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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변에 봄이 흐른다
산청에서 하동으로 가는 19번 국도에 봄 향기가 물씬 풍기고 있다. 많은 차들이 벚꽃 축제가 열리는 쌍계사로 향하고 있지만 이미 길가에 핀 벚꽃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해마다 4월 초순이면 몸살을 앓는 곳이어서 행사가 끝난 평일인데도 여전히 사람들로 붐빈다. 섬진강을 끼고 악양으로 가는 길에 피어난 화사한 꽃과 상큼한 신록의 조화가 참 볼 만하다. 희고 푸른 두 가지 빛깔이 그야말로 비할 데 없는 어울림이다
갈대와 유채와 벚꽃의 합창.
섬진강 평사리 일대는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로 잘 알려진 곳이다. 대체로 소설이나 영화의 현장에 가면 상상에 못 미치는 현실에 실망하기 일쑤지만 이곳의 풍광은 좀 다른 면이 있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수많은 여행객의 발길이 그것을 입증하고 있다. 그래서 쌍계사에 벚꽃이 피는 계절이면 인내심 많은 사람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는다. 이미 여러 사람들이 섭렵한 곳에 줄 서는 것은 단순한 관광객이나 할 일이다. 그럼에도 건조주의보가 내려지고 하늘이 희뿌연 날을 마다 않고 이곳에 가야 하는 이유가 있다. 이러저러한 구실로 강을 파헤치거나 공원처럼 꾸미지 않은 섬진강이 그 앞에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남해로 가는 500리 섬진강의 물줄기는 지리산이라는 거대한 산괴를 감싸고 있다. 이 나지막한 강은 산자수명하여 눈을 즐겁게 하고 단순하되 친화력이 있어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이런 풍경이 사진가들에게 끌리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은빛 모랫벌을 보는 것만으로도 악양 평사리에 가는 목적은 충분한 것이다. 평화로운 풍경에 파격을 주는 소나무 두 그루가 평사리 벌판에 서 있다. 어떤 이는 이 소나무를 부부로 보고, 또 어떤 이는 <토지>의 등장인물 서희와 길상이라 말하기도 한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의 시 한 편을 읽고 이 나무에 첫눈을 맞추는 것은 마치 평사리로 가는 통과의례처럼 여겨진다. (중략)─섬진강(3)
(아래)섬진강 풍경과 그 안에 속한 사람들.
좋은 풍경이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것이지만 결국 창의적 사진가의 눈에 의해 결정된다. 그것은 대체로 최적의 순간에 현장에 있어야 한다는 전제를 달고 있다. 최적의 순간이란 날씨가 되기도 하지만 사진가가 원하는 상황이 펼쳐진다는 것을 말한다. 운이 좋다는 것도 필요한 만큼의 준비와 자세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좋은 풍경의 전제에 요행을 포함시킬 만한 여지는 아주 적다. 위와 같은 조건을 충족시키고 나서도 모래 위에 집짓기처럼 허탕 치기를 수차례 반복해봐야 좋은 풍경 만나는 게 별 따기임을 실감하게 된다.
알피니즘이 관념적 사고보다 실천에 가치를 두는 것처럼 ‘보이는 것만이 찍혀진다’라는 사진의 보편적 진실은 행위에 무게가 실려 있다. 산을 오르는 방법을 아무리 잘 배워도 산에 가지 않으면 소용없듯이 잘 찍는 방법을 아무리 잘 알아도 발품을 팔아 현장에 가지 않으면 그만인 것이다. 현장에 가면 이미 보이지 않거나 거기에 없기 때문이다. 남이 찍은 사진을 보고 그곳에 갈 땐 선입견을 버리란 말을 반복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평사리의 랜드마크처럼 느껴지는 소나무 두 그루
17㎜ 광각에서 200㎜ 망원렌즈 유효 개고생이라 하니 그 끝에 뭐가 나올까 궁금증이 생긴다. 더구나 8000m 14좌를 오른 엄홍길을 내세워 그런 표현을 쓰니 의외가 아닐 수 없다. 산악인들은 엄홍길이 출연한 것에 주목하고, 보통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광고냐고 반문한다. 그리고 나는 촬영에 실패하고 돌아올 때를 생각했다. 어쨌든 그 한마디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했으니 광고는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둔 셈이다. 특히 등로주의 등반에서 그렇다. 그러나 사진과 같은 시각예술에서는 과정으로 끝나는 것은 통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결실을 봐야 한다. 아무리 과정이 어렵고 힘들어도 민숭민숭하게 끝나는 것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풍경에 카메라를 들이대면서 실패를 거듭한다면 그것이 바로 헛고생인 것이다. 도전할 만한 모든 분야의 일이 그렇듯 하나로 통하는 덕목은 그래도 역시 끈기다. 고산자 김정호가 혼자 힘으로 대동여지도를 완성한 것처럼 모름지기 사진가는 한 장의 사진에 온 정성을 기울이는 끈기를 지녀야 하지 않을까. 수많은 사람들의 애환과 질곡의 역사를 거쳐 온 평사리의 봄 풍경이 편안한 느낌을 남겨주고 있으니 그걸 보고 있는 사진가는 여기까지 온 고생을 고생이라 말할 수도 없다.
(아래)모래밭에도 오아시스처럼 푸르름이 돋아나게 하는 봄의 힘.
평사리 촬영 가이드 최참판댁과 고소성 등은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가지만 사진가들은 섬진강변의 자연스런 모습들이 눈에 끌린다. 섬진강은 신록에 물이 오르는 4월 초부터 한 달 동안 가장 눈부신 풍광들이 펼쳐진다. 이때는 쌍계사에도 벚꽃이 만개해 날씨가 과도하게 탁해지는 날만 피한다면 쉽게 풍경을 건질 수 있다. 평사리 촬영에 적절한 렌즈는 17mm 광각에서 200mm 망원 렌즈가 유효하다. 그러나 이곳은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전라북도 전주에서 구례를 거쳐서 가는 게 보통이다. 평사리에 가는 또 한 가지 방법은 대전~통영 고속도로를 타고 진주에서 남해 고속도로를 거쳐서 하동으로 간 다음 19번 도로를 타고 가는 방법이다. 지도상으로 본다면 산청에서 지리산을 통해 하동으로 가는 게 가깝지만 시간은 더 많이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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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한폭의 그림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