스스럼없이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과 일을 하면서 그들이 친숙하게 다가올 수 있는 미용실 그리고 그들의 소소한 일도 의논 상대가 되어주는 미용실이 되었습니다.
-미용계 활동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언니: 사람을 좋아하고 머리하는 걸 재미있어 해서 일이 참 즐겁습니다.
지부일, 봉사활동, 손님 머리해주는 일 등이 모두 힘들지만 하루만족도가 항상 높게 살아갑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다니던 단골 꼬맹이가 시집가서 두 딸을 데리고 머리를 하러옵니다. 강남부자동네에서 사는데 딸내미 친구 엄마들이 아이 머리 예쁘다고 강남에서 단체로 머릴하러 애들을 데리고 온다고 합니다.(웃음) 펜션 잡아놓고 휴가 겸 머리하러 온데요.
동생: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20여 년 동안 정신병동으로 미용봉사를 다닌 것입니다. 단지 미용을 하는 것 외에 일반 환자들과는 다르게 특수한 상황에 계신 환자들과의 교감으로 좀더 치료에 도움이 되고 오히려 그분들과의 대화에서 나 자신의 자아성찰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 후 퇴원해서 찾아오는 분들도 계셨는데 매우 보람되고 행복한 기억입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언니:특별한 계획은 따로 없습니다. 오늘 하루 보람 있게 손님 맞으며 지냈듯이 미용은 정년이 없습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쭈우욱~~!!
혼자 가면 빨리 갈 수 있지만 둘이가면 멀리 갈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모든 미용활동과 봉사 활동 교육을 같이 받고 다니기에 평생 친구를 만들어준 부모님께 항상 감사하는 마음 잃지 않고 있습니다.
오랜 미용생활로 골격계가 특히 좋지 않아서 6년 전 동네 정형외과 의사선생님께서 진지하게 척추뼈 두 마디를 임플란트하라는 허리수술을 권유받았습니다. 다행히 대학병원 의사선생님의 의견은 신경주사 맞으면서 운동하라는 처방을 받고 바로 그때부터 수영을 시작하여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작년 건강정기검진 때 골밀도 측정치가 젊은 사람 허리라는 결과가 나왔더라구요.
6년 전쯤 바이올린도 배우기 시작하여 시골 '천북들꽃오케스트라'단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지역의 행사나 연주회 등 참여함으로 지역 주민들과 관계도 자연스럽게 친교할 수 있어서 시골살이가 그저 즐겁기만 하답니다.
건강하게 오래토록 미용실 운영을 하기 위해 운동하고 취미생활로 마음건강하게 살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고 봅니다. 이마저도 동생과 함께 하길 원합니다. 사정상 잠시 중단하고 있는 동생, 어서 복귀하길 고대하고 있습니다.
동생: 그동안 해왔던 여러 미용분야 중 탈모와 관련된 두피관리시장을 좀 더 확장하고 더불어 가발을 함께 하면서 빈공간이 없이 탈모인의 마음을 아우를 수 있는 분야에 좀 더 기울여 보고 싶습니다. 오랜 시간 공들여 준비한 만큼 두피 탈모인에게 많은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미용인으로 언니를 따라 시작한지 벌써 28년, 미용인으로 살아온 것은 내 삶에 전부라 할만합니다.
미용을 하면서 얻은 자부심과 미용을 통한 베품을 통해 함께 성장하면서 나이를 먹고 있습니다. 저는 미용실에서 손님을 받을 때 제일 행복합니다. 누군가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이 일을 할 때면 저도 함께 행복해집니다.
<뷰티라이프> 2021년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