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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미쳤구나 /사도행전 26:24~29
여러분,「진품명품」이라는 T.V. 프로를 보신일이 있습니까? 집에 오랫동안 걸려있던 그림이나 보관하고 있던 도자기 등을 가지고 나왔다가 수억을 홋가하는 감정을 받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조상을 잘 만나 복이 터졌구나! 라고 부러워했던 적이 있습니다. 때로는 그것이 가짜임이 밝혀져 쓰레기 값으로 취급되기도 합니다.
저는 어린 시절 교직생활 하던 부친을 따라 시골에서 초등학교를 다닌 적이 있는데 수업도중 건너편 산언덕에서 아주 번쩍이며 빛을 발하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분명 저기에 금이나 어떤 보석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그곳까지 달려갔다가 보석은커녕, 아무것도 찾지 못하고 깨어진 유리조각만 나뒹구는 것을 보고 돌아와 수업시간에 늦어 선생님께 혼났던 기억이 납니다. 완전히 속았습니다. 공산당은 당원의 성분을 나눌 때 토마토 공산당원, 사과 공산당원, 수박 공산당원으로 분류한다고 합니다. 안과 밖이 다 빨간 공산당원은 토마토 당원이며 겉은 빨간데 벗겨보면 하얀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가짜 공산당원입니다. 서구사회나 대한민국 안에도 겉은 파란데 속이 빨간 공산당이 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신앙인 중에도 진품명품이 있고 가짜가 있을 수 있습니다. 토마토 신앙인이 있고 사과 신앙인이 있을 수 있지 않습니까? 오늘 본문에 “네가 미쳤도다.”하는 말이 나옵니다. 이 말은 총독 베스도가 사도 바울에게 한 말입니다. 우리나라 초대교회 시절 최 권능 목사란 분이 있었습니다. 최 권능 목사님은 일본 순사가 발로 밟아도 비명 대신 예수 천당을 외쳤다고 합니다. “내 속엔 예수 천당으로 꽉 차 있어서 밟으면 예수천당이 터져 나온다”고 했습니다. 이게 토마토 신앙인이지요. 베스도 총독이 볼 때 사도바울은 분명 예수와 복음전도에 미친 사람이었습니다. 사실 이 말은 비난하기 위한 말이었지만 바울에게 있어 이 말은 결코 불명예스런 말이 아니었습니다. 자랑스럽고도 영광스런 말이었습니다. 이왕 예수를 믿을 바에야 예수에게 미쳐봐야 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미치도록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어찌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낼 수 있었겠으며 어찌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일 수 있었겠습니까? 그럴듯한 일을 미치도록 좋아해서 거기에 전적으로 몰두한다는 건 어쩌면 근사한 일입니다. 그것을 위해서라면 희생도 기쁨이요 생명까지도 아깝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플라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 중에 주님을 미치도록 사랑하는 것은 좋은 것 중에서도 가장 좋은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사실 인류 역사는 자기 일에 미쳐버린 사람들이 이룬 업적과 성취에 의해 발전해 온 발자국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금 한국교회의 위기는 예수에 미친 사람, 복음전도에 미친 사람, 교회 사랑에 미친 사람이 사라진 것입니다. 반대로 세상에 미친사람, 돈과 일에 미친사람, 쓸데없는 일에 미친사람, 반기독교, 반교회 운동에 미친 사람이 많아진 것이 위기입니다.
미국 외교관들이 들어가지 못하는 나라 깊숙이까지 파고 들어가는 미국 기업이 하나있습니다. 유럽 선진제국은 물론 공산권이나, 저개발 국가들 심지어 원수의 나라에까지 들어가는 코카콜라입니다. 코카콜라 판매에 미쳐버린 사장은“내 혈관 속엔 피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코카콜라가 흐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통하는 음료의 세계공통어, 코카-콜라! 1886년 조지아주 에틀랜타에서 존 펨버튼 (John-Pemberton) 박사가 처음 개발해낸 코카-콜라는 전 세계적으로 하루 평균 10억 잔 (250ml 캔 기준) 이상 팔리고 있는 청량음료입니다. 코카-콜라를 생각하면 생각나는 색은 누가 뭐라 해도 빨간색입니다.
모택동은“공산주의자는 꿈을 꾸어도 공산주의 꿈을 꾸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나라에 복음이 전해진 것도 어느 듯 100여 년 전, 복음을 전하는 일에 미쳤던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1907년 평양을 중심으로 성령의 폭발을 경험했던 한국교회는 곧이어 전도 열정, 구령의 열정으로 나타났습니다. 사도행전의 역사는 누구든지 성령의 능력을 받으면 모두다 증인이 되어 살아갔음을 보여줍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의 충만은 수없는 예수에 미친 사람들을 만들어내었습니다. 당시 한국 땅에 와 있던 모든 선교사들은 너도나도 복음에 미친 사람들이었습니다. 미친 듯이 복음을 전하는 그들을 보고 한국 성도들 또한 예수 전도에 미쳐버렸습니다. 처음부터 선교란 영혼구원에 대해 미치지 않고서는 전혀 불가능한 일이지요. 세계 선교는 예수에 미친 사람들이 만들어낸 거룩한 사건들입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베스도 총독과 아그랍바 왕 앞에서 재판을 받는 장면입니다. 지금이야말로 로마 시민권을 가진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자신의 죄 없음을 증명하고 석방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자신의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재판이 잘못 진행되면 자신의 생명조차 보장받을 수 없는 바로 그런 순간입니다. 그런데 이 어찌된 일입니까? 바울은 지금 자신의 무죄를 변론하거나 변명을 늘어놓으려고 하지 않습니다.「어쩌면 저들 앞에 내가 설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순간 가장 긴급한 일이 무엇인가? 복음을 전하는 일이다. 예수를 전하는 일이다. 내가 석방되느냐 더 갇혀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내가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가 아니다.」그래서 바울은 담대하게 분명하게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예수님은 누구신가? 나는 어떻게 예수님을 만났는가? 내가 어찌하여 이 복음을 전하고 있는가? 복음이 무엇인가? 또박 또박 저들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바울의 태도가 이해될 리 없습니다. 그래서 총독이 말합니다.“바울아 네가 미쳤구나. 너의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했구나”“바울이 이르되 베스도 각하여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하나이다”바울만 미쳤다는 소리를 들은 게 아닙니다. 예수님도 미쳤다는 소리를 들어야만 했습니다. “그가 귀신들려 미쳤거늘 어찌 그 말을 듣느냐?”(요10:20).“예수의 친구들이 듣고 그를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막3:21). 마태복음 10:25-26에서는 예수님을 따르고 전하는 제자들도 미쳤다는 말을 들을 것이라고 주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너희를 미쳤다고 몰아세우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자신을 미쳤다고 안타까와하는 그들을 향해 바울이 뭐라고 말합니까?“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행26:29)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선생이 지금 우리 곁에 계시다면 저도 한번 여쭤보고 싶습니다.“바울선생님 무엇이 당신을 그토록 미치게 만들었습니까?”바울선생이 대답합니다.「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미쳤답니다. 나는 일찍이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 죽이러 미쳐 날뛰던 사람이었소. 그런 죄인의 괴수와도 같은 나를 용서하시고 받아 주시지 않았습니까? 버림받은 나의 인생을 사랑의 손으로 붙들어 복음 전도자가 되게 하시고 사도가 되게 하시지 않았습니까? 나는 예수 사랑에 미쳐버렸소. 내 머리는 오직 예수 생각으로 가득 찼고, 내 가슴은 예수의 피로 흘러넘치고 내 눈엔 오직 예수만 보인 답니다. 그래서 입을 열면 예수가 터져 나온답니다. 나는 예수 사랑에 미친 사람이랍니다.」“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고후5:13)
다시 사도 바울 선생님께 묻습니다. “정히 그러시다면 좀 쉬어가면서도 하시고 편한 곳을 찾아서 전도를 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무엇이 당신을 밤도 없이 낮도 없이, 죽음도 당신을 막지 못하고 이토록 미쳐 전도하게 하십니까?” 바울 선생님은 또 대답합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 묻은 복음에 미쳤습니다. 나는 한때 유대교에 미치고 율법에 미쳐 본적이 있지요. 그러나 율법은 사람을 가두고 사람을 정죄하고 사람을 죽였지만. 복음은 믿는 모든 자를 구원하고 자유하게 한답니다. 이런 복음의 능력을 알고서도 어찌 미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복음을 전하기만 하면 지옥이 천국으로 바뀌고 죽음이 영생으로 바뀌며. 버림받은 땅이 영광의 땅으로 바뀌고 저주가 축복으로 바뀐답니다. 이러한 능력을 안다면 어찌 복음에 미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나는 예수 복음에 미친 사람이랍니다.」“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롬1:16) 바울 선생님께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물어보고 싶습니다. “우리가 하루 이틀 한 두 번은 미쳐서 살 수 있지만 어찌 당신처럼 평생을 미쳐서 복음을 전할 수 있단 말입니까?”바울 선생님은 대답하십니다. 「나는 성령에 미쳤기 때문이랍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성령으로 충만해져 있을 때 사람들은 그들을 보고 술에 취했다. 미쳤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성령에 취하고 성령에 미치면 어린이도 젊은이도 장년도 노인도, 밤에도 낮에도, 집에 있으나 밖에 있으나, 낮은 자리에서도 높은 자리에서도 미친 듯이 기뻐할 수 있고 미친 듯이 사랑할 수 있고 미친 듯이 복음을 전하고 예수를 전하는 예수쟁이가 된답니다. 건강한 신앙인이란 나처럼 미칠 곳을 찾아 제대로 미치는 것이랍니다. 나는 성령에 미쳤기 때문이라오.」
여러분, 미친 사람을 본적이 있습니까? 정상적인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미친 사람의 힘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에게 미치면 평상시에 낼 수 없는 무한한 힘이 쏟아져 나옵니다. 사도행전 24장 5절에 見,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전염병 같은 자라 천하에 흩어진 유대인을 다 소요하게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변호사 더둘로는 사도 바울을 향해‘염병’에 걸렸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염병은 당시 무섭게 유행하던 전염병 페스트를 말합니다. 사실은 바울을 혹평하기 위해 내뱉은 말이지만 한편 예수에게 미쳤던 바울의 힘, 복음의 능력을 적절히 표현하고 있는 말이기도 합니다. 사실 염병은 무서운 세력으로 전염이 됩니다. 삽시간에 온 동네를 휩쓸고 전염이 됩니다. 사도 바울의 능력이 그랬습니다. 사도 바울이 전한 예수의 피 묻은 복음은 염병처럼 아시아에 번져 갔습니다. 유럽에 영적인 불을 붙여놓았습니다. 염병에 걸리면 죽습니다. 복음을 듣는 순간 수많은 사람들의 육이 죽고 그들의 죄악이 죽고 그들의 세상 정욕이 죽었습니다. 사단이 두려워 떨게 된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똑바로 미친 그런 목회자들을 필요로 합니다. 예수의 사랑에 포로가 되어서 가슴에 불을 간직한 성도들을 필요로 합니다. 이처럼 뜨거운 열정에 불타는 목회자, 눈물과 감격의 성도가 필요합니다. 울 줄도 모르고 웃을 줄도 모르고 헌신도 모르는, 감격도 열정도 없는 싸늘한 믿음을 가지고서는 어떤 변화도 일으킬 수 없습니다.“바울아 너의 학문이 너를 미치게 했구나. 목사야! 집사야! 성도야 너 예수에게 미쳤구나.” 복음을 전하는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미쳤다고 손가락질하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와야 합니다. 건강한 교회엔 그리스도의 사역에 미친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 이 땅의 수많은 교인들이 힘을 잃어버린 것은 진정한 예수쟁이, 뜨거운 믿음의 신앙을 가진 예수 믿는 자들이 없기 때문입니다. 참된 예수쟁이들이 살아나야 진리가 살고 정의가 살고 복음이 살고 교회가 살아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사도행전 이후 지난 2000년 동안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역사하는 곳마다 진정한 화개와 뜨거운 열정을 가진 예수 마니아, 복음의 사람들이 불같이 일어났습니다. 100년전 이 땅에서도 회개운동, 부흥운동에 이어 구령운동 복음전도 운동이 한반도를 뜨겁게 달구었습니다. 수 없는 예수쟁이들을 만들어 냈습니다. 때는 침몰하는 배처럼 국운이 기울어가던 어둡고도 암울한 때였습니다. 한반도 전역을 휩쓸며 성도들의 가슴에 뜨거운 불을 지폈던 1907년 평양 대 부흥 운동! 그 불길이 일어날 때에 한국 교회 안에서는 100만 구령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오직 민족 복음화만이 꺼져가는 나라의 운명을 살릴 수 있고 백성들의 꿈을 꺽지않을 수 있다고 한국교회는 믿었습니다. 이 무렵 새벽기도 운동, 금식기도 운동, 산기도 운동들이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이곳저곳에서 기도로 일어선 사람들은 전도지를 들고 거리로 마을로 미친 듯이 뛰어 나갔습니다. 드디어 1909년 장로교와 감리교 연합교회에서 100만 구령운동을 선포하고 교회들마다 “금년 100만명”이란 구호를 일제히 외쳐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구령운동이 오늘, 함양 산골 상내백 교회에서부터 새롭게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함께한 우리 모두에게 성령의 충만함이 갑절로 넘쳐나기를 축원합니다.
그 당시 한국 땅에 와 있던 선교사들은 하나같이 오늘 복음을 전하고 내일 죽을 사람들처럼 몸서리치는 추위와 더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전도에 미쳐 있었습니다. 과연 그들은 복음 전도자들이었습니다. ① 언더우드 선교사는 전도 하다가 얼굴을 못 알아볼 정도로 온 몸이 부어 죽을 날을 기다리던 젊은이를 위해 3일을 금식기도하며 복음을 전하고 기도함으로 온 가족을 구원하였습니다. ② 알렌 선교사는 그의 부흥운동이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기적적으로 고치는 능력사역으로 확장되었다고 합니다. ③ 대구에서 활동하던 아담스 선교사는 본국에 보낸 편지 중에서 “나는 올해 단 하루도 쉬지 못했다. 최근 나는 하루에 한 교회를 세우고 있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④ 탁월한 한국어 실력으로 사랑을 받던 젼킨(Junkin) 선교사는 추운 겨울 자신의 몸을 돌보지 못하고 이 마을 저 마을 뛰어다니다가 급성 폐렴에 걸려 죽었습니다. ⑤ 클랙 선교사와 시릴로스 선교사는 어린 자녀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해 어린 아이들을 먼저 하나님 곁으로 보냈습니다. ⑥ 게일 선교사는 아내의 죽음 앞에 슬퍼할 겨를도 없이 성장하는 교회들을 돌아보기 위해 뛰어다녔습니다. ⑦ 의료선교사 월리엄 홀 박사를 먼저 천국에 보낸 29살 로제타 홀 사모는 젖먹이 어린 아이와 함께 본국에 돌아갔다 다시 선교사로 파송 받아 한국에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평양 땅에 여성병원을 세워 밤낮 미친 듯이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⑧ 서울 마포구 합정동 양화진에는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선교사들의 무덤으로 가득합니다. 이는 선교사들만이 아니었습니다. 교회들마다 주일을 준비하기 위해 토요 기도회가 열렸고 기도회 후에는 둘씩 짝을 지어 전도지를 들고 온 마을 마을을 누볐습니다. 가난해서 맘껏 전도헌금을 할 수 없던 교인들은 자신의 몸과 시간을 연보했습니다. 이것을 날 연보라고 합니다. 하루 온종일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이 무렵 날 연보로 전도에 헌신된 시간이 총 10만 여일이 넘었다고 합니다. 이를 해로 계산하면 약 300년이 되는 해입니다. 같은 해에 마가복음 쪽 복음이 100만 권이나 팔렸고 전도지가 300만장이나 나누어졌다고 합니다.
이 때 백만인 구령운동은 어른들만의 열심이 아니었습니다. 대학교와 중고등학교 초등학생들도 구령의 열정에 불타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7살 난 작은 어린아이들도 용돈을 모아 가지고 와 전도지와 복음서를 사갔습니다. 그들은 이것들을 들고 거리로 나가 전도했습니다. 그들은 눈물을 흘리며 예수 이야기를 전하였습니다. 그들은 개개인에게 가서 그들의 팔을 붙잡고 구주 예수를 영접하라고 간청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한국교회가 이 땅에 이처럼 번창한 모습으로 우뚝 서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예수에 미친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수많은 선교사들의 순교의 피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저들이 만약 예수 복음을 나의 평안과 위로, 내 가정의 안일과 축복만을 위해 존재하는 미신적 종교로 받아 들여졌다면, 오늘의 한국교회는 존재하지 아니했을 것입니다. 만약 저들이 복음과 예수를 위해 당당히 피 흘리는 일을 주저했더라면 오늘 한국교회는 이처럼 굳건히 서 있지 못했을 것입니다. 저들은 창조신앙과 십자가 신앙을 간직한 순교자들이었습니다. 하늘나라 스타들이었습니다. 이 민족의 영웅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100년전 이 땅에서 일어났던 회개와 각성, 성령의 폭발과 100만 구령운동 - 이 모든 것이 하나 되어 민족 복음화에 대한 소망과 기대로, 한국교회는 이글거리고 있었습니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성령의 능력과 역사가 그대로 나타나고 사도행전의 복음전파 만큼이나 불같이 타오르는 전도의 열정을 보면서 민족 복음화의 비전이 결코 허황된 꿈이 아님을 보여주었습니다. 암울한 민족을 살리는 길은 정치적 힘을 키우는 것이거나 경제적 힘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민족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길이라고 역설하였습니다. 이무렵 선교사들과 한국교회는 황실에 복음을 전할 수 있기 위해 기도했습니다. 알렌과 아비슨 같은 의료선교사들이 고종 황제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잦아지면서 황제에게 직접 복음을 전하기도하고 성서공회가 정성스럽게 만든 성경을 황제에게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황제의 마음 문이 열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궁정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한국교회에 전해지자 성도들은 모두 흥분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이때, 일제는 1909년 7월 24일 고종 황제를 권좌에서 강제로 폐위시켰습니다. 이 치욕과 민족적 울분을 달랠 수 없어 많은 젊은이들이 자결로 항거하였습니다.
그 중심에 교회가 서 있었습니다. 정동 감리교회에서 권총으로 자결한 정재봉, 독립문 앞에서 자결한 홍태순, 샌프란시스코에서 일제 침략을 지원한 미국 외교관 스티븐슨을 저격한 장인환, 안중근의 거사에 동참하였던 우덕순, 이완용을 저격한 이재명 - 이들 모두가 기독교 신자들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한국교회는 민족적 수난을 보고만 있을 수 없어 국채보상운동을 앞장서 이끌어 갔습니다. 이러한 교회의 모습을 보면서 젊은이들과 민초들은 민족의 희망이 교회에 있음을 깨닫고 물밀듯이 교회로 몰려왔습니다. 당시 대한 매일 신보는 “의병들이 무수히 감화를 받고 기독교에 입교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단 1, 2년 만에 이제 한국은 복음의 불모지가 아니라 세계가 주목하는 선교지역으로 탈바꿈했습니다. 비기독교 국가에서 기독교 국가가 되는 첫 나라가 될 수도 있다는 기대감에 한국은 세계가 주목하는 국가가 되어버렸습니다. 이것이 저 유명한 1907년 평양 대부흥운동입니다. Again 1907. 그 날 이 땅에서 일어났던 엄청난 일들이 오늘도 재현되기를 우리는 기도합니다. 1907년 부흥운동이후 한국교회 성도들은 무너진 나라를 세우고 무너진 예루살렘 성전을 세우는 마음으로 예배당을 건축했습니다. 예배당을 세우는 일은 바로 민족정신, 민족 복음화를 세우는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드디어 1910년 나라를 송두리째 빼앗기는 그 해 동대문 감리교회, 새문안 교회 등이 봉헌됩니다. 봉헌식에는 한국교회 지도자들과 선교사들이 함께 모여 눈물로 민족 복음화를 외쳤습니다.
․그 날의 회개가 오늘 우리의 심령에도 쏟아져 나오기를 바랍니다. 그 날의 각성이 이 함양 땅 우리 상내백 교회에서도 일어나기를 소원합니다. 그 날의 성령님이 오늘 새롭게 이 땅에서 역사하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 날의 부흥운동이 우리교회에서도 일어날 것을 기대합니다. 민족을 밝히던 그 날의 빛이 새롭게 밝혀지며, 그 날의 구령 열정이 되살아나기를 열망합니다. 우리의 심장 속에 잠들어 있던 열정이 깨어나기를! 우리의 피 속에 흐르는 복음의 열정이 살아나기를 기도합니다. 할렐루야.
저는 이러한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교회가 농촌교회를 살리는 모델교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한국에는 수많은 농촌 미자립 교회들이 있습니다. 정말 희망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이제 성령의 바람이 불어와 에스겔 골짜기 마른 뼈들이 일어나 군대를 이룸 같이 부흥의 불길이 일어나기를 열망합니다. 이를 위해 농업회사 법인 무지개 나라를 세우고 엘림선교회를 세우고 이제 4월이면 토요일마다 훌륭한 강사들이 오셔서 선교학교 강의가 시작되게 될 것입니다.‘네가 정말 미쳤구나’고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일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한국의 침체된 많은 미자립교회에 희망의 불꽃이 피어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다같이 기도 합시다.
기도/ 역사를 주관하시는 사랑의 하나님. 우리의 가는 길에 밝은 빛을 비추어 주시옵시사, 죽은 생명이 살아나고 무기력한 농촌교회가 활력을 얻을 수 있게 하옵시고 침체한 한국교회에 산 소망이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1907년 이 강산에 불어닥친 성령의 바람이 다시 일어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에 미친 사람들이 또다시 방방곡곡에 일어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