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일 금식 기도
김 교수는 학년 말만 되면 우울하였다. 자기는 젊었을 때 왜 더 많은 친구를 사귀며 지내지 못했을까? 왜 출세하는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을까? 기업체에 왜 제자 하나를 심어주지 못할까? 지금 그가 아는 사람이 있다면 교육계에 흩어져서 선생을 하는 사람들뿐이었다. 수학전공을 했다는 학생들이 졸업하고 하는 일이란 몇 사람이 중‧고등학교 교사로 가고 나머지는 학원 강사, 수능 교육, 보험회사, 이동통신, 또 엉뚱하게 시사영어, 제약회사, 요구르트 회사……. 등등이었다. 중․고등학교 교사는 교직을 이수하고도 임용고시의 관문이 너무 높아 합격하기가 어려웠다. 또, 합격했다 하더라도 발령이 쉬 나지 않았다. 가끔 졸업생들이 전화를 걸어 가스 안전공사에 취직했다든가 어떤 컴퓨터 회사에 들어가게 되었다든가 하는 말을 들려주면 기특하고 얼마나 고마운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평소에 수학을 열심히 공부한 학생이 아니고 자격고시를 보려고 학원에 다녀서 수학 공부는 제대로 못 한, 착하지 않은 학생이었다. 고분고분 교수의 말을 잘 듣고 학교의 규칙을 잘 지키며 공부를 열심히 한 학생들은 성적은 좋고 교직을 이수하여 교사 자격증을 가진 학생들이었지만 잘 취직이 되지 않았었다. 세상은 착하지 않은 학생을 좋아해서 그들은 잘 풀렸지만 착한 학생은 잘 풀리지 않았다. 학생이 나에게 “왜 수학을 공부합니까?”라고 물으면 나는 “수학은 과학의 기초야. 뉴턴의 법칙은 수학 없이는 말할 수 없어. ‘우주가 한 치의 착오도 없이 움직이고 있다’라고 기계론적 자연관을 말할 때 한 치의 착오도 없는 법칙은 수학의 공식이야. 이 공식 때문에 복잡한 우주 공간을 떠도는 물체의 궤도는 설명이 되는 거야. 너는 수학을 택한 것에 자부심을 느껴라. 절대 후회하지 않을 거야.”라고 나름대로 설명한다. 그런데 김 교수는 학위를 받고 대학에서 수학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 후회된다. 제자를 제대로 취직을 시키지 못하고 지금은 정규대학이 취직을 위한 학원을 따라가려고 기를 쓰고 있기 때문이었다.
김 교수가 이런 생각에 시달리고 있는데 하루는 고등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고 있는 제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수학교사 자리가 하나 빌 것 같은데 미리 학교에 와서 부탁을 해 보라는 것이었다. 뛰어가서 제자를 만났다. 아직 뜻은 밝히지 않았지만, 동료 교사가 다른 직장에 옮기게 되어 있으므로 내색은 하지 말고 자리가 생기면 부탁한다는 청탁을 교감 선생께 먼저 말해 보라는 것이었다.
“빈손으로 될까?”
“아직 공석이 분명하지 않고요. 또 여기는 기독교 학교가 되어서 그런 일은 잘 못 하면 역효과를 거둘 수가 있습니다. 취직되면 답례하라고 그러세요”
그러면서 그곳에서는 교목이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어서 그분도 만나 보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했다. 먼저 교감을 만났다. 그런데 그는 금시초문이라면서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뗐다. 너무 선수를 쳤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온 김에 교목도 만나보고 가리라는 생각으로 들렸다. 이번에는 좀 우회적으로 이야기를 꺼냈다. 여기를 지나칠 일이 있어 제자를 만나러 온 김에 교목실을 들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자기가 매 주일 한 번씩 2년 동안 성경공부를 가르쳐온 아주 신앙이 좋은 학생이 있는데 혹 자리가 비면 꼭 연락 주시고 고려해 달라고 절을 꾸벅꾸벅하였다. 학교를 떠나려는데 제자가 나와서 꼭 자리가 빌 것이니 미리 한 학생에게 연락해서 이력서와 성적 증명서, 호적초본, 그리고 특히 신앙 간증서를 하나 써서 준비하고 있다가 제출할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었다.
집에 와서 기도하는 가운데 군대도 갔다 왔고, 신앙도 좋고, 성적도 뛰어난 이도기 군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겨울 방학 중이어서 찾을 길이 없었다. 고향 집에도 없었고 자취방도 벌써 정리하고 떠난 뒤였다. 그런데 생각 난 것이 그가 개척교회를 하는 목사님을 평소에 돕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 교회를 찾아 전화했더니 목사는 그가 40일 작정 기도를 하려 기도원으로 갔는데 끝날 때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조급한 마음으로 기도원 전화번호를 받아 전화했더니 용케도 이 군을 연결해 주었다. 고등학교 수학교사를 위해 서류를 작성하여 바로 연락을 해달라고 하자 그는 감격해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선생님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저는 지금 기도를 마치고 떠날 준비를 하고 있거든요. 하나님께서 이런 방법으로 응답해 주시네요. 취직을 위해서 40일 금식 기도를 시작했는데 바로 끝나는 날 선생님께서 전화를 주셨습니다. 곧 준비하고 연락 드리겠습니다.”
놀란 것은 김 교수였다. 바로 취직이 된 것 같은 대답이었다.
“아니야 이건 결코 결정된 것이 아니야. 어쩌면 안 될지도 몰라”
“아닙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안되어도 좋습니다. 저는 그저 기분이 좋습니다. 이런 방법으로 즉각 기도에 응답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3일 뒤에 이도기 군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서류를 준비하는데 좀 시간이 걸렸다는 것이었다. 김 교수는 자기를 찾아올 것 없이 바로 학교로 찾아가 선배 교사를 만나보고 서류를 제출하고 오라고 했다. 너무 일을 서둘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 되는 경우 그 실망이 얼마나 크겠는가? 또 40일 기도가 아무 효과가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신앙에 상처가 얼마나 크겠는가? 40일 동안 자기의 유익만을 위해 이기적인 기도를 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의 절박한 심정을 이해하실 것이었다.
한 주도 지나기 전 재직하고 있는 제자 교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교수님 이번에는 안될 것 같습니다. 동료 교수는 떠나기로 했는데요. 우리 학교의 서무 과장님이 이번에 은퇴하십니다. 그분이 자기 아들을 꼭 좀 넣어달라고 교장 선생님께 부탁했답니다.”
취직이 왜 이렇게 어려운가? 왜 또 자기는 하필이면 금식 기도를 한 그 착한 학생을 추천하려고 했던 것일까? 안 되면 뭐라고 대답하지?
그 주일 교회 성경공부 때 요한1서 1장을 공부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 여자 집사가 간증하였다. 대학 맞은편에서 과수원을 운영하는 여 집사였다. 며칠 전 한 학생이 집으로 찾아와서 사과 하나에 얼마 하느냐고 묻더란 것이다. 사과도 사과 나름이라고 했더니 평균 얼마나 하느냐고 물었단다. 어림잡아 말했더니 그는 돈 3만 원을 내놓고 나갔다는 것이다. 자기가 과수원에서 몰래 사과를 따 먹은 것이 마음에 찔려 이 돈을 내놓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하고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그는 죄 목록을 적고 40일 기도를 하고 돌아오는 길이라고 말했다는 것이었다.
김 교수는 이 학생이 이도기 군이었을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김 교수는 더욱 마음이 아팠다. 응답받는 기도의 필수요건은 먼저 죄를 회개하는 것이라고 가르쳤던 것이 자기가 아니었던가? 김 교수는 이번엔 학교에 취직될 것은 잊어버리고 있으라고 이 군에게 차마 전화를 해 줄 수가 없었다.
방학도 끝날 무렵이었다. 이 군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제가 취직되었습니다.”
“뭐? 취직되었다고? 그곳 서무 과장 아들이 된 게 아니었어?”
“네, 둘이 다 되었습니다. 저는 티오(TO)가 없는데, 우선 쓰라는 이사장님의 명령이셨습니다”
“그럴 수가 있나?”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지요. 제 간증문을 어쩌다가 이사장님이 읽으시고 무조건 채용하라고 하셨답니다.”
“내게 그 간증문 사본 좀 보내주게. 우리 교인들도 은혜를 나누고 싶어”
“그렇게 하겠습니다.”
김 교수는 한숨을 내쉬며 여유 있는 어조로 말했다.
“이제 자신이 생겨 문제만 있으면 또 40일 금식 기도를 하면서 자신을 괴롭히겠구먼”
“선생님 저는 율법주의자나 신비주의자가 아닙니다. 꼭 필요할 때만 합니다.”
그러면서 아쉬운 듯이 덧붙였다.
“꼭 한 번만 더 해야 하는데요. 이번에는 배우자를 위해서입니다. 선생님 아시다시피 저는 키가 작고 못생겼지 않아요? 저 정말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동반자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