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8세 중후반 (1750~1760) 프랑스를 물리친 영국은 19세기의 문을 열자마자 해가지지 않는 나라로 진격하기 시작했다.
조지 4세 와 윌리엄 4세 시대를 살짝 거친후 마침내 거대의 영연방을 만들게 하는 빅토리아 여왕(1837~1901) 시대를 맞이
한다.영국은 산업혁명의 완성 효과와 잉여자본을 바탕으로 세계의 모든 땅을 침략 점령하여 주인이 되기 시작한다.영국이
세계 점령을 향해 촉수(전위부대)로 활용한 것은 돈과 기술 이외에 그들 기준으로 말하면 해군이고,역사를 빌어 진솔하게
말하면 성서를 이용한 기독교 도둑 선교와 '해적(海賊: 드레이크 같은 해적은 영국의 卿 까지 됐다)' 들 이었다.
해적선엔 반드시 천주교(기독교) 선교사가 타고 있는 경우가 많았고, 이들도 자신들이 믿는 신의 이름으로 한탕주의를
세계 곳곳에서 즐겼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또 영국의 해군성 장관이나 대신들 중에는 해적출신과 가문들이 많았다는
것도 영국 역사와 기독교 역사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즉 도둑질(해적질)과 강도질이 오늘날 선진국의 모체가
됐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오늘의 제2 해적질인 신자유주의와 시장제일주의를 새롭게 이해 해야한다.
영국을 비롯한 프랑스,스페인,포루투칼,네델란드 등 중세이후 중상주의와 협력해 이른바 해상무역이란 것을 시대별로
장악했다고 서양사에서 해설되는 서구세력들 모두의 실제 얼굴은 말이 좋아 통상무역이고 개척이지,사실은 '해적질과
강도질' 였다.이들이(해적과 강도) 부를 축적하는데 주로 활용했던 방법과 행위는 영화나 소설에서 또 이면을 서술하는
진보의 역사서들이 묘사 했듯이 전반적으로 '인신매매,약탈,방화,강도,살인,납치' 행위가 모두 였다.중남미나 아프리카,
아시아 이면 역사를 보면 이들의 행위를 적나라하게 서술되고 있다.신사의 나라,예술의 나라 같은 소리도 모두 강도질을
통한 배부름과 잉여에서 나왔다는 것을 숨기기 위해 그들 스스로 만들어 낸 말이다.
이들 선조격인 지중해 연안과 대서양 인근 해역의 도시국가들(베네치아,제노바,암스텔담 등)역시 해적질과 강도들의
본부였고,이 해적들이 한 행위인 헐값 매수란 것도 희귀 했었다고 역사는 쓰고 있다.특히 사람이 부족했던 시대라
'인신납치 매매'는 기본 사업이 었다고 쓰고 있으며 이것이 흑인노예 사업으로 발전시키는데 단초가 됐다고 한다.
이때부터 지중해 해안가나 섬지역 그리고 강가에 사람이 살지 않게되고 깊은 산속이나 숲속으로 숨어들기 시작했다고
한다.독일을 대표하는 문호인 괴퇴도 국부의 중요한 행위로 '강도와 해적질' 임을 말한바 있다.
2, 이제 주저 할 이유가 없었던 영국은 동인도 회사라는 해적회사의 군대를 앞세워 아시아에서 침공과 약탈 행동을 본격적
으로 개시하는데, 이 해적회사의 대주주가 영국의 왕실이었고 주주들 대부분이 영국 대토지 소유자들인 귀족(경)들이었다.
이들은 1802년에 스리랑카(실론)를 먹고,1819년 에는 싱가포르를 먹어 치운다.1824년 에는 말레이시아를 공식 식민지화
하고,1824년~1826년과 1852년~1853년 두차례에 걸친 버마(미얀마)와 전쟁을 벌려 승리한후 버마도 점령하고,1858년에는
인도 전체를 영국 여왕의 영토로 만들어 버린다.공룡처럼 쉬지않고 먹어 치웠다.그러고 하는 말이 또 인도인들에겐 물어
보지도 않고 영국의 문호 섹스피어와 인도는 바꿀수 없다(섹스피아가 인도보다 가치가 있다는 뜻) 라는 헛소리까지 뇌
까렸다.웃기지도 않는것은 이런 말은 인도인들의 자존심을 있는대로 뭉게는 행위로 건방과 함께 오만의 극치를 보였다.
인도와 파키스탄에서 밀려난 프랑스는 영국과 협상을 벌려 태국을 중립지대로 놓고 영국은 서쪽을, 프랑스는 동쪽을
점령지로 하자는 약속까지 하며 동남아를 서로 나눠 먹는다.그래서 태국은 본의 아니게 어부지리로 팔자에도 없는
독립국으로 오랫동안 존재 할수 있었다.따라서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는 영국의 식민지로,베트남,캄보디아,
라오스는 프랑스의 점령지가 될수 있었던 것이다.영국과 프랑스 두 해적 세력들은 모두 총칼을 앞세워 훔치고 뺏을것
찾아서 동남아시아 전지역을 휘졋고 다녔을때 약자들이 할일이란 도망가 숨는 것 이외는 할일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후 인도네시아 열도지역은 동지인 네델란드와 포루투칼(티모르)의 영속지로 남기게하는 분할 점령을 마치게 한다.
이쯤에서 아시아 최대 쌀 생산지였던 방글라데시(동파키스탄)는 중국과 극동에 팔아먹을 마약재배(아편)지로 재편된다.
즉 아편을 재배케하면서 국민들을 굶주림에 떨게 만들었고 동인도 해적회사 들은 마약을 팔아 떼돈을 벌게된다.
이때 부터 시작된 방글라데시에 대한 착취와 아편재배는 지력을 극도로 떨어뜨리게 했고,이후 벼 농사조차 못짓게 되어
황폐화 된 방글라데시로 만들었다.그 영향으로 지금도 세계에서 가난한 나라중에 방글라데시가 들어가게 된것이다.
이게 바로 신사의 나라란 영국에서 약자들에게 행한 그것도 선교사를 앞세운 기독교 국가들의 행위다.
신사의 나라,또 약자를 섬기는 켄터베리 대주교의 나라 같은 헛소리 였다는 것을 알자.지금은 영구과 프랑스의 바톤을
미국이 물려받아 세계의 가난한 나라와 사람들을 향해 돈놀이와 전쟁놀이로 떼돈을 버는 착취를 하고있다.
3, 청나라가 영국의 마약장사들과 싸워 패한 싸움이 바로 아편전쟁이란 것인데,영국 해적들은 淸이 마약을 못 팔아 먹게
한다고 선제공격으로 일으킨 전쟁이 아편전쟁이다.淸이 1840년~1842년 의 싸움에서 패하면서 1842년에 남경조약과
1843년 추가 조약으로 의해 마침내 '홍콩'을 영국 해적에게 빼앗기고,상해,광동(광주:캔톤),영파,복주' 등 5개 항을 강제
개항하게 된다.
이어서 프랑스도 영국에 준하는 최혜국 대우를 받는 조약을 체결하고,1844년에는 미국도 영국과 프랑스 경우 처럼 최혜국
대우의 불평등 조약을 체결케 한다.전쟁에서 지자 그냥 해적들 요구대로 도장만 찍어 준것이다.이런 와중에 잠시 흑해에서
크림전쟁 (러시아와 영국)이 있어 동양과 淸나라에 대한 침략이 잠잠하더니 전쟁이 끝난후 영국과 프랑스는 또다시 침략해
제 2 마약전쟁을 일으킨다.1852년에 시작한 이 전쟁은 영국의 해적선들이 남방의 광주지역을 선제 공격하면서 시작된다.
또한 같은해 남방의 광서성에선 프랑스 선교사가 살해된 사건을 전쟁 구실로 삼아 원수지간이던 프랑스와 영국 해적들이
이익을 위해 다시 결탁 동맹을 맺고 淸을 합동 공격해 승리한다.이 후유증은 1858년 천진조약을 강제로 맺게 하는데 기존의
개항지 말고도 장강 연안도시들인'鎭江, 九江, ,牛壯(曺口), 登州' 고을들을 강제로 開市 하게 한다.
4, 그러나 천진조약의 비준문제를 놓고 청이 불리함을 들어 의견이 대립되자 영국과 프랑스 해적들은 북경으로 진격하여
1860년 북경조약으로 전쟁의 끝을 맺게 되는데, 결과는 天津도 개항하고 홍콩이 속한 구룡반도 남부 전체를 영국에게 할양
할것을 강제했다.이때 북경으로 진격한 영불 연합군이란 도적들은 북경의 서북쪽에 있는 청 황실의 별궁인 이화원과 원명원
을 약탈함은 물론 불태워 버리는 만행을 저질렀다.이들의 약탈품들 모두는 지금의 대영 박물관이나 프랑스의 루부르 박물관
에 많이 있을 것이다.시대적으로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영화 '북경의 55일' 이란 영화(의화단 사건을 배경의 영화)가 잘 묘사
해 놓고있다.
英佛을 비롯해 연합국들의 도적들이 게걸스럽게 물건들을 훔치고 살인하고, 북경 전체를 상대로 약탈,살인,방화하는 모습을
그려 놓은 것이 바로 이들 英佛 연합군이자,서구(서구화된)의 8개국 연합군들의 정체였다.이들의 진짜 목적은 가치가 있다고
보이는 귀중품과 금은보화,그리고 동방 골동품들의 강도질,도적질 이었지 자유와 평화로운 교역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이다.
청의 혼란을 틈타 또 행패를 부리던 서양의 한 세력이 또 있었으니 그는 다름 아닌 러시아 였다. 이들은 해적도 강했지만
지상군으로 칭하는 마적단(코사크 마적단)의 위력도 대단했었다.이들은 1857년~1858년 에 청의 흘룡강 유역과 연해주 지역을
강제로 빼앗아 내것으로 하는 등 마구잡이로 땅 도둑질을 했다.이때의 淸은 한국의 국법도 만들어주고 권력의 종주국이었는
데도 서양 해적들 앞에 반 식민지 상태로 전락해 풍전등화의 형국이었다.종주국이 이러니 종속의 반도야 어찌했겠는가?
첫댓글 놀랍습니다. 완전 서구(西寇)이네요..
그래서 양이를 배척하려 했던 것이 였습니다.
조선이라는 땅을 조각조각 야금야금 삐앗아 도둑질해갔던 것이네요..
뿐만 아니라 동양(조선)전체를 여러개로 쪼개는 분리정책을 써 먹으려 했지요.거기에 영국을 흉내낸 열도의 해적들이자 군벌들이 자본에 이용을 당해 50년(1895~1945) 동안 전쟁만 하면서 남들만 돈벌게 해주다가 사냥감 대신 팽 된거지요.....
팽이 뭡니까?
이용가치가 없어 졋을 때 홀대하거나 제거 당하는 것을 말하는 兎死狗烹의 한 글자인 烹 에서 따온 것임.출전은 초패왕과 한고조 유방이 중원의 패권을 다툴때 공을 세우고도 배신당한 장군인 한신의 처지에서 했던 말이라고 하지요.
@상선거사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 언제나 귀중하게 읽고 있습니다. 과연 선생님은 역사의 선구자십니다. . ^^
저도 영국을 싫어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을 죽인 국가죠. 히틀러보다 나쁜 놈들이라고도 생각하고 있습니다.